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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북경.
어둠이 깃들고 있는 북경의 거리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집권당인 국민당이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에게 패해 북경에서 철수를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온통 붉은 불꽃의 혀가 날름거렸고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유리 깨어지는 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중심가에 자리 잡은 이층 목조건물이 불길에 휩싸이며 무너져 시뻘건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목조건물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옮겨 붙은 불길이 다시 옆집으로 번지고 그리고 그 옆으로 계속 불길은 멈출 줄 모르고 번지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누구도 거리를 나오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요란한 기관총 소리와 기와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말발굽 소리가 북경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각기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손에는 총과 대나무 창, 그리고 보기에도 섬뜩한 칼과 도끼를 들고 무리지어 북경 시내를 활보하며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공산당 만세! 중화인민 공화국 만세! 모택동 만세!”
동시에 뒤에서 유리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들리자 무리들이 악귀처럼 외치며 우르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내달려갔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는 등골이 오싹하게 했고 곧이어 무차별로 난사하는 총소리가 콩 볶듯 들려왔다. 벌거벗은 여인이 온몸을 가리지도 않은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 뒤에는 붉은 완장을 찬 남자가 손에는 벌긋케 피로 물들어 있는 죽창을 들고 있었다.
“악! 사, 살려줘요! 누가 날 좀 살려줘요!”
여인이 비명을 지르고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여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으악!”
여인의 공포에 질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구하려 나타나지 않았다.
“흐흐흐! 어딜 도망쳐? 여긴 이제부터 우리 공산당 세상이야! 네년처럼 부패관리 밑바닥 청소 하던 년들 세상은 끝났단 말이야!”
남자의 손이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죽창이 그대로 아래에서 헐떡이고 있는 여인의 배를 관통했다.
“악!”
여인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피가 튀고 갈라진 배로 내장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봉긋 솟아오는 가슴이 피로 물들어 묘하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남자가 누른 이를 드러내며 키득거렸다.
“흐흐흐! 지금은 공산당 세상이야! 좋은 말할 때 치마를 들어 올려야지! 왜 스스로 뒤지려고 악을 쓰는 거야?”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죽창에 붙은 붉은 피를 여자의 몸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북경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북경 거리는 온통 붉은 기가 사방에서 흩날렸고 각기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펄럭이고 있었다. 플래카드에는 공산당 만세란 글귀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모퉁이를 돌아 서자 붉은 벽돌의 담벼락이 나타났다. 붉은 벽돌의 길게 늘어선 담벼락 사이로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잔뜩 긴장한 체 총을 앞세우고 도로를 막은 바리케이드 뒤에 총을 겨누며 엎드려 있었다. 벽돌담 뒤쪽에 중국 황실의 상징인 자금성이 보였다. 자금성 둘레에는 아직 철수를 하지 않은 국민당 소속의 군인들이 경계망을 펼치며 분주히 오가고 있었고 군인들 사이로 군용 트럭들이 줄지어 상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트럭에 실린 상자는 곧장 자금성 뒤편의 기관차가 서있는 철로로 향했다. 철로에는 이미 기관차 세 대가 각기 여섯 칸의 짐칸을 매달고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상자들은 인부들에 의해 화물칸에 옮겨져 실렸고 화물칸 주변은 온통 무장한 국민당 군인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었다. 군인들은 기관차 주변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이는 물체가 있으면 앞뒤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 총을 난사했다. 개 한 마리가 화물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집중적으로 총을 맞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지기도 했다.
긴긴 밤이 지나고 어느 듯 동편에서 부여케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잔뜩 흐렸던 하늘은 조금씩 비를 내리기 시작했고 자욱한 안개 속에 거리는 여전히 비명소리와 불에 타는 그슬림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러나 트럭들은 멈추지 않고 자금성에서 나온 상자를 계속 기관차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삼엄한 군인들의 감시 속에 완전히 날이 밝아졌어도 기관차 주변의 긴박한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정오가 되었을 때서야 화물을 실어 나르던 트럭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곧이어 기관차 화물칸의 문이 닫히고 문 앞에는 무거운 자물쇠가 채워졌다. 기관차 주변에 호위하던 군인들이 일제히 화물칸 지붕위로 기어 올라갔다. 화물칸 지붕 위에는 어느새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이제 굵은 빗줄기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인부들과 군인들 모두 비에 흠뻑 젖어 이미 입고 있는 옷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젖어 있었다. 군인들은 기관차 위에도 비를 피할 곳은 없었다. 모두들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각기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였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검은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 군인들이 모두 기관차에 오르자 장성 한명이 승용차가 세워진 곳으로 뛰어갔다. 승용차의 유리문이 아래로 내려갔다. 비가 승용차 안으로 뿌려지었지만 열린 유리는 닫히지 않았다. 장성 한 명이 숨이 차게 뛰어와 승용차 안을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각하! 끝났습니다! 각하!”
