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뉴스통신=박정길 기자] 14일(현지시각) 저녁,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열린 하누카(Hanukkah) 기념 행사에서 두 명의 총격범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최소 16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외신에 따르면, 총격범 한 명은 사살됐고, 다른 한 명은 체포됐다. 총격으로 부상당한 경찰관 2명은 수술을 받았다.
앤서니 알바니지 호주 총리는 이번 사건을 "하누카 첫날 유대계 호주인을 겨냥한 표적 공격이자 반유대주의·테러 행위"라고 규정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경찰은 총격범 차량에서 발견된 사제 폭발물 등 다수의 수상한 물품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목격자 영상에는 총을 든 두 명의 용의자가 보행자 다리 위에서 총을 쏘는 장면이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한 남성이 총격범 중 한 명에게 달려들어 무장을 해제하고 무기를 내려놓는 모습이 포착됐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 크리스 민스(Chris Minns)는 이 남성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칭했다.
이 영상은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아흐마드 알 아흐마드라는 이름의 무슬림 남성, 과일 가게 주인, 강철 같은 남자", "정말 대담하다, 진짜 배짱이 두둑하다"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한편, "내 생각에는 계획된 일인 것 같아. 세상에 누가 총잡이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장면을 정확하게 촬영하는 저 용감한 카메라맨은 누구지?"라며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호주에서 거의 3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총격 사건으로, 엄격한 총기 규제법을 갖춘 호주에서 이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1996년 포트아서 학살 이후, 대규모 총격 사건은 거의 없었다.
알바니지 총리는 캔버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국가 심장을 강타한 악의적 행위"라며 "폭력 속에서도 유대교 신앙을 가진 동료 호주인들을 포용하는 국민적 연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총리 벤자민 네타냐후는 이번 총격 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전 호주 정부의 정책이 반유대주의를 부추겼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공개 연설에서 "약 4개월 전인 8월 17일, 나는 앤서니 알바니지 호주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호주 정부 정책이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이는 캔버라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인정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보낸 서한을 언급한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편지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요구하는 정책은 반유대주의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행위"라며 "하마스 테러리즘에 보상을 주고, 호주 내 유대인을 위협하는 세력을 대담하게 만들며, 거리에서 확산되는 유대인 혐오를 부추긴다"고 적었다고 전했다. 그는 "반유대주의는 암과 같다. 지도자가 침묵하면 퍼지고, 행동하면 물러난다"며 "나약함을 행동으로, 유화책을 단호함으로 바꾸라고 촉구했지만, 호주 정부는 나약함을 반복하고 유화책을 계속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한 시민이 총격범 중 한 명을 제압한 사실을 언급하며 "무고한 유대인을 살해하려던 테러리스트를 막아낸 용감한 행동이었다. 그는 무슬림이었고, 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의 용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행동이며, 역사는 망설임과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를 말살하려는 자들과 싸운다"며 "이들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서방 전체를 공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시리아에서 미군 병사와 통역관이 사망한 사례를 언급하며, "그들이 공격받은 이유는 우리의 공동 가치를 대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국방장관 발언을 인용하며 "어디에서든 미국인을 표적으로 삼는 자는 끝까지 추적해 제거한다는 것이 미국 정책"이라며 "이스라엘의 정책도 같다. 가자든 레바논이든, 주변 어디에서든 우리는 살인자들이 우리를 해치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초그도 "호주 사회를 괴롭히는 거대한 반유대주의 물결에 맞서 행동할 것을 호주 정부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사건을 "끔찍한 테러 공격"으로 규탄하며 희생자 가족에게 조의를 전했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사건 보고를 받고 런던 경찰이 유대인 관련 시설 경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X(구 트위터)를 통해 "반유대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유럽은 호주와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와 함께하며, 폭력과 증오에 맞서 하나로 뭉쳐 있다"고 밝혔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역시 "이번 사건은 우리의 공동 가치를 겨냥한 공격"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 유대인 협의회는 이번 사건에 대해 "충격과 공포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오늘은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하누키야(Chanukiah)에 불을 밝히는 하누카 첫날이었다. 이제 막 끔찍한 소식을 접한 공동체 구성원들도 많다. 일부는 부상당한 가족을 돌보고 있으며, 여전히 가족의 생사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하누카는 유대교의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s)', 하누키야는 9개의 촛불이 있는 특별한 촛대를 의미한다. 협의회는 "빛과 희망의 축제 기간에 이런 폭력을 마주하게 된 것은 참담하다"며 "누구나 안전하게 신앙을 지키고, 공동체와 함께 문화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 인구 2,800만 명 중 약 11만 7천 명이 유대인이다. 반유대주의 대응 특사 질리언 시걸은 2023년 10월 하마스 공격 이후 호주 내 반유대주의 사건이 1년간 3배 이상 급증했다고 보고했다. 지난 여름 시드니와 멜버른에서는 회당과 차량 방화, 상점·주택 낙서, 폭행 등 사건이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