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각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는 온다.
雾而兩 何也 우이우 하야
日 無何也 왈 무하야
猶不雾而雨也 유불우이우야
<천론편> 9장
2022년 6월 초 강원도 영월군은 봉래산 정상에서 가뭄 해소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영월 군수는 "최근 영월 지역에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등 심한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단비가 내려 올해도 큰 자연재헤 없는 풍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600년대 조선 중기 충청도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충주 현감은 기우제를 지내면서 다음과 같은 제문을 지었습니다.
"먹는 것이 백성의 하늘이고 백성에게 신령이 의지하나니, 백성이 아니면 신령이 배를 곯고 식량이 아니면 백성이 굵주리나이다. 토지와 샘이 타들어 가고 농지를 포기한 채 농사짓지 못해 온 고을이 불사른 듯하니 백성이 탄식하나이다. 재해를 당함이 이토록 혹독해 반성하자니 부끄럽고, 저의 마음이 불타는 듯하고 저의 살을 베어내는 듯하나이다. 지방 수령에게 허물이 있어서 내리는 벌을 사양하기 어렵지만, 백성이 거의 죽게 생겼으니 신령께서 어찌 이럴 수 있나이까?"
이경여, <백강집>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136회, 숙종은 115회, 영조는 101회의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2,300년 전 공자의 학문을 제대로 이어받은 전국 시대의 사상가 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비는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온다. 사람들은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면 재난을 막는 의식을 행하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고, 점을 쳐 본 뒤에야 큰일들을 결정하는데 그렇게 해서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여기기보다 형식을 갖추어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형식을 갖추기 위해 그런 일을 하고, 백성은 신령스러운 일이라 여겨 그런 일을 한다. 형식을 갖추기 위해 그런 일을 하면 길하지만, 신령스럽다 여기고 그런 일을 하면 흉하다."
<순자> <천론편> 9장
기우제는 형식일 뿐 결코 신령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기우제를 거행한 주목적은 형식적인 이벤트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선의 왕들도 지방의 목민관들도 영월 군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순자의 철학
순자의 이름은 황 혹은 순경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323년경 조나라에서 태어났고 성인이 되어서는 제나라 국립 연구 기관인 직하학당의 학생이 되었습니다. 순자는 이곳에서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명가 등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섭렵했고, 나중에는 직하학당의 총장 격인 쇄주를 세 번이나 지냈습니다. 이후 초나라 재상인 춘신군의 눈에 들어 초나라 난릉의 수령으로 지내다 기원전 238년경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순자>는 순자와 그의 제자들이 쓴 글을 한나라의 유향이<손경신서>라는 제목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유학자인 맹자의 글이 열정적이고 격하다면 순자의 글은 냉정하고 논리적입니다. <순자>는 <권학편>, <수신편>, <왕제 편>, <부국편>, <천론편>, <예론편>, <악론편>, <성악편> 등 총 20권의 32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론, 성악설, 인식론, 예론, 정치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순자>에는 공자의 다양한 어록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원전 중국의 역사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로 이어집니다. 3,000년 전 주나라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주공은 국가의 기본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500여 년이 흘러 춘추 시대에 이르자 국가 경영의 기본 철학이 무너졌습니다.
공자라는 탁월한 현인이 나타나 흐트러진 예악을 제정하고 질서를 잡았으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전국 시대가 시작되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묵자의 겸애주의 정신을 따르는 학파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고 공자의 도는 점점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이때 나타난 현인이 바로 맹자와 순자입니다. 기원전 479년 공자 사후의 유학은 크게 두 갈래로 발전합니다. 공자의 제자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증자가 공자의 손자인 자사를 가르쳤고, 자사가 죽은 지 10여 년 후에 맹자가 태어났습니다. 맹자는 자사의 제자들로부터 공자의 유학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어진 마음, 충심, 믿음 같은 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자의 정신 철학은 증자에 이어 자사로, 그리고 맹자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실천과 예의를 존중하는 공자의 행동 철학은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와 자하를 거쳐 순자에게로 계승되었습니다. 즉 맹자의 철학이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었다면 순자의 철학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막연한 미래를 극복할 방안을 제안하다
순자는 말했습니다.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에 힘쓰고, 하늘에 달린 것은 흠모하지 않기에 날로 발전한다. 소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은 버리고, 하늘에 달린 것을 흠모하기 때문에 날로 퇴보한다."
앞서가는 리더는 본인의 실수나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노력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습니다. 그래서 리더는 실수나 실패를 줄여 가지만 보통 사람은 실수나 실패를 반복하는 우를 범합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사람은 꾸준한 일로써 승부를 삼고, 나날이 퇴보하는 사람은 일확천금의 요행을 승부로 삼습니다. 발전하는 사람은 자기가 조절할 수 있는 일에 힘쓰고, 퇴보하는 사람은 자기가 조절할 수 없는 일에 힘씁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것에 집중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에 집중합니다.
활기찬 직장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업무에 충실하고, 우울한 직장인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업무에 치입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것에 힘쓰고, 뒤처지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버립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버리지만 뒤처지는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흠모합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그 끝이 행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는 사람은 그 끝이 허무합니다. 같은 위치에 있어도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립니다. 같은 직장을 다녀도 어디에 힘쓰느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이 안정되고 순조로운 시기에는 평화와 조화로운 삶을 위해 정신과 정의를 북돋아 주는 <논어>나 <맹자>를 읽어 보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하고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는 막연한 이상보다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난세의 전국 시대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순자>를 읽어 보는 편이 더 좋습니다. 이는 국가나 사회나 개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신이 최고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도 그들에게는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나의 가치가 지금까지 이룬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만들어진 나의 가치도 소중하지만 그것이 최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 멋지고 더 가치 있는 삶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도 기존의 생각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면 <순자>를 읽어야 할 시간입니다.
순자처럼 변화를 궁리하라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망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하지만 무엇인가가 채워지지 않는 현실을 빠져나가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참을 만해도 불편한 현실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불안을 이겨 내야 합니다. 그 불편과 불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뿐입니다.
망설임이 끝났는데도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선택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쉽고, 성취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이때 망설임을 멈추는 쉬운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일을 좋아하는 쪽을 택하든, 기존의 일을 접고 좋아하는 새 일을 선택하든, 어느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이유는 궁리를 미루기 때문입니다. 머뭇거리는 이유는 깊이 생각하는 일을 미루기 때문입니다. 궁리하지 않고 바꾸지 않는다면 지겹고 지루했던 기존의 일이 좋아질리가 없습니다. 좋아 보이는 새로운 일도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기다리기만 한다면 싫은 것이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좋은 직장, 나쁜 직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스스로 궁리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좋은 직장을 다닌다 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빛나는 업무를 맡는다고 해도, 아무리 튼튼한 직장을 다닌다 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높은 연봉을 주는 곳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나 연봉은 부모님이 사라지면 모두 사라집니다.
궁리하지 않고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궁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버리거나 쓰다 남은 것뿐 입니다. 귀하고 아름답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궁리해야 합니다. 궁리가 길을 만듭니다.
오십에 읽는 순자 중에서
최종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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