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건너온 들녘을 지나
팔월 마지막 주중 수요일이다. 새날 아침을 맞아 어제 다녀왔던 동판저수지 둑길에 피는 코스모스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늦더위 기승 속에 가을을 예감한다 / 동판지 둑길 따라 심어둔 코스모스 / 이즈음 피어나는 꽃 수천수만 송이다 // 초여름 싹이 틀 때 바늘침 닮은 줄기 / 어느새 세를 불려 무성한 덤불 이뤄 / 꽃잎은 알록달록해 눈이 부실 정도다” ‘가을이 오는 둑길’ 전문.
밤중 기온이 서늘함을 느껴 창문을 닫고 잘 정도였다. 앞 시조는 사진과 함께 몇몇 지기에게 아침 안부 삼아 전했다. 새벽에 창밖을 내다보니 흐린 하늘로 출발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중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역을 출발해 근교 강가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으로 향했다.
그동안 지속된 열대야와 폭염경보는 우리나라 상공 기단의 영향 때문이다, 여름이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팽창해 우리나라로 뻗쳐 작열하는 태양 복사열로 지표가 뜨거워져 더위를 느껴왔다. 올여름 내내 북태평양 고기압의 지배를 받음과 동시에 티벳 고기압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덮쳐, 우리나라 상공은 두 고기압이 더블버거처럼 겹쳐 두꺼운 이불을 두 개나 덮은 상황이라 더웠다.
산책 코스를 주남저수지 둑길로 정해 가월마을을 지나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아침 기온에 어제보다 더 선선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일본은 오키나와 부근 해역에서 발생해 자국 열도로 종단이 예상되는 태풍 ‘산산’으로 바짝 긴장하는 듯하다. 그 태풍이 아직 규수로 접근하지 않음에도 우리나라 상공 견고한 두 고기압이 무너지는 중이라 맹위를 떨치던 더위 기세도 주춤해진 듯하다.
주남저수지 들머리에서 탐방로 둑길을 따라 걸었다. 날씨가 비가 올 듯 흐려서인지 새벽이면 산책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아무도 없었다. 벼농사를 짓는 들녘으로 농업용수를 내보내 저수지 수면은 수위가 낮아져 연꽃을 비롯한 각종 수생 식물로 가득 덮은 채 바닥이 드러났다. 연은 세력을 크게 떨쳐 자라 드넓은 저수지 수면을 압도해서 다른 습지식물보다 우점종이었다.
여름내 화사했던 연꽃은 아직 일부가 남은 채 가을을 맞는 중이었다. 넓은 연잎으로 덮인 수면에는 인근 숲에서 새끼를 친 중대백로들이 가족을 이뤄 나타나 아침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탐조 전망대를 지난 둑 아래 맨발 걷기 황톳길을 걷는 이들 몇 보였다. 그들은 둑길을 걷기보다 황톳길을 걸으려 날마다 이른 시각 어디선가 차를 몰아와 그곳을 맨발로 산책하고 돌아가는 듯했다.
주천강으로 흘러가는 배수문을 지난 낙조대에 앉아 명상에 잠겨 보냈다. 산책로에서 남긴 사진은 아까 아침 시조에 이어 지기들에게 힐링이 될 실시간 자연 풍경으로 보내주었다. 한동안 머문 쉼터에서 일어나 둑길을 내려 들녘을 걸었다. 벼 논으로 물을 보내는 수초가 자라는 수로엔 밤을 새웠을지도 모를 태공 셋이, 낚시용 의자를 펼쳐 앉아 세상사를 잊으려는 듯 찌를 바라봤다.
벼들은 이삭이 패어 고물이 채워지는 중이었다. 들녘 들길을 걸어 신등에서 용산을 가는 찻길에서 신동마을로 들었다. 재가 노인을 주간에 돌보는 요양원을 지난 텃밭에는 부추가 하얀 꽃을 피웠다. 고물이 찬 대추는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가지가 휘어지고 석류 송이는 볼이 발개져 갔다. 감나무에 고물이 채워지는 송이는 뜨거웠을 햇볕에 표피가 화상을 입은 듯 검붉게 타 보였다.
촛불 맨드라미가 고샅을 지킨 골목을 벗어나 들길을 더 걸어 장등마을에서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지났다. 파출소로 나가 안전지킴이 동료를 만나 아침나절 부여된 과제를 수행하고 자투리 시간은 도서관에서 보냈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이가 쓴 시 평설을 읽으면서 우리 사는 세상이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점심 식후 경화 오일장터를 순례하고 생선을 샀다. 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