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이고 극작가이기도 했던 존 드라이렌(1631-1700)은 청교도의 집에서 태어났다. 1649년 크롬웰의 지도 하에 찰스 1세를 멸망시킨 청교도 혁명이 공화정부를 수립하자 드라이렌은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호국경(護國卿) 크롬웰이 1658년 병으로 죽자 그는 애도와 찬양의 시를 써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660년 공화제를 폐지하고 찰스 5세를 망명국인 프랑스에서 맞아 군주제가 복고되자 드라이렌은 곧 왕당으로 전환했다. 그는 곧 찰스 5세를 정의의 여신으로 비유한 찬양의 시를 발표했다. 찰스 5세는 신앙적으로는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 국교회(國敎會), 칼빈주의 등 각 파와의 화목을 도모했으나, 그의 사후 1685년에 즉위한 제임스 5세는 편협한 로마 가톨릭 교도였다. 그러자 드라이렌은 청교도의 집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공언해 놓고 급히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을 옹호하고 찬미하는 시까지 썼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콩꼬투리를 저녁식사 삼아 먹고 있었다. 이를 왕에게 아첨하며 안락하게 사는 철학자 아리스토포스가 보더니 디오게네스에게 말했다. “왕의 말을 듣기만 하면 그 따위 형편없는 걸 먹고 살지 않아도 될텐데.” “그대가 만약 콩꼬투리를 먹고 살 줄을 안다면, 왕에게 아첨 떨지 않아도 되련만.”
당신은 신앙의 지조를 잘 지키고 계십니까?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흔들리지 않는 성경 : 이사야 26:1-3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부를 노래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그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고 성전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그리고 그대로 방치된 채 7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폐허상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해방되어 돌아올 것이며 그들은 소리를 모아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노래를 부를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이 예언이야말로 희망을 상실한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받은 구원 사건과 함께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을 지내는 동안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방을 얻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는 죄에서 해방받을 수 없는 사람들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70년 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와 해방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받게 된 것입니다.이스라엘이 해방을 노래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해야 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이스라엘이 자유와 해방을 받게 되는 날 불렀던 노래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견고한 성읍을 주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라고 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견고한 성읍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본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은 견고한 성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가장 거룩한 도성이고 가장 견고하고 가장 품위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그 도성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점령군에 의해 짓밟히면서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이 쑥밭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70년 동안 폐허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도성을 다시 견고한 성으로 회복시킨다는 것이 노래의 내용입니다.견고하다든지 튼튼하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지구상에 견고한 도시는 어느 곳일까요? 가장 강한 것이 가장 약하다는 말이 있습니다.철사줄은 잘 휘어지지만 쉽게 잘라지지는 않습니다.그러나 강철은 강하긴 하지만 쉽게 부러집니다.
2.하나님이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노래하고 있습니다. 1하반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구원받은 후에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1-18절까지 계속되는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주의 오른손으로”,“주의 콧김으로”,“주의 바람으로”,“주의 팔로” 원수를 물리치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모든 백성이 노래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께서 구원하심으로 성과 곽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다시 말하면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이 바울의 신학이었습니다.나 개인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구원은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를 하나님은 부르시고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훈련하시고 연단하셔서 목사가 되게 해주셨습니다.바울이 말한 대로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였습니다.그것은 비단 저 한 사람만의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받고 구원받아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바로 이것이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문을 열고 의로운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열 두 대문이 있다고 했습니다.그리고 24시간 그 문은 열려 있고 닫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문이 열 둘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고 성문을 닫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천국은 폐쇄 사회가 아닙니다.돌담을 치고 맹견이 지키고 무장 경비병이 지키고 그것도 모자라 감시 TV가 돌아가고 철조망이나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있는 곳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니까 그 나라를 가리켜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라고 했습니다.신을 지킨다는 것은 신의,믿음,약속을 지킨다는 뜻입니다.그러니까 천국은 신의가 통하고 믿음이 통하고 약속을 지키는 나라입니다.하루가 멀다하고 약속을 바꾸고 변덕을 부리는 그런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김받고 의로워져야 합니다.그리고 신의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다시 말해서 한 번 “예수를 잘 믿겠다”고 했으면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충성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으면 그 신의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입니다. 도둑놈의 소굴이라면 도둑질 제일 잘하는 사람이 들어가겠지만,그 나라는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신의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고 의롭다 칭함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4.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으로 지키시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신앙이 흔들림이 없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한 번 주님을 섬기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경우에서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노라는 고백을 수차례 반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혀가셨던 법정뜰에서 자그마치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그것은 그의 심지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그 사람의 심지란 곧 그 사람의 마음을 말합니다. 에머슨은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속에 숨은 미치광이를 가지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그 미치광이가 날뛰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결국 미치광이란 그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일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는 전장,그곳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지닐 것인가를 여러 곳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교훈합니다. 빌립보서 2:5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바울이 우리에게 품으라고 하신 예수의 마음은 희생하신 마음이며 낮아지신 마음이며 자기를 버리신 마음입니다.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예수의 사람이 됩니다.이것을 바울은 로마서 8:9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한 마음을 품으라고 교훈합니다. 빌립보서 2:2에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동상 이몽이란 말이 있습니다.같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있으면서 각각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꿈을 꾼다는 뜻입니다.즉 몸뚱이만 같이 있을뿐 마음은 둘이라는 것입니다.한마음을 품어야 한 식구가 되고 한 교회가 되고 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세째는 마음을 넓히라고 교훈합니다. 고린도후서 6:13에서 바울은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즉 편협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과 고집스런 마음을 버리고 툭터진 넓은 마음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네째는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시편 119:113에서 시인은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두 마음이란 갈팡질팡하는 마음이며 흔들리는 마음이며 오락가락하는 마음입니다.그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다섯째는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시편 66:18을 보면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즉 악을 계획하면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맙니다.우리는 이상의 교훈을 통해 품어야 할 마음과 품어선 안 될 마음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종달새 알을 품으면 노래하는 종달새가 나오지만 독사의 알을 품으면 독사가 나옵니다.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과 덕을 실천하게 되지만 사탄의 마음을 품으면 악과 시기와 분함과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성만찬에 참여했습니다.우리는 오늘 성찬상 앞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겠다는 서원을 해야 합니다.온 세상이 포악하고 난폭하고 잔인해져 간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사람마다 속이고 속고 부정적으로 얼크러지고 거짓과 허위로 분단장을 한다고 하더라도,나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심지가 곧은 생활을 하겠다고 약속을 해야 합니다.그래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다하며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내 마음이 주의 마음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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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 를 누리고 그가 채찍 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겸손과 온유의 도구로 쓰임받게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깊이 감사드립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