승용차 안에서 듣고 있던 국민당 총재 장개석이 보고를 듣고는 차에서 내렸다. 장성이 기관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각하! 모두 실었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곧장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개석이 긴장한 얼굴로 수증기를 내뿜으며 서있는 기관차를 보고는 잠시 시선이 기관차 위에 비를 맞으며 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장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성이 기관차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신호에 따라 세대의 기관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증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움직였고 군인들은 여전히 기관차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첫 번째 기관차는 북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남쪽을 향했다. 마지막 기관차는 동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장개석은 침통한 표정으로 사라져 가는 기관차를 망연자실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디 목적지에 잘 도착해라! 중국의 운명이 여기에 걸려 있다. 중국의 운명이!”
장새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제야 옆에서 지켜보던 부관이 장개석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총통각하!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북경을 빠져 나가야 합니다. 놈들이 벌써 코앞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부관의 재촉에 그제야 장개석이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고 그가 탄 승용차 앞뒤로 무장한 군인들의 차가 호위를 했다. 트럭에 가득찬 군인들이 승용차 옆으로 바싹 붙은 오토바이와 함께 승용차를 호위하며 북경 시내를 질주했다. 여기저기에는 여전히 불길이 멈추지 않고 타고 있었고 거리에는 쓰러진 사람들의 시신이 너부러져 있었다. 장개석이 침통하게 부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담배 있는가? 차마 멀쩡한 정신으론 보지 못하겠군!”
부관이 재빨리 장개석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길게 연기는 내뿜으며 장개석이 스스로 한탄을 했다.
“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북경이 오늘 마지막이 되는 것은 아닐까?”
부관이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다시 제기를 노리셔야 합니다! 우선 대만으로 피했다가 다시 제기하면 됩니다. 총통각하!”
“글쎄! 부디 그래야 하는데! 중국을 공산당 손에 넘길 수는 없는데 말이네!”
장개석이 결국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저 기관차들이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중국의 운명이 저들 손에 달렸는데!”
장개석의 눈동자는 아직도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기관차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승용차 유리를 뚫고 들어왔다. 부관이 밖을 향해 외쳤다.
“총격이다! 어서! 어서 총통각하를 모셔라! 놈들이 총격을 가하고 있다. 어서!”
부관의 외침에 호위를 하고 있던 군인들의 차가 일제히 승용차를 둘러쌌다. 승용차를 완전 빙 둘러 싸서 달려가며 군인들의 차들이 방탄벽처럼 승용차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일정한 속도로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뒤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호위를 하던 군인 두서너 명이 쓰러졌다. 군인들 역시 트럭 뒤에서 뒤를 향해 맞대응을 하며 무차별로 총을 난사해 댔다. 쫒고 쫒기는 혈투가 벌어졌다. 승용차 뒷좌석에 납작 엎드린 장개석이 여전히 입에서는 담배를 놓지 않고 있었다. 장개석이 엎드린 채 중얼거렸다.
“후후! 담배 한 대 피울 여유도 주지 않는군! 모택동이란 자가 말이야!”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북경은 이제 온통 붉은 기가 가득 펄럭이었다. 어디 한군데도 국민당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자욱한 연기 속에 북경은 그렇게 천천히 함몰되고 있었다. 공산당 깃발 아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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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38선 82구역.
