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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만난 영화] 확신 편향, 더 헌트
“선생님이 싫어요. 선생님 고추를 보았어요.”
순진무구하게 생긴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유치원 원장에게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이 유치원 남교사의 집 지하실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지하실의 벽지와 소파 색깔까지 기억하고 있다. 모든 원생을 조사해 보니 최근 들어서 악몽을 꾸거나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여럿 나왔다. 성추행을 당한 아이들한테서 관찰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피해를 당했다는 아이가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다른 원생들의 입에서도 성추행 가능성을 뒷받침할만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신이 보기에 이 남교사가 실제로 성추행했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전형적인 성추행 이야기
이 남교사가 성추행범일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며. 과연 누가 거짓말하는 것일까? 다섯 살짜리 꼬마들일까? 아니면 중년의 남자일까? 이 남교사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주면 답이 명확해질지도 모른다.
먼저 이 남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교사였다. 아이들의 장난을 다 받아 주었다. 여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아이들과 몸으로 친밀감을 주고받았다. 끌어안고, 뒹굴며, 레슬링도 함께했다. 심지어 대변을 본 뒤 그에게 밑을 닦아 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이런 요구도 눈살하나 찌푸리지 않고 흔쾌히 들어주곤 했다.
고추를 보았다고 말한 그 아이는 남교사 친구의 딸이다.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다. 친구가 바쁘거나 아이를 직접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기 귀찮아하면 남교사가 아이와 함께 유치원까지 걸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유치원이 끝난 뒤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이 남교사를 무척 따랐다. 함께 걷는 동안 남교사의 손을 꼭 잡았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가족들보다 이 남교사가 더 좋았다.
이 남교사는 얼마 전에 이혼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양육권을 가진 전처가 아이를 만나는 것조차 방해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려고 전처를 설득했지만, 온갖 노력에도 대화를 거부하며 아이를 보내 주지 않는 아내 때문에 좌절한 상태였다.
모든 정황은 이 남자가 성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 아이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이 남자의 주장은 성추행범들의 전형적인 거짓말처럼 들린다. 아이들과 몸으로 친밀감을 나눴던 행동은 이 남자가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그가 다정다감하게 행동했던 것은 아이들을 성추행하려는 구역질나는 위선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겉으로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유치원 교사였지만, 아이들과 나눴던 신체 접촉은 그의 변태적인 성욕을 충족시키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는 이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제대로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식을 보고 싶은 욕구가 결합해서 아동에 대한 성욕을 유발시켰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
덴마크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2012년 작 ‘더 헌트’(The Hunt)의 루카스(매즈 미켈슨)가 바로 그 남교사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형적인 아동 성추행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남자가 아이들을 성추행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형성에 근거한 판단이 얼마나 틀리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의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전형성에 근거한 판단을 ‘대표성 휴리스틱’(간편하게 사용하는 추론 전략)이라고 했다. 어떤 개인이 집단의 대표적인 또는 전형적인 모습과 얼마나 유사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그 집단의 성원일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모든 정황이 성추행범의 전형적인 모습과 닮았다면 루카스가 성추행범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추론 전략의 문제는 전형적인 정보 이외의 다른 중요한 정보를 무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확신 편향
사람들은 자신의 가설을 지지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자신의 가설을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자신이 맨 처음 세운 가설에 대한 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게 된다. 이를 ‘확신 편향’이라고 한다.
루카스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다. 성추행을 확신하고 물어 보는 어른들의 질문(이를테면 “혹시 선생님이 너를 지하실 같은 데로 데려가지 않았니?”)이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이를테면 지하실)을 아이들의 마음 속에 심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성인들에게서도 쉽게 일어난다. 일단 지하실이 머릿속에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지하실을 자신만의 모습으로 꾸미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 낸 지하실을 다른 아이들에게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모든 유치원생의 머릿속에 실재하지도 않는 지하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어른들은 루카스의 지하실에 갔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만 주목하고, 실제로 그의 집에 지하실이 있는지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원장을 포함한 마을 어른들이 루카스가 성추행범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루카스가 아이들을 자기 집 지하실에 데려갔다는 이야기는 루카스가 성추행범이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정보라서 곧바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루카스의 집에 지하실이 없다는 정보는 가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 것이다.
