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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가나의 혼인 잔치
요한복음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 중 메시야로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기록함으로 그리스도 사역의 역사성과 객관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사흘째 되던 날”은 빌립과 나다나엘이 주의 제자가 된 후 3일이 되던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 날에 갈릴리 가나에서 결혼식이 있었고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 결혼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마도 그 결혼식의 주최측에 속하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수님도 결혼식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결혼식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는 고작 5명이었습니다. 안드레, 요한, 베드로, 빌립, 그리고 나다나엘입니다. 예수님은 초청을 받자 제자들을 데리고 결혼식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객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께 말씀합니다.
“하객들이 마셔야 할 포도주가 떨어져서 없구나”
그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포도주는 물을 대용하는 면도 있었기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결혼 잔치에서 음료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잔치가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뜻합니다. 만일 잔치 중에 강제적으로 연회를 마치게 되면 결혼식은 망신이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런 낭패스런 상황을 보고 곧바로 아들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난감한 상황을 아들에게 알려줍니다.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 이런 상황을 알린 것은 아들 예수가 늘 어머니의 문제를 해결해 왔었고 또한 아들이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야로서 기적을 행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동정녀의 상태에서 낳은 아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그녀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 비밀을 일반 사람들이 이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까지 마리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께서 제자를 세우시며 공개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서 무언가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낭패스런 상황이 발생하자 아들 예수께 기적을 행해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여자여’라고 말한 원어는 (기나이)인데 이 표현은 분명히 어머니 마리아와 거리를 둔 것을 나타냅니다. 물론 이 표현은 유대 배경에서응 모독이나 업신여김이나 책망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의식하며 이 표현을 하십니다. 사실, 예수께서 이 표현을 사용하신 실례들은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귀신 들려 18년이나 허리가 꼬부라져 있던 한 여자를 부르실 때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눅 13:10-13)
이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표현에는 어떤 멸시나 책망보다는 오직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만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십니다.
[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5-27)
부활 후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부르실 때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곧바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마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 20:11-16)
이로 보건대,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로서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명을 의식하며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즉, 메시야의 공적인 사역에 있어서는 하늘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시는 것이지, 육신의 어머니의 개인 사정이 주의 공적인 사역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소위 현대 말로 하면 혈통적인 어머니라고 해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에 함부로 농단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육신의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신 후 엄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
원어로 읽으면 (티 에모이 카이 소이 기나이)이고 영어로 번역하면 (What is it to Me and to you?)입니다. 한글로 직역하면 “그 일이 내게는 무슨 상관이며 당신에게는 무슨 상관입니까?”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쓰는 일반 표현으로서 “어머니의 개인 사정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구약을 보면, 이와 비슷한 표현이 사사기 11장 12절 등, 여러 곳에 있습니다(참조, 삼하 16:10, 왕상 17:18; 왕하 3:13).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삿 11:12).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어머니의 개인 사정이 제가 메시야로서 이 땅에서 이룰 사명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즉,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지극히 위대한 사명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관련된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대답으로 예수께서는 메시야직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혈통적인 인연에 얽매이지 않으며 오직 그를 보내신 하나님께만 순종하셔야 함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또한 메시야로 사역하시는 예수님은 이제 메시야라는 직책을 갖고 계신 것이기에 혈육의 어머니라도 그를 단지 육신의 아들로만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사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바르게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하기에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 이후에도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동생들과 함께 엉뚱한 짓을 하곤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3장을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신 후에 열심히 메시야로 사역하실 때 예수님의 친족들은 그가 미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0-21).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그곳으로 와서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할 때도 가족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무리 앞에서 그를 잡아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
30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그곳으로 와서) 말하기를 (그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막 3:30-35)
그리고 한 참 후에도 동생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 7:2-5)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역시 그녀의 몸에서 태어난 메시야가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 제대로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녀와 관련한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께 와서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여자여 (혼인 예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일단 이와 동일한 표현이 요한복음에 계속 나옵니다. 그 표현을 죽 따라가 보면, 우리는 이 표현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시작되어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계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믿지 않는 동생들이 예수님께 유대에 가서 메시야의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라는 제시를 할 때 주께서는 그들에게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요 7:6-9).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때는 세상이 주를 미워하는 것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는 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때”는 더욱 분명하여집니다.
“그들이(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요 7:30).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요 8:19-20).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마 26:17-19).
[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막 14:32-34, 41-42)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 언급한 절대적인 고백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 때”는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죗값을 대속하시는 때를 말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실 가장 위대한 사명인 것입니다. 물론 이 사명을 이루시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만유의 주와 영원한 그리스도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때 그 영광은 지극히 높은 영원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이 또한 영광을 얻는 때라고 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3-24).
