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일찍 들었던 첫 잠이었는데, 뭔가 이상해서 잠에서 깨어났던 나는,
‘아니, 누가 테라스의 불을 켜놓았담?’ 하고 좀 짜증스럽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
커다란 달무리가 진 밝은 보름달이 정면에서 비치고 있었고,
그러고 보니 내가 자던 침대 정면에 있는 창문 차단막을 열어놓고 잤는데, 그 차단막 틈사이로 달빛이 그대로 침대까지 비춰져,
알고 보니 그 달빛이 나를 깨운 셈이었다.
그것도 신기해서 놀랍기도,
‘뭐, 그런 멋진(?)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것 같아 멋쩍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9시 28분에 벌어졌던 사실 일이었다.
오늘, 오후 내내 구름이 잔뜩 끼어(요즘 내내),
‘보름달 보긴 다 틀렸구나!’ 하고, 며칠 전부터 ‘카리브 해’의 보름달 아래의 바다를 보겠다던 꿈을 접었던 게 무색한 순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다 개어 맑은 게 아닌, 일부 맑은 부분에 달이 떠 있었을 뿐, 그 주변엔 짙은 구름들이 군데군데 뭉쳐 있어서,
‘몇 조금이나 가려고......’ 하는 우려가 더 컸는데,
그 와중에도 테라스에 나가 달빛에 비친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사진도 찍는 등,
그나마 이렇게라도 비춰준 달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그런 ‘보름달’을 조금 즐겨본 편이다.
비록 짧긴 했지만 분명 보름달이 맞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 ‘카리브 해의 보름 달 아래의 해변’이란 현상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 역시 이번 여행과도 연관이 깊은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멕시코에 있는 K씨(옛날 스페인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이자 내가 이 쿠바를 떠난 뒤에 가서 만나게 될)와의 일화 때문이다.
그와도 참 깊은(평생) 인연인데, 옛날 멕시코 시절 때의 일화다.
그가 자기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던가? 아무튼, 나에게도 함께 멕시코에서도 유명한 ‘깐꾼(Cancun)’에 가자고 했는데, 내가 그럴 사정이 아니고 돈도 없어서 못 갔었는데, 그가 다녀와서는,
“남궁 형, 언제든지 보름달이 뜬 깐꾼의 해변엔 한 번 꼭 가보세요. 정말, 환상 그 자체드라구요.” 했었는데, 나에겐 그 말이 평생 잊혀지지가 않고 있고,
‘나도 언젠간 꼭 한 번 가서 그 광경을 겪어봐야지!’ 했었지만, 여태까지 해 보지 못한 일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번에 쿠바에 오면서도 멕시코 기착지를 그 깐꾼으로 했는데도, 그래서 거기에 2-3일 멈춰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보려고 했다가,
짐도 많은데 현지 도심에 들어가 숙소 찾으러 돌아다니는 게 끔찍하게 싫어서(?),
깐꾼 공항에서 열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안 나가고 바로 쿠바행 비행기표를 사서 왔던 곳이었는데,
지금의 내 생각은,
‘깐꾼이나 여기 ‘까보 끄루스’나 다를 것 없는 ‘카리브 해’의 바다인데, 깐꾼은 아닐지라도 여기 바닷가의 보름달이 뜬 바다 구경이라도 한 번 해 보자!‘며,
‘보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여기 바다도 깐꾼과 별 다를 이유는 없는데(얕고, 색깔도 아름다운), 오늘밤 내가 본 바다는 그저 그럴 뿐, 뭐 특별히 다를 것도 없긴 했다.
게다가 그렇게나마 본 게 겨우 10 여 분?
아무튼 찬란하게 밝았던 달은 곧 구름에 덮여졌고, 이따금 그 틈사이로 살짝 비치기는 했지만, 조금 전의 그 환한 달빛을 보기엔 이미 글러도 한참 그른 뒤였다.
하늘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검은 구름 덩어리가 너무 커서 이제 달 자체를 보기도 쉽지 않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차피 잠이 올 것도 아니고, 일할 엄두도 못 내고 있어서(모기와 날 것들 때문),
테라스에서 그저 앉아 있다가 나는 엉덩이가 아프면(욕창이 자리잡으려고 해서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다.) 그저 걷는 식으로, 남들이 보면 달밤에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무심한 테라스 빙빙 돌기 산책을 했는데(모기도 피하고 또 시원해서 그건 나쁘지 않다.),
하늘의 구름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종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라,
금방 구름이 꼈다가도 한 순간 보면 그 사이에 별이 빛나기도 하는 등,
하늘의 변화는 순식간에 이어지곤 했다.
