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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전에 문안가실 시간입니다.궁안의 법회도 참석하시는 날이옵니다.황후마마에게도 들려뵈야하니.."상궁이 새벽부터 그녀를 깨웠다.
상궁은 그녀의 비단같은 맨살에 해면에 향유를 축여 바르기 시작했다.무슨 향인지 상쾌했으나 코를 찡긋거리던 그녀는 탁상위에 놓여있는 속옷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속옷이 너무 많아 불편하네.폭도 넓고 길이도 기니.."
그녀가 속바지위에 풍성한 속치마들을 걸치며 나직히 불평했다.
"내가 마치 술 항아리같아보이지않나?측간에 갈때나 걸을 때도 심히 불편하고.."
"궁중법도이옵니다.한치도 어긋나셔셔셔는 안됩니다.다소 불편하셔도 익숙해지셔야지요.."
"아이이들처럼 옷을 적시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상궁의 엄한 말에 그녀는 이런 속옷들을 만든 사람은 입는 사람 고생스러운건 생각않고 치마폭만 부풀려 모양만 내려 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 좁은 속곳과 속바지위에 길고 폭넓은 겹겹의 속치마들 .. 답답한 허환진...불편한 비단예복도 모자라 무거운 머리장식...삼복더위에 속치마껴입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거기에 수벌의 속치마의 얇은 비단이 걸을 때마다 다리에 감기지않게 조심스럽게 걸어야하니 고역이었다.게다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상궁들이 의대수발을 도와주지않으면 걸칠 수가 없으니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노상궁들은 그녀의 불만을 무시하고 못들은 척 그녀가 방금입은 흰 비단속치마위에 말총을 넣어 솜같이 부푼 능라속치마를 걸쳐주며 비단허리띠를 죄어 묶었다.
"아..너무 세게 매듭짓네.숨을 못 쉬겠네."그녀가 낮은 비명을 질렀다.
"쯧쯧 ....허리가 너무 가느셔셔 속옷허리띠들을 단단히 감아 묶지 않으면 흘러내리니..."
상궁들은 들고있던 속치마를 차례로 입혀주고는 그녀의 겹겹의 비단허리띠들을 매만지며 옷 매무새를 확인하고는 예복치마를 펼쳐 입혔다.
그녀는 길고 폭넓은 비단예복을 걸치고 머리에 무거운 모란계를 올린채 한숨을 쉬었다.궁중예복의 겹겹의 속치마와 허리를 숨막힐정도로 죄어묶는 허환진,무거운 봉관과 가체는 그녀가 질색하는 것들이었다.
항상 화장이나 옷갈아입는 사소한 일부터 간병할때는 약을 먹여주고 그녀의 신변을 관리하는 시녀장이 자상하지만 때로 감시인같아 귀찮을 때도 있었다.폐하가 금하지않았어도 얹잖아할듯한 일들은 안됩니다라는 말부터하니..
"또 버선을 안 신으셨군요."
문득 보모상궁이 그녀의 비단치맛자락을 살짝 걷어보더니 잔소리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
"태후전에 문안가는데 혹시 이런 꼴을 아신다면 정숙하지 못하고 법도를 능멸한다고 불호령을 내리실수 있습니다.유모 버선을 가져오게.."
"응석받이 아기씨니..속옷입기전 버선부터 신었어야지요.."늙은 유모가 바닥에 꿇어앉아 버선을 신겨주자 그녀는 미안해하며 머뭇거렸다.
노상궁이 그녀를 품에 끌어안더니 타이르듯 말했다 .
"태후께서 마마의 몸가짐을 조신히 가지라며 보내신 예복입니다.황상께서 보시면 어여쁘시다하지않겠습니까?
늘상 이런 차림으로 성장하고 계신 윗전들에 비하면 하루쯤 불편하신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문안 갈 때마다 전쟁하는 것같아.아니 무슨 법회나 제례가 사흘이 멀다하고 이리 많아? ."
"태후께서는 맏이였던 선선황이 돌아가시자마자 남은 아들이던 선황을 잃으셨으니 마음두실 데가 달리 없으시겠지요."