루카스 선생님의 고추를 봤다던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의 이야기도 거짓말이었다. 클라라가 루카스 선생님을 이성으로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런 클라라의 마음을 알아채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 선생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클라라가 충동적으로 원장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클라라도 자신의 거짓말이 불러온 결과를 직감하고 어른들에게 고백한다, 루카스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고. 자신이 바보 같은 말을 했는데, 이제는 다른 애들까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클라라의 진실된 고백을 어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른들은 성추행의 끔찍한 기억을 클라라의 무의식이 차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카스가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자신들의 확신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성추행을 당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갑자기 악몽을 꾸거나 오줌을 싸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루카스가 성추행범이라는 자신들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잘못된 판단에 대한 확신은 강화된다.
순수한 확신의 비극
루카스는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풀려난다. 하지만 루카스를 아동 성범죄자라고 확신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확신은 루카스라는 한 선량한 시민의 삶을 사냥감으로 삼는다. 가족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은 루카스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냥꾼으로 돌변한다.
성추행범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루카스에 대한 그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착하디착한 그를 사냥하는 것은 악마의 사악함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순박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으로,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순수한 사람들의 확신이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인생에서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확신이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은 평온을 찾는다. 문제는 확신이 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확신은 우리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 덕에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잘못된 확신이 누군가를 사냥감으로 지목했을 때, 사냥감은 매우 쉽게 죽음의 언저리까지 내몰리기도 한다.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는 확신에 찼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우리의 확신을 의심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다수의 무지, 더 스퀘어
스웨덴 스톡홀름의 X-로얄 현대 미술관에서 기금 모금 행사가 있는 날이다. 화려한 의상의 스웨덴 최상류층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대기하던 사진 기자들은 카메라 플래시를 연신 터뜨려 댄다. 왕궁을 방불케 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X-로얄의 연회장에는 흥겨운 수다와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연회장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번갯불이 번쩍이며 커다란 천둥이 내려친다. 원탁에 둘러앉아 샴페인을 즐기던 사람들은 바로 자기 눈앞에서 펼쳐질 행위 예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마존의 정글을 연상시키는 밀림의 새소리가 들린다. “여러분들은 곧 야생 동물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동물들의 사냥 본능은 먹잇감이 자신보다 약하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촉발됩니다. 여러분들이 공포를 드러내면 이 동물이 그것을 알아챌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도망가려고 하면, 이 동물이 당신을 사냥하려고 끝까지 추격할 것입니다.” 정글에 사는 원주민이 두드리는 북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당신이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완벽하게 조용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 동물은 여러분의 존재를 지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숨을 수 있고, 이 동물의 먹잇감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의 정글
드디어 동물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녹음된 음향이 아닌 진짜로 내는 소리다. 유명 행위 예술가인 올레그 로고진이 연회장의 입구에 등장한다.
