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 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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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5년 이탈리아 시인 단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출생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 서유럽 문학의 거장. 인간의 속세와 운명을 그리스도교적 시각으로 그려낸 <신곡>으로 널리 알려졌다.
작품은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작품 속에서 당대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또한 시어로 이탈리아어를 선택해 문학발달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단테는 시 외에도 수사론·도덕·철학·정치사상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저술들을 집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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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년 - 백년 전쟁: 프랑스 성녀 잔다르크(성녀 요안나 아르켄시스, Jeanne d'Arc) 가 프랑스 루앙에서 19살의 나이로 잉글랜드 왕국의 종교재판에 따라 화형을 당하다.
잔 다르크(Jeanne d'Arc) 또는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는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 시대의 군인, 기사이다. 별칭은 오를레앙의 처녀[12](la Pucelle d’Orléans, The Maid of Orleans).
프랑스의 구국 영웅이자 가톨릭 성인, 그리고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명. 걸스카우트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성공회에서도 성인으로 여긴다. 평민 출신으로 잉글랜드 왕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 말기에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승전하여 전세를 유리하게 역전시켰다. 잔의 기적적인 활약으로 인해 결국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이기고, 잉글랜드를 대륙에서 축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잔 다르크 자신은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혔고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조국 프랑스로부터 버려져 구명도 받지 못했으며, 편파적인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되었다.
잔은 사후 프랑스 애국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종교적으로도 시복·시성되어 그 명예가 회복되었다. 비록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으나 죽어서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국 영웅이자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 위인이다. 잔 다르크의 인생은 너무나 극적이고 놀라운 것이어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살아있는 성녀의 모델이자 여성 영웅의 대표로 손꼽힌다.
17세의 평범한 무학의 문맹 시골 소녀가 갑자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며 프랑스 왕실에 나타나 반 년 넘게 지속되던 오를레앙 전역을 열흘 만에 승리로 이끌고, 영국 최고의 명장 '존 탈보트' 를 포로로 잡더니(파테 전투) 랭스를 함락시키고,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올려 백년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거짓말같은 일들이 절대 단순한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양측의 사료로 교차검증되는 사실(史實)이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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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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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년 서울-충주, 부산-창원 간 전선 개통 🌳08년 신채호, 『을지문덕』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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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3대 통감에 일본육군대장 사내정의 취임 🌳24년 노백린, 임시정부 참모총장에 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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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도에서 항일무장폭동 발생
1930년 5월 30일, 간도의 조선인 공산당원들 反日폭동 (5.30 폭동) 1930년 5월30일, 간도에 거주하는 조선인 공산당원들이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류사오치의 지휘 하에 5년 전의 상하이 총파업을 기념한 대대적인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폭동을 주도하고서도 중국 공산당의 이름을 빌린 것은 `한 나라에 공산당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방침 때문이었다. 간도에는 1926년에 결성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있었지만 코민테른의 결정에 따라 중국공산당에 흡수됐다.
