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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유도(笑中有刀)
웃음 속에 칼이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해칠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笑 : 웃음 소(竹/4)
中 : 가운데 중(丨/3)
有 : 있을 유(月/2)
刀 : 칼 도(刀/0)
(유의어)
소중도(笑中刀)
소중유검(笑中有劍)
소리장도(笑裏藏刀)
구밀복검(口蜜腹劍)
양봉음위(陽奉陰違)
출전 : 구당서(舊唐書) 이의부전(李義府傳)
말과 행동이 하나로 들어맞는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이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 연유인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속담이 생겼겠다. 얼굴은 험상궂게 생겼어도 마음은 천사인 사람들이 속상해 하면서 '까마귀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고 항의할 일이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인데 그럼에도 실천은 어려워 따끔한 말이 많이 생겼다. '속 각각 말 각각'에서부터 하는 말에 악의가 들어있는 경우는 '속에 뼈 있는 소리'라 했다.
악의 정도가 아니라 해칠 마음이 있을 때는 '웃음 속에(笑中) 칼이 있다(有刀)'고 한다. 그대로 번역한 속담성어인 듯해도 유래가 있다.
중국에서 악명을 떨치는 간신이 많은 중에 이의부(李義府)는 당(唐)나라 초기의 대표적인 아첨배였다. 그는 미천한 집안에서 났어도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고 문장력도 좋아 과거를 통해 등용됐다.
이의부는 웃으면서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속에 칼을 감췄다는 소리장도(笑裏藏刀)의 음흉함이 있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겐 가차 없이 보복을 가해 사나운 살쾡이 이묘(李猫)라 불릴 정도였다.
2대 태종(太宗)에 아첨으로 신임을 받고 3대 고종(高宗)이 선왕의 후궁이었던 무측천(武則天)을 왕후로 들일 때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다.
이의부가 절세의 여죄수를 빼돌려 첩으로 삼으려다 발각된 일이 있었다. 두려움에 옥리가 자살했는데 감찰하던 왕의방(王義方)이 주범 이의부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청했으나 신임하던 고종에 의해 오히려 외지로 쫓겨났다.
안하무인이 된 이의부는 더욱 매관매직에 힘써 거금을 긁어모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엔 칼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故時人言 義府笑中有刀)." 구당서(舊唐書)의 열전에 교묘한 수법을 말한 내용이다.
칼보다 더 큰 검을 숨긴 간신도 있다. 당 현종(玄宗)의 신임으로 날뛴 이임보(李林甫)다. 정적을 제거할 때는 한껏 상대방을 추어세운 다음 뒤통수를 치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창시자였다.
이런 간신배들의 수법을 마음속으로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 보통 사람들도 겉으로만 좋은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관계없이 자주 보는 일이다. 보는 앞에서는 굽실거리다 돌아서면 욕을 해대는 면종복배(面從腹背)의 사람들이다. 이보다 더 분통터지게 하는 높은 사람들도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정의를 위한다는 지도급 저명인사는 알고 보면 시정잡배보다 더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다.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현양두 매구육(懸羊頭 賣狗肉)이 이들을 말한다.
소리장도와 위장평화
웃음으로 적을 안심시킨 후 은밀하게 제거하라
적전계(敵戰計) 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는 웃음 속(笑裏)에 칼이 숨어 있다(藏刀)는 뜻이다. 刀는 한쪽 날을 가졌으며 손잡이가 있는 칼을 본뜬 글자다.
3계 차도살인(借刀殺人)과 소리장도가 합하여 검(劍)이 된다. 劍은 刀에 刀가 더해진(僉) 글자로 날이 양쪽에 다 있는 칼을 뜻한다. 이 전술은 먼저 상대를 안심시킨 후 은밀히 제거할 계책을 세우고 준비가 되면 곧바로 움직여 제압하는 것이다.
소리장도의 출처는 백거이(白居易)가 쓴 시 '천가도(天可度)'다. 그는 당나라 시인이자 검객으로 문무를 겸비했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이의부의 무리가 즐겁게 웃는데 웃음 속의 칼이 몰래 사람을 해치는 것을(君不見李義府之輩笑欣欣 笑中有刀潛殺人)."
이의부는 당 고종의 간신이었다. '구당서(舊唐書)'에서도 "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있다(義府笑中有刀)"고 했다. 그는 겉으로는 늘 미소를 띠었지만 뒤에서는 중상모략의 칼을 갈았다.
이의부 뺨치는 간신이 당나라 재상 이임보다. 그가 탄생시킨 구밀복검은 인간의 겉과 속이 다름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입에는 꿀을 발랐지만 배 속에는 검을 품고 있다(口有蜜 腹有劍)"고 했다.
