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똑똑해도 다양하게 뽑아라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 혁신이론 제시…스콧 페이지 美 미시간大 교수
점수만으로 직원 평가? 그건 `창의성의 척도`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영국은 전쟁에서 지고 있었다. 독일 잠수함 U보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전함 수백 척이 U보트가 쏜 어뢰에 침몰했다. 대서양 보급로는 완전히 끊겼다.
그러나 전세는 역전됐다. 영국이 비밀리에 세운 `블레츨리 파크`(이하 블레츨리)가 독일군 암호 대부분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블레츨리는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개발해 독일군의 교신 메시지를 1분당 2개의 속도로 풀어냈다. 덕분에 연합군은 독일군의 교신 내용을 대부분 손쉽게 확인했다. 이젠 U보트도 두렵지 않았다. 암호 해독으로 U보트의 위치를 파악해냈기 때문이다.
암호 해독을 위해 블레츨리에 모인 사람들은 1000여 명. 이들의 직업과 학문적 배경은 놀랄 정도로 다양했다. 과학자, 기술자 외에도 체스 챔피언, 낱말 맞추기 전문가, 대기업ㆍ백화점 간부 등이 참여했다. 전공도 수학ㆍ이집트학ㆍ고전ㆍ역사ㆍ현대 언어학 등으로 제각각이었다. 해군에서 차출된 여군 수백 명도 힘을 보탰다.
블레츨리의 성공 비결에 대해 스콧 E 페이지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을 제대로 활용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양성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블레츨리라는 뜻이다.
특히 페이지 교수는 블레츨리의 사례를 들어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Diversity trumps ability)는 혁신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덜 똑똑하지만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동질적인 그룹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뜻이다. 만약 블레츨리가 배경이 엇비슷한 암호 해독의 천재들로만 구성됐다면 훨씬 못한 성과를 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블래츨리는 덜 똑똑한 사람들의 놀라운 기여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콜로서스는 전직 우체국 기술자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수백 명 여군도 암호 해독에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다양성 연구에 20여 년을 바친 페이지 교수는 매일경제 MBA팀과 인터뷰에서 "블레츨리처럼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다"며 "이 때문에 최고의 개인들로 구성된 동질적 조직보다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덜 똑똑해도 다양한 사람들로 조직을 구성하라는 뜻이다. 다음은 페이지 교수와 일문일답.
-당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사례가 더 있나.
"매우 많다. 미국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학술 논문과 의학 연구, 특허 출원 등이 다양성의 힘을 입증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더욱 높은 성과를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하지만 무능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은 천재 1명보다 못할 것 같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해결 방식을 갖고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내 이론이 성립된다. 해결 방식이 미확립된 어려운 문제는 다양성이 높은 팀에 맡기는 게 합리적이다.(문제 풀이 방식이 한 가지로 확립된 단순한 문제는 똑똑한 사람 1명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내가 말하는 다양성은 `밀접한 관련성`을 전제로 한다. 수학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다양성을 높인다고 팀에 수학을 모르는 시인을 포함시킨다면 별 도움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위상수학자와 논리학자를 포함시키면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다."
페이지 교수는 컴퓨터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명확히 입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기업 A사가 문제를 풀기 위해 20명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실험을 진행했다. 지원자는 1000명. A사는 이들의 문제 풀이 능력을 테스트했다. 점수는 60~90점의 분포를 보였다.
A사는 점수 순으로 20명을 채용할 것인가, 아니면 무작위로 20명을 고를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전자는 똑똑하지만 동질성이 높은 사람들로 팀을 짜는 방안인 반면, 후자는 덜 똑똑하지만 다양한 사람들로 팀을 짜는 방안이었다. 컴퓨터 실험 결과 대부분의 상황에서 무작위로 구성된 팀이 문제를 더 잘 풀었다.
이 같은 페이지 교수의 이론이 성립하려면 문제가 어려워야 한다는 것 외에도 3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 조건은 페이지 교수의 이론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첫째 조건은 구성원들이 다양한 관점과 문제 해결를 위한 다양한 도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높은 조직에서는 당연한 얘기다.
