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가 확 줄어든 동해안에서는 ‘못난이 생선’들이 오늘날 진객 대접을 받고 있다.
고성·속초·양양·강릉·동해·삼척 등 강원지역 동해안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는 꼼치·도치·장치가 바로 그들이다. 예전엔 푸대접을 받다가 독특한 맛에 반한 식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어느새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들이 제철을 맞은 1월, 강릉 주문진항을 찾아가 생선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꼼치=동생들이 아무래도 내 인기를 따라가려면 멀었다 싶어. 속을 확 풀어주는 나의 시원한 매력에 빠져든 주당들은 숙취로 고생할 때면 마누라보다 김치를 넣고 끓인 꼼치국 생각이 먼저 난다는군. 하하. 이몸이 전국구 해장국 대접을 받고 있는 것만 봐도 뭔가 감이 오지 않나? 콧물을 떠마시는 것 같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꾸덕하게 말려서 쪄낸 꼼치찜 앞에서 젓가락질을 멈출 줄 모르던걸.
△도치=강원도를 대표하는 근육질 생선, 바로 저랍니다. 쫀득한 저의 매력에 반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녜요. 맑은국으로 먹어도 좋지만 새콤해진 김장김치를 넣고 끓이면 진한 국물맛이 일품이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적당히 크면서도 톡톡 터지는 도치알은 동해안 지역에서는 제사상에도 오른답니다. 이름에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들이 제사상 구경도 못했던 걸 생각하면, 저야말로 진정한 진객 아니겠어요? 자랑하는 김에 하나 더, 수컷은 알이 없다고들 무시하지만 살짝 데친 숙회로 드셔 보시면 또 반하실 걸요.
△장치=어허! 귀하기로는 저를 따라올 수가 없지요. 수심 300m가 넘는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다가 어쩌다 그물에 걸릴 때만 육지에 올라오니, 강원지역에서조차 저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도 강릉·속초 등에서는 기름이 살짝 돌면서도 퍽퍽하지 않은 맛이 좋다며 저를 즐겨찾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장어와 명태의 중간 정도 되는 맛이라고들 하네요. 2~3일 동안 약간 말려서 감자랑 무를 넣고 찜으로 먹는 게 별미랍니다. 대신에, 통통한 알에는 독이 들어 있으니 꼭 제거하고 드셔야 해요.
△꼼치=자랑이 다들 만만치 않구먼. 하지만 우리집 내력을 돌아보면 참 슬플 때가 많아. 나를 비롯해 물메기와 울진 북쪽의 동해안에 살고 있는 미거지가 한 집안인데, 모두들 살이 흐물흐물해서 텀벙텀벙 물속에 버려지는 물텀벙이라고도 불렸지. 그런데 나랑 친한 친구인 아귀도 똑같이 물텀벙 신세였던 걸 보면 그땐 사람들이 생선 귀한 줄 몰랐나봐. 쯧쯧.
△도치=저야말로 할 말이 엄청 많아요. 아랫배에 붙어 있는 빨판 때문에 멍텅구리, 심퉁이 같은 ‘요상한’ 이름이 붙었어요. 원래 제 이름인 뚝지도 썩 예쁘진 않아요. 사람들이 왜 그리들 못난 이름을 붙여준 건가 서럽기까지 했다고요. 흑흑. 강원도 지역에선 익숙하지만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심지어는 제 이름이 ‘고슴도치’를 줄여서 부르는 거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장치=도치야, 너무 슬퍼하지 마. 원래 내 이름은 벌레문치란다. 바닷고기 이름에 벌레가 웬말이냐고. 노장치·노생이·노대구라는 별명은 그나마 다행이지. 너무 바다 깊은 곳에 살아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나봐. 이래봬도 1m가 넘는 장신과 늠름한 풍채를 자랑하는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인데.
△도치=우리들의 전성기인 1~2월이 돌아왔어요. 꼼치형님, 장치야. 힘내보자. 지난해 12월엔 동해 용왕님이 심술을 부리셔서 사람들이 우리 얼굴 보기 힘들었을 거야. 이제는 뭍에 자주자주 얼굴을 보여줘서 어부님들께도, 우리를 만나러 온 관광객들께도 즐거움을 선사해 보자고!
◇도움말=박정호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연구사, 강릉시수협, 삼미식당(도치탕), 월성식당(장치찜), 여주해장국(꼼치국)
●강원지역 ‘꼼치·도치·장치’ 전문식당
꼼치·도치·장치가 대중화된 데에는 이들을 재료로 한 요리를 내는 전문식당들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강원 지역의 유명한 식당들을 소개한다.
◇꼼치=삼척 정라진항의 꼼치국 거리가 단연 유명하다. 꼼치가 없으면 영업을 않는다고. 금성식당(☎033-574-4112), 바다횟집(☎033-574-3543) 등이 대표적이다.
강릉 주문진 여주해장국(☎033-662-9285), 속초 중앙동 옥미식당(☎033-635-8052), 영랑동 사돈집(☎033-633-0915) 등도 잘 알려진 곳.
◇도치=대개는 꼼치국을 내는 곳들에서 도치 요리를 파는 경우가 많다. 고성 거진항 인근의 제비호식당(☎033-682-1970), 말랑이네(☎033-682-2613) 등이 있다. 고성 대진항의 부두식당(☎033-682-1237), 강릉 주문진 삼미식당(☎033-661-0223).
◇장치=강릉 주문진에 장치찜 요리를 내는 곳들이 많다. 월성식당(☎033-661-9910), 다모아식당(☎033-661-7790).
첫댓글 영국에 살 때 우리가 흔히 먹는 생선들이 없어 놀랐던 기억이.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있는지 새삼 놀랍니다.
꼼치, 도치, 장치. 니들도 첨이다 야.
바다가 다르니까 생선도 다르군요.
@바람숲 일단 작은 생선은 취급을 안하더라고요.
@산초 어머나! 난 작은 생선이 맛있던데...
@바람숲 걔네들은 생선도 스테이크로 먹으니까요.
@산초 그쵸. 그러니까 큰 생선을 많이 먹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