숲이 우거진 한탄강 주변의 철로로 기관차 한 대가 들어섰다. 먼 길을 달려온 기관차는 연신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기관차는 분명 북경을 출발해 동쪽으로 향하던 그 기관차가 분명했다. 북경에서 출발한 기관차는 신의주을 거쳐 이제 막 한탄강이 보이는 철로 위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기관차가 멈춘 곳은 철원 가까이 한탄강이 보이는 인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기관차가 멈추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숲 속에 숨어 있던 여섯 대의 트럭들이 나타났다. 트럭 위에는 적지 않는 남자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그리고 멈춰선 기관차 옆으로 트럭들이 줄이어 화물칸의 문 옆으로 대었다. 기관차는 아직도 숨을 헐떡이며 연신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곧이어 무겁게 닫힌 화물칸 옆문의 자물쇠가 열리고 화물칸이 열리며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화물칸 속으로 들어가 상자를 꺼내 트럭의 짐칸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자 모두 여섯 대의 트럭 짐칸에 상자들이 가득 찼고 모든 상자들이 실리자 트럭은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들은 줄지어 울퉁불퉁한 산길을 따라 달렸다. 얼마 후 트럭들이 한탄강이 보이는 강둑 사이로 줄지어 들어섰다. 가득 실린 트럭위의 쉽게 뜯기지 않을 못질을 한 상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선두의 트럭이 멈춰선 곳은 한탄강 절벽 바로 아래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트럭들이 멈추자 곧이어 사람들에 의해 트럭 위의 상자들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내려진 상자는 둥글고 넓적한 바위 위에 옮겨졌고 상자는 곳 사람들에 의해 옮겨지기 시작했다. 바위 옆 움푹 들어간 공간으로 옮겨진 상자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상자 역시 바위 옆으로 옮겨졌고 이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상자는 계속 바위 옆으로 옮겨졌고 적지 않는 시간이 흐르자 한탄강 강변에 쌓여 있던 상자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상한 것은 옮기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닫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역시 굳게 입을 닫고 한마디의 말도 없이 묵묵히 상자만 옮기는 옆을 지키고 있던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마지막 상자가 사라지자 모두들에게 입을 열었다.
“다들 옮겼으면 모두 굴속으로 들어간다! 어서 발을 옮겨라! 이번 일은 주석님이 직접 지시 하신 일이다! 누구도 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상자를 옮겼던 사람들을 재촉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횃불도 켜지 않은 채 그대로 바위 틈새의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어둠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듯 상자를 실어 날랐던 트럭들도 사라졌다. 모두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마지막가지 지켜보고 있던 책임자가 동굴 속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마지막 정리만 하면 된다! 다들 동굴에서 마지막 정리를 끝내자! 어서!”
책임자의 재촉에 사람들이 서둘러 동굴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네 주변은 조용해졌다. 그렇게 밤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아왔다. 여전히 바위 주변은 조용했고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날이 다시 밝았다. 그리고 조용하던 바위틈으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사람들을 동굴로 들여보냈던 책임자였다. 책임자 혼자만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것이다. 그와 같이 동굴로 들어갔던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책임자는 얼굴에 방독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바위틈을 나오자 말자 그는 얼굴에 쓰고 있던 방복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그가 나온 동굴을 다시 쳐다보고는 유유히 혼자 그곳을 벗어났다. 한탄강 82구역은 다시 조용해졌다. 적막한 한탄강 강변에는 노루 두 마리가 나타나 물을 마시고 있었고 강물은 인적이라곤 보이지 않는 천연의 자태 그대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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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서울.
일요일의 한가한 서울 거리가 갑자기 분주해지며 사람들이 허둥대며 뛰어다녔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확성기 소리가 서울 시내를 메아리쳤다.
“휴전선이 뚫렸습니다! 지금 인민군들이 서울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속히 몸을 숨기십시오! 전쟁입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허둥댔다. 멀지 않는 곳에서 요란한 대포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하늘에서 비행기가 요란하게 창공을 날아갔다. 낮게 뜬 비행기에는 뚜렷하게 인민군 인공기가 그려져 있었다.
얼마 후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들이 서울로 밀려들었다. 탱크 앞세우고 뒤로는 엄청난 인민군들의 행렬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반항하는 자들에게 무차별로 닥치는 대로 총질을 해댔다. 비명소리와 탱크소리, 그리고 총소리가 서울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은 온통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여기저기에서 불에 타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피난가지 못한 서울시민들은 불안한 눈으로 숨어서 인민군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벌써 곳곳에서 인공기가 나부끼고 여기저기에서 공산당 만세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 했다. 사람들은 마치 시킨 것처럼 팔에 붉은 완장을 차고 무리지어 때로 몰려다니며 무차별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서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은 것이다.