즉, 주의 영광은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때”는 십자가의 속량과 이후 이를 바탕으로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영광까지 다 포함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마리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은 일종의 선행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에서 예언되어 왔던 메시야이심을 확실하게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 의도된 결과는 발생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여기서 표적은 원어로 (세메이온)인데 어떤 진리를 확증해 주기 위한 기적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기적을 뜻합니다. 그 메시지는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11절에서 “그의 영광”은 1장 14절에서 말하는 영광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러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은 그가 이 땅에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속량을 치르신 후 부활 승천하신 것을 주의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그러므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얻으신 영광은 십자가에서 속량하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성령을 보내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메시야의 사역을 십자가에서 이루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얻으신 부활 승천의 그리스도는 이제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시고, 많은 믿는 자녀들을 얻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0, 22).
놀라운 것은 본문 5절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녀의 부탁에 대한 거절로 이해하지 않고 예수님의 궁극적인 사명에 대한 말씀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믿음을 갖습니다. 즉, 마리아는 자신의 부탁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드러나게 하는 것과 연결된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메시야의 영광을 드러내는 때와 방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부탁이 그리스도의 시간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
오, 사랑하는 여러분!
마리아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가장 놀라운 구원 사역의 기적을 이루시는 방식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일하게 하시는 비결인 것입니다.
한편, 혼례 잔치를 배설한 주최측에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개가 있었습니다. 두세 통은 약 77리터 또는 115리터에 해당합니다. 즉, 돌항아리 하나에 2리터 짜리 코카콜라 병이 40개에서 55개 정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돌항아리가 여섯 개나 있었습니다. 이는 그 여섯 개를 다 채우려면 2리터 코카콜라병으로 약 250개에서 300개 정도의 물을 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다가와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원어로 말하면 (게미사테 타스 휘드리아스 휘다토스)입니다. 이 뜻은 그 여섯 개의 돌항아리 전체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뜻입니다.
이에 하인들은 마리아가 신신당부하였기에 예수님의 지시에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원어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카이 에게미산 아우타스 헤오스 아노). 즉, 하인들은 그 여섯 개의 돌 항아리 각각에 물을 아귀까지 채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돌항아리의 아귀까지 채울 때, 그때야 비로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마치 여리고 성을 칠일 동안 돌되 매일 한 바퀴 씩 돌다가 마지막 날 일곱 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돌며 마지막 남은 한 바퀴를 다 돌고 함성을 지를 때 그때 비로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처럼, 또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의 지시를 따라 요단 강에서 일곱 번을 잠그면서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몸을 잠그고 물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던 것”(왕하 5:14)처럼, 하인들이 여섯째 돌항아리의 아귀까지 물을 채울 때 비로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4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 즉 하란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이삭의 아내를 알아보기 위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
12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3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 24:12-14)
이때 엘리에셀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삭의 아내를 알아내기 위해 마련한 조건은 쉬운 조건이 아닙니다. 그가 끌고 온 낙타는 열 필이었는데 그 열 필의 낙타에게 아무런 불평 없이 물을 주는 여인이라야 이삭의 아내감으로 확인될 수 있었습니다.
[
10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11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창 24:10-11)
보통 그 당시 여인이 물을 길기 위해 머리에 이고 다니던 물동이는 13리터 정도의 물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2리터 콜라병으로 6병 정도입니다. 그런데 목마른 낙타 한 마리당 보통 94 리터 정도의 물을 마십니다. 즉, 2리터 콜라병으로 45병 정도 마십니다. 물론 적게 마실 때는 50 리터를 마시지만 지금 300 킬로그램 정도의 짐을 싣고 그 날도 약 16킬로미터의 하루 광야 길을 온 낙타들이기에 거의 90 리터 정도의 물을 넉넉히 마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 낙타에게 여인의 물동이로 대략 8번 정도 길어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낙타가 10마리입니다. 그렇다면 80번을 우물에서 물동이로 물을 길어 마시게 해야 합니다. 만일 리브가가 혼자서 그 일을 했다면 적어도 2-3시간 동안 땀을 흠뻑 흘리며 힘든 고생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24장 22절을 보면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리브가가 열 필의 낙타에서 물을 다 먹였다는 뜻입니다. 이때 엘리에셀은 이 여인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삭과 함께 받아서 섬길 주께서 택하신 이삭의 아내인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중간에 멈추면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약속에 대한 기다림도 끝까지 인내해야 주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연회장에서 하인들의 순종은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2리터 코카콜라병 250개에서 300개 정도에 해당하는 물을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아귀까지 가득 붓는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순종하자 비로소 여섯 개의 돌항아리에 있던 물이 순식간에 포도주로 변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십니다.
