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시킨 일이다
낯선 읍내를 찾아간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시외버스가 시키는 일이다
철물점의 싸리 빗자루가 사고 싶다 고무 호스도 사서
꼭 물벼락을 뿜어 주고픈 자가 있다
리어카 위 가득 쌓인 붉은 육고기들의 피가 흘러
옆집 화원의 장미꽃을 피운다 그렇게
서로를 만들고 짓는 것도 청춘이 시켰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시계를 찼던 그때
하늘에 일 년 내내 뜯어 먹고도 남을 달력이 가득했던 그때
모든 게 푸성귀 색깔이었던 그때
구름을 뜯어먹으며 스물세 살이 가고
구름 아래 속만 매웠던 스물다섯 살도 가라고 청춘이 시켰다
기차가 시켰다 서른한 살도 청춘이 보내버리고
서른세 살도 보내버리니 다 청춘이 시킨 짓이었다
어느덧 옷마다 모조리 불 꺼진 양품점 진열장 앞
마네킹들이 물끄러미 바깥의 감정들을 구경한다
다투고 다방 앞 계단에 쪼그려 앉은 감정,
기차를 끌고 지나가는 감정, 한쪽 눈과 발목을 잃은 감정,
공중전화 수화기로 목을 감는 감정,
그 전화 끊기며 내 청춘이 끝났다는 것도 청춘의 짓이다
아직도 얼른 나가보라고 지금도 청춘이 시킨다
지금이라도 줄을 풀라고
기차와 시외버스와 밤과 공중전화가 시킨다
여전히 청춘을 시킨다
- 김경미 -
첫댓글 ㅎㅎ
멋진 글입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