전날 밤부터 시작된 폭동은 전신ㆍ전화선을 절단하고 철도ㆍ교량 등을 파괴했으며 일본 영사관과 경찰서를 습격하고 반일독립의 선전전단을 뿌리면서 곳곳에 불을 지르고 물건을 약탈했다. 일본은 함경도 회령 주둔 75연대를 급파해 만주군벌군과 합동으로 진압에 나서 85명을 검거했지만 폭동은 단속적으로 1년간 680여 차례나 계속되었고 천 명이 넘는 피검자를 남겼다. 세칭 `간도 5ㆍ30폭동`이었다. 일본은 두만강변에서 서울까지 그들을 죄다 압송해서 조사했으며 그들을 수용할 감옥을 짓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희생과는 별도로, 5.30 사건은 득보다 실이 많고, 용감하기보다는 무모했던 자학적인 사건이었다. 사망자는 160 여명이었는데 일본인은 별로 없다. 대개 조선인과 중국인들 뿐. 학교와 발전소까지 불을 지르고 폭탄을 던지는 바람에 중국 군벌들도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봉기자들을 잡아들여 일본에 넘겼고 무자비한 테러로 폭동에 맞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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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무소속 126, 국민당 22, 민국당 23,국민회 10, 한청 10))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무소속 126, 국민당 22, 민국당 23,국민회 10, 한청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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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이창훈, 제3회 아시아 경기대회 마라톤에서 우승
1958년 5월 30일..이창훈, 제3회 아시아 경기대회 마라톤에서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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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정치정화위원회, 정치활동 적격판정자 1336명 공고 🌳64년 서울대 문리대, 자유쟁취궐기대회 및 한·일 외교 반대 단식농성 🌳66년 간척 농지 분배 - 한국 최초, 전남 장흥군에서 한 세대에 3000평씩 908세대. 🌳68년 김종필 공화당 의장, 의원직과 의장직을 사직, 정계은퇴 선언 🌳72년 서울남부경찰서신설 (서울 16개서, 237개 파출소) 🌳72년 경찰서장 직급을 총경으로 통일 🌳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여의도에서 열림 🌳79년 신민당 전당대회, 총재에 김영삼 선출 🌳85년 신민당, 국회에 광주사태 진상조사위한 국정조사 결의안 제출 🌳85년 목장주 가족 납치강도-3억원요구 경기도 광주 지성사슴목장 🌳86년 이민우 신민당총재, 노태우 민정당대표와 회담. 국회내에 헌법특위를 구성키로 합의 🌳87년 상공부, 87년 수출입공고 발표(7월부터 170개 품목 수입자유화) 🌳87년 18개 여성단체, KBS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연합 결성 🌳88년 제13대 국회개원(의장 김재순, 부의장 노승환. 김재광의원) - 제141회 임시국회 🌳88년 사마란치 IOC위원장, 북한의 서울올림픽공동주최 주장은 올림픽헌장에 위배-밝혀 🌳88년 재무부, 전국 규모의 생명보험회사 신설 허가 기준 확정 발표 🌳89년 정부는 국제수지 흑자관리를 위해 허용키로했던 개인의 해외부동산 투자를 보류할 방침 🌳91년 리크루트, 91년 2월 대학(4년제) 졸업자 가운데 7만6500명이 취업, 사상 최고인 51.9% 기록 발표 🌳93년 남북한발해유적발굴조사단,러시아 연해주 발해 사원지에서 고구려 전통을 계승한 봉황등 발굴 성공 🌳93년 산업연구원, 석탄산업 합리화사업이 시작된 🌳89~92년 사이 탄광 251곳 이 폐광했다고 밝힘. 🌳94년 한ㆍ슬로베니아, 양국의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94년 국민.신정당 대표, 기자회견을 갖고 양당 통합을 선언 🌳95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통신장관회의, 정보 통신협력 강화 등 `서울선언문'을 채택하고 폐막 🌳95년 남북한.중국.러시아ㆍ몽골, 두만강 경제 특구 개발을 위한 3개 협정에 가서명 🌳95년 국방부, 제86우성호 북한경비정에 끌려갔다고 발표 🌳96년 이성환 과천시장 수뢰, 구속 🌳97년 한신공영 법정관리 신청 🌳97년 국내 첫 소비자파산 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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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제13대 서울대교구장과 제9대 평양교구장 서리에 정진석 주교를 임명. 출처:조선일보 아케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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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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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30일, 프랑스 콩코드, 마지막 운항
"시장이 원했던 것은 비행 속도가 아니라 많은 승객과 저렴한 항공료 등 경제적 효율성이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프랑스와 영국의 합작 개발품인 초고속 여객기 콩코드의 운항 중지가 발표된 2003년 4월 11일(현지시간) '아듀 콩코드'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콩코드 사업 실패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개발로 탄생했던 콩코드는 1969년 3월 2일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의 시험비행 성공을 시작으로 1969년 10월 1일에는 초음속비행에 성공했다. 또한,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2(시속 2천1백55km)를 기록하기도 했다. 1976년 1월 21일 비로소 상업운행을 개시함으로써 콩코드기는 민간 항공여행의 초음속 시대를 열었다.
25년간 가장 빠르고 안전한 여객기로 평가 받아온 콩코드기가 2000년 7월 25일 파리 북부지역에 추락, 1백13명의 목숨을 앗아가자 콩코드기의 안정성에 논란이 일었다. 그로부터 2년여 후 2003년 5월 30일, 그 화려했던 기록들을 뒤로 하고 파리~뉴욕간 운행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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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30일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 새 학교 UI(University Identityㆍ대학이미지) 선포
고려대(총장 어윤대)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새 학교 UI(University Identity)를 30일 선포했다. 발표된 새 UI는 고려대의 상징물인 호랑이 그림과 방패모양의 기본 틀은 기존 UI에서 그대로 따왔지만 학교 마크 윗부분에 있던 `자유ㆍ정의ㆍ진리' 대신 `KOREA UNIVERSITY'라는 학교의 영문 표기를 넣었다.
고려대 측은 "새 UI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글로벌 리더를 양성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자는 비전과 전통을 대내외에 알리는 글로벌 심벌"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는 이번 새 UI선포를 계기로 그동안 여러 종류로 분산됐던 학교 상징물을 통일하고 학위기, 학교홍보물과 인쇄물에 이를 사용키로 했다. 개교 100년을 맞이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하는 고려대학교의 세계적 국제적 비전을 담은 것으로 고려대학교의 Global, Together, 키워드를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