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제가 컴퓨터가 없는 곳에 갑자기 여행하게 되어 23-25일 묵상을 올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돌아와 한꺼번에 올려드립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2018년 2월 23일 사순 1주간 금요일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선비 정신으로 삽시다.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서 사람들과 동 떨어진 생각과 사고방식을 고집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갈 때도 그렇고,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될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사회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 관심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처럼 공자 맹자를 찾으며 군자 운운하는 사람은 이제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의를 해도 학생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웃으라고 웃기는 얘기를 해도 썰렁한 농담으로 들리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점점 외로움을 느낍니다.
말씀도 내가 느끼는 것과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 다른 모양입니다. 물론 같이 느낀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의 환경과 나이와 상황에 꼭 맞도록 말씀을 들려주실 것이며 각 사람이 알아듣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알아듣는 귀가 달라야 하고 해석하는 것도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의견과 같을 수 없습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의(義)로움’이라는 말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을 의로움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말입니다. 맹자의 말씀으로 사생취의(捨生取義)라고 말하는 의로움이 있습니다. 목숨을 던져 의로움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의리 또는 의로움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치는 선비의 올곧은 기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맹자에 나오는 글로, ‘삶도 내가 바라는 바요, 의로움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다. 만일 둘을 모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이자불가득겸, 사생이취의자야 : 二者不可得兼, 捨生而取義者也)’라는 내용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올곧은 기개를 말합니다.
또한 공자는 논어에서 ‘의이위질(義以爲質)’이라고 ‘의로움으로써 바탕을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이치와 부합하는 것이 ‘의로움(義)’이고, 사람이 가야할 바른 길이 ‘의로움(義)’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현들은 ‘삶’이 ‘의로움(義)’보다 소중하지 않다고 여겨 의로운 일에 자기 목숨까지도 바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의로움(義)’으로써 자기 신념의 바탕으로 삼아야 올곧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며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의로움을 말하면 젊은 사람들은 나를 보고 고리타분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누가 이런 말을 현실에서 따르겠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의(正義)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찾으려고 미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답답하고 가슴이 아파옵니다. 금융정보가 유출되고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이나 인터넷이나 전화 문자를 이용한 각종 사기사건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정의와 의로움의 기둥으로 알려진 법조계 인사들의 비리와 부정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의로움은 실종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맹자의 사생취의의 선비정신은 이제 정말 실종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정치가들의 행태에서도 선비정신은 찾아볼 수 없으니 암담한 심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로워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따지고 그 준법생활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과 행실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말로만 의로웠고 생각이나 행실은 의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 위선적인 양반들과 같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정의로워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조목조목 의로움의 실천 방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그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위선적으로 살았는지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정말 정신 차려서 시대에 뒤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도 또한 아무리 외톨이로 산다고 하여도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정신으로 의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선비정신이 고리타분하다고 하여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는 것이 좋다고 하셨으니 선비정신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된들 무슨 큰 탈이 있겠습니까?
오늘 2018년 2월 23일,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 국민들과 세계 평화를 위한 단식과 기도의 날로 선포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8년 2월 4일(일) 삼종기도 다음에 사순 제1주간 금요일(2018년 2월 23일)을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 국민들과, 세계 평화를 위한 특별 단식과 기도의 날을 선포하시며,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들과 모든 선한 이들이 하느님께 자비를 간구하는 데에 동참하여 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우리는 교황님의 의향을 존중하여 기도하여 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