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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진달래꽃을 보러 갔는데 – 덕룡산,주작산,두륜산
1. 가련봉에서 바라본 노승봉과 고계봉(뒤쪽)
흥촌리 삼성 쪽, 산 밖으로 빠지는 사거리 고갯마루를 지나, 완도에서 강진을 잇는 국도를 내다보며 위봉(503m)을
저만치 두고, 노성봉, 가련봉, 그리고 아래는 허공인 채 두개의 바위가 서로 이마를 맞대어놓은 것 같은 구름바위를
밟고 남으로 치달으면, 마침내 이 산의 고갱이 중앙부, 그래서 이 산이름마저 워낙은 이 봉우리 이름인 대둔산
(672m)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내다보는 두륜산은 에누리없이 자루속이다. 신기하게도 북으로 아구리를 약간 비틀
어 홀쳐놓은 듯이 사방이 꽉 막혀, 산 밖에서는 엄두도 못 내었던 별천지가 거기 벌어져 있다. 그것도 대홍시를,
자루 속 밑바닥이 아니라, 남서해가 들도록 북동 안자락에 앉히되, 그러면서 오히려 이 산 목을 휘어잡게 안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두륜산은 대흥사를 거기 앉혀놓기 위하여 솟아있었던 것이 된다. 두륜산의 대흥사가 아니
라 대흥사의 두륜산이었던 것이다. 사실 대흥사의 본디 이름은 이 봉우리 이름 그대로 대둔사였던 것이다.
―― 김장호(金長好), 『韓國名山記』(1995, 평화출판사), ‘두륜산(頭輪山)’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3월 30일(토), 무박산행, 흐림, 미세먼지, 바람
▶ 산행코스 : 소석문,덕룡산 동봉,만덕광업,덕룡능선,작천소령(수양이재),주작능선,오소재,오심재,노승봉,가련봉,
만일재,대흥사,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21.6km
▶ 산행시간 : 11시간 12분(04 : 05 ~ 15 : 17)
▶ 교 통 편 : 좋은사람들 버스(28명)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23 : 20 – 잠실역 3번 출구
04 : 05 – 소석문, 산행시작
05 : 10 – 285.7m봉
06 : 25 – 덕룡산(德龍山) 동봉(413m)
07 : 39 – 덕룡산 서봉(0.33km) 아래 안부
08 : 20 - 437m봉
08 : 43 – ‘朱雀山 四七五m’ 표지석
08 : 57 – 작천소령
09 : 03 – 주작능선 385m봉 직전 정자 있던 안부, 아침( ~ 09 : 15)
10 : 16 – 주작능선 428m봉
11 : 20 – 주작능선 405m봉
11 : 50 – 오소재(烏巢-), 점심( ~ 12 : 05)
12 : 40 – 오심재(悟心-), 휴식( ~ 12 : 47)
13 : 16 - 두륜산(頭輪山) 노승봉(老僧峰, 능허대 凌虛臺, 682.7m)
13 : 26 - 가련봉(迦蓮峰, 703m)
13 : 42 – 만일재(晩日-), 휴식( ~ 15 : 00)
14 : 22 – 대흥사(大興寺)
15 : 17 – 주차장, 산행종료, 휴식( ~ 16 : 00)
21 : 00 – 잠실역
2. 맨 뒤는 만덕산, 앞에서 세 번째는 석문산
3. 강진만. 해무가 짙게 끼었다
▶ 덕룡능선
암릉과 어우러진 진달래꽃을 보려고 밤을 도와 명소로 이름난 덕룡산과 주작산에 달려갔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려
들었고 미세먼지는 근래 드물게 심하게 끼었고 바람은 하루 종일 세차게 불어대었고, 때가 이른지 진달래꽃은 드물
게 군데군데 피었을 뿐 예년의 환상적인 천상화원의 모습은 어디에고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히 폭삭 망한 하루였다.
