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눈물겨운 축구단의 역사
자 시작해봅시다
전북에는 전라스포츠 클럽이 전북에 프로축구단 창단을 목표로 ‘완산진도개’라는 팀명으로 창단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가칭 ‘완산푸마프로축구단은’선수 수급과 재정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던 중 공개테스트를 통해 18명의 정예선수를 선발하고, 스포츠용품메이커인 푸마로부터 연 14억원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팀을 창단합니다.
원래 ‘완산푸마 프로축구단’은 기존 프로축구단의 선수 2명씩을 충당받아 리그에 참여하려 했으나 기존구단의 반대로 못하고, 연간 운영비의 18억중 4억은 광고비 등으로 충당할 계획이었죠
그리고 나서 대한축구협회에서는 1992년 7월에 창단승인이 됩니다.
[완산푸마 출범 기사 경향신문 1992. 1. 16.]
드디어 1993년 1월에 프로축구 제 7구단 완산푸마가 호남을 연고로 7번째 구단으로 창단공식 출범합니다.
당시 포항제철, 일화천마,현대호랑이, LG치타스, 대우로얄즈, 유공코끼리 다음 제 7구단으로 완산푸마가 공식출범합니다.
당시 완산푸마의 신인드래프트 1순위 선수는 황선홍 선수이고, 포철에서 이흥실, 이기근과 38명의 선수와 정규풍 감독을 선임하고 리그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 프로위원회에 제대로 계약문제 즉 연봉문제 등으로 선수등록을 하지 못하면서 못하면서 하지만 93년도에 ‘완산푸마 프로축구단’은 해체 위기를 맞습니다.
하지만 재정문제 등으로 프로리그 참여를 하지 못하고 프로구단이지만 아마추어 신분으로 아마추어 경기에 나서게 됩니다.
[완산푸마 실업연맹 출전 기사 한겨례신문 1993. 5. 5.]
선수들은 괜찮으니 나름 실력이 좋았겠죠
그렇게 아마추어리그를 운영하면서 프로로 들어왔으나 프로에 뛰지 못하니 선수들이 점점 이탈하게 되었고, 재정적 지원이 더이상 안되자 팀을 운영할 수 없을 정도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우엑스터라는 컴퓨터 생산업체에서 팀을 인수하고 3년간 안정적으로 프로축구에 참여를 하도록 하며, 리그 운영중 재정상태, 경기력, 선수확보에 문제가 있을 경우 구단승인을 취소한다는 전제하여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제우엑스터가 1994년에 프로축구리그에 참가할 수 있도록 승인을 합니다.
[제우정보 컴퓨터 선전에 나온 프로축구단 창단 ]
하지만 제우엑스터는 1994년 리그개막전 구단의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리그참여를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우엑스터 구단에서 연간 12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그 지원계약이 허위로 밝혀졌고, 제우엑스터의 대외홍보를 위해 언론을 이용한 것 뿐이었죠
그렇게 전북구단은 계속된 좌절을 맡게 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러나 구단주였던 보배주조 문수기 구단주가 1994년도에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프로리그에 전북 버팔로라는 구단으로 참여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북 버팔로 경기 사진을 정말 찾기 힘들었습니다.
다행이 몇장 찾았네요 보배 위에 버팔로라고 있죠]
하지만 문수기 구단주도 보배주조의 돈이 아닌 개인돈 4억을 지원하다보니 힘에 부치게 되었고, 1994년 9월에 ‘전북 버팔로’의 재정적지원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지원을 중단하게 됩니다.
리그의 정상운영을 위해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협회에서 위탁을 하고 1994년에 한해서 위탁관리하며 ‘전북 버팔로’ 구단을 인수할 경우 선수 드래프트 우선순위 약속과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하였지만 선뜻 인수할 기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북 버팔로‘선수들은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하루하루 경기에 임했습니다.
[전북버팔로의 성적 ]
첫 승점은 첫경기에 1994년 3월 20일 유공호랑이에게 2대0으로 패한뒤 지는 것이 더 익숙해졌고, 최초의 승점1점은 2004년 4월 6일 포항제철과의 경기 1:1에서 승점 1점을 챙겼습니다.
그로부터 1994년 5월 1일 대우로얄즈의 경기에서 김경래의 선취골과 이주영의 결승골로 2대 1로 이기게 되었습니다.
