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밀라레빠의 법을 이은 감뽀빠의 뛰어난 제자인 1대 까르마파 뒤숨겐빠(1110-1193)로부터 이 활불 린포체의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아는데요, 티벳 이외의 인도불교나 중국불교 남방불교에서는 이런 이는 없었는지와 이런 환생하겠다 예시하고 태어나 교화하는 것은 일전에 질문 드린 아라한의 길 연각의 길 보살의 길에서 보살의 길에 가깝다고 보이는데, 이런 보살의 길을 가고자 이런 환생을 예시하는 시스템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금강승은 즉신성불이라 활불은 살아있는 부처라는 말인데, 또 대승 보살의 길을 실천에 옳긴 것이 아닌 듯도 하고요, 저로서는 역시 어려운 문제라서 질문드립니다.
다시 간단히 말하면, 환생을 예시하고 태어나는 활불의 전통은 티벳에만 있었는지와 이와같은 활불의 전통은 보살의 길을 가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답변입니다.
먼저 "활불 린포체의 전통이 ... 티벳 이외의 인도불교나 중국불교 남방불교에서는 이런 이는 없었는지" 물으셨는데, 인도든, 중국인든, 남방상좌부든 이런 전통은 없었고, 이는 전적으로 티벳 고유의 전통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승불전에서는 윤회하며 내생에 다시 태어나는 방식을 업생(業生)과 원생(願生)으로 구분합니다. 업생은 일반 중생의 탄생 방식으로 자기가 지은 업에 따른 이숙과(異熟果)로 다음 생을 받는 것이고, 원생은 보살도를 닦는 사람이 임종 시에, 자신이 내생에 어디에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다고 발원하고, 그 발원대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아시아 한문 불교권의 경우도 이러한 원생과 관계된 에피소드가 여럿 있지만, 원생을 통한 환생 방식이 제도화 되지는 않았는데, 티벳의 경우는 진작부터 이를 제도화 하였고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돌아가신 고승이 생전에 쓰던 물건을 다른 물건과 섞어 놓은 후, 환생자로 지목된 여러 어린 아이들에게 전생에 자신이 쓰던 물건을 고르라고 하여, 그것을 맞춘 아이를 환생자로 선출하는 방식도 있고, 마치 제비뽑기 하듯이 황금 항아리 속에 쪽지를 넣어서 환생자를 선출하는 방식도 있다고 합니다.
총명한 어린 아이 중에서 고승의 환생자를 발굴하여, 조기 집중 교육을 통해 티벳불교를 이끌 지도자로 육성하는 제도는, 환생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우수한 인재'를 리더로 모시는 참으로 현명한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또 "환생하겠다 예시하고 태어나 교화하는 것"은 "보살의 길에 가깝다고 보이"며, "보살의 길을 가고자 이런 환생을 예시하는 시스템이 생긴 것은 아닌가" 물으셨는데, 추측하시듯이 "환생을 예시하는 시스템"은, 성불하기 이전에 3아승기 100대겁을 윤회하며 이타행을 실천하는 보살도와 교리적으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환생을 예시하고 돌아가신 고승이, 내생에 그런 예시 그대로 환생했는지, 또 환생자로 선출된 어린 아이가 그 고승의 후신이 맞는지 여부에 대해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도 쉽지 않고요. 따라서 누군가가 환생자라고 주장할 때, 이를 맹신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불교가 동아시아에 널리 알려지기 전에, 진(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진서(晋書)>에서 윤회를 예증하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 발견되는데 이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鲍靓记井 《晋书》 卷九十五 《艺术传•鲍靓传》
포정이 우물을 기억하다. 《진서》 제95권 《예출전•포정전》
鲍靓,字太玄,东海人也.年五岁,语父母云:本是曲阳李家儿,九岁坠井死. 其父母寻访得李氏,推问皆符验.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저는 원래 곡양의 이씨 집안의 아이인데 아홉 살 때 우물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포정의 부모가 이씨를 찾아 물어보니 모두 사실과 부합하였다.)
羊祜识环 《晋书•羊祜传》
양호가 반지를 기억하다. 《진서•양호전》
羊祜,字叔子,泰山南城人也. ……祜年五岁,时令乳母取所弄金环. 乳母曰:汝先无此物. 祜即诣邻人李氏东垣桑树中探得之. 主人惊曰:此吾亡儿所失物也,云何持去!乳母具言之,李氏悲惋. 时人异之,谓李氏子则祜之前身也. (양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유모에게 자기가 갖고 놀던 금반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유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에게는 원래 그런 게 없어.” 양호는 곧장 이웃 사람인 이씨 집으로 가서 동쪽 담장 곁에 있는 뽕나무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었다. 주인은 슬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내 죽은 아이가 잃어버린 물건인데, 어째서 가지고 가느냐?” 유모는 사실을 모두 얘기했다. 이씨는 슬픔에 젖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면서 “이씨의 아들이 양호의 전신이다.”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에 가톨릭 평신도 분이 운영하는 <공동선>이라는 잡지사의 요청으로, 윤회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위에 소개한 <진서>의 기록을 '윤회를 예증하는 기록'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전문을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윤회, 환생 관련한 궁금증을 푸는 데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공동선>, 2013년 1, 2월호 특집)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예, 잘 알겠습니다.
덧붙여서 주신 윤회의 논증은 흥미롭습니다.
초기불교의 재생연결식이란 것이 아마도 그렇게 비약적으로 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