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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받기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And He said to him, "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great and foremost commandment. "The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depend the whole Law and the Prophets." Matthew 22:37-4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John 13:34
아무튼 주님의 계명은 지켜야 함이 마땅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지키느냐?’입니다. 이 부분에서 주님과 바리새인들의 접근 방식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십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항목의 유전들을 만들어냈고 반대로 주님은 십계명조차 더 줄여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계명의 숫자로 보면 당연 주님의 계명이 더 지키기 수월해 보입니다만 실상 바리새인들이 정한 유전들은 지키고자 하면 지킬 수 있는 행위와 습관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주님이 하나로 만들어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지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By the way, the commandment of the Lord should be kept anyhow. Matter is how. Regarding to this, how to approach were different in between the Lord and Pharisees from each other. Pharisees had made way more rules adding to the Ten Commandments in order to keep the Law perfectly, while the Lord had given us just two great commandments only, or one, love one another. In the number, the Lord's seems easier than Pharisees'. However, things of Pharisees might be kept perfectly in he or she wants, but the new commandment of the Lord, love one another, rather make us think about it than keep it.
주님의 새 계명은 실상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신 가장 큰 두 계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두 계명은 이러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그래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유전을 지키듯이 주님의 이 두 계명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The new commandment of the Lord, actually, is not different from the two great commandments. They are,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So people would try to keep this as like any other rules of Pharisees, however, it won't take long time to figure out it is not possible to keep it.
주님은 지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인격의 구조를 알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마음은 감정을, 뜻은 의지, 그리고 목숨은 영혼으로 표현되면서 이는 인격의 근본을 의미합니다. 그 반면에 이를 지키려 하는 주체는 주로 의지의 영역을 지칭합니다. 그러면 답은 명료합니다. 의지는 결코 감정이나 그 내면의 영역을 조절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역으로 그 내면의 변화에 의해서 의지나 감정이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인격의 구조입니다.
The Lord meant not to keep it but to think about it, which is possible when we would understand the structure of our personality. Heart reveals emotion, will is intension, and soul as the base of our life. And on the contrary, the subject who would try to keep it must be intension. Then answer is clear. Intension can not control emotion or more inner part of ourselves. In reverse, outer part will be controled by inner part, which is the struction of ourselves.
즉 두 계명에 대한 다음 질문은 ‘지키는 주체가 누구냐?’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무 생각 없이 그야 당연히 나 자신이지,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이 다양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더구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는 일을 거론하는 데 있어서는 나 자신의 인격 중에 이 계명을 지키는 주체가 과연 어느 부분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던 주체가 의지 영역인 것을 인정하고 나면 의지에 의해 그보다 내면이거나 다른 영역인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The next question regarding to the commandment is 'Who is the subject to keep it?' Probably we might think easily, 'it is I myself.' However, the structure of ourselves is consisted with many layers, and furthermore, regarding to heart, mind, and soul, it will be proper to think about the subject who keep the commandment. And when we would accept the fact that the subject to keep is our intension, at the same time, we can understand that it is not possible to control other part of ourselves with intension.
그러면 처음부터 십계명을 주신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처음부터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계명의 요구가 이루게 하시는 원리를 그 이면에 담아 놓으시고 이를 찾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우리의 인격의 구조와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 방향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내면으로부터 외면으로의 방향인데 이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 인격의 흐름의 방향을 좇아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인격을 통하여 외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님을 우리 인격에 보내주심으로 우리와 하나 되게 하시고 이로서 인격의 회복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Then what is the meaning and purpose God gave us the commandment. He gave us that not because we can keep it, but because He put the principle how the ask of the commandment shall be fulfilled and in order to let us to think about it and to seek for it. When we would think about the commandment of God related with the structure of ourselves, we can find our there is a direction of it, which is from inward to outward, that reveals Loving God is not the result of our effort but the love of God will be revealed through ourselves. Sending the Lord in our innermost being to unify with us to make us be restored.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뗄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원리를 주기도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결국 우리 자신의 인격의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의 역사입니다. 그에 반하여 이웃 사랑은 회복된 인격이 그 본래의 기능과 목적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웃 사랑은 근본 그 이웃이 나 자신이라는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Loving neighbor is to be related with loving God as the same flow. We can see this principle in the Lord's prayer.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Loving God reveals the path of restoration that is being fulfilled in the structure of ourselves. On the other hand, loving neighbor reveals the shape of restored ourselves to live following to the original function and purpose. Loving neighbor contains the understanding that fundamentally neighbor is myself.
