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강둑에서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떠나보낼 팔월에 남은 마지막 한 주다. 주말 이틀 가운데 토요일은 선산 벌초를 다녀왔고 일요일은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면서 안식을 가졌다. 월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이대로로 진출한 버스가 명곡동을 지난 소답동에서 창원역을 출발해 온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거쳤다. 주남삼거리를 지날 즈음 아파트 밀집 지역 진영 신도시 방향에서 뜨는 해가 드러났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지나니 아까 보이던 아침 해는 멀리 바라보인 아파트를 역광으로 비춰 실루엣으로 된 건물 외벽만 드러났다. 주남지 바깥 들녘도 늦여름의 아침 햇살이 내리비쳐 이삭이 패는 벼들의 성숙을 부추기었다.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지나면서 승객은 거의 내려 가술을 거친 북모산에서 베트남 여성이 내렸다. 제1 수산교를 앞두고 시골 학교 환경미화원을 마지막 승객으로 남겨두고 나는 요양원 근처에서 내렸다. 김해 생림으로 뚫는 국가지원 60번 지방도에서 강둑으로 나갔다. 강 건너는 밀양 하남읍 소재지 수산의 높은 아파트가 보였다. 종남산과 이어진 덕대산에는 옅은 안개가 둘러쳤다.
아침 산책 동선은 강둑을 얼마간 걸어 모산리 들녘으로 향하려고 마음을 정했다. 파크골프장으로 가는 수산대교로 나아가니 강둑에는 늦여름 새로운 식생이 펼쳐졌다. 강둑은 하지 무렵 인부들이 무성하던 풀을 잘랐더랬다. 그 이후 물억새와 갈대보다 성하게 자라는 우점종은 덩굴성 식물이었다. 올여름 내가 두 차례 보드라운 이파리를 나물용으로 뜯은 돌동부가 무성하게 자랐다.
돌동부는 넝쿨이 계속 뻗어나가면서 보라색 꽃을 피웠다. 돌동부는 가으내 꽃이 피고 지길 거듭하면서 열매가 익으면 꼬투리는 까매졌다. 돌동부와 함께 외래종 귀화식물 나팔꽃도 세력을 떨쳐 엷은 보라색 꽃을 피웠다. 나팔꽃은 해가 뜨는 아침에 꽃을 피워 한낮이면 꽃잎을 오므리는 특성을 보였다. 나팔꽃과 함께 야생에 적응해 토종처럼 자란 둥근잎유홍초도 주황색 꽃을 피웠다.
강둑은 자전거길이 뚫려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더러 지나기는 해도 도보 산책을 나선 이는 보기 드물었다. 나는 틈이 날 때면 모산리뿐만 아니라 본포에서 유등에 이르는 길고 긴 둑길을 자주 걷는다. 지난 금요일도 유등에서 술뫼로 가는 둑길을 걸어 농막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기를 만나 안부를 나누고 풋고추를 몇 줌 따 온 바 있다. 그날보다는 선선한 느낌이 든 아침이었다.
늦여름 강둑에서 피어나는 들꽃을 완상하는 묘미는 그곳으로 산책을 나선 이에게만 주어진 기회였다. 강둑에서 마을로 드는 신설 도로 굴다리를 지나다 낯이 익은 분을 뵈어 인사를 나누었다. 강변을 산책하는 이는 모산교회 목사였는데 가술에서 아동안전지킴이로 같이 활동하는 동료였다. 나이가 여든이 가까운데 시내에서 시골로 옮겨와 현역으로 목회 활동을 계속하는 분이었다.
목사와는 잠시 뒤 아침나절 다시 뵙기로 하고 나는 나대로 들녘 산책을 위해 차도 곁으로 난 농로를 따라 걸었다. 길섶에는 간밤 달빛과 별빛 아래 화사한 꽃잎을 펼쳐 새벽을 맞았을 달맞이꽃이 지천이었다. 달맞이꽃의 열병을 받으면서 자동찻길을 건너 비닐하우스단지 들녘으로 향했다. 비닐하우스에는 계절과 구분 없이 연중 따는 풋고추에 이어 머스크멜론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이삭이 팬 벼들이 자라는 들녘에서 죽동천을 건너니 가술이었다. 북가술 동구 밖 정자에 올라 땀을 식히며 쉬다가 파출소로 이동해 안전지킴이 동료들을 만나 부여된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자투리 시간은 마을 도서관으로 가서 김명희가 쓴 문학 기행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를 펼쳤다. 때가 되어 잠시 도서관을 나와 점심을 때우고 다시 열람실로 가서 날이 저물도록 지내다 나왔다. 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