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서 시작된 인연 1967년 해병대 태권도 코치 맡아 대통령배 대회서 6년간 우승
1989년 중국에 태권도 첫 전파 中 전역에 도장 500여 개 우뚝 장애아들에게 무료 지도도
기사사진과 설명
김기동 태권도창명연구원장 |
“태권도는 제 인생에서 빼 놓고 얘기할 수 없는 존재가 됐죠. 군에서 시작된 태권도의 인연이 중국과 대만뿐 아니라 세계에도 더 널리 전파됐으면 합니다.”
중국에 태권도를 처음 전파한 태권도창명연구원 김기동(예비역 해병대령·73·국기원 9단·사진) 원장은 태권도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스포츠 가교 역할을 해 오며 중국 내 태권도 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인이지만 일 년에 한두 달 빼고는 거의 중국에 머문다는 김 원장을 최근 서울 명동에서 만났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곧고 반듯한 모습은 젊었을 때 각 잡힌 현역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김 원장과 태권도의 인연은 군 생활에서 시작됐다. 해병학교 33기로 1964년 해병소위로 임관한 그는 1965년 베트남전에 파병, 청룡부대 1진 소대장으로서 부대 홍보를 위해 태권도 시범단장을 맡게 됐다.
“태권도는 한국인에게 국기(國技)입니다. 한국을 알리기에 좋을 것 같아 태권도를 보여줬죠. 당시 베트남에서 한국 해병대의 강인한 모습을 태권도를 통해 각인시켰던 것 같아요. 미군들이 벽돌 8~9장을 쌓아놓고 손으로 격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군인은 다 저렇게 강하냐고 놀라면서 묻더라고요.”
베트남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보고 태권도 유단자로 구성된 시범단을 편성해 태권도를 적극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967년 5월 귀국해 해병대 태권도 코치가 됐다. 해병대 태권도팀은 대통령배 태권도 대회에서 6년동안 우승하는 쾌거도 이뤘다. 국방부 근무 당시 대만(당시 자유중국) 태권도 교관요원 선발에 응시, 군 대표로 대만에 파견됐다. 대만에서 해군6전대와 육군보병학교 교육교관을 맡으면서 대만의 태권도 보급에 주력했다.
태권도가 해병대 정신과 많이 닮았다는 질문에 “정신적으로 튼튼한 지휘관은 교양뿐 아니라 소양,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정신을 가다듬는 데는 태권도만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1988년 대령으로 전역한 김 원장은 일찌감치 중국 대륙 진출의 꿈을 안고 중국과 국교를 맺기 3년 전인 지난 1989년 8월 중국 심천시에 도장을 개관하면서 초강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태권도 전파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에서 우리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를 퍼뜨려 태권도의 세계화에 일익을 맡아 선봉장이 되는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중국은 우슈나 태극권 등 다양한 무술이 생활화돼 있는 나라로 태권도 전파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부분 중국사람들은 무술이 더 대단하다고 알고 있어요. 무술은 기술, 기예 중심입니다. 학권, 호권, 사권 등이 자기 힘을 자랑하는 거라면 태권도는 ‘도(道)’ 입니다. 도덕과 윤리, 정의와 대의를 위한 것이죠.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1989년 창명연구원을 설립한 그는 지금까지 실질적인 국기원 중국지부 역할을 해왔다. 창명연구원은 매주 수요일 회원 사범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태권도 관련 교육 자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국기원 교육은 중국 사범들의 기본 동작부터 품새, 시범의 정확한 동작과 질적 향상에 눈부신 기여를 했다.
그가 이렇게 중국에 태권도를 전파하는 이유는 뭘까.
“저는 군에서 선택받은 수혜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고마움을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요. 중국은 또 같은 생활권으로 문화적인 동질감을 갖고 있으니 태권도가 널리 전파돼 한국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이 같은 김기동 원장의 태권도에 대한 사랑과 꾸준한 교육 활동은 서서히 중국 전역의 사범들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으면서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창명연구원 교육 프로젝트를 수료한 중국인 사범만 해도 약 3000여 명 이상이며, 이들이 중국 전역에 약 500여 개가 넘는 도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들이 오픈한 도장이 창명연구원 회원 도장이 되면서 마침내 중국 전역에 태권도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또한 김 원장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무료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이런 그의 열정에 보답하고자 중국의 제자들은 지난달 28일 중국 청도 창명연구원 훈련기지에 김 원장의 동상을 세웠다.
“깜짝 놀랐죠, 고맙기도 하고요. 한국인으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끝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태권도를 통해 늘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김 원장은 여든, 아흔이 넘어도 태권도를 계속 전파하겠다고 전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70이 넘어도 매일 태권도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있죠. 제가 살아있는 한 태권도 알리기는 계속될 겁니다.”
김기동 원장은?
김기동 원장은 경희대 상과를 졸업했고, 대만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해병학교 33기로, 1964년 해병소위로 임관했다. 군에서 1965~1968년 베트남 청룡부대에 파견돼 태권도 시범단 단장을 역임했다. 그 뒤 1968~1980년까지 대만에 가 태권도 사범 및 국가대표팀 감독·코치를 지냈다. 2007년 12월~2011년까지 재중 한인사범회 회장을 지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중국태권도협회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