김정은이 2013년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덮어씌웠던 혐의인 양봉음위(陽奉陰違; 보는 앞에서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음)도 '소리장도'와 통한다.
진나라와 위나라 전쟁에서는 칼을 감춘 미소가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을 갈랐다.
우정에 감춘 칼에 성을 내주다
'칼을 품은 미소'는 기원전 342년 진(秦)나라와 위나라의 전쟁 사례를 들었다. 진나라 공손앙은 병력 5만 명을 이끌고 위나라 관문인 황하 효산 일대의 오성을 공격했다. 오성은 지세가 험준해 정면공격으로 함락하기는 어려웠다.
이 성을 방어하던 장수 공자인은 공손앙과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공손앙은 공자인에게 전쟁보다 평화조약 체결을 원한다는 서신을 보내고 철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공자인은 공손앙의 선의를 믿고 병력 300명만 데리고 평화 회담장에 갔다. 그러나 진나라군은 회담 후 연회가 끝나기 전에 위나라군 병력을 모두 포로로 잡았다. 진나라군은 위나라군의 옷을 뺏어 입고 오성을 향해 나아갔다.
성문을 지키던 위나라군은 공자인과 수행단이 협상에서 돌아오는 줄 알고 성문을 열었다. 진나라군은 무방비 상태의 오성을 빼앗고 요충지 효산 일대를 점령했다. 위나라는 이렇게 칼을 품은 미소에 당했다. 평화를 가장한 북한의 두더지 미소가 4개 땅굴에 새겨졌다.
땅굴 두더지 미소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유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 간에 무한 핵무기 경쟁이 계속됐다. 1971년 초 미국은 중구과 소련 방문을 통해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한반도에서도 세계적인 화해 분위기에 따라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나 그 시기 북한은 판문점 회담장 아래로 땅굴을 파고 있었다. 김일성은 이미 1971년 9월 25일에 전 휴전선 아래에 지하 침투로를 구축하라는 두더지작전 지시를 내렸다.
1974년 11월 15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고랑포에서 제1땅굴이 발견됐다. 1975년 3월 19일 철원 동북방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안에서 제2땅굴을 또 찾았다. 땅굴은 폭 2.1m, 높이 2m로 시간당 북한군 2만여 명이 남쪽 여러 출구로 나올 수 있게 돼 있었다.
1978년 10월 17일 발견된 제3땅굴은 판문점 공동감시구역 유엔군 기지로부터 불과 2㎞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북한은 땅굴 3개가 발견됐음에도 침투로 구축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90년 3월 3일 양구 동북방 동부전선 비무장지대 안에서 제4땅굴이 발견됐다.
제5땅굴은 지하가 아닌 남한의 땅 위 곳곳에 구축돼 있다.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사회 곳곳에서 내부 교란을 획책하는 양날의 칼을 감춘 소리장도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거짓 미소를 어떤 칼로 막을 것인가? 톈진으로 돌아간 중국 크루즈선의 3400명 관광객을 아쉬워 말아야 한다. 미소와 바꾸는 안보는 없다.
(참고) 이의부(李義府)
중국 당나라의 신하. 허경종과 더불어 당고종 시기의 양대 간신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 간사함은 웃음 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뜻의 소중유도(笑中有刀)라는 고사성어를 만들 정도였다.
이의부는 610년에 수나라에서 태어났다. 이의부의 출신은 영주 요양현이었는데, 조부가 재주(梓州) 사홍현승(射洪縣丞)을 지냈기에, 영태현(永泰縣)으로 옮겨 살았다.
이의부는 속문(屬文; 문장을 이리 저리 문구를 얽어서 글을 지음)에 뛰어났는데, 634년에 당시 검남도 순찰대사였던 이대량이 이의부의 재능을 칭찬하여, 중앙에 그를 천거하였다. 이의부는 대책 시험에 급제하여, 문하성 전의(典儀)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뒤에 황문시랑 유계와 시서어사 마주가 다시 이의부를 천거하여, 이의부는 감찰어사로 제수되었고, 진왕 이치를 보좌하였다. 진왕 이치가 643년 황태자로 책봉된 뒤, 이의부는 태자사인, 숭현관 직학사가 되었다.
649년, 당태종이 사망하고, 황태자 이치가 제3대 황제인 당고종으로 즉위하였다. 이의부는 중사사인으로 승진하였고, 651년에는 수국사를 겸임하고 홍문관 학사까지 맡는다.