"그런가?선황께서 붕어하신지 이태가 다되어가는데도?"
"다른 비빈들도 태후마마의 눈에 들려 법회나 제례에 얼마나 공을 들으는데요."
"나는 그런 귀애안받아도 좋아."그녀는 귀찮다는 듯 말했지만 봉보상궁은 타이르듯 말했다.
" 마마께서는 아기씨적에도 퍽이나 응석받이셨지요.황상께서 마마를 왕부에 계실 때 소시적부터 끔찍하게 귀애하셨는데 친오라버니도 그렇게 누이를 귀애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요.아기씨기저귀까지 갈아주었으니..황상의 등에 업혔던 사람은 지금껏 아기씨뿐입니다.그때는 무엇을 하든 어리광으로 넘어갈수 있었지만 지금은 예법에 따르셔야합니다.행여 황상을 난처하게 하면 안되지않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을 강보의 어린애처럼 다루는 상궁들과 입씨름으로 이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봉보상궁은 내심 한숨이 나왔다.
휴,이렇게 철부지 어리광장이를 언제 황후로 키운단 말인가. 황상은 언제 그녀를 황후에 봉하려는지..
방계황족이라지만 그녀의 모친은 돌아가시고 부친은 출가한지 오래된다데 갓 스물을 지난 젊은 황제는 양친이 다 돌아가셨으니 이렇다할 외척도 없었다..그때문에 태후가 그를 양자로 삼아 황위에 올린 것이다.그의 생모와 친부의 제사는 그녀를 양녀로 삼아 지내게 하고...그만큼 그들의 주변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궁안이나 조정이나 세도 배경도 없는 그들의 상황에...
그녀는 침실에서 침대에 누운채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이 다시 오르는 것같다.아마 어제오후 승마를 너무 오래 달린 것때문일것이다.땀에 흠뻑 젖어 해질녘까지 내달렸으니..
상궁이 탕약을들고 들어섰다.
"드십시요."
그녀는 잠자코 일어나 한모금들으켰으나 검은 탕약의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꿀을 좀 갇다주겠어?"
상궁이 나가자 그녀는 창가로 냉큼 다가갔다.
하지만 창문을 열기도 전에 내려진 비단 휘장이 너무 길고 거추장스럽다.
그녀가 창밖으로 약을 쏟으려는 순간 상궁의 발소리가 들렸다.
"마마 뭐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탕약도 황실의 경비이옵니다.쏟아버리시려들다니요?"
상궁이 울 것같은 얼굴의 그녀를 심하게 나무라는 찰나,그가 들어섰다.
"탕약이 써서 싫으냐?"
그가 물었다.
"짐이 먹이면 괜찮을 거다."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탕약이나 주세요."
"유모 .짐이 탕약을 먹일테니 나가보게."
"황상..."
"현아는 원래 어릴 적부터 약을 잘 못 마셔..."
상궁은 잠자코 방을 나갔다.
"남은 약을 먹으라면서 본인은 어지간히 안 먹으러든단 말이지.."
그가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궁에 들어도 소시적 버릇이 여전하구나.그러니 널 아이취급할 수 밖에..상궁들에게 꾸지람듣기전에 어서 마셔.오라버니가 먹여줘?.."
그가 그녀를 들어안아 무릎위에 올려놓자 그녀가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마시기전엔 내려놔주지않을 거란 걸 안다.어릴 적에도 자주 써먹던 수법이다.안고 놔주지 않으면 반시각만 있으면 불편하다.
그녀는 잠자코 잔을 비웠다.
"이제 놔주세요.."
후원에 노을을 보러가자.그가 그녀를 내려놓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의 유모가 엄한 모친같다면 그는 너그러운 부친같다.그래도 지난 번에 몰래 출궁하고는 크게 혼난 이래 이따금 조심스럽지 않을수 없다.
때론 사가에서 그토록 자신을 귀여워하던 육촌오라버니가 다른 사람같을 때도 있다.한결같이 다른 이들도 그녀는 예외라고들 하지만 ...
노을을 보러 나왔을 때도 그녀는 내내 뾰료통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그가 내실로 돌아와 물었다.