한강다리는 끊어져 서울 시민들은 피난도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혔고 집집마다 인민군들이 들이닥쳐서 남자들은 모조리 끌고 갔고 여자들과 어린 아이와 늙은 노파들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끌고 나갔다. 온통 비명소리에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서울 전체에 들끓었다. 쫒기는 사람을 향해 인민군의 무차별 총격이 가해졌고 총에 맞은 사람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는 시뻘건 불길이 저승사자처럼 혀를 날름거렸고 이미 죽어서 부패돼 나부러져 있는 시신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서울이 점령된 후 곧 대전이 함락됐고 인민군들은 질풍노도와 같이 점점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국군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인민군에게 추풍낙엽처럼 허물어졌고 전열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낙동강 아래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인민군에 의해 점령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미군의 B29 폭격기가 나타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엄청난 화력을 지닌 B29 폭격기가 나타나 낙동강 강변을 점령하고 있었던 인민군 머리위로 무섭게 폭탄을 내리 붙기 시작한 것이다. 낙동강을 점령하고 있던 인민군들은 B29 폭격기의 엄청난 화력 앞에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졌다. 곧장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려던 인민군의 작전계획이 미군의 개입으로 인해 주춤거렸고 낙동강 전선을 경계로 양쪽은 밀고 밀리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전선에 파란 불이 켜진 것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였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해 서울을 되찾은 것이다. 졸지에 한반도 허리를 완전 점령한 연합군은 이미 아래까지 내려가 있던 인민군을 후퇴시키지 못하고 완전 고립시키고 말았다. 작전은 대성공이었고 전세는 갑자기 역전됐다. 인민군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을 다시 수복한 국군과 연합군은 그 기세를 그대로 몰아 북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 평양을 점령하였고 더욱 몰아 붙여 압록강까지 올라간 아군은 그야말로 이제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압록강 강물을 마시며 섣부른 통일을 자축하기도 했다. 누구도 통일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며 아군은 감회에 젖었고 이미 통일에 대비한 태극기를 꼽을 준비까지 마쳤던 것이다. 아군들은 서로 누가 먼저 백두산에 태극기를 꼽을 것인지를 두고 서로 경쟁까지 할 정도였다.
백두산을 눈앞에 둔 개마공원에서는 아군과 인민군이 양편으로 갈라져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전세기 기울어진 인민군들은 사기를 잃어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고 아군은 전력을 집중해서 인민군들을 밀어 붙이고 있었다. 더 이상 밀릴 곳이 없었던 인민군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점점 전력이 약화되어 죽은 시신들이 산을 이루었다. 백기를 던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처참하게 무너진 인민군 군대가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들의 마지막을 향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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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북경.
중국 공산당 주석궁에 며칠을 씻지도 못해 행색이 초라한 김일성과 당 비서인 이호영이 주석궁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초조한 기색의 김일성과 당 비서인 이호영이 연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시계를 쳐다보며 김일성이 투덜댔다.
“이런 제길! 이러다 정말 미군 놈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뺏기는 것 아니야? 내참 더러워서!”
김일성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담배를 빼물었다 하지만 이네 담배를 끄고는 다시 불을 붙이기를 반복했다. 이호영이 그런 김일성에게 말했다.
“주석동지! 참아야 합니다. 지금은 무조건 중국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알아! 그래서 참고 있는 거잖아.”
김일성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때 문이 열리며 그들 앞에 모택동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주연청 당 비서가 들어왔다. 김일성이 얼른 주연청에게 다가가 물었다.
“비서 동지! 어떻게 됐습니까? 주석 동지는 뭐라고 합니까?”
주연청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안 되겠소! 주석 동지는 미국과의 전쟁을 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자칫하면 미국이 우리 중국에 핵폭탄을 투하 할 수가 있다며 거절 하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럼 우방국인 우리 조선이 이대로 미국에게 점령당해도 좋다는 겁니까? 안됩니다! 내가 주석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주석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김일성이 결사적으로 주연청에게 매달렸다.
“어허! 안 된다니까! 주석께서는 아직 침상에 계신단 말이오!”
“침상이라니? 지금이 몇 신대 아직 침대에 계신다는 거요? 그러지 말고 한번만 만나게 해주시오! 부탁합니다!”
김일성이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안 된다니까!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소? 안 된다고 했지 않소!”
주연청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때 주석실의 비서가 주연청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주연청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김일성을 향해 말했다.
“주석동지께서 잠시 들어오라 하시오.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주석동지께서 거절하시면 더 이상 매달리는 것은 안 됩니다. 아셨습니까?”
주연청이 마지못해 하며 김일성을 데리고 주석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었다. 주연청이 집무실 바로 옆의 문을 열었다. 침실이었다. 침실에는 벌거벗은 모택동이 나체 위에 간편한 가운만 걸치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십도 채 안돼 보이는 여자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모택동의 불룩 튀어나온 배위에 얼굴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모택동의 거대한 성기를 가리지도 않고 조몰락대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 주석인 모택동이 거만한 자세로 입에는 담배를 빼물고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보고 있었다. 김일성이 다가가는데도 그는 일어서지도 않고 여자를 물리치지도 않은 채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김 주석! 이미 진 전쟁 아니오? 우리 중국군에게 이미 진 전쟁을 위해 아까운 목숨을 던지란 것이오?”