하지만 이의부는 당시 재상이었던 장손무기로부터 시기를 당하여, 벽주 사마로 좌천된다. 자신을 벽주 사마로 좌천시킨다는 조서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의부는 이 사실을 비밀리에 알고, 허경종의 사위인 왕덕검에게 대책을 물어보았다.
왕덕검(王德儉)은 소의 무씨(이후의 측천무후)가 고종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고 무씨를 황후로 책봉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이의부에게 흘려, 이의부는 왕덕검의 이야기를 이용한다.
그리고 고종이 황후인 왕씨를 폐위하고 소의 무씨를 세우려고 할 때, 장손무기와 저수량이 왕씨의 폐위를 반대하는 가운데, 이의부는 허경종과 함께 왕씨의 폐위와 무씨의 황후 책봉에 찬동한다. 소의 무씨가 황후로 책봉되면서, 이의부는 좌천을 면하였고, 중서시랑, 동중서문하삼품으로 발탁되었으며, 광평현남으로 책봉된다.
한편 측천무후는 자신이 황후로 책봉될 때 도와준 이의부, 허경종, 최의현(崔義玄), 왕덕검, 후선업, 원공유를 매우 총애하였고, 이의부는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아 더욱 교만해진다.
이의부는 656년에 태자우서자를 겸임하고 작위가 현후로 올라갔다. 이때, 대리시에는 순우씨라는 여성이 죄를 저질러 구금되었는데, 이의부는 순우씨의 용모가 빼어난 것을 알고, 몰래 대리승 필정의에게 부탁하여 순우씨를 풀어주고,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대리경 단보현이 이를 의심하며 조사에 나서자, 필정의는 이의부의 핍박을 받아 자살하였다.
시어사 왕의방은 이의부의 죄상을 조정에 고발하였지만, 오히려 고종은 왕의방이 언변이 불손하다며 그를 내주(萊州) 사호(司戶)로 좌천시켰다. 왕의방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이의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이의부가 말했다. "왕 어사가 망령되게 나를 탄핵하였는데, 부끄럽지 않소?"
왕의방이 말했다. "옛날 공자는 노나라의 사구(司寇; 고대 중국 역사에서 형벌과 경찰을 맡은 관직)가 되어, 7일 만에 소정묘(少正卯)를 궁문 아래에서 주벌하였소. 하지만 나 왕의방은 어사로 임명된지 16일이 지났거늘, 쌍궐 앞에서 간사한 이를 능히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실로 부끄러울 따름이오."
이의부는 태자좌서자를 겸임하였고, 657년에는 중서령이 되고 검교어사대부까지 겸임하며, 뒤에는 태자빈객도 맡았고, 작위가 하간군공까지 올라간다. 이의부는 조정에서 자신이 측천무후로부터 받고 있는 총애를 등에 업었고, 집안의 자제들을 모두 청요직에 올렸다.
게다가 이의부는 욕심이 끝도 없는 인물이어서 온 집안이 나서서 매관매직을 일삼았고, 그의 집안은 관직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게다가 조정에서는 자신의 측근들을 심어 측근들과 붕당을 형성해 나간다.
이의부는 중서령이 된 뒤에 두정륜과 대립한다. 두정륜은 이우익을 끌어들여 이의부와 대립하였지만, 고종으로부터 견책을 받아, 두정륜은 횡주(橫州)로, 이우익은 봉주(峰州)로, 이의부는 보주(普州)로 각각 좌천되었다.
이듬해인 659년에 이의부는 다시 중앙정치로 복귀하여 이부상서, 동중서문사삼품이 되었고, 허경종과 함께 장손무기를 모함하였다. 661년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662년에 사열태상백, 동동서대삼품으로 복귀한다.
고종의 아들 이욱륜(훗날의 당예종)이 은왕으로 책봉되자, 우상(중서령)으로 승진했던 이의부는 은왕부 장사를 겸임한다.
하지만 하늘을 찌르는 이의부의 권세는 한 사건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의부는 두원기라는 역술인을 불러 점을 쳤는데, 두원기는 이의부의 저택에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원한의 기운이 있으니, 집안에 2천만 냥을 쌓으면 이를 억누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의부는 두원기의 말을 믿고 2천만 냥을 급박하게 모은다. 그리고 모친상이라는 틈을 타서 두원기와 함께 남루한 옷을 입고 성 밖으로 나갔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의부가 모반을 저지르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의부는 자신이 모함한 장손무기의 손자 장손연에게 700냥을 요구하고, 5일 뒤에 장손연을 사진감으로 제수하였다. 그러자 우금오창조참군 양행영이 이의부의 죄상을 고발하였고, 결국 이의부는 집안 식구들과 함께 휴주로 유배된다.