로고진은 고릴라처럼 소리 내고 움직였다. 이 행위 예술가는 고릴라에 버금가는 두껍고 커다란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채 반라 상태로 나타났다. 검은색 바지를 입고, 양 손에는 짧고 단단한 검은색 ‘팔꿈치 목발’을 착용했다. 겨드랑이가 아닌 팔꿈치에 지지대가 있는 이 목발 덕분에 로고진은 앞발이 긴 고릴라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이 팔꿈치 목발을 바닥에 쾅쾅 치면, 영화에서 킹콩이 땅을 두드리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가 연회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로고진의 연기는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로고진은 고릴라처럼 소리내며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신사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었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고 그르렁대며 그의 컵을 깨기도 했다. 울부짖던 고릴라는 결국 신사를 연회장 밖으로 쫓아 버렸다. 고릴라의 울부짖음과 팔꿈치 목발을 땅바닥에 치면서 내는 굉음이 연회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잠시 뒤에 야생 동물과 마주하리라는 안내 방송의 내용은 진짜였던 것이다.화가 잔뜩 난 로고진이 원탁 위로 뛰어올랐다. 여덟 명이 둘러앉은 원탁은 난장판이 되고 만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모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이때, 로고진이 한 여성의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공포에 질린 여성이 도와달라고 말하지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같은 원탁에 앉은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도 이 행위 예술가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로고진이 이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쓰러뜨리고, 머리를 잡은 채로 바닥에 질질 끌고 가도 다들 조용할 뿐이었다. 정글은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2017년 작 ‘더 스퀘어’는 제7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더 스퀘어’라는 전시회를 앞두고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담고 있다. 도대체 왜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던 것일까?
다수의 무지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구성원들 사이에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생기는데, 이를 규범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유하는 집단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불편해하고 배척하며, 심지어는 규범을 어긴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집단의 규범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고 하고, 일단 규범을 파악하면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집단 구성원 다수의 의견을 집단 규범으로 채택한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에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형 강의실에서 한 교수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질문을 해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괜히 질문해서 강의실에 있는 다수의 눈총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아무도 질문하지 않은 채 강의가 끝난다. 하지만 과연 나만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사실은 모두가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기만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해했다는 생각에 질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집단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제 생각(‘이해하지 못했으니 질문하자.’)과는 정반대의 생각(‘이해하고 있으니 침묵하자.’)이 다수의 생각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되고, 그것이 집단의 규범이 된 것이다. 이를 ‘다수의 무지’(Pluralistic Ignorance) 현상이라고 한다.
X-로얄의 연회장에 있었던 참석자들 몇몇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폭력이다. 로고진을 제지해야 한다.’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행위 예술을 감상하는 것 같다. 게다가 행위 예술 시작 전에 안내 방송도 있었다.
‘나만 행위 예술을 성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괜히 혼자 나서서 로고진을 제지했다가는 로고진의 행위 예술을 즐기고 있던 다수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지도 몰라. 행위 예술의 진면목을 이해하지 못하는 촌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는 없지. 너무 폭력적인 것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행위 예술이 끝나기만을 조용히 기다려야겠다.’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침묵은 집단의 규범이 된다.
이탈자 효과
집단 규범에 대한 동조 압력은 집단 내에서 의견이 만장일치를 이룰 경우에 최대가 된다. 모두가 침묵하면, 침묵이라는 규범을 따르라는 압력은 극대화된다. 하지만 집단 내에서 한 명이라도 이탈자가 있으면 규범에 대한 동조는 크게 줄어든다. 만장일치가 깨지는 순간 나 혼자만 집단으로부터 이탈된다는 두려움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함으로써 침묵에 대한 만장일치의 합의가 깨지면, 청중들이 느끼는 침묵에 대한 동조 압력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로고진이 여성을 강간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여성의 비명이 극에 달했을 때, 드디어 한 남성이 뛰쳐나와 로고진을 제압한다. 침묵이라는 규범으로부터 이탈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사람이 달려 나와 로고진에게 주먹세례를 퍼붓는다. 규범이 바뀐 것이다, 침묵에서 응징으로.
만장일치를 깨는 이탈자가 반드시 멋진 질문이나 영웅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그 이탈자가 강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엉뚱한 질문을 해도 침묵에 대한 동조 압력은 크게 줄어든다.
그 결과, 침묵은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질문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용감하게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면, 그 의견이 틀린 경우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낼 수 있는 것이다.
엉뚱하고 황당한 사람도 필요한 이유
주변에는 엉뚱하거나 심지어 황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주로 이탈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탈자의 행동은 많은 경우에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탈자의 행동은 다수의 구성원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규범에 부합하지 않고, 우리는 대부분 집단 규범에 충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자는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배척당하기 쉽다.