이에 하인들이 잔치를 관리하는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가져다 주니 그는 기적을 알지 못한 채 포도주 맛을 보고 놀랍니다. 그는 신랑을 불러 말합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 2:9-10).
이렇게 하여 예수님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의 공생애 사역 중 첫번째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표적의 결과는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이고” 이에 “제자들이 그를 믿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원어로 (피스튜오 에이스) 또는 (피스튜오 엔)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어떤 인격체를 알아가며 깊은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이 첫 번째 표적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과 영광을 목격하였고 이에 예수님께 확신을 갖게 되면서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고 계속 동거하며 동행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신하는 상태에서 더욱 주의 말씀과 교훈에 철저하게 순종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참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십니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분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며 더욱 주를 신뢰하며 말씀을 통한 그분의 지시에 철저하게 순종하십니까?
이처럼 영원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는 그의 첫 번째 표적을 결혼 잔치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표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 주의 사역이 가져올 궁극적인 목적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중에서 있을 하나님의 어린양과 그의 피로 사신 바 된 주의 교회의 영원한 결혼 예식입니다.
[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더라
](계 19:5-9)
즉,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자신의 정체를 입증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 자기 피로 사신 주의 백성과 영원한 혼인 예식을 거행하심으로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그분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실제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께서 처음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로 정하신 장소가 결혼식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분은 모든 결혼식과 모든 결혼 생활에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가나 혼인 예식에서 포도주가 부족했던 것처럼 우리의 결혼 생활에 문제와 필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의탁하고 그분의 지시에 따른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필요는 충족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믿고 신뢰하며 주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가 한 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인들은 그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 즉시 순종했고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가정이 마리아의 이 귀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철저하게 순종한다면, 모든 필요가 채워지고 문제가 해결되면서 건강하고 복된 천국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둘째는, 그 결혼식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무미하고 무색하고 평범했던 물이 순식간에 달콤하고 시원한 값비싼 음료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단조롭고 고단한 평범한 삶이 주께서 축복하실 때 풍성한 삶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미건조한 삶이 한없는 새로움과 흥분과 생기와 기쁨의 삶으로 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우리의 삶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때, 그 포도주는 우리 개인 및 가정, 그리고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흘러 넘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섯 통의 물항아리에 있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됨으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맘껏 먹고 마시며 풍성하게 잔치를 즐기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는, 삶 가운데 실수하고 실패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리스도께 나아와 아뢰면 주께서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큰 실패를 겪었더라도 주님께 의지한다면 주님은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만 마리아처럼 필요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실패를 주님께 아뢰며 도움을 구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의 지시를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낭패와 좌절 가운데 있습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즉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분은 죄인의 친구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사탄이 엉망으로 망쳐 놓은 것들을 깨끗이 씻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마귀와 죄를 이길 힘과 생명을 넉넉히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모든 부족을 충분하게 채워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필요한 모든 부족함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단지 조건은 주 예수님께 절망스런 문제를 아뢰고 그분을 주로 믿고 신뢰하며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옛언약에서 그리스도로 인해 새언약으로 바뀐 시대가 열린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만든 포도주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물은 세례 요한, 즉 옛 언약인 율법 아래에서의 삶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물이 변하여 나타난 새포도주는 새언약에서의 삶을 상징합니다. 그 삶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후 보내시는 성령으로 인한 신자의 믿음의 삶입니다.
[
18 (이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라.
](갈 5:18, 24-25)
지금도 우리의 영광스런 구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최고의 포도주를 주십니다. 그 포도주는 하늘 나라에서 흘러 넘치는 기쁨의 포도주입니다. 천국 잔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자신의 때와 방법으로 넉넉히 공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시 34:10).
이제 곧 그리스도 자신이 신랑이 되시고 신자들이 신부가 되는 영원한 혼인 잔치가 열릴 것입니다. 언젠가 예수께서 새하늘과 새땅을 마련하시고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날은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 어린 양의 혼인 만찬에 부름을 받은 자들은 영원토록 복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영원한 내세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이 땅에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며 주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주의 나라의 새 포도주를 한없이 그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면 하늘의 평강과 기쁨과 의의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새언약의 새 포도주를 영광의 그리스도 안에서 맘껏 마시며 누리는 복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