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벌초 걸음
올여름 더위는 처서가 지났음에도 기세가 꺾일 기미가 없는 팔월 하순이다. 이번 주말 고향 선산에 벌초 일정이 잡혀 새벽잠을 깨 행선을 채비했다. 내가 여름 숲에서 삼림욕을 겸해 찾아내 말려둔 영지버섯을 봉지에다 채워 담았다. 손 위로 형님들과 대구 사는 동갑내기 사촌에게 보내려 준비했다. 간식으로 삼을까 싶어 가술 국도변에서 구한 보리개떡으로 불리는 술빵도 챙겼다.
같은 생활권 작은형님 차에 동승해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른 아침 차창 밖으로는 짙은 안개가 끼어 눈에 익은 산천 풍광은 시야를 가려 볼 수 없었다. 군북 나들목을 빠져나간 정암교를 건널 때 의령 관문과 솥바위도 안개에 가려 희미했다. 고향 집에 닿아 큰형수님을 뵙고 곧장 마을 뒷산 벽화산 기슭까지 승용차로 올랐다. 새벽같이 달려온 조카와 사촌은 산소에 먼저 가 있었다.
제법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니 내게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잠들고 계신 산소는 벌초가 진행 중이었다. 진주와 마산에 사는 큰집 조카가 예초기를 등에 지고 땀을 흘렀다. 큰형님과 사촌 형과 조카도 낫이나 갈퀴로 각자 제 몫을 다했다. 고향을 지키며 평생 농사를 짓고 한학을 궁구해 오는 큰형님은 여든을 앞둔 나이다. 고령임에도 아우와 조카들을 데리고 선산 벌초 대열을 이끌었다.
나는 톱으로 산소 둘레로 침범한 나뭇가지들을 잘라주다가 한 가지 할 일이 생각났다. 선산 주변 조생종 밤은 팔월 하순부터 알밤이 떨어지는데 멧돼지가 먼저 차지했다. 이즈음은 햇곡식이나 알뿌리로는 멧돼지 먹잇감이 될 게 없어 녀석은 밤나무 아래 와 살다시피 했다. 야행성인 멧돼지는 밤송이 가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먹어 치워 아침 이른 시간이라도 껍질만 만나기 일쑤다.
밤나무 그루 밑으로 갔더니 멧돼지가 아침에 까먹은 밤껍질과 함께 금방 떠났을 발자국 흔적이 보였다. 오늘은 무척 이른 시각 벌초객이 산소로 오른 관계로 못다 먹고 인근 칡덤불로 가 몸을 숨겼을 멧돼지였다. 멧돼지가 미쳐 못다 먹고 남겨둔 밤톨을 주웠더니 한두 되 될 듯했다. 그새 산소에서는 벌초가 끝나 준비한 술잔과 과일로 조상님께 자손이 다녀감을 아뢰는 절을 올렸다.
조부모님 산소 벌초를 마쳐 갈 즈음 울산 작은형님과 조카도 나타나 산을 내려서다 객지 사는 같은 항렬 선산도 벌초했다. 나는 거기로 가질 않고 부모님 산소 길섶으로 뻗친 나뭇가지를 톱으로 잘랐다. 추석 때 형제나 조카와 손자들이 성묘를 다녀갈 때 불편하지 않도록 해놓았다. 나는 옻에 아주 민감해 개옻나무 가지에도 닿지 않으려고 신경이 쓰였는데 며칠 지나야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구역은 숙부님이 잠든 곳으로 옮겨온 고조와 증조 선산을 벌초하는 일이다. 몇 해 동안 멧돼지가 숙부님 산소 봉분을 헤집어 적외선 감지 사이렌과 그물망 울타리를 쳐 놓으니 피해가 없다. 예초기를 짊어진 두 조카가 제일 힘든 보직이었다. 그 나머지는 낫이나 갈퀴로 잘라둔 풀을 옮겨 나르는 일이었다. 풀로 무성하던 산소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단정히 이발한 듯했다.
고조 증조 숙부님에도 자손이 다녀감을 아뢰고 마을에 닿아 고향 집 고샅으로 들었다. 울산 작은 형수님도 조카가 올 때 같이 왔더랬다. 읍내 식당에서 가족들이 함께 앉아 보려고도 고심했으나 고향 집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상이 마련되었다. 나는 그새 큰형님이 가꾸는 대봉감밭 근처 고구마 이랑에서 잎줄기를 따 모았다. 창원 집으로 가져갈 소중한 고향 흙내음이기도 했다.
고구마 잎줄기를 따 집으로 가 신발에 흙을 털고 땀을 씻었다. 감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상이 차려졌다. 형제들과 조카들과 손자들이 상 앞에 모두 둘러앉으니 마당이 그득했다. 울산 형수는 햇김치를 담가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해 왔더랬다. 익힌 살코기로 보양식으로 삼고 이어 즉석에서 삶아 건져낸 국수까지 먹었더니 밥값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갔다. 2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