"그렇잖아도 상궁들이 신첩을 애취급하려든단말이어요. 아기다루듯 하는것도 아니고.."
"그대가 행동거지가 소년같으니 잔소리를 할수밖에.."
"상궁들은 .하루종일 이것도 안됩니다 저것도 안됩니다 소리만한단말이어요."
"현아 그대도 .명색이 비인데 이젠 좀 얌전해져야지..황궁은 강남과 다르잖나?"
"집에 가고 싶어요."
"바보같은 소리..안돼는 거 알잖아.이젠 황궁이 그대집이야.입궁한이상..."그녀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놀라 그녀를 안아일으켰다.
"울지마 현아..근래에 마음고생이 심했나보군.."
그가 그녀를 안아 들어 침대위에 내려놓고는 예복을 벗겼다.
"처소에서는 가체를 안해도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법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어, ?"
그가 그녀의 눈물을 모시수건으로 닦아내며 물었다.
"불경은 다 베낀거야?빨리 끝나야 네가 자유롭지,.."
"황후도 아닌데 왜 꼭 불경은 필사하라는거죠?거기에 예법을 배우라며 하루종일..."
"궁에들면 누구나 거치는 일이야.비빈도 어쨌든 짐의 아내니까..."
"신첩이 인형인가요?아침부터 밤에 자리에 누울때까지 ..옷하나걸치는 것도 이리하셔야합니다 저리하셔야합니다 아니면 안됩니다소리만듣고..."
서글프고 짜증난 눈물이 그치지가않는다.
그에게 차마 말은 못하지만 상궁들이 내내 법도운운하면서 아침에 눈뜨면 아기옷입히듯 옷부터 갈아입혀 치장시키고는 문안을 독촉했다.그리고는 하루종일 훈육상궁들에게 둘러싸여 궁중예법을 공부하고 한림학사와 수업이 끝나는대로 불경을 베끼고..때로 변방 군인들의 군복 짓는 일을거들며 바느질을하고 ..그녀가 시간을 내어 약초원에 나가거나 어서방에 들리면 줄곧 따라오며 법도가아닙니다 예복이 더러워졌네 비마마께서 그런 일을 하실 필요없습니다.몸가짐이 얌전하지못하네 어쩌네하며 귀에 못박히도록 잔소리를 해댔다.그녀가 자유로운 시간은 하루중 욕조속에 있을 때뿐이었다.욕조밖 물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그녀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그녀가 예복과 가체의 무게를 싫어해 한두번 제대로 갖춰입지않을 것을 들킨이래 그녀가 부끄럽게 여기든 수치스럽게 느끼든 상관않고 상궁들이 속치마부터 직접 갈아입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해질녁까지 엄한 부모같이 온갖 간섭을 해가며 그녀를 어린애처럼 다룬다는것도 불쾌한데다 그런 규칙이 본디 황궁에서 태어난것이 아닌 그녀에게는 번잡하기만했다.
작은 머리장식하나도 황후와 후궁의 차이가 그토록 크다는 걸 그녀는 근래에서야 알았다.
그녀가 불평이라도 하면 노상궁이 나서서 그녀에게 불호령이라도 내릴 눈치였으므로 상궁들의 기세에 눌린 그녀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서부터 잠들때까지 꼭 갓 태어난 젖먹이대하듯한단말이어요.신첩이 아기인가요? 옷입는것 치장하는 것 걷는것하나까지도..새로 배워야한다고하니.."
걷는것조차 걸음마 가르치듯하니 불쾌하기 짝이없었다.도자기를 머리에 이고 처소를 몇바퀴씩 돌면 성격이 활달하여 걸음이 빠른 그녀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대가 아직 황궁에 익숙치않아 걱정되서 그럴거야.어쨌든 황비면 내명부에서는 황후다음이잖아?"
"아니 그런데 맨발이네.. 버선은 어쩌고?"
그가 그녀의 비단치마아래 드러난 하얀맨발을 보고 물었다.
"더워서..오늘 안신었어요".
그는 쓰게 웃었다
"이러니 상궁들이 네게 잔소릴하지..그래 천하의 말괄량이가 짐때문에 황궁에서 사느라 고생이 많다.."
