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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찬 목사
미국 동부에 혹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기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거북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승객 중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나 치지 않으려고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기차는 눈보라를 뚫고 서서히 달렸습니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어서자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내리십시오'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고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신사는 머리를 감싸안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여인이 내려야 할 역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신사는 기차가 잠시 멈춘 줄도 모르고 여인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는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됐습니다. 여인은 철길에서 아기를 안은 채 얼어죽은 것이다. 사람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극적인가를 깨닫게합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잘못 인도한다면 어찌되겠는습니까?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통행의 수단으로서의 길입니다.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통행로를 모두 길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될 도리를 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윤리적 도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혹은 '도'라고 말합니다. 짐승과 사람의 다른 점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행위와 그 걷는 길이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한평생 어디론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적지가 있어야합니다. 출발점이 있는가 하면 종착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는 여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스런 일들과 고통스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대로 즉 큰 길을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세상의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의 화를 당할 것을 언급한후 이어 선지자는 열방이 다 심판을 받은 뒤에 필연적으로 오게 될 새 시대에 관해 노래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실 새 왕국인 메시야 왕국의 아름답고 영광되며 의로운 모습을 노래하며 시온의 대로가 열린다고 합니다.
시온의 대로는 사막이 변하여 낙원이 됨과 동시에 열립니다
(사 35:1-2)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이 지구상에는 기름진 땅도 많지만 전혀 생산해 내지 못하는 불모의 땅도 많습니다. 매년 그 면적이 늘어가고 있는 사막이 그런 땅입니다. 얼음으로 뒤덮인 북반구와 남반구의 땅들도 그런 땅입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약품이나 방사성 물질로 인해서도 그런 땅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야가 지배하는 새 땅에는 불모지가 없습니다. 그 곳은 어느 곳이나 생수가 넘쳐 흐르고 흐르는 생수로 인하여 나무와 실과가 넘칩니다. 모든 곳이 옥토인 것입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그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하지만 이 땅 위에서 아름다운 곳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상주하는 곳은 점점 더 삭막해져만 가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려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몇몇 남지 않은 곳에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실 새 나라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새 나라는 모든 곳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살기도 편한 곳입니다. 그 곳에 온갖 것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어떤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도시 개발을 할때 도로부터 먼저 개설 합니다. 우리에게 낙원의 기쁨이 임함과 함께 시온의 대로를 허락 하심에 감사하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시온의 대로는 거룩한 길입니다
(사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니시는 큰 길은 곧 거룩한 길입니다. 거룩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오십니다. 거룩한 삶 속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십니다. 거룩한 예배와 거룩한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기도를 응답하시고 큰 능력을 나타내시며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직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종 되었던 애굽 생활이 더 나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나약했습니다. 그들의 후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매일 넘어지고 헛된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새 시대에는 하나님의 신이 모든 백성에게 임하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담대해집니다.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아니하며 과거를 회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이 깨끗해지고 강건해졌다는 것은 다른 말로 온전해졌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백성들은 항상 불완전했으나 새 시대의 새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진리의 터전 위에 굳게 서서 그것을 실천하는 온전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범죄치 아니하며 어두움을 행치 아니하는 참으로 온 전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그의 후손들, 즉 모든 인간들은 죄로 물들었습니다. 부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함을 입었을 때에도 그들은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짐승의 피를 들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이 일순간에 속죄함을 입었습니다. 일순간에 깨끗함을 입은 것입니다. 이제 한번 깨끗케 함 을 입었으며 그것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리고 앞으로 주실 새 나라와 새 땅은 이 세상 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그 나라와 땅은 거룩하고 온전하며 의롭고 아름다우며 풍요합니다.
또한 그 나라에 들어갈 성도 역시 깨끗하고 강하고 온전합니다. 이 말은 깨끗하고 강하고 온전하게 된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주 안에서 깨끗하고 강하고 온전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며, 그런 가운데 온전한 나라를 소망하며 이 세상을 인내하며 사명 감당하며 시온의 대로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시온의 대로는 영원한 나라의 길입니다
(사 35:9-10)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세계만방에서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오는 세계는 천년 왕국 시대입니다.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모든 슬픔과 탄식은 사라져버리고 '기쁨과 즐거움'만 넘치는 곳입니다.
(사 51: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거기서는 짐승이나 사람이나 '사나움'이 없는(9절)세계로서 오직 속량 받는 영혼들의 기쁜 찬양만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사탄을 무저갱에 가둔 시대입니다
(계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거기는 성도의 나라이며 안식의 세계입니다.
(히 4:9-10)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거룩함과 영광만이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
(사 66: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영광이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며, 그 빛을 보고 다른 이들로부터 칭송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영광의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귀하시며 또 피조물로부터 존귀하다고 칭송을 받으십니다.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귀하지 않으며 그 죄로 인해 존귀를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다시 일으키시고 거룩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존귀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칭송하여 명실공히 존귀한 자, 영광된 자로 높임받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사명 감당하며 시온의 대로를 행할 그날을 바라 보며 영광 돌립시다.
시온의 대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구원의 역사가 치유의 은총으로 임할 것을 말씀 합니다.
(사 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은 자신의 복음 사역에 적용시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라고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메시아적 사역, 구속 사역의 구체적인 실현을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마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메시아의 구속 사역이 백성들에게 현실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육체에 임한 기적적 은총에 의해서였습니다. 복음의 권능이 현실적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유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을 질병과 불구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하는 것은 현실 생활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기본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적 사역은 영혼의 구원 못지않게 육체의 구원도 중요시하였던 것입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은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신유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치실 때에도 영혼의 구원(죄의 사유)을 바탕으로 합니다.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 5: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주 영역은 인간의 영혼이며 육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참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며 육체 그대로는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구원의 역사는 변화의 은총으로 임합니다.
(사 35:6-7)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광야', '사막', '메마른 땅' 등은 모두 인간의 심령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령이 '물이 솟고', '시내가 흐르고', '원천'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사역으로만 가능합니다.
(요 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광야와 사막 같은 심령이 생수가 솟는 영원히 갈증을 모르는 심령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속 사역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지속 될 것입니다.
불신자가 처음 이 길로 들어설 때에는 이 '대로'는 '좁은 문'이며 '협착한 길'입니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러므로 이 대로는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우매한' 자들에게는 결코 허용될 수가 없는 길입니다.
(고전 2:6-8)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활짝 열린 '대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은총이 복음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성령과 교회 시대, 그리고 천년 왕국 시대에까지 다함이 없는 풍족한 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량의 은총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으로서 구원의 결과 구속된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구현되었으며, 이
구속의 은총이 앞으로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사야는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살던 젊은이가 쉰살이 넘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생인가?'를 깊이 고뇌하던 중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였고 남은 생을 농민들과 함께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자가 레오 톨스토입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믿음이 내게 들어온 후 그리스도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나의 온 삶은 변화했습니다. 이전에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바라지 않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습니다. '
시온의 대로가 임한 자의 고백입니다.
시온의 대로는 사막이 낙원으로 변한 곳에 임하는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는 거룩한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는 영원한 나라의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허락된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로 오신 주님을 맞으며 안성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사명 감당하며 영광돌리는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