이탈자의 시도는 쓸모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집단 규범은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자의 행동이나 의견은 엉뚱하고 황당하기만 할 뿐 아무런 호소력도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를 깼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탈자는 집단에 새로운 생각과 행동의 공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 덕분에 우리는 다수의 무지로부터 깨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엉뚱하고 황당한 사람도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음악의 진화 심리학, 보헤미안 랩소디
“쿵쿵, 짝!” “쿵쿵, 짝!”
“발을 먼저 두 번 구르고, 세 번째 박자에는 손뼉을 치라고.”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말한 대로 드러머 ‘로저 테일러’와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열심히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친다. 연습실에 함께 있던 여자 친구들도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소리는 더 커졌다“쿵쿵, 짝!” “쿵쿵, 짝!”
뒤늦게 연습실에 나타난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뭐 하는 거야?”
“관객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어. 상상해 봐, 수많은 사람이 함께 이런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장면을.”
브라이언 메이의 마음은 이미 수만 명의 관중이 자신들과 함께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는 공연장에 와 있다.
“쿵쿵, 짝!” “쿵쿵, 짝!”
브라이언 메이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알아챈 프레디 머큐리가 묻는다.
“가사는 뭔데?”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2018년 작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전설이 된 록 그룹 ‘퀸’(Queen)에 대한 전기적 영화다. 팀의 결성에서부터 이들의 성장과 갈등,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영화의 중심에는 퀸의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그는 록 음악 역사상 가장 파괴력이 있는 보컬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단지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가창력 때문에 우리는 그가 곡을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을 천재적인 작곡가이기도 하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비롯해서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the Champions),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등이 프레디 머큐리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양성애자였던 그는 에이즈(AIDS) 합병증으로 마흔 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중은 그의 음악을 사랑했지만, 그의 삶을 존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프레디 머큐리가 죽을 때까지 한 여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소년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그가 친구와 가족, 그리고 음악과 팬들에 대해 품었던 순수한 마음과 사랑을 보여 준다. 덕분에 영화 내내 다시 듣게 되는 퀸의 노래들은 더 큰 울림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마마, 우우우”
음악의 진화 심리학
진화 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호하도록 진화해 왔다. 음악도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기능을 했기에, 우리는 음악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 무의식적으로 발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진화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발을 맞추지 않고 걸을 때 나는 혼란스러운 소음은 맹수를 포함해 생명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내는 소리를 탐지하는 데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선조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발을 맞추어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께 발을 맞추어 스스로 예측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들의 리듬과는 다른 소리를 쉽게 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발을 맞추면서 만들어 낸 리듬이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 내고 경험한 음악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발을 맞추며 만들어 낸 리듬은 자신들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를 분리시켜 주는 동시에 자신이 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았던 지난날에는 사냥하거나 농사지을 때, 그리고 다른 부족과 전쟁할 때, 집단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음악은 집단 구성원들의 긴장감을 증가시키고, 집단이 지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지를 구성원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통일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집단 구성원 모두를 하나의 집단 목표에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집단의 경쟁력을 높이고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관람하는 특별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싱어롱’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며 노래를 함께 크게 따라 부르는 것이다.
함께 발을 맞추거나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 편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국가, 군가, 노동요, 응원가, 시위대가 부르는 노래, 심지어 생일 축하연에서 부르는 축하곡은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의 동질감과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한다. 옥시토신은 사람들 간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산할 때 분비된 옥시토신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갖도록 만들고, 사랑의 과정에서 분비된 옥시토신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더욱 강화시킨다.
따라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노래, 특히 함께 부르는 노래는 각성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각성은 일종의 정서적인 흥분 상태인데, 증가된 각성은 자신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기분과 감정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따라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사람들간의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응집시킨다.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경기장. 에티오피아의 기아 구제를 위해 기획된 ‘라이브 에이드’ 공연. 7만여 명의 관중이 함께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친다. “쿵쿵, 짝!” “쿵쿵, 짝!” 그리고 드디어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We will, we will, rock you!”(우리가 당신을 흔들어 버릴 거야!)