그는 상소문을 뒤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언관들이 태후일가의 축재가 지나치다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늙은 태후와 그 일가의 탐욕과 권력욕은 조정에서도 말썽,궁안에서도 골치였다.
유모가 문득 차를 올렸다.
"황상,.안색이 안좋으십니다."
"괜찮네...조정이 시끄러운건 어제 오늘일이 아니잖은가?
그런데 내궁은 좀 조용한건가?"
"어찌 조용하겠습니까?천하의 말괄량이가 평안궁에 들었는데요?"
"또 태후전에서 혼났나?현아가 태후에게 말대꾸했어 ?아니면 황후에게 대들었나?"
"태후께서 차마시는데 비빈들을 부르셨는데 적적하시다며 글솜씨를 보자고 명하셔셔 시작을 하는데 그집안의 축재를 비꼬는 뜻이 너무 분명하여..총명하긴하지만 자중하셔야합니다."
"현아 단속좀 하라고했잖아.궁안에 사는데 궁밖사정은 왜 이리 밝아?저잣거리 쌀값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
"나비처럼 빠져나가는데 어찌 말리겠습니까?"
"그러니까 애 좀 잘 보라고 했잖아.그 말괄량이가 무슨 말썽을 부릴지..'"
"강보에 싸인 아기도 아닌데 제가 어찌 마마의 모든 걸 간섭할수 있겠습니까?제가 종일 수업에 붙어있는데도 아기씨가 법도에 익숙해지시려면 한참 걸리겠습니다. "
"저같은 늙은이가 새같은 마마 걸음을 따라가려면 날다시피해도 못따라갑니다.소관자나 시녀애들에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틈만나면 수업이나 필사를 팽개치고 말없이 궁밖으로 나다니시니...태후전에서 알면 불호령을 내릴텐데. ..황상께서 회초리라도 들어야할까요?"
그가 멈칫해 물었다.
"아직 어리잖은가..자네가 현아한테 너무 엄한게 아닌가?궁에 든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제약이 많아 죽기보다 힘들어하지 않나?"
"빨리 익숙해지시는 방법밖에 없나이다."
"예법을 가르치는 훈육상궁들 대신 제가 마마를 떠맡았으니 황상이나 사가에서처럼 응석만 받아주시면 가르칠 게 없으십니다."
"아니면 막내공주를 키우던 훈육상궁을 불러올까요.?황상께서 말씀하시지않았나이까?"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화가 나서 겁주려고 한 말이었고..말썽꾸러기에 말괄량이지만 ..현아 말라죽는 꼴 보고싶진 않네."
"태후마마가 보낸 상궁들도 다 내쫓으시고 궁의 노상궁들도 달가와않으시니 저라도 현비마마를 제대로 가르쳐야 않겠나이까?아마 소인도 내후년쯤 출궁해야할것같으니.."
"아닐세.상궁들중에 내사람이 없으니 최대한 궁에 머물러 현아를 돌봐주게.죽은 황형의 보모상궁도 골골하니.."
"비마마를 오냐오냐하시는 게 만사형통이 아닙니다.황상께서 아기씨를 끔찍히 귀애하신다는 건 잘 알지만...
훗날 황후로 세우시려면 품성을 닦아야하지않겠습니까? 내궁을 주관하고 다스려야하는데 외명부는 고사하고 내명부들조차 마마를 업신여기면 곤란하지않겠습니까?권세가의 뒷배경도 없으니.."
문득 그는 차를 가져오던 유모를 돌아보았다.
"내마음을 알고 있었나?"
"왜 모르겠나이까?황상께서는 오직 현아 아기씨한 사람이었는데..황후전과도 소원하시니...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시지만...너무 박대하시지않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기일에는 가보기는 하네..국구때문이 아니더라도 서로 불편할 수 밖에없으니.."
"아기씨를 아니 마마를 총애하면 할수록 황후전에서 못마땅해하실 겁니다. 이미 궁밖에까지 소문난 일이니..
황상께서 자애로운 아비같으시니...저라도 엄한 어미노릇을 해야겠지요. 황상께서 귀비마마께 엄히 대하신다면 제가 너그럽게 대하겠습니다..."