그 많던 구름들은 어디로들 가버렸는지......
그런데 11시가 넘어가면서는, 어째 달이 좀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하고도 있었는데, 11시 반이 넘어가면서,
급기야 달이 하늘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상하네! 그 주변에 별이 떠 있다는 건 구름이 껴서가 아닌데, 왜 달이 사라졌다지? 오늘이 보름인데......’ 하다간, ‘그렇담, 이거 혹시 ‘월식’ 아닌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가 보았다!
그러면서 보니 달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는데, 그 주변의 하늘에 별이 그대로 있는 걸로 보면, 이건 분명 달이 사라진 걸로 ‘월식’이 분명했다. 그러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담? 이거, 알고서 월식을 관찰하려 했어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하는 심정에, 가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어차피 잠도 못 자고 있던 참이라, 그 월식의 광경을 디카에 담는답시고 처음엔 조심스럽게 ‘손이 떨리지 않게’ 사진을 찍다가, 아무래도 받침대가 없는 상황이라(테라스 난간에 디카를 일부 고정시키면 좀 나을 터라) 이제는 아예 테라스에 디카를 지지한 채 찍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그 행위를 연속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달이 또 사라지곤 해서,
역시 구름이 꼈다면 별도 안 보여야 하는데, 그 주변의 별도 보이는데 달이 안 보이기도 하는 현상을, 처음엔 매 6초마다, 그러다 힘들어 10초 마다, 한 번씩 셔터를 누르는 행위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목이 아프다 못해 발까지 저려오는 거 아닌가.
그러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대체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이라지? 우리나라도 아닌데(허긴, 우리나라였다면, 설사 ‘개기월식’이란 걸 알았다 해도 서울에서 내가 이런 일을 할 일이 없었을 텐데... ) 여기 쿠바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뭘 하고 있다지?’ 하다간, ‘허긴, 여기 ‘카리브 해’의 보름달이 뜬 바다가 환상적이란 말을 늘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기에 이런 거니까, 여기라 가능한 일이긴 하겠군......’ 하는 나 스스로도 헷갈려 하며 그러고 있긴 했는데,
‘에이, 이렇게 정성을 들여 봤자, 이 카메라가 좋지가 않아 사진이 잘 나올 리가 없고, 확인하다 보면 다 지워야 할 짓인데, 그런데도 내가 이러고 있네......’ 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가면서 달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12시 30분인가? 다시 나오기 시작하면서, 곧 1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근데,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네!’ 하는 불만이면서도 그러고 있는 내가 정말 한심하기까지 했다.
‘내가 다 늙은 나이에, 이런 정열을... 이런 엉뚱한 데에 쏟아 붓고 있다니! 내가 무슨 천문학자도 아니고, 그런 동호회원도 아닌데......’ 하면서 이젠 아예 뻣뻣해져 있던 목덜미며, 다리도 저려서,
그런 내 모습을 디카에 담는 등... 조금 긴장을 늦추기는 했는데,
그러다 안으로 들어와 잠시 글 작업을 하다가,
3시가 다 되어 나가 보니, 그래도 제법 맑은 구름 뒤에 달이 떠 있긴 한데, 아직도 둥글지 않은 것을 보니, 월식이 몇 시간은 이어지는가 보았고,
또 그 아래서 여전히 시끄러운 파도소리를 내는 바다가 뿌옇기만 해서,
‘이런 바다가 무슨 환상적이라고?’ 하는 불만이 일어,
‘그러니까 첫잠에서 깨어난 뒤 테라스 산책을 하다가 내리 네 시간을 이러고 있었지만, 한 시간은 지금 사진 정리하고(그렇게 찍은 사진이 380 개가 넘었다. 게다가 디카의 밧데리가 떨어져서 더 찍을 수도 없었다.) 글 좀 작성하느라 보낸 시간이라 치고, 이 많은 시간을 쓸 데 없는 데에 쏟아 붓고 있었다니, 에이 자자! 어차피 환상적인 바다 구경은 틀렸고, 몸이나 상하지 않을까 우려되네......’ 하고,
전혀 알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그러면서도 엉뚱한 여기 카리브 해 바닷가에서의 ‘월식(月蝕)’을 맞닥뜨리면서 관찰한 것이,
보람차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