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보문학카페>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내가 '징그러운 달팽이'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 ....사이버 공간인 문학카페에도 들렀다.
문학지에 오르는 원고상태의 글 가운데에는 때로는 조금은 어색하고, 틀린 낱말이 있게 마련이다.
책에 내는 글은 보다 정확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 임의로 댓글을 달았으나 그간 오고 갔던 댓글들이 어느 순간에 깡그리 모두 사라졌다.'
요지이다. 글 쓸 때에는 오탈자가 없도록 글 다듬고, 또한 독자들도 댓글을 달아주어서 원문을 수정했으면 하는 기대와 희망을 올렸다. 또한 오고 간 댓글은 소중한 글감이기에 다른 사람(카페 운영자 등)이 임의로, 무단으로 삭제해서는 안 된다는 뚯이다.
이에 대해서 독자께서 댓글을 달으셨다.
나한테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기에 나는 아래처럼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 올린다.
김창호 님의 댓글 :
참으로 훌륭한 견해입니다.
동학 아시죠?
저의 고조부님께서는 우리의 가치가 소중하면 그 보다는 문흥대왕할아버지처럼 이곡리 소의천 마을에 사셨던 광암 이벽선생님처럼
그 분의 뜻을 빛내려 했던 사암 정약용 선생님처럼 의로운 사람들 외롭게 하지 않는
덕필유린 전선적덕과 제천지윤 하관지후 홍익인간 재세이화 이민위천 위자안지 교육입국 인보상조 민귀군경 경천순민의 자세로 빛내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시인과 예술가는 위와 같은 자세로 끊임없이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하는 글을 쓰고 표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운형 선생님의 광동학교
김동삼 선생님의 광동학교
강우규 선생님의 광동학교 등은 이러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설립된 학교들입니다.
민우는 민중 속에서 민중의 벗으로 이를 실천하면요
감사합니다.
광동 민우 김창호 올림
나한테는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하기에 아래처럼 댓글로 회신했다.
동학?
조금은 이해하지요.
1860년 경주최씨 최제우(수운)이 동학을 세워 제1대 교주가 되었고,
제2대는 경주최씨 해월이 되었지요.
두 분 모두 처형되었지요.
1894년 전북 고부군을 시작하여 동학란이 일어났고,
제3대는 손병희 선생 ....
* 삼일운동 33인 가운에 한 분인 손병희 선생의 모친은 경주최씨
손병희 선생의 아명은 '응구'
한국국보문학 2019년 11월호(통권 12호)에 손병희 선생의 일대기가 제재되었지요.
위 댓글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이 나오는군요.
강우규 선생님도요.
젊은날 정치학을 공부했기에 저는 한국정치사를 아직껏 조금은 기억하고 있지요.
여운형 선생은 아쉽게도 해방 후 1947년에 암살당했지요.
강우규 선생은 일제에 항거하여 사이토 총독에게 폭판을 던졌으나... 처형당했지요.
묘소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저는 국립서울현충원의 이모저모를 어느 정도껏 알고 있지요
위 다산 정약용 선생 ...
실학파 대가..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요.
덕분에 지난했던 구한말, 일제시대, 해방 직후의 혼란기의 사회상도 잠깐 더듬어 봅니다.
참고자료 :
손병희 선생
"한국 국보문학(통권 125호 2019년 1월호) " 전경애 소설가의 '응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중편소설.
동학 제3대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서기 1861 ~ 1922년)에 관한 일대기가 있다.
* 손병희 선생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의 대표
* 손응구(손병희로 개명)의 모친은 경주최씨.
짚신장수 응구가 훗날 손병희 선생(1861 ~1922년)이며, 동학에 가입하며...
1919년 3·1 기미운동에 참여한 33인의 핵심인물.
어린 시절 이름은 손응구(서자 출신)
김동삼( 1878. 6. 23 ~ 1937. 4. 13.) 선생의 치적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 .... 1911년 남만주 류허군 이시영과 이동녕, 이상룡, 윤기섭 등과 함께 경학사·신흥 수련원을 조직하여 한민족의 민생과 교육, 군무원을 도모하였다.
1912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지교·상교 등을 지냈다.
1913년 여준, 이상룡 등과 함께 조선족 자치단체인 부민단이 류허현 정글에 백지 농장을 열고 장주가 되었다.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 여준, 유동열, 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무오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인회가 확대되어 조선족 회를 결성하고 사무총장에 취임하였으며, 군정을 남만주 독립운동의 본부로 조직하였다. ...
1931년 10월 이원일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한국으로 송환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마포 경성 형무소에서 복역했고 1937년에 사망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다.'
정약용 선생(1762~1836)은 한국인 최초 유네스코 세계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유적지는 경기도 남양주 마재마을에 소재(정약용 실학박물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구한말의 시대상, 일제시대의 독립투쟁사를 살필 수 있다.
//////////////////////////
추가
인터넷으로 '광동 민우 김창호' 님을 검색하니 아래 자료가 뜬다.
굉장한 분이시다.
<한국국보문학카페>에서도 자료가 뜬다.
군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밴쳐비지니스 연구과정 수료
포천문인협회 사무국장 및 이사 역임, 마홀문학회 회장 역임
현 다보스포럼 그 이상을 지향하는 진접이야기 공동대표
현 백제문학 소설분과장, 광릉21포럼 대표
저서 2인시집 “너랑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내겐 천국이었어” 학영사
소설집 " 광릉숲 "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