"됐네..알았네.."
"마마같은 말괄량이가 황궁에 든 적이 없습니다.몸은 병약하신데..왜이리 활달하신건지.."
"이미 입궁했는 걸 어쩌겠나..짐이 어린시절부터 말타기며 활쏘기며 나무타기까지.. 그런 걸 가르쳤는 걸..."
"마마가 수업을 끝내려면 한참 걸리겠습니다. 법도에 매이는 걸 그리 싫어하시니.."
"현아가 어릴 적부터 구속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또 멋대로 없어지다니..도대체 어딜 나다니는거야..그는 화가 나서 읽고있던 상소문을 서탁위에 내던졌다.
또 어디가서 무슨 말썽을 부리려고...입궁했으면 궁중의 법도를 따라야지..언제까지 아이인줄아나?
그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를 입궁시킨게 잘못이었다. 하지만 출궁도 그도 그녀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돌이킬 수가 없었다.
문득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는 그가 시야에 들어오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앉았다.잠이 깨버린 것이 분명했다.
"깼느냐?"
"나다.. 오라버니다.."
그가 조용히 물었지만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 대답도 않았다.
그녀를 사랑하든 않든 권력이 크든 작든 어쨌든 그는 황제였다.
"제가 언제 온건가요?"그녀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식경쯤 됐어.."
"자소선사가 절 데려가라고 한 건가요?"
"네가 깨면 데려가라는 걸 소관자가 업어왔다.태후나 황후전에서 네가 출궁한 걸 눈치채기 전에 데려와야지.."
어떻게 아셨어요.오라버니?"
"이 넓은 대도에 너가 갈 곳이 거기밖에 더 있느냐? 당장 강남으로 가진 못할거고..소관자를 시켜 쫓아보냈더니 자소선사 방에서 자고 있었다며..?"
"도대체 어떻게 출궁한거냐? 황궁문에서는 아무도 널 본 사람이 없다는데..?남장이라도 하고 나간 거냐?"
"후궁이 허락없이 출궁하면 법도에 따라 처벌받는 거 알잖아...태후전에서 알면..끌려가서 자리보존하도록 매맞고 싶니? 가뜩이나 널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태후전에서 꾸지람 한 번 들었다고 그렇게 멋대로 궁을 나가버리면 어떻하느냐? 유모에게 다 들었다. 네가 방계황족출신인데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네 어쨌네야단쳤다며..그러길래 약점 잡히지 말라고 했잖아..남들은 다 불편해도 참고 지내는데 왜 그대만 법도를 그리 못 참겠다고 하는 거냐? ".
"궁은 어떻게 나간거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위협적으로 캐물었다.
"대답안할 할거야? 볼기라도 쳐야 말할래? 정말 짐에게 혼나볼래?" 그가 화가 난 듯 그녀를 낚아채려들자 그녀가 자지러지며 소리치듯 말했다.
"말 하면 화 안 낼건가요?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품에 안으며 그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출궁한거야? 월담이라도 했나? 황궁은 담이 높은데.."
"후원에서 궁밖으로 가지뻗은 나무를 타고 담을 넘었어요.."
"뭐? 여자아이가..? 더구나 그런 옷차림으로..?가지가 부러지거나 나무에서 떨어졌으면 그대는 크게 다쳤을 거다.담을 넘어도 황궁담이 높은데 어떻게 내려갔어?"그가 놀라 물었다.
"담을 둘러싼 연못에 떨어져서..헤엄은 치니까.."
"궁을 감싸는 연못은 깊어 ..물에 빠져 죽으면 어쩌려고..?"
"다 오라버니가 어렸을 때 가르쳐준거잖아요? 헤엄치는 거나 나무타기하는 거나.."
그는 대경하여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자소선사에게 간거야? 명색이 황비인데 체통을 생각해야지?"
"옷도 월이옷인데요 뭐.."그러고보니 그녀는 황비의 예복이 아니라 평범한 궁녀의 옷차림이었다. 월이가 그녀가 보이지않는다고 울면서 달려왔을 때 이미 일부러 몰래 바꿔입고 나간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그냥 하급궁녀쯤 생각했나보다.