김일성이 아랑곳 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주, 주석 동지! 하지만 조선이 함락될 위기란 말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어허!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이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조선은 전쟁을 일으킬 때는 소련에게 아부를 해서 무기를 공급 받은 것 아니었소? 이제 전쟁에 지게 생기니까 우리 중국에게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소? 차라리 소련에게 가보지 그랬소?”
모택동이 관심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김일성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도저히 모택동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심한 듯 모택동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주석 동지! 정말 이러실 겁니까? 우리 조선이 망하게 된다면 중국 역시 좋을 것이 없을 탠데요?”
“허허허! 무슨 말이오? 그럼 우리더러 거대한 미국과 전쟁을 치르라는 것이오? 중국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미국과 전쟁을 해서야 되겠소? 안 그렇소?”
그러나 김일성은 여전히 뒤로 물러서지 않고 모택동에게 말했다.
“하면 49년도에 장개석이 숨겨둔 자금성의 황금을 찾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주석동지?”
뚱딴지같은 김일성의 말에 모택동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자금성의 황금이라니요? 그럼 조선이 그 황금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들리는데 내가 잘못 들은 겁니까?”
“맞습니다! 사라진 자금성 황금! 황금이 지금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모택동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조금 전과는 달리 허세다 싶을 정도로 거만하고 뻣뻣하게 입을 열었다.
“주석 동지께서 알다시피 국민당 장개석 총통과 저는 만주 군관학교 동문이 아닙니까? 또한 장개석 총통이 중국을 탈출하면서 숨겼던 자금성의 황금을 바로 저에게 맡겼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뭐,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택동이 소리쳤지만 하지만 모택동의 태도는 처음과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확연히 누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 더욱 거만하게 그와 단판을 지으려 했다.
“자금성의 황금을 실은 기관차가 조선으로 향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
“물론 장개석 총통이 조선에 황금을 숨겨 놓을 때는 중국이 공산당에게 완전 점령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지요. 언젠가는 다시 북경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당분간 황금을 조선에 숨겨두고 언젠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황금을 되찾을 심사였지요. 물론 저 역시 그것은 장 총통의 생각에 동의를 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저 역시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금과 조선을 맞바꾸자는 겁니다!”
모택동의 얼굴에 곤혹감이 흘렀다. 이미 진 전쟁이고 거기다가 중국이 전쟁에 관여하면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미국과의 전쟁이란 곧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자금성의 황금은 탐나는 것이었다. 그만한 황금이 미국으로 넘어간다면 그것 역시 중국으로선 엄청난 타격을 받는 것이었다. 우방이던 조선과 자금성의 황금이 고스란히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주석 동지! 군대를 파견해 주십시오!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 주시면 38선 82구역에 숨겨진 황금을 모두 중국에게 내드리겠습니다! 주석 동지!”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매달렸다. 모택동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그는 처음과는 달리 완강하지는 못했다. 이미 김일성은 그것을 간파하고 더욱 그에게 매달렸다. 모택동이 여자를 밀쳐냈다. 벌거벗은 알몸의 여자가 모택동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녀의 온몸은 여전히 흥분을 이기지 못해 요동쳤다. 눈동자가 뒤집혀 진 것으로 봐서는 아편을 한 것 같았다. 여자가 비서에 의해 밖으로 나가버리고 모택동과 김일성 단 둘만 남았다. 모택동이 김일성에게 물었다.
“황금이 38선 82구역에 있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곳에 황금이 있다는 증명을 해 보여줘야 하지 않겠소? 내가 증거도 없는데 무턱대고 당신 말을 믿으란 말이오?”
김일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모택동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요?”
“이것은 장개석 총통의 친서입니다. 조선에 황금을 맡기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서신!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뭣이!”
모택동이 부랴부랴 서신을 펼쳐봤다. 분명한 장개석 친필의 서신이었고 내용은 김일성이 말한 것과 동일했다. 결국 한반도에 자금성의 황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확실했던 것이다.
“음!”
모택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열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중국의 엄청난 재산을 중국이 아닌 조선에 맡겨 놓은 것이다. 장개석은 결국 바람 앞에 등불인 김일성과 조선을 도와준 격이 되었다.
“장개석! 중국의 황금을 조선에 숨기다니! 이런 억장이 무너질…….”
모택동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전쟁에 관여를 해야 했다. 그가 김일성에게 말했다.
“관동군이면 되겠소?”
“그, 그럼요! 관동군이면 조선을 되찾는데 충분합니다!”
“좋소! 하지만 38선 82구역을 되찾으면 우린 그곳에서 멈출 것이오. 그래도 괜찮소?”