둘째는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는 똑똑해야 한다는 것. A사의 응시자들처럼 테스트에서 60점은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셋째는 A사가 1000명의 응시자 풀을 확보했듯이 구성원을 뽑는 모집단 풀이 커야 한다는 조건이다. 기업이 폭넓은 인재 풀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당신은 다양성을 지렛대 삼아 기업 경쟁력을 높이라고 한다. 그런 사례에 적합한 기업이 있는가.
▶매우 많다. 투자 기업인 핌코가 매우 잘하고 있다.(핌코는 모하메드 엘에리언 최고경영자의 주도 아래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돕고 있다. 과거에는 핵심 경영진에 여성이 1명도 없었지만, 이제는 상당수가 여성이다.)
구글, 토털, 해라스 등도 다양한 사람들로 조직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구글과 토털 등은 여성ㆍ외국인ㆍ장애인 채용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컴퓨터 실험 결과, A사는 직원을 성적이 아니라 무작위로 뽑는 게 더 높은 성과를 냈다. 점수만을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하면 안 될 것 같다.
▶수천 명으로 구성된 풀에서 200명 정도를 뽑는다고 하자. 대충 만든 능력 시험으로 사람들의 서열을 매기면 어떻게 될까. 최고 득점자 10명의 스킬(skill)은 매우 비슷할 것이다. 1등과 2등에게 특정 문제를 풀라고 시키면 매우 유사한 해결 방식을 적용할 것이다.
이제 기업은 다양한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을 봐야 한다. 기업이 단일한 점수로 사람들을 평가한다면 다른 많은 정보를 놓칠 것이다.(같은 이유로 페이지 교수는 SATㆍGRE 등 수학능력시험에도 비판적이다. 과거 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일정 점수를 넘는 학생들만 따진다면 대학은 표준화된 테스트로부터 얻을 정보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GRE는 600점만 넘으면 충분하며 그 이상 점수를 받는 학생이 더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신 말대로 요즘 기업은 다양성을 채용에 반영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양성의 의미 자체에 혼란을 느끼는 기업도 있다. 당신이 말하는 다양성은 무슨 뜻인가.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다. 생각하는 방법(how to think)이 다양하다는 얘기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인지적 다양성은 관점, 해석, 휴리스틱스, 예측 모델 등 네 가지 측면에서의 다양성을 뜻한다.(휴리스틱스의 다양성은 경험적 지식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뜻이다. 예측 모델의 다양성은 인과관계를 파악해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다양성이 높은 그룹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수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러나 기업ㆍ정부의 고위직 구성에서 이슈가 되는 다양성은 인지적 다양성이 아닌 것 같다. 남녀ㆍ인종 비율은 어떤지, 출신 지역ㆍ계층이 다양한지 등을 따진다.
▶그 같은 다양성은 `정체성 측면의 다양성(identity diversity)`이다.(성ㆍ인종ㆍ지역ㆍ계급 등에 따라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인지적 다양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인간은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관점ㆍ해석ㆍ휴리스틱스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ㆍ인종ㆍ연령별 그룹에 따라 같은 사안을 달리 생각한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이 같은 점을 들어 페이지 교수는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강력 지지해 왔다. 대학과 기업은 여성, 가난한 계층, 흑인, 시골 출신 등 소수집단 출신을 뽑고 채용해 정체성 측면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지적 다양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페이지 교수 역시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수혜자다. 미시간주의 시골 고교를 졸업한 그는 보너스 점수를 받아 미시간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교에서 미적분학을 배워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대입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었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전문가 개인보다 뛰어나다는 `집단지혜(wisdom of crowds)` 역시 다양성 덕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예를 들어 소 몸무게를 눈대중으로 예측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비전문가들의 눈대중을 평균한 값이 전문가 개인의 예측치보다 훨씬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집단예측이 전문가 개인의 예측보다 정확한 게 집단지혜의 대표적이 예다.)
