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작가 체홉의 단편 카멜레온은 주위의 상황에 약삭빠르게 적응하는 경찰서장 오츄멜로프의 인간성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오츄멜로프가 외투를 걸치고 광장을 지나가다가 개에게 손이 물려 피를 흘리고 있는 귀금속 상인을 만났다. 서장은 개 주인을 찾아내어 개를 거리에 풀어놓은 과실을 엄중히 추궁하고 손해 배상을 물리게 해야겠다고 흐류겐에게 말했다. 그때 모여든 군중 속에서 “저건 장군 댁의 개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경찰 서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흐류겐에게 “혹시 자네가 못에 찔려가지고 연극을 하는 게 아니야?”하고 눈을 부라렸다. 이때 서장의 곁을 따르던 순경이 “저건 장군 댁의 개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서장은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장군 댁의 개는 이놈보다 훨씬 큰 사냥개야”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아닙니다. 그건 분명히 장군 댁의 개입니다”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서장은 순경에게 말했다. “자네 이 개를 장군 댁에 끌고 가서 보이게. 내가 찾아내어 보내더라고 하게나.” 그런데 이때 장군 댁 요리사가 이것을 지켜 보다가 “우리 집에는 이따위 개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서장은 화가 나서 “이따위 떠돌이 개는 당장 처치해 버려!”하고 순경에게 내뱉었다. 그때 요리사가 정색을 하며 “서장님, 이 개는 장군님의 동생이 데리고 온 개입니다.” 이 말을 듣자 서장은 요리사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럼 장군님의 동생께서 오셨단 말인가? 자네가 이 개를 끌고 그 댁에 갖다 주게.”
이 작품은 경직된 관료 사회의 한 병폐를 묘사하고 있다. 권위 앞에 전전긍긍하면서 보신지책에 급급한 소시민적 서글픈 현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당신에게는 베드로와 같이 자신이 그리스도인 임을 부인한 적은 없으십니까?
마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헌신의 십자가 본문 : 갈6:14
헌신이란 자기의 이해를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전문 용어는 아닙니다. 사회 사업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은 사람이나 병든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등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유익을 어떤 전제없이 나누는 사람들을 일컬어 '헌신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 세속과의 단절(약4:14-16)
1)버려야 할 세상 풍조 주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맨먼저 취해야 할 자세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는 일입니다. 세상 풍속이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젖어 살던 세속적 습관과 태도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세속을 좇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 풍속은 우리의 영적 진보를 더디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약4:4). 그러므로 성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세속과 짝한다 할지라도 단호히 이를 거부해야 합니다. 세속과 단절하지 못하고서는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가 불가능합니다.
2)정욕을 좇는 일의 위험성 세속적이라는 말은 마귀적, 정욕적이라는 말의 동의어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정욕을 좇아서 행한다면 그는 세속과 벗하는 자이며, 주님과는 담을 쌓은 자라 하겠습니다. 육신을 지닌 인간이 여러 가지 유혹에 직면하게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노릇입니다. 여기에는 신앙의 연륜이 오래인 사람이나 초신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과 평신도 사이에도 특별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쳐서 주께 굴복시킨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그만큼 세상의 유혹이 많음을 보여줍니다. 세속적인 것들이 매력이 있어 보이기에 우리 육신의 정욕은 이것을 좇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절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화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가장 힘든 과정이 절제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쾌락과의 단절(롬8:12,13)
1)안개와 같은 인생의 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인식 가운데 하나는 인생의 날이 짧고, 빨리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모세의 기도 속에 나오는 것 처럼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날들이 신속히 지나가 버립니다. 그는 시간이 '날아간다'고 표현함으로써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부한 자나 가난한 자, 힘이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가 짧디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갑니다. 돈이나 지식, 명예, 그리고 어떤 재능이나 권력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인생의 날이 짧고 신속히 간다는 데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얼마 안되는 인생이기에 시간이 소중합니다. 쾌락에 허비할 만큼 여유가 없으며, 헛된 일에 분주할 만큼 충분하지도 못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습니다.
2)육신을 좇는 자들의 절망 성경은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육신을 좇는 자들이 처한 실상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짧은 인생이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육신을 좇는 생활은 미래가 없습니다. 인생은 짧지만 그 공과는 영원히 남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까지 마치 이력서처럼 우리를 따라 다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담고 있는 교훈을 잘 새겨서 육신의 일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 선한 사업을도모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3. 그리스도와의 일체감(갈2:19,20)
1)주님의 고난에 동참함 헌신한다는 말 속에는 일체감을 갖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만일 주님께 헌신한다고 말하면서 그분과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주님과 일체감을 갖는 길은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지라도 고난받는 순간을 괴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므로 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사모한다면 먼저 고난에 참여하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난의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고난은 피하고 영광만 취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2)주님을 위해서 헌신함 바울은 자신이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오직 그분만을 위해서 할 수 있어야 참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몫은 다 떼어 두고 나머지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진정한 헌신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예수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다분히 타산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심히 적다는 말입니다. 이해 득실을 따지지 않는 것이 헌신이며,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최고와 으뜸의 자리에 예수가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 십자가는 죽음과 희생의 표시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는 세상과 맺고 있는 연결고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세속과 짝하는 사람들은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쾌락과의 연결고리도 끊어야 합니다. 육신을 좇아 살면 결국은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체부보다 빠른 인생의 날들을 헛되이 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주님과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서 행할 때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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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잠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것이 살진소 를 먹으며 서로 미워 하는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존재 목사님 감사륻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