“물론 입니다! 더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우린 38선만 되찾으면 됩니다!”
김일성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자금성의 황금이 조선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바람 앞에 등불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이 돌아가자 모택동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의 아들이 관동군 총 사령관으로 부임해 있었던 것이다.
“난데 당장 조선에 군대를 집어넣어야겠어! 지금 당장 말이야!”
관동군 사령관인 모택동의 아들 모진령이 크게 소리쳤다.
“주석 동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조선에 우리 관동군을 참여 시킨다는 겁니까? 안 됩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떻게 전쟁을 치르라는 겁니까?”
“준비가 뭔 필요 있어? 무조건 밀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지 무슨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야?”
“아버지!”
“잔말 말아! 우리에겐 놈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잖아! 인해전술! 머리수로 무조건 밀어 붙이란 말이야!”
모택동이 소리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도 무리라는 것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중국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곤 사람 머리 숫자뿐이니 어떻게 하겠어? 인해전술이라도 밀어 붙여야지!”
모택동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담배를 빼물었다. 싫던 좋든 중국이 조선의 전쟁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었다. 조선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관동군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어른 거렸다. 그 관동군 속에 자신의 아들 역시 죽음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82구역의 막대한 황금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의 벌거벗은 몸에 매달린 성기는 이미 풀이 죽어 축 쳐져 있었다.
*
1953년 한탄강 유역.
한탄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를 사이에 두고 중국군과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지가 매일 주인이 바뀌는 현상이 계속 되었고 이미 양쪽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었지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폭격으로 인해 고지 부근은 이미 나무들이 모두 뽑혀졌고 곳곳에 웅덩이가 파져 질퍽한 물이 고여 있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시신들이 사방에 늘려 있었고 피비린내와 시신 섞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중국 관동군 사령관인 모진령은 매일같이 임자가 바뀌는 고지의 점령에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술을 들이켰다.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낮과 밤이 다르듯이 고지의 임자도 낮과 밤이 달라지곤 했다. 밤이면 중국군이 탈환하고 다시 낮이면 미군 폭격기의 힘을 빌린 연합군이 탈환하기를 벌써 수십 차례나 했던 것이다.
“이런 제길! 저까짓 고지가 뭐라고 수천 명이 여기서 죽었는데도 계속 탈환하라는 거야? 썅!”
모진령이 성질을 내며 들고 있던 술잔을 내팽개쳤다. 모진령의 관동군이 조선 전쟁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부터 주석이자 그의 아버지인 모택동은 분명히 말하기를 한탄강 지역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양을 다시 잃어도 좋고 서울을 되찾지 않아도 좋으니 다만 어떤 일이 있어도 한탄강만큼은 뺏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만약 한탄강을 뺏지 못하면 이번 전쟁은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며 모진령을 압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군의 피해가 너무도 컸다. 고지 점령을 위해 투입된 중국군의 수가 벌써 삼만 명이 되었고 고지에서 죽은 아군이 오천 명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판문점에서는 휴전 협정이 진행되고 있어서 언제든지 전쟁이 끝날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중국 본토에서는 계속 고지탈환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모진령의 부관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각하! 본부에서 고지 탈환을 하라는 명령이 또 내려왔습니다! 작전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진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리야! 지금 상태로 아군을 다시 고지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야!”
“하지만 명령입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각하께서…….”
모진령이 신경질적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명령! 명령! 도대체 무슨 명령이 그 모양이야! 죽을 줄 알면서도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명령이란 말이야? 난 더 이상 그런 명령 받지 않겠어! 더 이상 내 부하들을 죽일 수가 없단 말이야!”
부관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각하! 계속 무전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고지 점령 결과를 보고하란 무전입니다!”
“뭐야! 감히 어떤 놈이 내게 명령을 하는 거야? 내게 명령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주석님 이외는 없어! 까짓 점령했다고 해버려! 매일같이 하루건너 한 번씩 주인이 바뀌는 고진데 오늘 한번 쯤 놈들에게 내준다고 천지가 개벽 하겠어? 우린 오늘 하루 전투에서 손을 때자고! 모두 오늘 하루 편히 쉬라고 해!”
모진령의 명령에 부관이 안심이 안 되는 표정이었지만 전쟁이 없다는 말에 안도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죽음과 연결되는 고지 점령이 하루 뒤로 미뤄진 것이다. 부관은 무전기에 대고 본부에 고지를 탈환했다는 무전을 날렸다. 그러자 무전기에서 계속 떠들어댔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지를 사수해야 한다! 고지사수가 최우선이다! 이상!”