덕룡산 들머리인 소석문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다. 주차장이 없어 도로에 끝 간 데 없이 늘어선 승용차와 버스와
이미 줄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니 무언가에 홀려 오늘 잘못 왔구나 하는 자책과 함께 산행이 무척 힘들겠다는
예감이 든다. 산릉에 길게 이어진 헤드램프의 행렬이 마치 산불이 난 것처럼 보인다. 장관이라기보다는 곧 저기 뒤
를 이어야 한다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차량들을 헤치고 인파에 떠밀려 등로인 개울로 다가가자 다리는 없고
징검다리로 건너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징검다리가 길기도 하거니와 한 사람씩 건너야 한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20분 남짓이 걸린다. 징검다리를 건너
자마자 가파른 슬랩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 발짝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앞사람을 추월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
겠다. 줄선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산행대장님은 오소재 통과시간이 12시는 되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고,
대흥사에서 2.8km나 떨어진 주차장까지 반드시 16시까지 도착하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게 가능할까 조바심이
난다.
날이 훤하다면 뒤돌아보는 석문산(283m)이 멋질 텐데 캄캄한 밤이라 아쉽기 짝이 없다. 겨우 댓 걸음 가다가 멈추
기를 반복하니 으슬으슬한 한기마저 느낀다. 슬랩 오르막을 넘어서면 잠시 길이 트이다가 다시 슬랩을 오를 때면
장사진이다. 소석문에서 불과 0.77km 거리인 285.7m봉을 오르는 데 1시간 5분이나 걸린다. 주변 경치라도 보이면
덜 심심하겠는데 어둡고 긴 행렬 한가운데에서 그저 등로가 트이기만을 기다리니 따분하기 그지없다.
355.3m봉 직전에는 오른쪽 사면을 도는 우회로가 있다. 돌길이다. 몇 사람과 함께 그리로 간다. 혹시 이 길이 동네
로 빠지는 길이 아닐까 미적미적하는 그들을 제치고 내가 앞장선다. 비로소 산을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
한다. 주릉에 들어서는 긴 행렬에 합세한다. 어느덧 날이 훤해지고 주변 경치가 차츰 눈에 들어온다. 온길 뒤돌아보
면 흐릿하지만 석문산과 그 너머 만덕산 등 첩첩 산과 해무 깔린 강진만이 반갑다. 마침 강진만 끄트머리 도암산
언저리에서 보름달처럼 뜨는 아침 해를 본다.
어렵사리 덕룡산 동봉에 오른다. 소석문에서 동봉까지 2.4km다. 재작년 이맘때는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는
데 오늘은 2시간 20분이나 걸린다. 더욱이 속이 터질 일은 서봉까지 0.25km 밀착한 줄이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당장 동봉을 내리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다른 수를 내야겠다고 벼른다. 지도 꺼내 들여다본다. 동봉
바로 아래 만덕광업(0.85km) 쪽으로 내리는 길이 있다. 일단 그리로 가서 산자락을 돌아 주릉에 오르려고 한다.
동봉을 올라온 슬랩을 뒤돌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줄선 사람들에 일일이 양해를 구하여 만덕광업 갈림길에 내리고,
잘난 등로를 따라간다. 등로는 너덜지대를 지나고 계곡을 건너고 사면을 돌아 지능선에 오르기도 한다. 오지본능이
일어난다. 지도에는 완만하여 등로를 벗어나더라도 잡목만 좀 헤치면 되려니 하고 덤볐다가 된통 혼쭐만 나고 뒤돌
아선다. 곳곳에 가파른 바위 슬랩이 도사리고 있었다. 등로 옆 계곡에 있는 용혈암지(龍穴庵址)에 들른다. 백련사에
속한 수도암자로 널리 알려진 이 용혈암지는 불교정화운동인 백련결사를 주창한 원묘국사(圓妙國師, 1163~1245)
가 만년에 거쳐했던 곳이라고 한다. 지난주 월악산 갈 때 보았던 보덕암 보덕굴과 비슷하다.