사랑은 먼저 아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을 타인으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자식들의 성장을 보고 결국 몸에서, 마음에서,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조차 자식들을 떠나보내야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힘들게 여겨지는 이유 역시 그들을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웃 사랑도 이와 같이 그들이 실은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Love will be started from knowing or recognizing. Parents love their kids because they would think their kids as themselves. Of course, while they are living, they shall experience separation of children from their body, heart, and whole living, but still they must be struggled with that, because they think the kids as themselves, so is loving neighbor, while the perception that neighbor is myself will be required.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은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든 코가 회복되면 냄새를 맡게 되고 귀는 듣게 되듯이 인생은 본래 자신을 위주로 자의식 속에 살도록 지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격이 회복되면 그 본래의 기능대로 이웃을 자신으로 알게 되고 그것이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한 가지 표현인 용서에 대한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용서를 무슨 과업처럼 생각하여 자신에게 상처 준 이에게 가서 내가 너를 용서한다 말하라고 종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By the way, all these perception is not the result of effort. If our nose will be healed from a trouble, it smells, so is ear. Man was not supposed to live in a strong sense of identity. When our personality will be restored, we will live according to the original function to think neighbor as ourselves, which is to love neighbor one another. Let us think about forgiveness as one of shape of love. Thinking forgiveness as one of achievement, someone asks people for doing something for the sake of forgiveness to the one who had hurt for you in the past.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에 달렸으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순종과 행동을 강조하는 이들은 찾아가 실행해 보라 합니다. 이도 저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자 함이지만 여기서 말씀 드리는 것은 먼저는 이웃이 곧 자신이라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나 됨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기인합니다. 소유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던 데에서 신앙이 좀 깊어 종교인 정도가 되면 의지가 자신이라 여기게 되고 좀 철학적이다 싶으면 생각이 자신이라 하고 심리학을 하면 의식이 자신의 주체라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으로 낳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자신됨의 근거가 하나님과 하나 된 자신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부분의 공통점이 이웃을 자신으로 여기는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인식의 변화를 넘어서는 영역이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선택의 부분이 아닌 거듭남과 연결된 자아 인식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은 택하심을 받은 인생들의 회복의 모든 과정을 담아 우리에게 주신 삶과 생명의 원리입니다.
If you consider the sovereignty of God as the priority, you will wait for it. If you emphasize the obedience and action of man, you will do something for forgiveness. Bothe of them are not different from each other in the aspect to keep the commandment, but, what we would say here is that the perception to know neighbor is myself will be needed prior to any other thing. That must come from the change of recognition for what I am. Most of people used to think possession as themselves, religious people think intension as themselves, philosopher might think themselves as thinking, and a psychologist will say that recognition is the matter of self. However, children of God, who was born with the Gospel would think the foundation of self is myself unified with the Lord. This common part of recognition is the base to think neighbor as myself. So this is not the part to be controled by intension, but to be related with being born again. So let me tell you something, that is, the commandment of God reveals whole process of restoration of chosen people.
만일 우리 인격이 회복되어 위에 언급한 상태가 된다면 어느 상황에서 내가 상대를 용서하는 것과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져서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 상태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Later, if we are in the status of some of restoration, then, we will find that forgiveness and healing from wound without any pain because of the unfication with the Lord are not different from each other.
주일학교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주신 십계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God gave his beloved people Ten Commandment. Among them, the most great commandment are to love God and to love neighbor. After all, loving one another is the commandment of the Lord. The will of God is that we love one another in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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