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이 승 희
작약 속을 걸었다 작약이 없다 작약이 아닌 것들만 가득했다 죽는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거기와 이곳의 사이는 없고 환상이라고 말하면 이미 환상이 아닌데 여기는 한 번쯤 죽어야 올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물고기가 바라보는 곳을 새 한 마리가 바라본다 나도 그곳을 바라본다 모두 다른 곳인데 한곳에 있었다 작약은 거기 있다 허공에 뿌리를 두고 꽃을 물속에 두었다 누가 밀어넣었을까 누가 밀어올렸을까 어떤 반성과 참회가 꼭대기를 흔들었다 무수하게 산란하는 물고기들이 내 얼굴을 스쳐간다 작약 속을 걸었다 작약이 없다 이 모든 게 작약이 되는 날이 온다는 말을 이제 믿지 않는다 치욕스러웠고 슬펐다 반복되는 작약 피가 물속으로 퍼져갈 때 작약꽃이 피었다 나는 집을 만들 손이 없었다
- 시집〈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문학동네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 예스24
“나는 마음이 생기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두 손 가득 물을 쥐었다”식물과 손잡고 슬픔이라는 물속으로 침잠해가는 우리들의 여름문학동네시인선 217번으로 이승희 시인의 네
www.yes24.com
이승희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문학동네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