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떠나는 현장으로
팔월 하순 금요일이다. 올여름은 예년과 달리 유난히 덥고 길게 느껴진다. 어제가 처서였는데 열대야는 여전해 간밤도 에어컨을 가동해 새벽을 맞았다. 그나마 근래 며칠은 날이 저무는 무렵 소나기가 내려 달구어진 복사열을 식혀주어 다행이다. 새벽에 잠을 깨 창밖을 내다보니 하현으로 기우는 칠월 스무날 달이 구름 속에 서녘으로 가고 있어 청량감이 느껴지는 가을 기운을 받았다.
아침밥을 해결하고 이른 시각 지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외동반림로를 따라 반송 소하천 견을 걸으니 귀뚜라미는 요란한 소리로 밤을 새워 울어댔다. 원이대로 급행 간선버스 정류장에서 첫차로 운행한 31번 버스를 탔다. 충혼탑에서 창원대로로 나갔다가 명곡 교차로로 되돌아와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나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으로 향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가술로 나아갔다.
모산리에서 제1 수산교를 지난 신성마을에서 마지막 손님이 되어 내렸다. 강변 들녘 마을은 차량도 오가는 이들도 없어 한적했다. 강둑이 아닌 들길을 걸으려고 정원이 잘 꾸며진 요양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들녘으로 향했다. 벼들은 볼록한 잎줄기에서 이삭이 패기 시작했다. 벼는 출수로부터 고물이 한 달 채워지면 이삭은 고개를 숙여 수확을 앞두게 된다. 그때면 황금빛 들판이다.
들녘엔 벼가 자라는 경작자와 함께 사계절 비닐하우스단지도 같이 있었다. 거기는 휴경지도 있고 작물을 가꾸기도 했는데 풋고추나 머스크멜론이 영글어 갔다. 풋고추는 가을 이후 겨울까지 계속 따고 멜론은 추석을 겨냥 수확하면 수박을 대신해 차례상에 오르게 하지 싶다. 빈자리는 앞으로 토마토를 가꾸지 싶다. 벼가 자라는 논은 추수 이후 서둘러 비닐하우스로 당근을 키웠다.
들녘이 끝난 먼 산자락으로는 엷게 낀 안개가 걷혀가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뜨면서 구름이 뭉실뭉실 뭉쳐 피어올랐다. 연근 뿌리를 캐려고 심어둔 경작지에는 넓은 잎을 펼친 연들이 무성하게 보였다. 농부들은 아무도 보이질 않는 들녘에 베트남 청년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임시로 머무는 숙소에서 잠을 깨 농장주 부름을 받아 이른 아침부터 할 일이 있는 듯했다.
지나간 여름 들머리 다다기 오이를 한창 따내던 대규모 비닐하우스단지가 나왔다. 그때 어딘가로 납품하려 선별에서 제외된 오이가 제법 나와 그걸 챙겨 이웃들과 나누어 잘 먹었더랬다. 배양토에 수경재배라 새로 심어둔 모종이 잘 자라고 있어 꽃을 피운 오이가 달려갈 듯했다. 한 달쯤 지나 들녘으로 산책 나와 거기를 다시 들리면 저번처럼 하품 오이를 챙겨갈 기대를 가져봤다.
들녘을 관통해 흐르는 죽동천에는 잉어가 펄떡임을 볼 수 있었다. 맑은 물보다 2급수나 3급수를 더 좋아하는 붕어나 잉어라 죽동천은 녀석들의 개체수가 많아 태공이 가끔 나타나기도 했다. 수면 위에는 마름이 띠를 이어 자랐다. 죽동천을 건너 빗돌배기 단감 체험 농장을 지나자 북가술이 나왔다. 동구 바깥 정자에 올라 땀을 식히며 오전 일과를 구상하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다.
임무를 마친 자투리 시간은 마을 도서관을 찾아 어제 읽던 문학 기행 책을 펼쳤다. 작가 윤정모가 자란 경주와 이육사 고향 마을 안동을 둘러 이해인 시인이 머무는 광안리 수녀원을 둘러보다 점심때가 다가와 국수로 한 끼 때웠다. 점심 식후는 도서관이 아닌 현장으로 나섰다. 2번 마을버스로 유등으로 내려가 한림 술뫼로 가는 길을 걸었다.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둑길이었다.
술뫼에 농막생활을 하는 지기는 엊그제 내보낸 유튜브에서 빗물받이통에 빠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꽃뱀을 구출해준 쇼트 영상을 재미있게 봤다. 지기에게 먹이를 얻어먹은 길고양이가 뱀이 빠져 있는 현장을 알려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지기는 주말을 앞두고 부산 자택으로 갈 채비를 했다. 텃밭에서 풋고추를 몇 줌 따 봉지에 채워 한림정역으로 나가 창원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