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천 천변을 걸어
팔월 넷째 일요일이다. 한밤중 잠을 깨 어제 선산 벌초를 다녀오면서 따 온 고구마 잎줄기 껍질을 까면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엊그제 처서여도 늦더위 기승인데 / 해마다 이즈음은 선산에 벌초 마쳐 / 자손이 다녀간다고 잔을 채워 올린다 // 산소 곁 밤나무에 올밤이 떨어지면 / 멧돼지 시식하고 남겨둔 몇 톨 주워 / 고향 땅 흙내를 맡는 부적처럼 지닌다” ‘갑진년 벌초’ 전문.
여름에 시식하는 이런저런 푸성귀 가운데 내가 가장 즐겨 먹는 찬이 고구마 잎줄기 무침이다. 재래시장 노점에서 고구마 잎줄기를 팔기는 해도 나는 거기서는 한 번도 사 본 기억이 없다. 지난 광복절 마산역 광장을 지날 때 고구마 잎줄기를 팔았는데 먹고는 싶어도 참았다. 곧 고향에 벌초를 가야 할 때였다. 형님이 농사짓는 고구마밭에서 따 올 생각이었는데 어제 실천에 옮겼다.
이른 아침밥을 들고 날이 밝아오기 전 아침 산책을 나섰다. 산책 코스는 올여름이 유난히 덥기도 했지만 틈을 낼 겨를이 없어 나가지 못한 창원천 천변으로 정했다. 산책을 마친 귀갓길은 집으로 곧장 오질 않고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에 머물 생각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교로 나가자 쌈지공원 체육 기구에는 무척 이른 시간임에도 몸을 단련하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창원천 수변 산책로로 내려서자 여름내 잎줄기를 불려 자란 수크령 이삭이 패어 곡식밭을 연상하게 했다. 하천을 관리하는 부서에서는 이즈음 수크령 이삭은 관상 가치가 있어 구경거리로 남겨 풀 자르는 일을 늦추는 듯했다. 올여름은 냇물이 넘쳐흐른 적 없어 냇바닥에는 고마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습지 식물이 우거져 보였다. 외따로 자란 아카시나무도 가지와 잎이 무성했다.
천변을 따라 반지동 아파트단지가 가까워진 곳은 창이대로로 건너는 강철 교량이 놓였다. 그간 징검돌을 밟고 내를 건넜는데 냇물이 불어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 듯했다. 반지동 주택지와 지귀상가로 연결된 창원천2교를 지나 유목교에서 창원천3교까지 내려갔다. 시티세븐과 명곡교차로에 이르도록 수크령 이삭은 계속 이어졌는데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이도 봤다.
창원대로와 통하는 용원 지하도를 건너니 산책객은 되돌아가 혼자서 공단 배후 천변을 따라 걸었다. 지난봄 창원천 하류 하상은 준설을 마쳐 둔치는 새로운 식생으로 덥혀 자랐다. 당시 작업을 앞두고 잘라둔 묵은 갈대와 물억새 그루터기는 삼잎국화 잎이 싱그럽게 가득 돋아 뜯어 주변으로 나물로 삼아 먹으십사고 나누었다. 산책 보도에서 둔치로 내려서 변화된 식생을 살펴봤다.
삼잎국화는 생장력이 왕성해 일부는 복원되어 내년은 잎줄기 개체수가 더 늘어날 듯했다. 상류 어디부터 씨앗이 흘러온 들깨가 절로 싹을 틔워 군데군데 잎을 펼쳐 자랐다. 들깨는 열매 수확 이전 이파리는 채소로도 유용해 놓치지 않고 채집 특기를 발휘해 주섬주섬 봉지에 따 담았다. 경작지가 아니라 멱까지 다 따도 되었는데 잎을 펼치지 않은 보드라운 순은 데쳐 나물로 먹는다.
천변 둔치 들깻잎을 딴 뒤 산책로로 올라와 덕정교를 지나자 드러난 봉암갯벌은 썰물이라 갯벌과 모래톱이 드러나 있었다. 남천으로 거슬러 오르는 산책로에서 삼동교에 닿아 창원대로로 향해 삼동교차로에서 충혼탑 가까운 올림픽공원 숲길로 들었다. 축구장과 테니스장에서는 동호인들이 운동에 열중했다. 수돗가에서 이마의 땀방울을 씻고 신발의 흙을 털고 배낭을 수습 정리했다.
이후 업무 시작 시각에 맞추어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들어 서가에 비치된 책을 골라 열람석을 차지했다. 나이가 듦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여준 여든 넘어서도 정신과 진료실을 지킨 일본인이 쓴 책장을 넘겼다. 정년에 이르지 않고 명퇴해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배의 탐방기도 읽었다. 휴게실로 건너가 삶은 고구마와 컵라면으로 때우고 열람실로 되돌아 와 오후까지 머물렀다. 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