노래는 우리를 흔든다, 함께 노래하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노래는 사랑을 더욱 크게 만들고, 친구와 함께하는 노래는 우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
든다.
우리가 함께 노래할 수만 있다면 경쟁은 협력으로, 전쟁은 평화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우리와 세상을 변화시킨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꿈의 심리학,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사랑을 만났다. 그가 묻는다. “내가 당신에게 열일곱 번째로 한 말이 뭐지?”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요. 이것 봐요. 저기 여직원들이 당신이 모든 고기에 B등급을 매긴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에 저 소들은 아주 좋아 보이는데,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남자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는 여자. 남자가 다시 묻는다.
“그말이 정말 열일곱 번째인 게 확실해?”
“처음 한 말부터 다 말해 줄까요?”
육체와 영혼
201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헝가리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마리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맑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그 눈으로 세상을 정밀하게 본다. 도축 회사에서 고기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하는 마리어는 지방 두께가 1밀리 더 두껍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그녀는 보고 배운 대로 기계적으로 일한다. 지방 두께가 1밀리만 더 두꺼워도 그동안 쭉 A등급을 받던 고기도 B등급을 매긴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는 친구도, 사랑도 없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졌지만, 그녀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쪽 팔이 온전하지 않은 엔드레에게 팔이 불구라서 한 손으로 떠먹을 수 있는 음식만 먹는 거 아니냐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과 엔드레가 했던 모든 말을 순서대로 복기하고 나서야 자신이 던진 말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 깨닫는 사람이다.
같은 도축 회사의 재무 이사인 엔드레는 인자한 눈을 가진 신사다. 차분하게 다른 사람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그의 몸과 삶은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메마른 나뭇가지 같다. 오래전에 사랑은 사라졌고, 육체는 부서졌다. 자기 인생에 더 이상 사랑의 장(章)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육체와 영혼에 대하여’(On Body and Soul)의 관점에서 보면, 엔드레는 육체가 무너진 사람이고, 마리어는 영혼이 얼어붙은 사람이다. 몸은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은 다시 몸에 영향을 미친다. 엔드레의 무너진 육체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외롭게 만들고, 마리어의 얼어붙은 영혼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도 차갑게 만든다.
도축장의 소들이 차례를 기다린다. 소들의 맑은 눈망울이 마리어의 눈을 닮았다. 하지만 많은 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다른 소를 쳐다볼 수도 없다. 창살을 통해 볼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하늘만이 햇살의 눈부심을 선사한다. 그곳에는 눈부신 자유도 따뜻한 사랑의 기회도 없다. 다만 머리가 잘려 나가기 전까지 춥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혜택이다.
마리어와 엔드레의 사랑 없는, 쓸쓸하고 메마른 삶은 도축장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소들의 것과 닮았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
눈이 가득 내린 한겨울의 숲속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겨울을 나야 하는 두 마리 사슴에게는 혹독한 계절이다. 아름다운 뿔과 건장한 육체를 지닌 수컷은 눈 속을 뒤져 즙이 가득한 풀을 찾아내 암컷에게 건넨다. 둘은 작은 호숫가에서 차갑지만 맑은 물로 목을 축인다. 둘의 맑은 눈망울이 서로를 확인할 때, 혹한의 풍경은 아름다움으로 채워진다.
회사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 과정에서 마리어와 엔드레는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밤마다 같은 꿈에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메마른 엔드레는 꿈속에서 아름다운 뿔과 건장한 육체를 지닌 수컷 사슴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지 못해서 상황에 맞지 않는 말만 하던 마리어는 아름다운 암컷 사슴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다. 꿈속 사슴의 모습과 삶은 현실에서의 마리어와 엔드레, 그리고 소들의 삶과는 정반대였다. 생기가 넘치는 모습의 그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마리어와 엔드레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꿈속에서 실현하고 있었다.