"그렇게 황궁이 싫으냐?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얌전해지게되면 그땐 데리고 가주마..그때까진 그대는 꼼짝말고 황궁에 머물러야해.."
"그때가 언젠데요? 전 황비따위 원치 않아요.."그는 한숨을 쉬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권력투쟁의 와중의 황궁에서 그녀같은 명문의 배경없는 비빈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지푸라기같은 목숨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외엔 다른 비빈이 없다.그리고 그녀는 그의 6촌누이였으므로 그의 지위에 기댈수밖에 없었다.
"그대도 이제 열다섯살이야.이젠 여기가 그대집이야..철이 좀 나야지.."
"짐을 걱정시켰으니 ..벌로 사흘은 처소에만 머물거라..처소에서도 이제 얌전히 있어야해.."
"오라버니.."그녀가 응석섞인 애원을 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상궁들을 붙여놔야놔야 몰래 빠져나가지 못하지..또 나무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정말 냉궁에 갇혀볼래? 이 말괄량이 버릇고치려면.."
그녀는 질급하여 고개를 저었다.그녀도 냉궁에 갇히면 빠져나가기를 못할거란 건 아나보다.
그녀가 훌쩍이는 걸 모시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그는 타이르듯 말했다.
"좀 얌전해져봐..그럼 황궁에서 살기 훨씬 수월해...짐도 속이 덜 썩고.."
"시녀들에게 목욕물데우라고 일렀으니 씻고 문안다녀와..네가 출궁한 건 소관자와 월이외엔 아무도 몰라..어서방에서 나와 논어를 얘기하다 하룻밤 보냈다고 상궁들에게 일렀으니..태후가 이일을 알면 회초리를 맞았을 거다.그 늙은이한테 트집잡히지 말아야지...조만간 관에 들어갈 건데 ...언제까지 널 괴롭히진 않을 거아냐?"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광만 받아주며 길렀더니 응석받이가 되서...
그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현아, "그가 처소로 들어오더니 웃으며 월이에게 보자기를 건냈다.
"같이 마장에 가자. 석강경연이 끝났으니 노을을 보러 가는게 어떻겠느냐?"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서 금위병옷을 가져왔다. 네 처소엔 남자옷이라곤 없으니까..갈아입어.
하룻동안 이러고 있으니 죽을 맛이지?"
그녀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빙긋 웃었다.
이런 차림으로는 말탈 엄두도 나지않는다는 걸 그도 모르진 않을 거다. 그는 그녀의 근신을 풀어준 것이다.
"황상, 현비께서 이런 남복을 입으신다는 것은..?"같이 말을 타시려면 귀비께서는 뒤에 따르셔야하고 따로 말고삐를 잡아줄 사람이 있어야.."훈육상궁들이 또 불평했다.
"귀비가 몸이 병약하고 우울하니 내가 잠시 데려가겠네..병나는 것보단 낫지않는가? 이런 사소한 일도 황명을 내세워야하는가?저녁은 다녀와서 같이 들겠다."그가 시녀들에게 일렀다.
문득 그가 상궁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대들이 지극정성으로 현비를 잘 돌보는 건 짐이 몹시 고마운데..아상궁은 며칠동안 기침하는 것을 보니 무슨 폐병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왕상궁자네는 또 낯빛이 좋지 않은데 너무 피곤해하는 거 아닌가?그만 출궁해서 쉬는 편이 나을 듯 싶네..은자를 후히 내릴터이니..현비가 몸도 약한테 ..그대들에게서 병이라도 옮으면 어쩌겠는가..? 현비는 황은을 입은 몸인데..소관자에게 성지를 내리겠네.."
"황상,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나서려했지만 상궁들은 질겁하여 무릎을 끓었다.
"황상, 오해십니다..다만 신첩들이 늙었으니.."
"아닐세..거의 50년동안 황궁에서 많은 황자와 공주들을 길렀으니..쉴때도 되지않았나..현비가 자네들이 키운 마지막 공주아기나 다름없군...현비도 이젠 황궁에 좀 익숙해질때가 되었으니..더는 자네들이 필요없을 듯하네..봉보부인처럼 젖을 먹이는 것도 아니잖은가..자네들이 아니어도 보모상궁도 있으니 더 수고하지 않아도 될 듯하네.."