전북 버팔로의 성적은 그리고 3승 5무 22패 30득점 62골 실점, 10연패의 기록
배고픔을 참고 이겨낸 3승이기에 더욱더 값진성적이었죠
그리고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그들은 오갈데 없는 방랑자 신세였지만
누군가가 팀을 창단한다해도 모두가 다 같이 새로운 구단에 갈수 없었습니다.
그때 1994년 11월 25일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주)현양에서 전북버팔로를 인수하여 전북 다이노스로 재창단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때 정몽준 축구협회회장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주)현양에서 창단을 선언했지만 실질적으로 현대에서 주도를 했다고 보면 됩니다.
1995년에 전북다이노스로 뛸 맴버는 신인드래프트로 뽑힌 김도훈 등 대졸신인 13명, 실업리그 출신 2명, 전북버팔로 출신인 김경래 등 11명으로 총 25명의 선수로 구성되었습니다.
[김도훈의 전북 다이노스 때의 경기 ]
전북버팔로의 11명을 제외한 나머지 13명은 더 이상 프로축구에서는 볼수 없었죠
그렇게 탄생한 전북다이노스
1997년 현대에서 전북 다이노스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여 전북 현대 다이노스로 명칭을 변경 후
[전북 다이노스의 경기 ]
[전북 다이노스의 경기 ]
[우리나라 서포터의 시초 '퍼펙트 디노' ]
[전북 흑상어 박성배의 경기 ]
[전북 다이노스의 경기 ]
2000년 전북 현대 모터스로 팀명을 변경하면서
이때부터 현재의 명문구단으로서의 틀을 갖춥니다.
이부터 현재의 전북 모터스를 잇는 명문구단으로서 틀을 갖춥니다.
1999년 FA컵 준우승, 2000년 FA컵 우승, 2001년 슈퍼컵 준우승, 2002년 아시아위너스컵 준우승, 2003년 FA컵 우승, 2004년 슈퍼컵 우승, 2005년 FA컵 우승, 200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8년 정규리그 4위, 2009년 정규리그 1위, 2010년 정규리그 3위, 2011년 정규리그 1위
1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의 정규리그 우승, 3회의 FA컵 우승
명실상부한 명문구단이 되었습니다.
전남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라
창단과정에서 집(전용구장)도 갖쳐져 있고, 스폰서(광양제철)도 확실한 것과
구별되는 창단과정을 겪은 전북
전남은 양반집 도련님처럼 창단을 했지만 전북은 개천에서 용나듯이 정말 성공한 클럽입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클럽이
11월 5일 바로 한반도 대한민국의 전주성에 챔피언스리그가 열릴 예정이죠.
완산푸마선수단의 눈물과, 제우엑스터즈의 허풍과, 전북버팔로의 땀이 섞여 대한민국에서 우승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한번 결승전이 대한민국에 열리겠냐
전북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을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에게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요
11월 5일 멋진 경기 기다리겠습니다.
대구FC의 팬이 전북 현대 모터스를 바라보며
전북 화이팅
글이 좋으면 추천좀 해주세요
첫댓글 폰이라 추천기능이 없네요. 감동입니다. 참 어찌보면 미운오리새끼에 불과했던 클럽이 이제는 백조를 뛰어넘어 봉황이 되었네요.이번에 꼭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동국이 형님도 꼭 해트트릭 해주셔서 조감독 코좀 납작하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일단 추천했습니다. 과거 팀의 이력까지는 자세히 몰랐는데, 정말 맨땅에서 시작해서 현재 K-리그 최고의 팀으로 성장했네요. K-리그는 자주 챙겨보질 못하는데, 포항과 더불어 유이하게 자주 보게되는 팀입니다. K-리그 유치하고 재미없다는 분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경기를 하는 팀이기도 하구요.
1주일 후 전주성에서 알사드를 완벽하게 압도하는 모습 기대해봅니다.
전북 꼭 이겨라
꼭 이겼으면 좋겠네요.
다이노스 노상래 생각나게 하네요.. T T
태클은 아니지만 노상래는 전남 드래곤스 출신입니다^^;
박성배 생각나네요!!
화이팅!!!!!!
근데 지금은 전북에 비하면 전남은 팀에대한 투자규뫄 훨씬 부족하죠. 시민구단 뭐 그런 비슷한걸로 전환시키면서 모기업의 투자가 확 줄었으니....
전남 시민구단 아녜요 ㅋㅋ 포스코에서 운영하죠. 포항과 운영비 비슷하게 쓰는데. 성과가 안나오는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