용혈암지를 내리면 곧 임도가 나오고 만덕광업 정문 앞이다. 임도 따라 내려간다. 0.2km쯤 갔을까 오른쪽으로 산자
락 도는 묵은 임도가 보인다. 주저 없이 묵은 임도를 따른다. 묵은 임도는 0.47km 가서 계곡에 막혀 더 가지 않는다.
생사면을 친다. 울창한 잡목 숲 헤친다. 진땀난다. 수시로 오룩스맵을 보며 진행방향이 맞는지 확인한다. 완만한 지
능선을 오르고 내려 수양리를 오가는 등로와 만난다. 등로는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다시 산을 간다. 가파른 오르막
인 돌길을 지나 주릉이다.
서봉을 돌아 넘었다. 동봉에서 서봉 아래 안부까지 주릉 0.6km를 산자락 2.6km로 돌아왔다. 1시간 14분 걸렸다.
서봉을 내려온 사람들을 만난다. 낯이 익다. 동봉을 줄서서 느릿느릿 오느라 앞뒤 사람들과 낯을 익혔다. 다시금
지체와 정체를 반복한다. 이러한 체증은 436m봉을 넘어서고야 풀린다. 이제야 주변경치에 눈을 돌린다. 미세먼지
가 아주 심하다. 근경조차 흐릿하다. 재작년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진달래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직 철이 일러서
인지 군데군데 피었을 뿐이다.
줄달음한다. 등로는 주변의 산죽 숲을 베어내는 등 잘 다듬었다. 길섶에 산자고와 남산제비꽃이 자주 보이지만 엎드
려 눈 맞출 여유가 없다. 땅끝기맥과 만나는 436.1m봉을 대깍 넘고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을 길게 내렸다가 그렇게
길게 오르면 477.5m봉이다. ‘朱雀山 四七五m’라고 새긴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주작산이 작천소령 동쪽의 429.5m봉이다. 이정표에는 이 429.5m봉을 ‘주작산 주봉’이라고 한다. 드디어 주작능선
의 현란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끄트머리 멀리 두륜산 연봉이 미세먼지로 실루엣으로 보인다.
4. 덕룡산 동봉에서 바라본, 오른쪽 앞은 서봉, 멀리는 두륜산 가련봉
5. 강진만 일출, 오른쪽 희미한 산은 도암산
6. 일출 직후 강진만
7. 덕룡능선에서 바라본 빛 내림
8. 덕룡산 서봉 후위봉
9. 덕룡산 연봉, 왼쪽 멀리는 만덕산
10. 덕룡산 연봉
11. 덕룡산 연봉, 멀리 뒤는 만덕산
12. 앞은 주작능선, 멀리 왼쪽은 위봉, 오른쪽은 가련봉
13. 주작능선, 멀리 오른쪽은 위봉
14. 가련봉, 노승봉, 고계봉
▶ 주작능선
한달음에 작천소령(수양이재)이다. 전에는 주작능선을 왼쪽 산자락을 돌아 올랐는데 오늘은 더 가까운 오른쪽 사면
을 직진하여 오른다. 어제 비가 와서 흙길인 등로가 진창이다. 주작능선 안부에 있던 정자는 없어졌다. 정자 주춧돌
에 앉아 늦은 아침밥 먹는다. 빵과 과일이다. 커피를 타 마실 겨를이 없다. 방울토마토는 호주머니에 넣고 걸으면서
한 알 한 알 꺼내어 먹는다. 앞으로의 등로 상태는 어떠할까? 아, 바로 앞 385m봉부터 또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우리가 가는 줄에 더하여 반대편인 오소재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니 슬랩 오르고 내릴 때는 예닐곱 명씩 끊어
교대로 오간다. 주작능선 4.5km에 크고 작은 암봉들이 26개나 된다고 한다. 쉬운 봉우리는 하나도 없다. 흔히 주작
능선이 설악산 공룡능선 4.9km보다 더 힘들다고도 한다. 그래서 종종 주작산 공룡능선이라고 한다. 나 역시 동감한
다. 주작능선 주봉인 429.9m봉이 첨봉이다. 이 봉우리를 ‘어관봉’이라고도 하는데 그 한자 쓰임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길은 풀릴 듯 말듯 하다가 405m봉 넘어서자 제대로 풀린다. 그 많던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다. 용굴
바위(292.3m)는 오르지 않는다. 그 직전에서 오른쪽 데크계단을 내린다. 두륜산 가련봉과 노승봉, 고계봉을 한번
우러르고 데크계단을 내려 숲속에 든다. 금방 오소재다. 오소재 데드라인 12시에 가까스로 댔다. 오소재 약수터에
들러 물병에 식수를 꾹꾹 눌러 채운 다음 정자로 가서 점심밥 먹는다. 점심밥도 빵과 과일이다.
