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학자 중에 이반 일리히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무교회주의 가톨릭 사제이며, 근대 문명 비판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병원이 병을 옮기는 주범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가톨릭 사제 신분으로 피임을 장려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특히 좋아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는 행위가 ‘자율’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생 ‘타율적 관리’에 맞선 ‘자율적 공생’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사람이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그의 고집스러움이 나는 좋았다. 그래서 자전거로 출퇴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요즘 시끌벅적한 캠핑동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자율’과 ‘타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출근하면서부터 바로 ‘타율’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이든, 조금 작게 상업시스템 안이든, 부서별 시스템이든 말이다. 그것은 공통적으로 자신과는 상관없는 타율의 시스템이다. 그것을 의식하면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 또한 불행한 일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지배에 익숙해지고, 복종에 익숙해진다. 그것이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든, 자신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캠핑은 이런 타율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자율을 획득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캠핑은 자신이 레저의 한 방편으로 택했든, 생활의 활력을 위해서 택했든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가 극대화되는 공간이며 스스로 행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비되는 자는 가족을 위해 가스통에 호스를 연결하고, 난로에 석유를 붓고, 장작을 팬다. 우리 아이가 멜로디를 붙여 부르는 노래처럼 “나무 하고 물 긷고~~” 하는 행위를 통해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과 노동을 투여하여 행복의 팩을 박고 있는 것이다.
그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캠핑장에 도착하여 쩔쩔매면서, 매뉴얼을 보고 또 보면서 텐트를 칠 것이다. 나는 반쯤 얼이 빠진 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텐트를 대신 쳐주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가 친 텐트가 설령 각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팩을 깊이 박지 않아 불안하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그는 분명 망치를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쩔쩔매는 후배를 보며 선배들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수술실의 간호사처럼 망치를 건네고, 팩을 건네는 것 정도일지 모른다.
어렵사리 친 텐트를 보며 뿌듯해하고, 가족 앞에서 어깨도 한번 들썩일 가장을 생각해보라. 아내의 말에 따르면(사실은 아동전문가의 말이지만) 앞서 말한 아비의 노동(장작패기, 물긷기, 밥하기, 설거지 하기 등)을 보는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아비에 대한 존경심을 품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캠핑하면서 아비가 고생을 하면 할수록 그 존경심의 크기가 커진다는 말이다.
나는 매주 캠핑장에 나서는 모든 이들이 이 ‘자율’의 공간을 획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스템 안에서와는 다른, 공생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캠핑하면서 만난 분들의 직업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회사원, 자영업자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율적 공생’의 모범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확신한다. 자율을 해치지 않되 공생하는 삶, 사실 이건 인류가 꿈꿔온 가장 행복한 형태의 삶이 아닐까.
사무실에 자전거가 도착하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 퇴근길, 신촌로터리에서 이대사거리로 올라가면서 나는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고 나서 굴레방다리로 내려갈 때 얼굴을 때리던 첫 바람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고, 점퍼 깃이 펄럭이는 소리를 듣는 행복은 자신만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나는 그것이 온전하게 구현되는 곳이 바로 캠핑장이라고 생각한다.
사족을 달자면, 편을 가르고 욕하고 헐뜯는 것은 바로 자신을 타율의 공간 속으로 밀어넣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비약해서 말하면, 일제시대 조선의 민중들은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되었다. 마라톤의 손기정에게서, 자전거의 엄복동에게서 그들이 본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영광도 치욕도 모두 자신의 것이다. 그것은 외화된 자기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팩을 박는 당신에게로 온다....
첫댓글 조금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다른 카페 한곳에 올린 글입니다. 양해해주시길....
캠핑의 진면목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은 팩을 박는 당신에게 온다...." 는 끝말, 그 행복만 소중해 해도 많은 갈등이 소멸 되리라 봅니다. 글이 기니 문단 사이를 한 줄씩만 떼어 주시면 다른 분들이 읽기가 더 쉬워질 것 같습니다.
아주 좋은 글입니다. 스크랩 해갑니다.
음~ 캠핑의 한가지 정의로 해석한다면, 캠핑이란 '자율의 공간 속에서 공생하기'라고 할 수 있군요! 훌륭한 글이었읍니다...!
옳고 그름이있는데....그속에서의 평행선아닐까요.......저같은 경우는 매년지켜봅니다...ㅎㅎㅎㅎ 발전을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르죠.....저자신은 항상 옳은편에 있고싶내요...마음두지마세요...글잘읽고갑니다....
무슨 얘기인지?..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좋은애기 같군요...저도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데..ㅎㅎㅎ
음~~ 아~`~~ 여러가지 부분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좋은 글 인것 같습니다...음미해볼 부분이 많은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잘 읽었습니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이고, 단순한 캠핑 속에서 새로운 시각을 느낄수 있네요...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맛깔나는 글 동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좋은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