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산 숲을 나와
더위가 유난했던 여름을 데려갈 팔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다. 아직 한낮은 무더운지라 토요일 이른 새벽 자연학교 등교에 나서 날이 선선해진 아침 활동 시간을 넉넉히 확보할 생각이었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날이 덜 밝은 어둠 속 5시 이전 산행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어 원이대로에서 17번 첫차 간선 급행버스를 탔다.
불모산동을 출발해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에 몇몇 손님이 타고 왔으며 명서동 주택을 지나면서 더 늘었다. 모두 중년과 노인들로 날씨와 더불어 가을 채소 파종 이야기를 나누면서 굴현고개와 외감 동구에서 내렸는데 이른 시각 텃밭으로 가는 이들이었다. 나는 감계 신도시를 지난 무동지구 아파트에 내리고, 남은 한 노인은 행색으로 미루어 온천장 대중탕을 찾아가는 듯했다.
감계처럼 높은 아파트단지가 즐비한 무동에서 조롱산이 건너오는 산기슭으로 올랐다. 계획도시 개발되기 이전 자연마을 무동은 밀양 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대대로 살던 집과 논밭은 대부분 신도시에 편입되고 자연마을 원형을 보존한 농가는 몇 채 남지 않았다. 덩그렇던 한옥 재실에는 선대를 기리던 빗돌도 있었는데, 개발의 뒤안길에 밀려 어디로 옮겨 관리를 하지 싶다.
언덕 비탈길을 오르다가 벌초를 다녀가지 않은 무덤 앞에 이즈음 피는 무릇꽃을 봤다. 봄에 자라난 잎줄기는 녹아 없어지고 꽃대가 새로이 솟으면서 엷은 보라색 꽃을 피웠다. 선홍색 꽃무릇과 마찬가지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식생 원리는 같았다. 동종인 상사화는 한여름 더위 속에 피었다가 저물었고, 꽃무릇은 앞으로 스무날 남짓 지나 추분 절기 전후 피려고 대기 중일 테다.
산마루에 오르니 골짜기는 함안 칠원에서 들어오는 골프장이 나왔다. 오래전 봄에는 산나물을 뜯고 여름은 영지버섯을 따려고 찾았던 작대산이 우뚝하게 앞을 버텼다. 천주산에서 양미재를 넘어오는 작대산은 멀기도 하고 가팔라 근년엔 찾지 않는다. 감계에서 이어진 조롱산 산등선은 무동으로 건너와 아파트단지를 에워싸다시피 했다. 동쪽으로는 아침 해가 뜨려는 기미가 드러났다.
골프장을 돌아 무릉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었지만 그곳으로 가질 않고 조롱산 산세를 따라가는 숲길을 걸었다. 조롱(鳥籠)은 새장을 뜻하는 한자로 천지가 개벽이 되었을 적 물에 잠기고 남은 봉우리가 새장처럼 보였다고 붙여진 산 이름이다. 멀리서 보면 실제로 새장처럼 보였는데 예전에는 참취나 참나물이 자생해 내가 텃밭으로 삼다시피 했는데 근래는 생태계가 많이 달라졌다.
산등선을 나아가다 쉼터에서 생수와 옥수수를 먹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영지버섯이 붙었는지 살폈는데 고작 두 개 찾아냈다. 이즈음 영지버섯은 벌레가 꾀거나 절로 삭아지는 때였다. 먼저 다녀간 이 눈에 띄어 채집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색 영지는 손바닥 크기로 말라가는 두 조각으로 끝내고 등산로를 따라 숲을 빠져나오니 무동 최윤덕도서관이었다.
새벽에 길을 나서 조롱산 숲을 2시간 남짓 누볐다. 도서관 열람실이 열리는 9시에 맞춰 입실해 그간 몇 차례 앉았던 낯이 익고 편안한 열람석을 먼저 차지했다. 지난번 읽으려고 제목만 봐둔 젊은 작가 문경민이 쓴 ‘지켜야 할 세계’를 펼쳤다. 중등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여주인공 윤옥은 해직의 아픔을 딛고 복직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정년을 1년 앞두고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전체 3부 가운데 2부를 읽는 중 마음이 바빠졌다. 하루 내내 도서관에 머물면 완독하겠건만 사정이 녹녹하지 않았다. 점심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다. 구내식당이 없고 밖으로 나가도 사정은 같았다. 아파트단지에서는 토요일에 알뜰장터가 열리는데 햇고구마를 사두어야 해 반나절만 머물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귀가를 서둘러 장터로 갔더니 파장이라 고구마는 못 샀다. 2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