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선 메밀꽃처럼 하얀 소금꽃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이효석이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소금을 뿌린 듯'하다고 메밀밭을 그린 것과 대비되는 정경이랄까.
갯벌 천일염의 국내 최대 생산지는 전남 신안군이다. 모두 800여 개의 업체가 연간 19만t의 소금을 만들어낸다. 이는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65.1%(지난해 현재). 그중 1만5천t을 생산하는 증도의 태평염전(643만㎡)은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끝없이 펼쳐진 이 소금밭은 따가운 햇볕 속에 아름다운 풍치를 그려낸다.
바닷물을 단기간에 억지로 짜낸 정제염과 달리 갯벌 천일염은 스무 날 동안 햇볕과 바람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돼 일궈낸 인고의 결정체다. 시대는 쾌속으로 질주하지만 섬의 염전은 느릿느릿 걸으며 새하얀 '보석'들을 영글게 한다.
소금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인간 생명이 시작하는 어머니 자궁의 양수가 바닷물의 성분과 거의 같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대 그리스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바다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또 무얼 암시할까?
소금의 중요성은 동서양을 망라한다.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급여를 영어로 'salary'라고 하는 것도 소금과 관련이 깊다. 요즘이야 현금이나 수표로 주지만 화폐가 발명되기 전에는 소금으로 지급했다. 소금이란 뜻의 영어 'salt'는 같은 의미의 라틴어 'sal'을 어원하고 있으며 'salary'는 그 파생어다.
사실 소금은 국가 유지에 중요한 재원 구실을 했다. 소금이 '소(牛)'나 '금(金)'처럼 귀한 물건 또는 '작은 금(小金)'이라는 말에서 나왔음은 그 희소가치를 잘 말해준다. 소금 '염(鹽)'를 파자하면 '신하(臣)'와 '사람(人), '소금(鹵)', '그릇(皿)'으로 나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소금을 신하가 그릇에 담아 임금에게 바친다는 뜻. 이는 다시 말해 소금에 대한 국가 지배를 뜻한다.
한국사에서 소금 전매제가 도입된 건 고려 초였다. 태조는 도염원(都鹽院)을 두어 재정수입을 꾀했다. 소금의 사적 제조와 거래가 완전히 금지된 게 충선왕 때라는 고려사 기록으로 보아 전매제가 정착한 건 고려 말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백성들에게 소금 생산의 일자리를 만들어 위기를 넘기게 했다.소금이 국가경제에서 그만큼 중요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볼 때 역사의 고비마다 소금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도 소금이었다고 한다. 정부가 7살 이상의 국민에게 1년에 일정량 이상의 소금을 사도록 강요하면서 시세를 실제보다 10배나 높여 원한을 샀다. 게다가 징수권을 청부업자들에게 주었으니 그들의 횡포가 오죽했을까.
소금은 미국 남북전쟁의 승패도 갈랐다. 북군이 군사전략의 하나로 남부의 제염소를 파괴하고 소금 봉쇄에 들어가자 남부는 급격히 붕괴의 지경에 빠졌다. 인도의 독립영웅 간디 역시 영국 정부의 일방적 소금세 신설에 반대해 장장 360km에 이르는 '소금 행진'을 감행함으로써 비폭력 불복종 운동에 불을 지폈다.
국가가 생활필수품인 소금을 재정의 주 수입원으로 삼기 전에는 일반인들 사이에 자유롭게 거래됐던 것 같다. 삼국사기엔 소금을 팔러 다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짐장수 기록이 있다. 왕권 다툼에서 밀려나 소금장수로 세상을 떠돌았던 고구려 왕자 을불의 얘기다. 그는 소금장사를 하면서 얻은 민심의 소리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후일 왕위에 올라 미천왕이 된다.
이토록 중요한 소금이었건만 정제염과 수입염이 쏟아지면서 허다한 물건이 돼버렸다. 까맣게 타서 소금과 흑백 대조를 이루는 염부의 얼굴은 천일염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달까. 값이 떨어지면서 수입과 급여도 소금처럼 짜디 짜다.