꿈의 심리학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꾸는 꿈은 우리의 소망을 반영한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거나, 현실에서 억압당했던 소망을 우리의 꿈이 실현시켜 줌으로써 사람들의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소망은 주로 성적 욕망과 같은 금기이기 때문에 꿈속에서 위장된 형태로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적 관점에서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꿈은 성적 관계에 대한 소망이 위장된 표현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 연구들은 건조하기 짝이 없게도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꿈은 그저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모든 가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자신이 아는 사람 가운데 아무나(이를테면, 어머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런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5분 동안 기록하게 했다.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억압 조건에서는 처음에 생각한 대상(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억압하라고 지시했다. 곧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집중 조건에서는 대상(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집중적으로 떠올리라고 지시했다. 마지막으로, 자유 조건에서는 아무 생각이나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기록하게 했다. 다음날 아침 참여자들이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보았다. 대부분은 다른 이들에 대한 꿈보다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사람(어머니)과 관련된 꿈을 많이 꾼 것으로 나타났다.
꿈은 우리가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을 반영한다. 온종일 시험공부를 하면, 시험을 보는 꿈을 꿀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 생각했던 대상(어머니)에 대한 꿈을 가장 많이 꾼 사람은 억압 조건의 참여자였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가정처럼 꿈은 우리가 현실에서 억압했던 생각을 재료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는 같은 삶을 산다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고 맞이한 아침. 토마토를 썰다가 즙이 튀어도 둘은 웃음이 터진다. 엔드레는 지난밤 자신이 꿈을 꾸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마리어도 몇 달째 꾸던 꿈을 꾸지 않았다. 현실에서 충족시키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욕구를 꿈에서 실현했던 두 사람에게 이제는 사슴이 되어 사랑을 나누는 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눈으로 뒤덮인 숲속의 작은 호숫가. 두 마리 사슴이 머물던 곳. 이제 더 이상 사슴은 그곳에 없다. 이제 우리는 같은 삶을 산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중년의 심리학, 로건
“이런 게 인생이야, 가족,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 자네도 여유를 가지고 잠깐만 느껴 보게.”
찰스 자비에 교수가 로건에게 한 말이다.
젊음과 불멸의 엑스맨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돌연변이 인간. ‘엑스맨’ 팀에는 우리가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상상해 본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인간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울버린이다.
울버린은 젊음과 불멸을 상징한다. 그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보통은 총을 맞으면 죽거나, 아주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해도 큰 부상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울버린은 다르다. 총을 맞으면 피부가 순식간에 총알을 밖으로 밀어낸다.
울버린의 몸에는 특수 치유 인자가 존재한다. 덕분에 그의 몸은 상처를 매우 빠른 속도로 치유한다. 마치 피부에 묻은 물을 털어 내듯 총상이 치유된다. 울버린이 가진 뛰어난 생체 재생 능력 덕분에 그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한다. 그가 즐겨 입는 옷, 곧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와 하얀 러닝셔츠는 젊음을 상징한다.
그의 손등에는 기다란 ‘발톱’이 숨겨져 있다. 발톱은 가장 원시적인 무기이다. 하지만 몸에 주입된 특수 금속인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그의 발톱은 단숨에 탱크도 둘로 조각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는 죽지 않는다. 그래서 울버린은 그 누구와 싸워도 죽지 않고 끝내 이겨 낸다.
중년이 된 엑스맨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2017년 작 ‘로건’은 멀지 않은 미래인 2029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절대로 아프지 않고, 늘 청년으로 살 것만 같았던 울버린의 초췌해진 모습으로 시작한다. 헐렁한검은 양복을 입고 등장한 그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호출 리무진 기사로 일하면서 술 취한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는 그의 모습에서 엑스맨 최강의 전사 울버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단박에 베어 버렸던 발톱은, 마치 녹슨 금속처럼 손등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도 않는다. 아다만티움의 독성에 중독되어 그의 몸은 점점 망가진다.