하지만 부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고지 점령이 없다는 것을 부하들에게 전달한 뒤였다. 그리고 그날 드디어 목 메에게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휴전! 휴전이 된 것이다. 양쪽 모두에게 현제의 점령한 지점을 기점으로 앞뒤로 2km 전후로 생기는 것을 합의한 것이다.
휴전 소식을 들은 중국군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모진령은 달랐다. 하필이면 고지 탈환을 내일로 미룬 그날 휴전이 이뤄진 것이다. 고지는 이제 영영 그들 소유가 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주석인 아버지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목숨이 살아남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고지가 바로 그의 목숨이었던 것이다. 관동군이 조선 전쟁에 참여한 성과를 한탄강을 뺏는 것으로 마무리 하려 했던 모택동의 작전에 완전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수많은 관동군의 목숨만 앗아갔던 것이다. 고지를 잃으면서 말이다.
모택동의 분노는 대단했다. 고지 점령을 실패한 것이 전해지자 노발대발한 모택동이 아들인 모진령에게 죄를 물어 계급을 박탈하고 이등병으로 강등 시키고 말았다. 졸지에 이등병으로 강등 당한 모진령은 모택동에 의해 정치범 수용소인 관동 수용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수용소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목을 매달고 죽고 말은 것이다. 뒤늦게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모택동이 후회 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진령이 조선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것으로 모든 기록을 조작했다. 아들을 강등당해 자살한 것으로 기록을 남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조선의 전쟁에 참여 했지만 그들이 바라던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수많은 중국 인민군의 희생자만 내고 그렇게 휴전이 이뤄지고 말은 것이다. 82구역은 휴전선이라는 절대로 침입하지 못하는 불가침의 협정을 기본으로 그렇게 한탄강을 끼고서 잠들어 있었다. 영원히 침범하지 못하는 지옥의 입구처럼 말이다.
*
2015년 판문점.
따뜻한 봄 기온이 파릇하게 돋아나고 나무의 새싹들은 봄기운을 북돋고 있는 것처럼 판문점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북적이고 있었다. 북쪽의 식량원조 회담을 앞두고 양쪽 모두 회의장 주변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일 년 가까이 끌고 있는 식량원조 회담은 북쪽의 완고한 고집과 남쪽의 국민 여론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지리멸멸하고 있었다.
판문점 입구에서부터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기자들이 운집해 웅성대고 있었지만 매번 똑 같은 회담 결과에 기자들 역시 크게 동요하는 기색 없이 그저 의무적으로 취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자들 속에 제일신문사의 사회부 기자인 임금님 기자가 분주히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파트너로 사진기자인 박 기자도 동행하고 있었다. 판문점 남북 회의장 입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안쪽에는 통일부 직원들이 나와서 기자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금님이 통일부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때요? 오늘은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나 통일부 직원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다. 금님이 다시 물었다.
“북쪽 대표단 중에 명단이 바뀐 사람이 있다면서요? 새롭게 대표단이 된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가 알 만한 사람입니까?”
그녀가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통일부 직원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보다 못한 사진부 박 기자가 그녀에게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묻지도 마. 장관이 함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데.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거야.”
“네? 함구하고요? 아니 왜요? 기자에게 함구하는 것이 어느 나라 법이에요? 국가 기밀도 아닌데 왜 함구 한데요?”
금님이 발끈했다. 그러자 박 기자가 한곳을 가리키며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쉿! 조용히 해. 저기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국정원 요원이야. 국정원! 그러니까 조용하란 말이야. 잘못하면 잡혀 가! 흐흐!”
박 기자가 웃으면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까맣고 단단한 근육질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런데 팔뚝에는 기자 완장을 차고 있었다.
“저 사람이 국정원 요원이란 말이에요? 기자 완장을 차고 있는데요?”
“후후! 그럼 국정원 요원이 팔에 국정원이라고 쓰고 다니겠어? 생각해보면 모르겠어?”
“그야 그렇지만……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저 사람이 국정원 요원이란 것을요?”
“후후! 내 술친구야! 우린 불광동 닭갈비집 단골이야.”
“네? 불광동 닭갈비집이요? 우리가 항시 가던 그 매콤한 닭갈비집 말이에요?”
“그래! 우연히 불광동에서 만났는데 알고 보니 국정원 요원이더라고. 그러니까 말조심해. 자칫하면 잡혀간다고. 히히히!”
박 기자가 장난기로 히죽거렸다.
“어때? 오늘 판문점 끝나면 저 친구와 불광동 닭갈비집 갈까? 내가 주선 할 수 있는데.”
