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벌어지는 망자의 재판을 그린 영화 ‘신과 함께’가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세계가 열린다’라는 글이 있는데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동안 고스트 영화는 많이 있어도 사후세계를 다룬 영화는 아직까지 동서양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색다른 소재에 세계 영화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팔렸다.
이 영화가 예상보다 빨리 많은 관객을 모은 이유는 뭘까. 혹자는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아마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 인구대비 관객 수로 계산한다면 과연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각 종교마다 영화를 해석하는 관점이 다르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일부 공감하기까지 한다.
사후세계에 관해 동양은 불경에서 그것을 자세히 다루었고, 서양에서는 임마뉴엘 스웨덴보그의 ‘사자의 서’를 통해 소개되었다. 그 책에는 믿기 어려운 영계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있지만 독일 철학자 칸트와 영국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영계에 관해 분명하게 밝힌 저술은 스웨덴보그 이외에는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정을 했다.
이 영화는 만화로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작가적 상상으로 그려진 사후세계이지만 불교에서 얘기하는 사후와 윤회를 잘 그려내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화 속 사후세계는 인간의 생각 범위를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아무리 영상으로 잘 표현한다고 해도 인간의 머릿속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것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데 있다. 인간이 세상을 떠나면 사후 49일 동안 일곱 번의 재판을 받게 된다. 그 단계를 무사히 통과한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환생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만,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그곳에서 받은 형량만큼 고통을 당한 후 다음 재판으로 넘어간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젊은 관객들이 다음 재판으로 넘어가는 영화 속 전개과정을 하나의 게임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후세계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남녀노소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외국에서도 그 점이 통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 인간의 감성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지옥의 종류가 정말 이렇게 많을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짓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일곱 번의 재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우려도 하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입으로 인한 죄는 통과하기가 어려울 듯 보인다.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불손하게 말하는 자, 비방을 하거나 입으로 화목을 깨뜨린 자, 악플을 달아 괴롭히는 자는 검수지옥에서는 칼을 맞고, 발설지옥에서는 형틀에 매달고 집게로 입에서 혀를 길게 뽑아 그 위에서 소가 밭을 갈듯 쟁기를 이끄는 고통을 겪는다.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이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지옥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구업(口業)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보다도 자살하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이생을 자살로 마감하고 다음 생에 잘 태어나겠다고 한 사람은 지옥을 통과할 수가 없다. 자살은 영혼의 타살이기에 영계에서는 큰 죄인이다. 그것은 그동안의 구명시식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다. 잘못 생각했다고 깊이 후회하는 많은 자살영가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영화 ‘신과 함께’는 사람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우리가 지은 업은 죽음 이후, 즉 사후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내 삶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후세계 역시 지옥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하루하루가 천국이면 사후세계 또한 천국이다. 그래서 하루가 한생이며 매일매일 웃으며 선업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