다리를 절며 알코올에 중독된 그는 더 이상 초능력자 시절의 울버린이 아니다. 그는 로건이라는 이름으로 산다. 흰 머리와 주름진 피부, 덥수룩한 수염과 검은 양복. 그는 중년의 모습이다
치매에 걸린 현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찰스 자비에 교수. 그는 이성과 현명함의 상징이었다. 돌연변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받던 초능력자들을 위해 자비에 영재 학교를 만들어 이들을 보듬어 왔다. 돌연변이인 자신들을 배척하는 보통의 인간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현자였다.
하지만 마음을 지배하던 찰스 자비에는 이제 늙고 병들었다. 노년의 그를 돌보는 로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으면 정신 발작을 일으킨다. 초능력을 동반한 그의 발작은 주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성과 현명함의 상징이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통제할 수 없어서 주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가 거주하는 거대한 빈 물탱크에는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시설에 갇혀 지내는 자비에 교수는 치매 노인이 되어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영원한 젊음을 누릴 것 같던 청년 울버린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고, 충동적인 울버린을 타일렀던 현명한 어른과도 같은 존재였던 자비에 교수는 이제 치매에 걸려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어 버렸다.
발톱을 지닌 사춘기
2029년. 더 이상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기존의 돌연변이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 머지않아 멸종할 운명임이 뻔해 보였다. 돌연변이들을 위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물을 주사하고 정신이 돌아온 자비에 교수는 새로운 돌연변이의 탄생을 감지한다.돌연변이 부대를 만들려고 비밀 실험실에서 울버린의 유전자로 만든 돌연변이 인간 로라. 울버린처럼 손등에서 아다만티움 발톱이 나오고, 특수 치유 인자 덕분에 뛰어난 생체 재생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초능력 인간이다. 울버린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울버린의 딸이다.
이 소녀는 세상의 규범도 모르고 자신의 마음도 조절하지 못한다. 가게에 들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꺼내먹고, 갖고 싶은 것을 갖는다. 돈을 내라는 종업원에게 으르렁대며 아다만티움 발톱으로 그를 공격하려고 한다. 이런 로라를 붙잡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줘야 하는 울버린. 로라는 야생의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다.
인생의 느낌
청년 시기에 우리의 젊음은 영원할 것만 같다. 청년은 울버린처럼 세상을 산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젊음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직감하는 날을 맞이하게 된다. 노안이 오고, 어떤 염색약이 좋은지 찾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이 짧게 느껴진다.
중년은 자신의 몸이 늙기 시작했다는 것을, 자신이 영원히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시기이다. 거울 앞에서 자신이 더 이상 울버린이 아닌, 로건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나이인 것이다.
흔히 중년을 샌드위치 세대 또는 끼인 세대라고 한다. 중년은 자식을 부양하는 동시에 부모 세대를 돌보아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여전히 어리고 철없는 자식이 있고, 예전에 고민과 방황의 시기마다 길을 알려 주었던 부모는 이제 늙고 병들어 간다. 위험천만한 로라와 치매에 걸린 자비에 교수를 동시에 돌보아야 하는 로건은 중년의 힘겨움을 보여 준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사회 발달 이론에 따르면, 중년의 시기에는 생산성 대 정체성이라는 두 개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생산성은 자신의 에너지를 다음 세대와 공동체의 미래와 성장을 위해 투여하는 선택이다.
그 반면 정체성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정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와 공동체가 자신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라도 현재의 나를 지킬 것인가. 로건은 자신이 아니라 로라와 돌연변이 아이들의 미래를 선택한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로건.
“아빠!” 로라가 울먹인다.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 낸 로건이 말한다.
“그래, 이런 느낌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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