666년에 대사면이 단행되었으나, 이의부에게 사면은 허락되지 못하였고, 이의부는 결국 유배지에서 분사하였다.
조정 대신들은 이의부가 유배에서 풀려나 조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으나, 666년 이의부가 죽으면서 안심하였다고 한다. 674년에 대사면이 단행되어, 이의부의 처자는 조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690년, 측천무후는 무주혁명을 일으킨 뒤, 이의부를 양주 대도독으로 추증하고, 집안에 실봉 300호를 내렸다. 측천무후가 죽고 5년 뒤, 당예종이 복위하였고, 이의부, 허경종, 최의현, 왕덕검, 후선업, 원공유 등 6명의 집안에 내려졌던 실봉을 모두 철회하였다.
이의부는 외모가 온화하고 공손하였으며 남들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즐겁게 웃었지만, 성품이 편협하고 시기를 품었으며 또한 음험하고 잔인하였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음해하는 자가 있다면 곧바로 모함하였다.
이러한 이의부의 간사함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이의부를 "웃음 속에 칼이 있다"고 평가하였는데, 여기서 소중유도(笑中有刀)의 고사성어가 탄생하였다. 이의부를 부르는 또다른 명칭은 '이묘(李猫)'였는데, 이것도 이의부에 대한 멸칭이었다.
이의부는 고종에게 조부의 장례를 다시 지내기를 청원하여, 영강릉(永康陵)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여기서 7개 현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무덤 공사를 왕성하게 진행하였다. 게다가 장례 행렬은 무려 70리까지 달했다고 한다.
이의부는 스스로 조군 이씨를 자처하였는데, 급사중 이숭덕이 그와 같은 계보였다. 하지만 이의부가 두정륜과의 불화로 인해 보주 자사로 좌천되자, 이숭덕은 이의부를 조군 이씨 족보에서 삭제하였다. 이의부는 이로 인해 이숭덕을 원망하였고, 재상이 된 뒤 이숭덕을 무고하여 자살로 내몰았다.
이의부는 과거 아들의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자, 씨족지를 가진 농서 이씨 포함 7개의 명문가끼리 서로 혼인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족보를 조작하여, 5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을 모두 사류로 올려 족보에 기재하였다.
이의부가 몰락하자, 어떤 이가 '하간도(河間道) 행군원수(行軍元帥) 유상도(劉祥道)가 동산(銅山)의 대적 이의부를 물리친 승전보'를 지어 각지에 알렸다. 유상도는 이의부의 죄상이 밝혀질 때, 이를 감찰했던 관리 중 1명이었다.
▶️ 笑(웃을 소)는 ❶형성문자로 关(소)와 동자(同字), 咲(소)는 고자(古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夭(요; 요염하게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 소)와 대나무(竹)의 흔들리는 소리가 웃음 소리 같다는 뜻이 합(合)하여 '웃다'를 뜻한다. 옛날엔 자형(字形)의 기원(起源)을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몸을 꼬면서 웃는 모습이라 하고, ㉯竹(죽)과 犬(견)을 써서 개가 대바구니를 쓰고 거북해하는 모양이 우스운 데서 웃다로 되었다 하고, ㉰사람을 따르는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와 사람의 웃음소리가 닮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笑자는 '웃음'이나 '웃다', '조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笑자는 竹(대나무 죽)자와 夭(어릴 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夭자는 팔을 휘저으며 장난치는 아이를 그린 것이다. 笑자는 이렇게 장난치는 놀고 있는 아이의 머리 위에 竹자를 결합한 것으로 竹자는 눈웃음 짓는 모습으로 응용되었다. 그래서 笑(소)는 ①웃음 ②웃다 ③비웃다 ④조소(嘲笑)하다 ⑤꽃이 피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우스운 이야기를 소담(笑談), 웃으면서 하는 말을 소언(笑言), 상스럽지 않은 우스운 이야기를 소화(笑話), 웃는 얼굴을 소안(笑顔), 익살과 웃음거리를 주로 하여 관중을 웃기는 것을 목적하는 연극을 소극(笑劇),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것 또는 그 웃음을 미소(微笑), 크게 웃는 웃음을 대소(大笑), 웃으면서 이야기 함을 담소(談笑), 조롱하여 비웃는 웃음을 조소(嘲笑),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을 냉소(冷笑), 어처구니 없다는 웃음을 가소(可笑), 거짓 웃음을 가소(假笑), 여럿이 폭발하듯 갑자기 웃는 웃음을 폭소(爆笑), 기뻐서 웃는 웃음 또는 기쁜 웃음을 희소(熙笑), 알지 못하는 사이 웃음이 툭 터져 나옴 또는 참아야 할 자리에 툭 터져 나온 웃음을 실소(失笑), 어이가 없거나 하찮아서 웃는 웃음을 고소(苦笑), 콧소리를 내거나 코끝으로 가볍게 웃는 비난조의 웃음을 비소(鼻笑),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는 웃음을 목소(目笑),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딴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을 소면호(笑面虎),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는 뜻으로 말은 좋게 하나 마음속으로는 해칠 뜻을 가진 것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을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내심으로는 해치려 함을 이르는 말을 소중유도(笑中有刀), 근엄하여 좀처럼 