그렇더라도 소금의 본래가치는 조금도 줄지 않는다. 생명의 근원이어서다. 사막의 바다를 건너는 낙타도 한 줌 소금이 없이는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생명에 필수적인 게 바로 소금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는 성경 문구가 여전히 유효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천일염의 의미는 단순한 소금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기다림과 느림, 생명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같은 소금이라지만 천일염과 정제염이 어찌 같겠는가. 겉모양이 같아 보이는 노지 수박과 하우스 수박이 맛과 향과 영양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벌써 7월의 한복판이다. 폭양의 뜨거운 세례 속에 소금꽃이 팝콘 터지듯 야물게 피어나는 계절이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소금밭을 거닐어보는 것도 색다른 멋과 맛이라고 하겠다. 삶을 근원을 사색하다 보면 썰물 후 밀물처럼 정신이 새롭게 충만해지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광활한 해변모래밭의 부드러움과 느긋한 해조음의 속삭임은 덤이다.

바다의 하얀 보석들을 부서질세라 정성껏 긁어 모으고 있군요.
보석을 끌어 모으는 데 신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저 폼만 잡아도 기분좋을 일입니다.
하지만 얼굴이 시커멓게 탄 염부의 수고로움도 한번쯤 생각해야 합니다. 그 분들의 수입은 소금처럼 짜디짜답니다.
창고에 가득 담긴 소금들은 생명의 양식이 되어 방방곡곡에 전달될 것입니다 . 오늘 요리할 때 소금을 다시한번 바라보세요.
소금의 가치에 새삼 눈을 뜨고 그 소중함에 주목한다면 우리의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지겠지요. 마음은 더 풍요로워질 거구요.
박물관엔 소금 얘기들이 가득 담겨 있군요. 그래서 아는 척할 수 있지요.
자, 이 하얀 생명의 보석을 지금부터 팔러가야지요. 조선팔도를 종종걸음으로 돌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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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사려! 소금 사려! 증도의 명물 천일염 사려!"
***사진은 여러분의 것으로 조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대타님 안녕하셨어요?. 대타님의 소금 예찬론 잘 읽었습니다.특히 鹽자의 풀이는 참 재미있네요, 하긴 한때는 백성도 그것으로 길들이고... 몽고의 평원을 누비는 소떼들도 주인이 건네는 한줌 소금때문에 그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주인을 따르니... 참으로 대단한것 아니겠어요,ㅎㅎ.
鹽자의 정체를 저도 소금박물관에서 첨 알았습니다.
여름 무더위에 어떠신가요? 두 분 건강하시지요?
굿모닝~ 대타님 메일을 확인하고 궁금해서 들렀더니 소금의 역사를 읽으며 증도를 다시 생각하네요 덥습니다. 건강하세요
최근 가본 곳이 여기밖에 없어 재방송해봤습니다. 吉여사님도 올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지나간 추억을 다시금 끄집어 내셔서 아름답게 보여주시고 한번더 생각케 해주시니 그저 감사 . . . .^^
아름다움으로 채색된 과거는 세월이 지날수록 되새겨 음미하기 좋은 재료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마땅한 꺼리가 없어 올린 측면도 있습니다만^^
대타님은 학구파시나봐요....공부허게 만들고...빛과 소금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봅니다...
원래 재탕이 진국여요~~~~ 흠 흠~~찐해라!
걸핏하면 소금장수로 둔갑시켜서 미안해요. 재미있자고 하는 거, 다 이해하시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의 금이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 금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며 쫒는 황금이고 두 번째 금은 모든 음식에 간을 맞쳐주고 맛을 내주며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않될 소금이며 세 번째 금은 바로 지금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지금..손에 쥔 한 웅큼의 소금 만큼이나 귀한 대타 님의 말씀 깊이 새겨봅니다. 부디 이 무더운 여름 잘 견디시고 8월 답사때 환한 웃음 머금은 채 뵙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