오소재 주차장과 갓길에 늘어선 산악회 대형버스를 대충 세어보았다. 30대까지 세다 그만 두었다. 어림짐작으로 오
늘 1,000여명이 덕룡산과 주작산 또는 두륜산을 찾았다. 모르긴 해도 다음 주에는 더 붐빌 것이다. 노승봉을 향한다.
오심재 1.6km가 완만한 대로다. 물소리 우렁찬 계류를 들여다보며 간다. 등로 양쪽 바위에는 누군가 열 걸음이 멀
다 하고 돌을 세우고 쌓아 조그만 탑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대단한 정성에 감복한다.
▶ 두륜산(頭輪山) 노승봉(老僧峰, 능허대 凌虛臺, 682.7m), 가련봉(迦蓮峰, 703m)
오소재는 너른 공터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공터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노승봉은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또한 등로가 넓어 추월하거나 교행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등로 오른쪽으로 불과
4~5m 떨어진 흔들바위를 들르지 않는다. 체력이 떨어지고 걸음을 십분 아낀다. 노송봉 아래 공터에서 왼쪽 암벽 아
래 돌길과 데크계단을 0.2km 오르면 노승봉 정상이다. 오전부터 일기 시작한 바람이 더 거세게 분다. 모자를 아예
벗는다.
노승봉에서 조망은 사방 거침이 없이 트인다. 여기에 서면 제주도 한라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
하여 건너편 완도의 상황봉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척인 두륜봉, 위봉, 대둔산,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 고계봉 등만
이 눈에 든다. 뎨크계단 내리고 암벽 밑자락 돌다가 데크계단 오르면 두륜산 주봉인 가련봉이다. 노송봉에서 본
경치를 가련봉에서 다시 본다. 김장호가 『韓國名山記』에서 말한 그대로다.
가련봉에서 데크계단 0.5km 내리면 너른 공터인 만일재다. 가련봉 남쪽 아래 0.2km 떨어진 천년수가 있는 곳에
예전에 만일암(晩日庵)이 있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쓴 「만일암(挽日菴) 중수 상량문(重修上梁文)」이 두륜산을
에둘러 말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첫머리다.
“검문(劍門)에서 학(鶴)을 날리니 별을 만지는 지세(地勢)임을 알겠고, 채석(采石)에서 고래 타니 달을 움키려는
선연(仙緣)임이 증명되네. 금경(金莖)이 은하에 솟았으니 하늘은 봉로반(捧露盤)에 임하였고, 채필(彩筆)이 하늘을
찌르니 세상은 나운수(拿雲手)를 부러워하네. 그렇다면 삼광(三光)이 아무리 멀다 해도 힘들이지 않고 운항하게 하
는 공을 이루고, 육기(六氣)가 아무리 미묘해도 지휘의 힘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금과(金戈)를 휘두르자
양오(陽烏 해의 별칭)가 노루(魯壘)에서 물러났고, 수선(繡線)으로 공교(工巧)함을 더하자 화어(火馭 해의 별칭)가
우연(虞淵 해가 지는 곳)의 걸음을 멈추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장순범 (역) | 1986
검문은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험한 절벽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인데 검문이 하도 높아 나는 학도 지나
갈 수가 없다는 말로 이는 만일암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지대가 매우 높음을 비유한 말이고, ‘채석(采石)에서 고래
타니’는 이태백이 채석강에서 달을 움켜쥐려다가 고래를 타고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이고, ‘금경이(…) 임하였고’는
한 무제가 백양대를 쌓고 동주를 세워 이슬을 받는 선인장(仙人掌)을 그 위에 설치하였다는 고사로 만일암의 높고
화려함을 비유한 것이고, ‘나운수(拿雲手)’는 구름을 잡는 손이란 말로, 곧 기예의 극치를 뜻한다고 한다.