그리고 그는 한마디 덧 붙였다.
"사흘후 짐이 다시 돌아올때까지 여장을 꾸리고 준비를 갖추기바라네..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편히 쉬어야지.."
황망한 얼굴의 그들을 남기고 그는 그녀를 말에 태우고 궁을 나갔다.
"엷은 초록빛도 잘 어울리는구나.견습금위병같군.."
"드디어 그들을 내쫓으려고 결정한 건가요?"
"현아가 졸라대지않았느냐?그댈 들볶았기때문에 내쫓는 것만이 아니야..태후전의 사람들이니 내보내야지..그대와 나의 일을 탐문해서 고자질할테니..그들 대신 내 유모의 조카들을 보내주마..그들도 궁중에서 상궁으로 있거든..훨씬 지내기 나을거야..꽉 막힌 늙은이들보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황상.."그녀가 장난기있게 말하자 그는 웃었다.
"망극한 줄 알면 다시 나무타기는 하지마라..몰래 출궁하거나..어쨌밤은 그대가 감기기가 있는 것같아 더 야단치진 않았지만 ..다시 말썽부리면 그땐 짐의 손이 매운 걸 깨닫게 해줄테다."
"네?"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그가 위협하듯 대답했다.
"현아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퉁퉁 붓도록 두들겨줄테니..속치마껴입는다고 소용있을 줄알아?."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그가 날 때린다고?그대가 울면 난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황상께서 후궁의 볼기를 치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나이다."
"짐에게 한대라도 맞는 날엔 말등에 못 올라타..약간이라도 둔부가 부었을때 안장에 스치면 굉장히 아프니까..어혈풀리는 약을 매일 마신다고 그렇게 빨리 가라앉는 줄알아..?멀쩡한 사람도 연습않고 갑자기 말을 타면 둔부가 퉁퉁부어...그대는 거의 매일 말을 타니 모르나본데 ..그래서 평소에 말을 타지않는 사람들은 타도 오래 못 버티고 금방 지치고 몸이 아프다고 하는거야..말은 예민하니까..사람은 감추고 있어도 탄 사람이 어디가 불편한지 다 알아챈다고..그렇다고 짐에게 혼나면 다쳤다고 보모상궁에게 돌봐달라고 할수도 없잖은가..명색이 황비인데 ...아이도 아닌데.."
그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경고하듯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니까 제발 좀 얌전하게 있거라, 우리 현아..."그가 달리는 말위에서 그녀의 나부끼는 머리칼에 입맞추며 나직히 말했다.
"그 고운 얼굴이 매일같이 울어대면 쓰겠느냐?짐은 네가 아기적에도 우는게 싫었다.하루가 머다하고 방에 갇혀 불경이나 효경베끼는 것도 보기싫고.."
"매일은 아니어요,"그녀는 서글프게 대답했다.
"한달에 몇번씩 베껴쓰고있잖아 .그대가 비구니도 아니고..한림학사도 아닌데..대체 궁에 들어 이제껏 뭐하는거냐?"
그녀는 할 말이 없어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그 상궁들에게 약점잡히지말고 태후에게 말대꾸도 말았어야지..짐이 아니었으면 벌써 여러번 크게 혼났을거다.벌받느라 몸이 남아났겠어?"
"그러길래 누가 입궁시켜달래요?황궁 깊은 곳에 가두고 하루종일 법도.,법도를 부르짖는 상궁들과 한림학사와 공부만 하라니.? "
"그래.다 내가 잘못했다 ."그는 한숨을쉬며 말했다.
"그 상궁들은 공주들도 그렇게 대하나요?"