“그래요? 그럼 정보 같은 것 얻을 수 있을까요? 혹시 알아요? 저 사람 입에서 특종이 나올지 말에요.”
“후후! 꿈께! 입이 무거운 사람이야. 국정원이 쉽게 입을 열어주는 사람들이야? 그건 기대하지 마.”
“흥! 국정원은 어디 사람들이 아닌가? 서로 주고받아야 민주국가지!”
금님이 샐쭉해 투덜거렸다. 박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임 기자와 저 사람 비슷한 점이 있네!”
“네? 비슷하다니요? 뭐가요?”
“이름말이야! 임 기자는 임금님이잖아. 그런데 저 사람 이름은 뭔지 알아? 바로 다윗이야. 윤다윗! 이스라엘 왕 다윗 말이야. 흐흐흐!”
“네? 다윗이라고요? 무슨 한국사람 이름이 그래? 기독교 신자인가?”
“아니! 저 사람 할아버지가 옛날에 다윗과 골리앗이란 영화를 보고 감동 받아서 손자 이름을 다윗이라고 지었데.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말이야. 재밌지?”
금님은 피식 미소 짓고 말았다.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그녀 역시 금님이란 이름 때문에 많은 놀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학교 시절에는 심지어 그녀의 담임까지도 그녀만 보면 임금님 납시오! 라며 놀리곤 했던 것이다. 지금도 자신을 소개하면 모두들 놀란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다윗이란 이름 역시 그녀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는 이름임은 틀림없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판문점 북쪽 관할 입구가 열리며 북쪽의 대표단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기자들이 일제히 북쪽 대표단을 향해 사진 플래시를 터트렸다. 북쪽 대표단이 날카롭게 굳어져 기자들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다. 금님은 북쪽 대표단을 면밀하게 살펴봤다. 새로운 얼굴이 한명 있었다. 전혀 본적이 없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새로운 얼굴이 한명 끼어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많이 보던 얼굴들이었다.
그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북쪽의 기자들도 어디선가 나타나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분주히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금님 역시 북쪽 대표단에게 다가가 질문 공세를 폈다. 그러나 북쪽 대표단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고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금님이 뒤를 돌아보며 박 기자를 보며 물었다.
“사진 찍고 있어요?”
“물론!”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오늘 저 사람들 웃지도 않네요. 정말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른 것 같지 않아요? 분위가가 영 쌔 하네요.”
“맞아! 그래서 아까부터 유심히 보는 중이었어.”
박 기자가 대답하고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 찍기에 바빴던 것이다. 금님이 고개를 갸웃하고 북쪽 대표단에게 다가가 질문을 해댔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전혀 협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금님은 북쪽 대표단의 행동이 약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그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모두들 새롭게 얼굴을 내민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금님의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모두가 새롭게 나타난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뭐지? 저 사람의 정체가 뭐지?’
금님은 새롭게 나타난 사람을 집중적으로 살피며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오십대 중반에서 육십 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자는 어설퍼 보이는 북쪽 사람들의 차림과는 달리 보기에는 세련되고 중후한 모습까지 갖춘 그런 사람이었다. 검은 양복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그는 점잖은 대학 교수를 연상케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북쪽 대표단이 양편으로 나눠진 테이블에 앉자 곧이어 남쪽의 대표단이 모습을 나타냈다. 모두들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남쪽 대표단은 환한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했지만 여전히 회의 분위기는 그리 밝은 편이 되지 못했다. 새롭게 나타난 인물 역시 회의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관망만 하고 있었다. 기자들의 열띤 취재와는 상관없이 그들 남북 대표단은 습관처럼 안건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금님은 밋밋한 회의보다는 새롭게 얼굴을 내민 북쪽 대표단 일원에게 더 관심이 갔다.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건성건성 듣고 있는 다른 대표단과는 달리 남쪽 대표단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의미 있는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그는 나름대로 열의를 가지고 회담을 이끌고 있었다. 묘하게도 북쪽의 다른 대표들은 그런 새얼굴의 행동을 못마땅한 듯이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지? 이 묘한 분위기는 뭘 뜻하는 거지?’
집중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회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긴 했지만 꼭 꼬집어서 말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핵심을 찌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의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남쪽 대표단의 주제 발표를 듣고 있는 그의 경청 태도 때문이었다. 박 기자가 금님의 구에 대고 속삭였다.
“임 기자! 오늘 회담은 뭔가 달라지는 것 같지? 북쪽이 적극적이잖아. 안 그래?”
금님이 박 기자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