15. 주작능선 지능선의 암봉
16. 멀리 뒤는 만덕산, 그 앞은 덕룡산 연봉
17. 주작능선
22. 가련봉과 노승봉
23. 고계봉
24. 멀리는 대둔산, 그 앞은 두륜봉
25. 중간 가운데는 향로봉, 앞 왼쪽 아래는 대흥사
두륜봉도 들르지 않는다. 지쳤다. 게으른 핑계 댄다. 거기에 오른들 미세먼지가 심하여 별다른 경치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만일재에서 대흥사까지 곧장 가도 2.3km, 대흥사에서 주차장까지 2.8km나 된다. 2시간 남은 산행 마감
시간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여 대흥사로 내린다. 길 좋다. 1km 정도 내리면 콘크리트 임도인 숲속 길이다.
좌우사면 곳곳에 키 큰 동백나무 숲이 우거졌다. 이때만큼은 나 혼자다.
대흥사가 천년고찰이자 대찰이다. 대웅보전 앞 개울은 큰소리로 법문하고 그 옆 활짝 핀 벚나무는 마치 알아듣는
양 늘어뜨린 꽃가지 가볍게 흔든다. 이 고장 출신 이동주(李東柱, 1920~1979)의 시비 ‘강강술레’도 들여다본다.
여울에 몰린 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월레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白薔薇 밭에
孔雀이 취(醉)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旗幅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주차장 가는 대로 주변도 볼거리다. 풀꽃들이 그것이다. 큰개불알풀꽃, 제비꽃, 남산제비꽃, 현호색 등등.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 앞뒤에 걸린 주련이 눈에 익다.
일주문 뒤편의 현판은 ‘爐霞門’인데 서예가 남석 이성조(南石 李成祚, 1938~ )가 썼다. 주련은 다음과 같다. 금강경
오가해(金剛經五家解) 서설(序說)에 나오는 글로 함허당 득통(涵虛堂 得通, 1376~1433 ) 스님이 썼다고 한다.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천겁의 과거도 옛 일이 아니며
만세의 미래도 늘 지금이라
일주문 앞의 현판은 ‘頭輪山大芚寺’로 서예가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1913~1999)이 썼다. 대둔사는 대흥사의
옛 이름이다. 주련은 다음과 같다. 서산대사가 이곳 대흥사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三災不入之處
萬年不毁之地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로다
주차장. 한산하다. 너른 주차장에 산악회 대형버스 5대뿐이다. 산행마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주차장 가장자리 벚꽃
이 만발한 꽃그늘아래 탁자로 간다. 근처 편의점에서 이곳 삼산막걸리 1병을 샀다. 2,500원이라기에 왜 이렇게 비싼
가요? 묻자, 맛이 좋아서라고 한다. 점심밥으로 싸온 아직 먹지 않은 도시락을 꺼낸다. 저쪽 소머리국밥집에서 감미
로운 음악을 틀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벚꽃 꽃잎이 날리더니 내 술잔에도 떨어진다. 과연 막걸리가 맛 난다.
26. 고계봉
27. 위봉
28. 두륜산 주봉인 가련봉
29. 위봉과 두륜봉
30. 두륜봉, 뒤는 대둔산, 그 뒤 왼쪽은 달마산(?)
31. 만일재에서 바라본 두륜봉, 정상에 한 사람이 서 있다
32. 대흥사에서 바라본 노승봉과 가련봉(오른쪽)
33. 현호색
34. 남산제비꽃
35. 쇠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