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밥공기가 줄어든 이유는 우리가 먹는 쌀이 줄어든게 아니라
정부에서 억지로 줄인겁니다.
한국전쟁 전 부터 한국은 북한보다 못살았고, 이후에도 북한의 공업수준과 공산군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군대의 군인 숫자를 국가운영의 한계점 까지 몰아붙여서 최대로 유지 합니다.
이렇게 해야 미국의 원조를 최대로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쌀을 먹지 않으니 한국군의 주 식량인 쌀은 한국 정부가 마련해야 했습니다.
무기는 원조를 받는데 군인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은 한국 군대의 고질적인 문제 였습니다.
어느나라나 병참 특히 식량은 중요한 법인데... 한국군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식량문제가 내부의 큰 적이었습니다.
쌀이 부족하지만 어쩄든 군량미로 쌀을 우선적으로 공급했기 때문에 보릿고개가 오면 군량미를 빼돌리는 일도
부지기수로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쌀의 절대적 부족은 약소국의 물가 상승률을 더욱 부추기는 상황이 되었음을
지금 사과의 상황에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사과는 안먹으면 되지만 쌀은....전혀 다른 개념이죠
1960~70년대 까지만 해도 민간에서 우리의 밥양은 너무나 많았고 계속 보릿고개가 계속 되었습니다.
정부미 개량정책으로 수확량을 아무리 늘려도 한국 사람들의 밥에 대한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후진국이었던 한국은 물가를 낮게 유지하고, 임금을 낮게 하면서 수출 중심의 경공업 국가를 만들어서
달러를 벌어와야 하는데 쌀로 인해 물가가 요동쳐 버리면 답이 안나오는 것이죠.
결국 정부는 밥공기를 줄여버리는 대대적인 "결단!"을 하게 됩니다.
전국의 식당에 지금 우리가 아직도 쓰고 있는 190ml 스테인레스 밥공기를 표준화 시키고,
이 것을 쓰지 않는 식당을 대대적으로 단속/지도 합니다..(군사정권시절의 단속과 지도는....말안해도 아시죠?)
그리고 밥을 추가로 더 주지 않도록 진행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는 밥 한공기 1000원 받는 곳이 아직도 꽤 많죠.
한공기 더 시키면 반드시 값을 받도록 해서 한공기 이상 먹는 것을 막아 쌀 소비를 줄여버리는 거죠.
농업의 입장에서도 종자개량으로 맛은 일단 접어놓고, 수확이 많이 나오는 통일벼-> 정부미 스타일로 갑니다.
통일벼를 심지 않는 논은 정부 수매를 안해주는 방식으로 다들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만 심게 하면서 양을 늘립니다.
수요는 억누르고, 공급은 늘리는 지금으로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계획경제를 하는 거죠.
그리고 혼분식 운동까지 해서 미국에서 원조오는 수입 밀가루로 만든 국수, 잡곡밥을 장려하고 검사해서
쌀의 소비를 극한으로 줄입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 으로 ... 80년대에는 드디어 쌀이 남아서 비축 할 수 있는 수준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쌀 값이 안정되었고, 물가 안정, 군대 식량 비축, 하나하나 완성되어갑니다.
뭔가 이렇게 글을 쓰니 보수적 성향의 빠돌이 같은 글이 된거 같은 기분인데
그냥 밥공기와 혼분식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보수정권을 응원하는 정치 글은 아닙니다.
첫댓글 아 배고파
댓글 몇 개 달아야 정회원 되남유~~
출석 5회, 댓글 25개 달면 자동등업입니다
@코난.카페장(경기) 네 코난님
하산했다가 다시 시작하니
단계를 밟아 다시 올라가야죠
70년대까지 식량이 부족하니 정부에서 쌀소비를 규제하는 여러 정책들 내놨지요 식당서 보리섞은 혼식을 의무화하거나 학교에서 검사하기도하고 전통주나 쌀막걸리 금지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낯선 정책인데 이제는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 됬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