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dadamum/222600559911
https://naver.me/GKv5gQuY
https://naver.me/FqHyi2Vm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프랑스 아티스트 마르셀 뒤샹의 1917년 작품이다. 상점에서 구입한 남성 소변기에 리처드 머트(R. Mutt)라는 이름으로 서명하고 <샘>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이다. '레디메이드' 작품의 일종으로 꼽히는 이 작품을 통해 뒤샹은 기존 예술의 개념을 전복시키고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본문
1917년 4월 10일 프랑스 아티스트 마르셀 뒤샹(1887~1968)이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1917년 상점에서 남성 소변기를 하나 구입한 뒤샹은 이 변기에 제작년도와 함께 화장실 용품 제조업체인 리처드 머트(R. Mutt)란 이름으로 서명하고,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출품했다. 이 전시회는 뉴욕에서 새로운 미술을 장려하기 위해 창설한 독립미술가협회의 첫 전시로, 6달러만 내면 누구든지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출품되자 전시회 운영위원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소변기를 예술로서 전시할 수 있는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샘>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철수됐다.
당시 독립미술가협회의 회장이기도 했던 뒤샹은 <샘>의 전시가 거절당하자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해 회장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다다이즘 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발간한 잡지인 <블라인드 맨>에 자신의 입장문을 게재했다. 여기서 뒤샹은 6달러만 지불하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전시회에서 리처드 머트 씨의 작품이 거절을 당했다며, 누군가는 머트 씨가 그것을 직접 만들지 않아 작품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직접 만들었는지 여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그가 변기를 오브제로 선택했다는 것이라며, 변기에 '샘'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고, 원래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가치를 제거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운 개념과 정체성을 창조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 종전의 예술의 개념을 전복시키고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후 전시장 칸막이 뒤에 숨겨져 있던 <샘>은 수집가 월터 아렌스버그에게 판매됐으나 작품이 분실되어 1917년 원본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현존하고 있는 <샘>은 모두 뒤샹의 허가 하에 만들어진 복제품으로,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파리 퐁피두 국립현대미술관 등지에 대략 27점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의)
"변기를 일상의 관념으로부터 탈피해, 미술이라고 하는 것에 그것을 도입해 작품화한 것"이다.
뒤샹이 공격한 전통적인 제도란, 작자가 자신의 사상이나 관념을 작품의 형태로 만들고,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서 작자의 의도나 사상이나 관념을 자신 속에서 재현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미술의 고전적인 룰에 의문을 가진 뒤샹은 대량 생산된 아무런 사상이나 관념, 메시지도 담겨 있지 않은 변기를 미술전에 전시했다.
그러자 원래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변기가 감상자를
오독시켜 해독이 시작되고 그에 대해 이야기되고 미술화된다. 즉 미술의 진정한 작가는 감상자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뒤샹은 허구의 작자인 R. Mutt(리처드 매트)라는 가명의 작자인 R. Mutt(리처드 매트)라는 가명을 썼다.
샘은 2004년 500명의 유명 작가 및 미술사가들에 의해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세부설명
뒤샹은 '레디메이드 Readymades'라고
부르는 작품으로 기성품을 갤러리 공간으로
가져온 최초의 사람입니다.
레디메이드(Ready-made)
파운드 오브젝트(Found object)
어떤 일상적인 기성 용품을 또 다른 새로운
측면에서 보아서 만든 미술 작품의 한 장르
이다. 20세기에 마르셀 뒤샹의 《샘》이 이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위키백과
뒤샹은 <샘(Fountain)>을 통해 예술계에
깊이 뿌리내린 관념을 뒤집었습니다.
그가 질문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독창성의 개념이었습니다.
뒤샹 시대 이전에 예술가들은
작품의 진위를 증명하기 위해
작가의 이름으로 서명된
원본 예술 작품을 제작해 왔습니다.
그러나 뒤샹과 다다이스트들은
작품에 빈번하게 가명을 사용해
누구의 작품인지 의문을 가지게 했습니다.
1917년의 최초의 버전인 <샘 Fountain>은
분실되었지만 그의 독창적 아이디어는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1960년대에 동일한 유형의 소변기와
이상한 가명으로 서명하여
여러 버전의 <샘>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뒤샹은
아이디어나 개념이
누가 만든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선택이라고 하는 행위
일상적인 기능의 박탈
새로운 사고의 창조
선택이라는 행위
뒤샹은 샘 제작에 대해 우선 취미라는 문제를 시험해 보는 데서 나왔다고 말했다.
뒤샹의 취미란 시각적으로 무관심한 오브제다. 전혀 사람의 마음을 끌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듀샹의 취미로, 그 연장선에서 남성 소변기가 선택되고 있다. 이는 우연성 실험과 중립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태도를 상징한다. 나의 샘 = 소변기는 취미라는 문제를 시험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왔다.
전혀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것을 고른다는 것이었다. 변기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즉 위험한 것은 예술(아트)이라는 말이다.
예술 이라고 하면 사실은, 무엇이든 예술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레디 메이드로 선택된 오브제의 포인트는 나에게 있어서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선택한 오브제 대상은, 겉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무관심한 것이었다.
