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속담에는 “짧고 굵게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악하고 게으른 삶을 연장시키는 것보다는 비록 짧을지언정 선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자는 그리스도인의 표어와도 일치합니다. 어떤 목사 한 분이 불치의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아무 일도 안하고 요양할 경우 최소한 5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목회 일을 할 경우 살 수 있는 기간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어떻게 하기로 했을까요? ‘5년 동안 빈둥대며, 그것도 앓는 몸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단 1년을살더라도 하나님의 일에 온 정열을 쏟으며 살 것이다.’ 이것이 그분의 결심이었습니다.
삶은 그 길이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행동하며 사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로서 세상 사람들보다 몇십 배 더 노력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어떤 시험에도, 어떤 유혹에도,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열심히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갑시다. 비록 삶의 시간은 짧더라도.
단 1년을살더라도, 아니 단 하루를 살더라도 진정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당신은 오늘 어떤 노력을 하겠는가?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인생의 졸업을 준비합시다. 본문 : 막13:17,18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 가운데 겨울은 유독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계절입니다. 졸업 역시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어깨를 짖누르는 중압감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인생의 졸업이란 계절로 따지면 겨울과도 흡사합니다. 졸업은 새로운 환경에 대비해서 반드시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겨울 역시 무언가를 준비해야지만 지낼 수 있는 계절이기에 사람들의 마음도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바빠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외롭고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계절인 겨울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우리 인생의 졸업을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옛사람의 옷을 벗어 버립시다(골2:9)
성도가 인생의 졸업이 오기 전에 벗어야 할 옷은 옛사람의 옷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옛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요? 성경은 '구습을 좇아 망령된 행실을 일삼는 자'라 이컫습니다. 풀이하자면 죄의 법을 좇아 악행과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로움을 입지 못한 불신 인생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끊임없는 성도로 하여금 옛날로 되돌아 가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기만합니다. 옛날의 습관을 다시 행하도록 미혹하며 버렸던 악행을 재범토록 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영도하에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괴롭힌 것이 바로 옛날의 향수였습니다. 그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항시 애굽을 그리워 하면서 지난 날을 회상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 36년의 길고 긴 압제에서 해방되어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각오로 온국민이 뭉쳐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친일파들은 '그때가 좋았어. 역시 일본 사람 밑에 있을 때가 더 나았어'하며 옛날을 그리워 했다고 합니다. 죄악된 옛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은 분명코 죄입니다. 끊었던 구습을 되풀이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명백한 불의입니다. 성도는 옛사람의 옷을 과감히 벗어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생명의 옷으로 새롭게 된 자입니다. 인생의 졸업이 닥치기 전에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의 옷을 입고서는 겨울을 날수가 없습니다. 죄악으로 남루한 옷, 범죄로 인해 찢어진 옷으로는 겨울을 지낼 수가 없습니다. 과감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의 더럽고 남루한 옷을 벗을 때 우리는 이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됩니다. 옛 사람의 옷을 입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읍시다.
2. 사랑의 옷으로 갈아 입읍시다(눅6:35)
기독교를 가리켜 흔히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를 멸망치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신 분이십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시키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 중 최고 지고 지선의 가치는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중 가장 오래까지 장수한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불림 받으며 '성도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를 눈감을 때까지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기독교의 본질이자 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중시되고 강조되는 사랑이 오늘날 세상은 물론 교회에서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세태입니다. 말세의 현상을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사랑이 식어질 때가 곧 말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이제는 교회내까지 침투하여 그야말로 사랑없는 냉랭한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세상을 비난해 더 무엇하겠습니까? 겨울은 온기가 있어야 합니다. 따뜻한 불기운이 있어야만 지낼 수 있는 계절입니다. 이 온기가 사랑입니다. 냉랭함과 차가움, 썰렁함을 녹이는 것이 크리스챤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인생의 졸업이 닥치기 전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옷을 입읍시다. 이 옷을 입지 않고는 내 자신이 살 수가 없고 내 이웃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옷으로 무장하면 겨울은 더 이상 춥고 고통스런 계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따스한 온기를 넉넉한 마음이 되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부요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은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몸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한 우리들을 향해드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몸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한 우리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사랑은 주님의 권면이자 명령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인생의 졸업이 닥치기 전에 이러한 사랑의 옷을 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명의 옷으로 갈아 입읍시다(마28:19,20)
겨울은 동물들은 동면을 하고 농부는 내년을 기약하며 쉬는 계절입니다. 안식의 계절이요 휴식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졸업은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베짱이와 개미의 유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여름내내 무위도식한 베짱이에게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개미에게 어쩔 수 없이 구걸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베짱이가 깨달은 진리는 겨울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젊음 그대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비해 올해 노쇠해 지며 어제 비해 오늘 연약해 가는 것이 우리의 육체요 우리의 시간입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겨울, 졸업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신앙의 겨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의 때, 종말의 때가 바로 졸업을 말합니다. 그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자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다른 말로 하면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면 사명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시에 사명을 부여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은 성도 각자의 믿음의 분량, 개성, 능력, 습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본연의 임무는 단 하나 복음 전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막16:15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마지막 부탁의 말씀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28:19,20). 즉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복음전파의 책무를 진 사명자라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 앞에서 제외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소명에서 벗어날 자도 없습니다. 나는 몸이 약해서 배운 것이 없으니까, 믿음이 없어서 등 이런 변명은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명하셔서 우리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지게 되었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께 말끝마다 감사를 연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는 어린이는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합니다. 직장에서도 높은 사람의 심부름을 하게 된 평사원은 어깨가 우쭐해지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 가운데 특별히 나를 뽑아 심부름 시키신 선생님이 고맙게 느껴지는데 미천하고 부족한 나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세상에 그토록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나를 발견하시어 부르셔서 복음의 심부름꾼으로 세우신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사명자로 삼으셨습니다. 이 어찌 기쁘고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이러한 사명자임을 명심합시다. 우리의 인생 졸업이 다가오기 전에 이 사명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겨울을 온전히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의 졸업일이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사랑의 옷으로 갈아 입읍시다. 그리고 사명의 옷을 준비합시다. 우리의 풍성하신 복된 내일의 삶을 위해 이처럼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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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복된 삶의 여정이 되게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