웃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소비하청(笑比河淸),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소이부답(笑而不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소제양난(笑啼兩難),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천금을 주고 웃음을 산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함을 비유하는 말을 천금매소(千金買笑),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을 여읍여소(如泣如笑),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뜻으로 놀라거나 근심이 있어도 평소의 태도를 잃지 않고 침착함을 이르는 말을 언소자약(言笑自若)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촉(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박힌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시(中石沒矢),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일컫는 말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원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자리 또는 천자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중원지록(中原之鹿),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일컫는 말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함을 일컫는 말을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刀(칼 도)는 ❶상형문자로 칼을 본뜬 글자로 옛 자형(字形)은 사람인(人=亻; 사람)部와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웠다. ❷상형문자로 刀자는 '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칼을 뜻하기에는 다소 모양이 이상하지만, 이것은 고대에 사용하던 칼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이 칼에는 굽은 칼날 위로 뾰족한 날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것은 적의 칼날을 부러뜨리거나 밀어내는 역할을 했었다. 刀자는 그러한 형태가 변화된 것이다. 칼은 물건을 자르거나 베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刀자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대부분이 사물이 갈라지거나 '공격하다'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刂자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刀(도)는 ①칼 ②화폐(貨幣)의 이름 ③거룻배(돛이 없는 작은 배) ④종이 100장 ⑤무게의 단위 ⑥갈치(갈칫과의 바닷물고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칼 검(劍)이다. 용례로는 칼로 이마에 입묵하던 형벌을 도묵(刀墨), 작은 칼을 도자(刀子), 칼을 만드는 사람을 도공(刀工), 칼과 검을 도검(刀劍), 칼의 몸을 도신(刀身), 칼집을 도실(刀室), 포목을 마르고 재는 일을 도척(刀尺), 종이의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베는 일을 도련(刀鍊), 도검에게 새긴 명을 도명(刀銘), 칼의 배면을 도배(刀背), 썩 잘 드는 칼을 쾌도(快刀), 옛날에 만든 칼을 고도(古刀), 과실 깎는 칼을 과도(果刀), 긴 칼을 장도(長刀), 짧은 칼을 단도(短刀), 보배로운 칼을 보도(寶刀), 새김칼로 글씨나 형상을 나무나 돌 따위에 파는 데 쓰는 칼을 각도(刻刀), 칼날에 베인 흔적을 도흔(刀痕), 얼굴에 있는 잔털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면도(面刀),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메스를 잡음을 집도(執刀), 아주 험하고 위험한 지경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도산검수(刀山劍水), 칼은 부러지고 화살은 다 써서 없어짐 곧 싸울 대로 싸워 다시 더 싸워 나갈 도리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도절시진(刀折矢盡),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는 뜻으로 항상 말조심을 해야함을 이르는 말을 설참신도(舌斬身刀), 혼자서 칼을 휘두르고 거침없이 적진으로 쳐들어간다는 뜻으로 문장이나 언론의 너절한 허두를 빼고 바로 그 요점으로 풀이하여 들어감 또는 생각과 분별과 말에 거리끼지 아니하고 진경계로 바로 들어감을 이르는 말을 단도직입(單刀直入), 한칼로 쳐서 두 동강이를 낸다는 뜻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일이나 행동을 선뜻 결정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도양단(一刀兩斷),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칼 세 자루의 꿈이라는 뜻으로 영전함을 이르는 말을 삼도지몽(三刀之夢),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남을 이용하여 사람을 해치는 음험한 수단을 이르는 말을 차도살인(借刀殺人), 납을 가지고 만든 칼 곧 잘 안 드는 칼이라도 한 번 자를 힘이 있다는 뜻으로 자기 힘이 미약하다고 겸손하게 하는 말 또는 두 번 다시 쓰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연도일할(鉛刀一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