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32-제정일치의 삶
[삼하8:1-1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3)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4)그 마병 일천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이고 (6)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본문은 전쟁이야기로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신 내용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 맺는 순간부터 뗄래야 땔수 없는 상태가 된다.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줄기를 따라 이어지면서 이들은 모두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간다.
이스라엘이 잘되든지 못되든지 하나님과 하나로 묶인 운명이다
이스라엘이 잘못하여 포로로 잡혀간다 할지라도 한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이 되어 고전5장에 나온대로 육체는 멸하고 영혼은 구원하여 주실 것이며
부모는 자식을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하시었다.
잘못하여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은 멸망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옥은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한번 자식이면 영원한 자식이다.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연결고리는 언약궤이다.
다윗이 언약궤를 어떻게 해서든지 예루살렘 성전에 두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은 신앙 중심이 언약궤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언약궤가 있는 곳에서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했기에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서 동행하기 위해 성전에 언약궤가 있어야 했다.
언약궤가 오는 과정에서 실수한 것도 있지만 언약궤가 돌아오므로 다윗에게는 중요한 일이 성취되고 이스라엘 다스리는데 구심점이 마련되었다.
백성들이 다윗에게 네가 이스라엘의 정통 왕이라면 언약궤가 어디 갔느냐고 할 것인데 언약궤가 성전에 왔으니 왕으로서 힘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종교와 정치가 완전히 일치된 제정일치국가 이다.
과거 고대시대에는 자연의 무서움 때문에 누군가 나서서 자연을 달래주게 되는데 이 사람이 제사장노릇 했다. 그리고 그가 부족 다스리는 일을 했다.
부족국가에서 이제 나라가 형성되어 가므로 제사장이 전체를 끌고 갈 힘이 없어지자 왕의 권력으로 이동하게 된다. 왕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였으며 이로 인해 제사장은 밀려나 왕의 밑에서 돕는 자로 전략된다.
종교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내어놓지 않으려고 왕권에 도전하는 일들이 많았다.
중세시대에 왕과 종교지도자의 권력 다툼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이 세상 왕과 같은 왕을 달라고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사실 이방 왕과 같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신17장에 왕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는데 그것은 율법 책을 옆에 두고 그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했다.
세상은 왕의 명령이 법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이 법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이 있지만 실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되어졌다.
*다윗의 정치는 언약중심으로 바뀐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정일치의 국가 세우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성전 짓는 것을 말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에게 선한 마음을 가진 것이 자손대대 복을 받아서
네 집을 영원히 견고케 해주겠다는 다윗언약을 받게 된다.
다윗의 언약으로 그의 통치 방법이 사건중심에서 언약중심으로 가게 된다.
우리의 삶도 다윗처럼 언약중심인 신학적중심이 되어야 한다.
다윗의 위가 견고하다는 것은 다윗의 왕권이 육신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죽었으며 그의 자손이 왕권을 계속 유지 하지 못한 것을 잘한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예수그리스도에게 전환되었다.
다윗의 언약은 혈통 언약이 아니라 영적 언약임을 알아야 한다.
영원토록 된다는 것이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보여준다.
**시온주의[시온이즘]를 알아야 한다.
이들은 솔로몬 성전이 영원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너진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 성전은 영원하다고 한 것을 외형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붙잡고 있는 자들로서 신학적으로 전환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함께 간다고 하지만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껍데기 약속만 붙잡고 있으면 무너진다.
반드시 신학적으로 돌려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수가 이 성전을 헐라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하시면서 이것이 몸 성전이라고 한다.
삼일 만에 부활하여 성전을 육체로 비유했다.
부활체 성전은 영원한 성전이 된 것이다.
솔로몬성전이 무너지고 다윗의 후손인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몸 성전으로 지어질 것을 예표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들 눈에 보이는 성전을 필요 없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지은 것이 기특하다. 말씀을 삶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연결해서 신학적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삼일 만에 짓는다는 말에 화를 낸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은혜가 주어질 때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고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모시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몸 된 성전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생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있는 순간부터 신학적으로 넘어간다.
세상에 우연한 일은 없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신학적으로 보아야 한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을 이런 시간을 이런 모습을 주시는 것일까?
돌멩이에 넘어져도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게 하실 수 있는데 왜 넘어졌나?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물어보고 답을 찾아야 한다.
*다윗은 예수를 통해 구원 받는 것을 구약에서 깨달았다.
[시 89:1]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깨닫고 노래한 것이다.
율법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 된다고 전했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신 하나님[다윗의 전성기]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다윗의 열망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성전 짓지 못하니 재료라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는 성전 짓는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재료라도 준비하겠다고 한 자이다.
그를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했는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으로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신다. 지금은 다윗의 전성기로 이때가 위험한 때이다.
다윗이 과거에 기름부음 받은 이후부터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의 삶은 긴장의 연속으로 살았는데 그가 이스라엘 전체 왕이 되고 이제 문제 될 것이 없다. 자식은 제사장 일을 했으며 아버지와 아들이 합해서 제정일치가 되었다.
누구도 반대하는 자가 없이 잘 되었지만 이때가 무서운 때로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이때 안일주의의 병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안일하고 나태한 병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였다.
게으름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악이다.
힘들 때는 나태할 수 없다. 안정될 때 나태해진다.
안일의 병으로 인해서 추락하는 다윗은 전쟁 중에 마음이 안일하여 밧세바 사건이 나온다. 평안할 때 나태해지지 않도록 자기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윗은 우리아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태하여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다.
*제정일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과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였던 하나님의 인도를 삶속에서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뀌니 우리는 베뢰아 사람처럼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즐거움을 세상 것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자.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고 거두어 가시는 것도 하나님이심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