▶당신과 내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예측한다고 해보자. 실제 경제성장률은 6%인데 우리 둘 다 3%라고 예측했다고 하자.(전혀 다양성이 없는 경우다.) 그러면 우리 둘로 구성된 집단의 평균 예측률 역시 3%다. 이처럼 우리가 똑같은 오류를 저지른다면 집단 차원에서도 나아질 게 없다. 그러나 나는 9%, 당신은 3%로 좀 더 다양하게 예측했다고 하자. 당신과 나의 오류는 각각 3%포인트로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 둘 평균은 6%다. 집단으로서 우리 둘의 오류는 0%포인트가 됐다. 집단으로서 우리 두 사람의 예측은 각자의 예측보다 정확해졌다. 우리 둘 사이의 다양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나는 `집단오류=평균 오류-다양성(The Crowds Error=the Average Error-Diversity)`이라는 공리를 입증했다. 결국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집단오류는 줄어든다는 뜻이다. 집단지혜는 이 정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다양성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기업에 실용적인 팁을 한 가지 준다면.
▶직원들마다 손에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 세트(sets of tools)`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라. 다양한 사람들로 팀을 꾸리면 팀원들이 다양한 `도구 세트`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어려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이제 기업들은 조직 내에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직원들이 새롭고 차별된 도구들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업은 예측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집단지혜를 활용해 예측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예측일수록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소규모 그룹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집단지혜의 효과는 소규모 전문가 그룹들이 참여할 때 더욱 커진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까지 다양성은 윤리적ㆍ정치적ㆍ법적ㆍ역사적 측면에서 다뤄졌다. 다양성을 거부하는 행위(예를 들어 여성과 소수 인종에 대한 채용 차별)는 비윤리적이며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양성을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다양성을 높이는 것은 조직의 경쟁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실제로 엔테테인먼트 회사인 해라스의 프래드 키튼 부사장은 "다양성을 높이는 것은 상업적인 필요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익 창조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로 회사를 채운다는 뜻이다.)
■ 다양성이 혁신 촉발…시장 지배율 높인다 다양성이 혁신을 촉진해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것은 다양한 연구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실비아 앤 휼렛 인재혁신센터 소장이 전문가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와 40건의 사례 연구, 수많은 포커스 그룹 조사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가 대표적이다. 휼렛 소장에 따르면 성ㆍ인종ㆍ경험적 다양성을 갖춘 리더들이 이끄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전년 대비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고 보고할 확률이 45%나 높았다. 신시장 개척 확률도 70%나 높았다. 이 같은 높은 성과는 다양성이 혁신을 촉진한 결과로 풀이됐다. 리더십의 다양성이 확보된 회사에서는 모든 직원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리더에게 밝히고 훨씬 쉽게 지원을 얻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새로운 혁신이 더욱 쉽게 일어났다.
반면 리더십의 다양성이 낮은 회사에서는 여성 등 소수자 그룹 아이디어가 채택될 확률이 매우 낮았다. 여성은 백인 남성에 비해 20%, 소수 인종은 24%, 동성애자는 21%나 낮았다. 그 결과 혁신 동력이 떨어져 중요한 시장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 휼렛 소장 설명이다.
그러나 단순히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채용하는 것만으로는 혁신을 촉발하지 못한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상하게 들리는 아이디어도 거리낌 없이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팀원들에게 의사결정 권한도 위임해야 한다. 의견 일치와 통일성을 강조하는 문화도 바꿔야 한다. 게리 하멜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기업 시스템은 통일성과 조화보다 의견 불일치와 일탈 등에 더욱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양성을 촉발하는 문화의 가치는 엄청나다. 휼렛 소장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문화(speak-up culture)에서는 각자의 혁신 역량이 온전히 발현될 가능성이 3.5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오늘날에는 더욱더 다양성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로절린드 허드넬 인텔 최고 다양성 책임자는 "인텔이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하려면 다양성은 필수"라며 "다양성 덕분에 인텔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He is…
스콧 E 페이지는 사회과학계의 대표적인 석학이다.
2000년부터 미시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학ㆍ경제학ㆍ복잡계 등을 가르치고 있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이론을 확립하는 데 20여 년을 바쳤다. 미시간대학교에서 수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