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에
팔월 끝자락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이른 시각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버스 정류소에서는 매일 새벽 일흔 살 넘어 보인 할머니와 그의 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모자는 어시장 방향 버스를 타는데 안타깝게도 아들은 약간의 장애가 있었다. 둘은 어시장 노점으로 나온 푸성귀를 도매로 사서 반송시장 저자에서 팔아 생계를 잇는다.
나는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중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역 기점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났다.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거쳐 가월마을과 주남저수지를 지난 판신마을에서 내렸다. 들녘 가운데라 평소는 승하차 손님이 드문데 현지인도 아닌 나그네였다. 버스에서 내려 주남저수지를 바라보니 둑 너머 백월산에는 구름이 걸쳐졌다.
주남 돌다리가 놓인 판신마을은 들판 가운데였고 주남저수지 수문에서 시작된 주천강이 흘러왔다. 자동찻길에서 주천강을 건너 남포로 가는 둑길을 걸었다. 주천강은 동판저수지 수문에서 나온 물길과 합류해 진영을 흐르면서 창원과 김해 행정구역 경계를 이루었다. 주천강 천변을 따라 농가와 작은 공장이 들어선 마을이 남포리로 대산면에서 남쪽 물가라고 붙여진 지명인 듯했다.
둑에서 바라보인 대산 들녘은 벼농사 지대가 드넓게 펼쳐졌다. 농경지가 끝난 곳이 진영 신도시 아파트단지였고 대산에도 아파트가 보였다. 아침 해가 뜨면서 뭉쳐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둑길 길섶 자투리땅을 놀리지 않고 농사를 잘 짓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지난번은 붉은 고추를 따고 참깨를 수확했는데 이번에는 무 싹이 튼 이랑 곁에 배추 심을 자리를 고르는 중이었다.
주천강 둑길을 걸으니 좌곤리 들녘으로 가는 좁다란 다리가 나왔다. 사람만 건너는 인도교 격으로 무게가 나갈 농기계는 지날 수 없는 다리였는데 동판저수지로부터 걸어올 때 몇 차례 건넌 적이 있다. 냇바닥에는 노랑어리연이 자라는데 가을이 오니 늦은 봄부터 화사하게 피던 노란 꽃은 거의 저물었다. 외딴집 고샅에는 꽃범의꼬리가 제철을 맞은 꽃이 무더기로 피어 눈길을 끌었다.
25호 국도가 지나면서 들녘으로 우회 분산시킨 찻길에는 남포교가 놓여 있고 다리 곁에는 마을회관이 보였다. 둑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진영 밀포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으로 가질 않았다. 남포에서 들녘 농로를 따라 상포로 향했다. 주천강에서 갈래로 나뉜 물길이 중포로 흘러 나중 다시 합류했다. 상포도 천변 따라 띠를 이룬 농가가 들어서고 창고나 작은 공장이 들어선 촌락이었다.
천변을 지나다가 거름을 쌓아둔 무더기 곁에 참외가 자라 잎줄기가 무성했다. 어디서 씨앗이 묻어와 싹이 터 자란 듯했다. 그냥 스쳐 지나려다 발길을 되돌려 현장을 살피니 이파리 사이 맺은 참외가 몇 개 보였는데 하나는 노랗게 익어 있었다. 익은 녀석을 포함해 참외를 세 개 따 배낭에 담으니 무게감이 느껴졌다. 남겨둔 풋참외도 여러 개였는데 보름께 정도 지나면 익을 듯했다.
상포에서 들녘을 더 걸어 가술에 닿아 행정복지센터 현관에서 땀을 식히며 쉬었다. 정한 시간이 되어 치안 보조 임무를 수행했다. 아침나절 근무는 이번 주까지였다. 봉사자들이 혹서기 폭염에 힘들까 봐 근무를 조정한 배려였는데 구월부터는 원래대로 오후로 돌아간다. 나만 시내에서 나가고 나머지 동료들은 대산에 거주하는데 나도 그들에 못지않게 지역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
아침나절 근무 후 자투리 시간은 마을도서관에서 보냈다. 같은 열람실 문해교육 강좌에 참여한 세 분 할머니들이 강사의 지도로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 점심때가 되어 바깥으로 나와 국숫집에서 한 끼 때우고 오후는 조퇴하듯 귀갓길에 올랐다. 37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아침에 지났던 중포와 상포를 둘러 동읍 덕천에 닿았다. 상리에서 오는 32번 버스로 갈아탔다. 2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