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SOC 예타' 면제, '이명박 4대강'과 뭐가 다른가
정부가 24조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기로 했다. 정부는 29일 향후 5년간 175조원을 투입하는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방침을 확정했다. 예타는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우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사전에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다. 정부는 예타 면제의 이유로 국가균형발전을 꼽았다. 지방의 낙후지역은 인프라투자가 절실하지만 인구가 부족하고 사업타당성이 떨어져 예타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생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명분과 실리를 다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이번 조치는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지 않겠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는 일본의 '사회간접자본(SOC)을 통한 부양책'을 실패로 단정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을 잊으면 안된다. 2018년에는 SOC 예산을 2017년(22조원)보다 14% 감액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방발전을 내세워 이런 원칙을 무너뜨리겠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정부 발표를 보면 지방공항 등 과거 예타를 통과하지 못해 유보됐던 사업들이 대거 선정된 데다 지역마다 1~2씩 분포돼 있어 선심성 사업, 나눠먹기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을 전형적인 삽질경제'로 비판한 게 현 정부다.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가 이명박 정부의 토건사업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타 면제 대상에 연구·개발 사업을 포함시켰으며, 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환경·의료·교통시설 등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 위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예타 면제 대상의 82.6%에 해당하는 16개 사업(사업비 20조원)이 도로·철도·공항 등 토목사업에 집중돼 있다. 프로젝트의 중심이 SOC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지역경제를 살리고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해보겠다는 정부의 뜻을 모르지 않는다. 지난해 건설투자가 마이너스 4%를 기록한 것이 연간성장률을 끌어내린 주범이며, 올해도 건설경기 부진이 경제성장률을 떨어드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SOC 투자가 단기간에 성장과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타를 통과하지도 애물단지가 된 사업들이 부지기수란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하물며 예타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런 사업을 추진하면 머지않나 국민의 손해로 돌아온다.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이루겠다면 단기부양에 몰두할 일이 아니다. 숙고를 통해 지속 가능한 장기대책을 마련해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출처:서울신문 '세금 먹는 하마' 예타 면제 누가 책임질 건가
[서울신문] 정부가 어제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한 전국 23개 사업을 공개했다. 총사업비만 24조 1000억원이다. 주요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예타 면제를 약속했던 남부내륙철도(4조 7000억원)와 평택~오송 고속철도 복복선화(3조 1000억원), 울산외국순환도로(1조원) 등이다. 도로·철도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에만 전체 사업비의 80%가 넘는 20조 5000억원을 투입한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다수 포함했다"지만, 고작 3조 6000억원에 그쳤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추진한 전체 예타 면제 사업은 55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50조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까지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선다. 경실련은 "문 대통령과 홍남기 부총리 등을 권한 남용으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예타 면제에 대해 여러 차례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불도저식 추진을 감행하는 현 정부는 예타 면제로 4대강 사업을 벌인 이명박 정부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SOC 사업은 경제활성화의 즉효약이다. 고용 창출 능력도 비교적 높다. 하지만 부실한 사업은 중장기적으로 듣보다 실이 훨씬 크다.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은 매년 유지관리비만 5000억원이 소요된다. 경인운하 역시 개통 이후 예상 물동량이 8.7%에 그쳐 연간 100억원대의 운영비를 혈세로 부담하고 있다. 예타를 면재해 2010년 문을 연 전남 영암 FI 경기장의 악몽도 떠오른다. 또 예타 면제 사업 중 다수가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대규모 재정지원이나 높은 요금 등의 문제를 차후에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예타 면제 사업 중 상당수가 기존 예타에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기존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은 국가균형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예타 면제 사업이 향후 수년은 성장률을 높이겠지만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앞으로 예타 면제 사업을 최소화하고, 과도한 SOC 투자보다는 일자리와 저소득층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경기 부양에 전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향후 한국 개발연구원(KDI)의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과정이나 국회에서의 여야 논의 과정 사업성이 불투명한 예타 면제 사업의 규모가 재조정돼야 한다. 계획 과정에서도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대형 SOC 건설의 전레를 밟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묻지마식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