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엄청난 비를 헤치고 부산 가톨릭센터 건물 1층 아트씨어터를 찾았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대청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다.)
‘다양성 영화 상영관’이라는 부제를 단 이곳은 부산 (유일의) 독립영화상영관이다.
영화 ‘어머니’(연출 태준식)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독립영화 매니아도 아니고 진보적인 의식도 얕은 내가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가 투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소선 여사를,
그분의 쓸쓸한 노년을 담담히 스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 영화가 아닌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독립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을 예상하긴 했다.
그러나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 소극장 규모의 객석에
나와 아내 외에 다른 관객이 단 한명도 없다는 걸 확인했을 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일반 영화였다면 횡재한 기분이었겠지만...)
'전태일과 같은 이들에게 시대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잠시 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는 게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넘음은 내 친구...
아트씨어터에서 매표와 상영, 객석 정리를 혼자 담당하는 직원 분과 대화를 좀 나누었다.
아트씨어터는 민간 사업자가 장소를 빌렸을 뿐 카톨릭 교구에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대표가 독립영화 제작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적 완성도로 따지자면 TV의 휴먼 다큐 프로그램에 비해
구성이나 촬영 등의 기능적 완성도는 아마추어틱하다.
그러나 말년의 이소선 여사의 모습과 그분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화였다.
“나는 태일이를 열사라고 부르는 것 못마땅해. 그냥 노동자지.
나보고 여사라고 하는 것도 듣기 싫어.”



첫댓글 시대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어머니'라는 말씀에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가 떠오르네요. 참으로 잘 씌여진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사회에서 이소선여사(그 분이 싫다하신들 우린 그를 그렇게 불렀습니다.)는 이미 상징적인 인물이 되신 것 같애요. 중요한 것은 이소선이라는 시대의 '어머니'는 논픽션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분이 계셨다는 것은 비극(슬픔)이자 또 희망(기쁨)이기도 한 역설적인 일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동시에 '이소선의 아들, 전태일'로 관계에 대한 균형이 잡히더군요. 이상한 말 같네요....ㅎㅎ
열사, 여사... 사회가 의미를 붙여준 말. 스스로 지은 것 아니니 그러시기도 하겠네요. 농작물을 지을 때는 여러 가지를 섞어짓거나 돌려짓기를 해야 땅도 작물도 건강하대요. 생태계를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것이기도 하구요. 서로 다르게 그러나 함께라는 말이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그렇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는 거였군요! 신나가 말씀하신 "서로를 사랑하라"는 성경도 그렇구요. 농작물과 견준다면(요즘 배우는 중이라^^;) 소규모의 아트씨어터 같은 곳이 문화의 편식이 가져올 문화말살을 방지하고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셈인데, 관객들이 없다니.. 독립영화 제작자 홧팅! 지역에서벗들이 응원하는 방법도 찾아봐요^^
진보적인 상징성을 지닌 분들이 그 각박한 현실로 인해 성품이 모가 나거나 거칠어지지 않고 오히려 인정스럽고 사랑이 많은 모습을 볼 때 - 위선적인 따뜻함이나 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할 때 - 엄청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물건들에 명품이란 이름을 붙이고 비싼 값을 매기는데, 사람이야말로 품격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품격의 핵심에는 간단히 말해 '사랑'이 있겠지요.ㅎ
풀씨기언님이 좋아합니다. ^^
ㅋㅋㅋ 페북 식으로...
그렇네요. 여지껏 카톨릭센터는 그 1987년 엄혹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은은한 향기가 배어나오는 곳인 듯 합니다. 독립영화 상영관으로 전환되고서는 한 번도 들러보지 못했네요. 일견 바람처럼 한 번 들러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이버에 씨앤씨아트씨어터 카페가 있더군요. 요일별, 시간대별 상영작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카톨릭센터 주차장에 주차한 뒤 영화표 보여주면 천원이더군요.^^
여기 참 좋은데...ㅠㅠ울산이라 자주 못간다는...ㅠㅠ꼭 한번 보고 올께요.
이번주에 가볼까..^^
'말하는 건축가'도 참 좋다던데... 여긴 상영관이 하나라서 시간대별로 영화가 다르니 미리 시간을 알아보고 가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