(마르셀 뒤샹).
즉 선택 행위란 정신의 객관적인 상태, 개인적인 취미가 정지된 상태에서 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만약 레디 메이드와 함께, 만드는 것이 선택하는 것을 대신한다고 하면, 의도와 함께
선택하는 것도 또한 무관심과 함께 선택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
뒤샹의 해석으로는, 선택이란 예술가의 혹은 그의 감정, 취향, 그리고 욕망 등의 개인적인 측면을
반영하거나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 아래, 평상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의 창출을 듀샹은 제시했다.
나중에 뒤샹의 의도와는 달리 컨셉추얼 아트나 포스트모던 아트로 발전하고, 이 뒤샹트나 포스트모던 아트로 발전하고, 이 뒤샹의 새로운 사고의 창출이라는 것이 현대미술의 기본적인 룰이 된다.
예술의 개념을 물질적 공예(핸드 메이드- 레디 메이드의 반대말)에서 지적인 해석으로 바꿈과 함께 선택이라는 행위와 그에 부수되는 관념이 중요해졌다.
일상적인 기능의 박탈 - 오브제(사물)에서 아트로
뒤샹은 원래대로라면 유용한 것을 선택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상적인 물건이었다.
일상적인 물품으로 본래는 유용한 변기를 내세워서, 새로운 제목 "샘"과 새로운 시각에서 그 변기가 가지
고 있는 본래의 의미 사라지게끔 전시하였다. 변기
를 일상의 맥락에서 떼어내 예술이라는 맥락으로 가져와 작품화한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은 슈르리얼리즘의 콜라주나 팝·아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콜라주는 잡지에서 오려낸 소재를 사용해 새로운 시각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연금술로 알려져 있다.
팝아트 역시 신문 잡지 광고 사진 등 친근한 대중매체나 일용품을 활용하면서 이게 예술이야? 라는
식의 맥락에서 태어났다. 레디 메이드도 마찬가지다.
Rudolf E. Kuenzli는 다다와 수르리얼리즘 영화(1996년)에서 레디 메이드에 대해 이
렇게 말했다. "오브제(사물)의 기능적인 장소의 이런 탈문맥화는 오브제에 부여된 설정과 위치 선택
에 의해 그 예술적인 의미의 창조에 주의를 환기한
다" 계속해서 객체에 이름을 붙이는 것(타이틀 붙이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물체의 선택, 제목, 그리고 그것이 통상적인 위치나 장소로부터 어떻게 변경되었는가 하는 세 가지 요인이 적어도 관련되어 있다. 이번 전람회에서는 소변기를 작품대 위에 놓음으로써 작품과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위에서 언급된, 다다 슈르리얼리즘 영화에 관한 간단한 설명
1920-30년대 유럽권에서 유행하던 다다이즘, 슈르리얼리즘 예술운동을 배경으로 제작된 아방가르드 영화(전위 영화)를 지칭한다. 당시 아방가르드 영화의 흐름 속에서도 프랑스에서는 현실 이미지를 추상화한 순수 영화(Cinéma pur)의 동향이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 최초의 다다 영화로 꼽히는 만 레이의 이성으로의 회귀(1923)가 다다의 행사인 "털이 난 심장"에서 상영됐다.
그것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필름을 감광시키는 레이요그래프 기법으로 못 등의 이미지를 담은 필름에 야경이나 나체 등을 촬영한 필름 조각들을 이어 붙인 작품이었다.
또 마르셀 뒤샹은 만 레이, 마르크 알레그레와 함께 원반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회전할 뿐인 아네믹 시네마(1925-26)를 제작하고, 한스 리히터는 추상 도형에 의한 리듬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 후, 프랑스의 배우이자 시인 소설가인 Antonin Artaud의 각본에 의한 제르메느 뒤락(Germaine Dulac 프랑스 초기의영화감독이자 이론가)의 "조
개 껍질과 승려"(Seashell and the Clergyman.1927)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최초의 슈르리얼리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영화 표현은, 영화에 있어서의 슈르리얼리즘을 철저히 구사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어 제작된 Luis Buñuel + 살바도르 달리의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8)는 인간 내부의 억압되고 잔혹하며 기괴한 이미지 추구를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슈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이 지향하는 바를 영화에서 구현한다. 이 작품은 슈르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이 되었다.
사로운 사고의 창조
기타 해석 - 미술 작자는 감상자
샘은 또 미술의 작자는 미술가가 아니라 감상자임을 제시했다.
본래 미술의 작자는 미술가이며, 감상자는 미술가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시각이었다.
그러한 미술의 고전적인 룰에 의문을 가진 듀샹은, 대량 생산된 아무런 사상도 메세지도 담겨져 있지 않은 변기를 미술전에 투입. 본래 아무런 메시지도 시각적으로 재미도 없는 변기가 감상자를 오독시켜 해독이 시작되고 그에 대해 이야기되고 미술화된
다. 그래서 뒤샹은 R. Mutt(리처드 매트)라는 가명을 사용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