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에 관한 글을 쓸려고 생각하다가
문득 예레미야는 야베스의 기도를 알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예레미야이지만
레갑의 후손에 관해서는 멸망받을 유다 자손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이스라엘왕 예후와 함께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잔당들을 여호와의 분노로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가진 보기드문 훌륭한 신앙의 인물입니다.
아합왕 이후 바알신을 섬기는 죄악으로 관영하였을 때
하나님의 공의로 바알 잔당들을 진멸하였습니다.
바알 잔당들을 진멸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였던 바알의 신앙의 근거와 흔적마저도 완전히 말살하였습니다.
여호나답은 바알의 제전의식에 축제의 잔이었던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포토밭 근처에도 가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단디 교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신을 숭배하는 배후인 농경사회를 거역하여 씨를 뿌리며 파종하는 것을 금하였으며....
바알신에게 기원하였던 좋은 집을 욕망의 뿌리로부터 제거하여 영원토록 장막을 치고 살라고 교훈하였습니다.
여호나답의 교훈은
예레미야 당시 250여년이 흘렀는데도 그대로 후손들에게 철저하게 지켜졌습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멸망의 위기가 고조될 때에
어떤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입에서도 야베스의 기도로 교훈을 하며,
의식을 일깨우며 소망을 심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을 당하고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역대기 저자에 의해서 야베스의 기도가 처음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이스라엘 왕조가 진행되는 긴 역사 가운데
한 번도 신앙의 교훈으로 가르쳐 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선지자나 제사장의 입에서 교훈되지 않았던 야베스의 기도는
포로귀환 후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싯점에서 유다의 후손들 가운데
유명한 사람들을 족보에 올렸는데 야베스에 대해서는 기도문을 기록하였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역대기를 기록하면서
아마도 눈물로 기록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가운데 유다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유명한 야베스의 기도를 기록함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절히 담아내었습니다.
어느 시대 사람인지 정확히 알수 없는 야베의 기도는
포로 귀환 후 역대기 저자의 기도가 되어 회복의 역사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역대기 저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지만
유다의 후손 가운데 존귀한 야베스를 기도문과 함께 기록한 것은
역대기 저자의 위대한 창의적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참혹한 심판의 역사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신앙의 흔적을 찾아 교훈으로 담아내었습니다.
교만하여 범죄한 가운데서도 조금은 겸손하였던 므낫세 왕의 공적을 기록하는가 하면
북쪽 이스라엘보다 남쪽 유다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티끌같은 신앙의 흔적이라도 찾아서 회복의 역사를 희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사사기, 그리고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의 신명기사관이 선자자적인 냉철한 시각이라면
역대기 상하와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와 같은 역대기 사관은 제사장적인 따스한 시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기도문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관한 긍정적인 호흡을 한 증거입니다.
역대기 저자가 눈물로 기록한 야베스의 기도는
아브라함 언약을 회복하기 위한 애절한 신앙이 녹아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기 기자가 기록할 당시 유다의 후손으로 존귀한 야베스의 기도를 응답하여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하락하셨더라는 강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을 위한 뜻을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무너진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대기 저자의 신앙이 금상첨화로 담겨졌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혼란한 시대의 역경과 환란의 역사적 배경 가운데
언약적 신앙의 발로에서 나온 아름다운 기도였습니다.
역대기를 기록할 당시 최초의 역대기 독자는
야베스의 언약적 기도에 대해 공감하였을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의 기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범죄로 인하여 언약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약탈과 침략을 당할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언약의 복을 약속으로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는 야베스의 신앙이요, 몸부림이었습니다.
사사시대에 다른 민족의 침략과 압제로 고통을 받으며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압제에서 풀어 주며 평안을 주었습니다.
압제로 인한 고통에서 구원해 달라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그것은 곧 야베스의 기도였습니다.
환난과 역경으로 인한 절망의 시대에 야베스의 기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언약의 복을 누렸던 이스라엘의 신앙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편이었습니다.
어쩌면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야베스의 기도를 역대기에 수록함으로
언약의 땅 가나안의 회복을 열망하였을 것입니다.
야베스의 신앙도 훌륭하지만
야베의 기도를 기억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긴 역대기 저자는 더욱 훌륭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무너지고...겨우 그루터기만 남은 가운데
역대기 저자는 야베스의 기도를 남은 자의 그루터기로 생명의 신앙을 고취하였습니다.
환난의 때 야베스의 기도는 언약의 복을 회복하였고....
역대기 저자는 역사의 거울로 교훈을 담아내는 창의적 신앙을 가졌는데
한국 교회는 안타깝게도 야베스 기도로 기복과 무속 신앙의 꽃을 피웠습니다.
한국의 IMF는 기독교 신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2년도 다미 선교의 후유증으로 기복과 무속 신앙이 수면 밑으로 잠수를 타고.....
복음주의 신앙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흐름을 바꾼 터닝 포인트를 가졌습니다.
1992년도에서 1998년도 사이의 기독교 서적은
구속사와 언약 신학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IMF를 겪고 새천년의 희망을 갖기 시작하면서
야베스의 기도는 성공과 번영의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는 기복의 샘이 되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성공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앓게 하였고
이 틈을 타 각종 프렌차이즈의 성공 시스템이 봇물 터지듯 교회 안으로 물밀듯이 들어왔습니다.
이 무렵 일부 개척교회 목사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들어 온 헌금으로 주식에 투자하여 말아 먹기도 하였지만
건물을 구입한 예도 적지 않습니다.,
성공과 번영의 비전은 날개를 달았고......
야베스의 기도는 시스템화 되어 중보기도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란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야베스의 기도, 그 이후란 책과 다시쓰는 야베스의 기도와 야베스의 기도를 하지 말라는 비판의 글까지
순풍과 후풍이 교차되는 시기를 지나다가 태풍도 역풍도 힘을 잃은 요즘....
시대의 흐름을 최종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형 야베스의 기도를 하였던 사람들 여전히 아파트 평수를 늘이지 못하였고.....
여전히 불행한 일들을 고스란히 다 겪으면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습니다.
암울한 시대의 야베스 기도와 역대기 기자의 야베스 기도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언약적 회복을 위한 기원이었지만
한국 교회의 야베스 기도 열풍은 기복과 무속적인 갈멜산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기도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성공과 번영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 열풍으로
완전 사단의 밥이요, 놀이감이 되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로 기복과 무속 신앙의 꽃을 피게 하였고
적극적 사고방식과 긍정의 힘으로 인본주의 신앙의 꽃을 피게 하였으며
시크릿의 비밀로 점성술의 신비주의를 강단의 꽃이 되게 하였습니다.
언약적 복음신앙으로 깨어있지 않는 한국교회는
성공과 번영을 지향하는 시스템화된 복음으로 더욱 유사 기독교로 변질되어 세속 종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탄식과 역대기 저자의 그루터기 신앙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참된 야베스 기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참된 진리의 복음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