"신분의 고하가 없어..물론 그대가 황족의 공주면 그정도로 엄격하진 않았겠지..황실의 양육이 엄격하기도 하지만..그이들도 책임이 중하니..잘못양육하면 중벌을 면치 못하니까..작은 일 하나에도 신경을 썼겠지..황형도 황녀들도 무서워한다더군.어렸을 때도 엄격해서...그렇게보면 죽은 사촌 황형은 참불쌍한 사람이야..낳아준사람이나 키워준사람들조차...차고 엄격하기만했지 사람같은 따스한데가 전혀 없었으니..가르친대로 않으면 벌주고 이를줄만 알았지 감싸주거나 주위에 온기있는 사람이 전혀..없었으니..그대보모상궁이 형을 길러준 유모인데 그 중 좀 낫지..기저귀부터 갈아주며 젖먹여길렀으니..어미보다 정이 있었나봐.황형이 죽었을때 형수만큼 통곡하더군...신분은 면천된 천인 출신이니 높지 못해도.."
그녀도 몸이 골골해서 조만간 출궁해야할텐데.."
그녀는 항상 속옷수발을 해주는 보모상궁을 생각하고 문득 말했다.그래서 법도에 철저한 훈육상궁들보다 항상 응석을 받아주는 거였나?
그녀가 속치마를 한 두벌 안껴입거나 버선을 안신어도 못본척 했었다.
그녀가 불경을 베낄때 졸고 있으면 예법을 가르치는 훈육상궁들은 불호령을 내렸지만 그녀는 붓에 물을 적셔 그녀의 얼굴에 떨어뜨렸다.
"아상궁이나 왕상궁이 보면 어쩌시려 이러십니까?'"
"가체를 좀간단히 올려드리지요 마마께서 힘들어하시니..황상께서 마마의 목이 부러질까 걱정된다하셨습니다.'"그리고는 온갖 비녀와 노리개를 꽂는 상궁들과달리 옥비녀하나만 꽂아주곤했다
"움직일만하신가요?'
그녀가 처음 후원의 나무에 올라간건 보고는 질급하며 걱정했다.
"마마께서 다치면 시녀아이들이 매를 맞습니다.마마도 방에 갇힐지 몰라요.비빈마마답지 못하시다고...벌은 받으실수 도 있어요..저이들은 절대 자신들이 문책당할 일은 피하는 이들입니다....'"
명문출신의 궁의 상궁들과달리 천민출신인만큼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한다하여 은근히 질시를 받는 나이어린 비빈인 그녀의 처지를 은근히 동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나마 보모상궁도 출궁당하면..."
"그대가 이젠 아랫것들을 휘어잡아야해..궁에 든지 꽤 시간이 지났잖아..
그러니 그전에 황궁법도에 익숙해져야지..자꾸 말썽부려서 사단내지말고..훈육상궁들이 금이야옥이야 키우던 평안궁의 공주도 항상 아기는 아닐거 아닌가?"
"아기가 비빈으로 입궁한 적도 있나요?"
그녀가 투덜거렸다.
"선대에 태자비나 황후가 될 어린 소녀를 황태후나 현 황후가 궁중에서 키워 교육시키기도 했지."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추며 타이르듯말했다.
"그대는 어찌보면 참 행복했던 거야 ..내이모나 부친에게 그토록 사랑받고 금지옥엽으로 자라서 조모나 유모,짐이 어린시절에도 끔찍하게 귀여워했지..그토록 사랑받는 아기를 여태껏 보지못했다.어머니나 짐이나 출가한 스승님과 약속한대로 그대를 키웠으니...이젠 황궁에 들어도 짐까지 이토록 애지중지하니...그래서 이리 고집센 말괄량이에 말썽꾸러기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어린 시절 그가 그녀를 업어키웠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어나 .현아 문안갈 시간이야,"
그가 침상에 잠들어있는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그가 그녀의 손에서 침향으로 만든 빗을 빼앗더니 그녀의 긴 머리채를 썩썩 빗기기 시작했다.
"아파요,오라버니,살살 빗기세요."
"매일 빗는데도 엉키는구나.서둘러 ...태후전에 문안가는데 늦겠다."
그녀가 재빨리 손을 움직여 머리채를 감아 틀어올렸다. 숱이 많은 그녀는 가체를 안 쓰고도 비슷하게 모양을 내는 재주가 있었다.두세군데 떨잠을 꽂아 고정시키자 검은 머리아래 감춰졌던 하얀 등이 드러났다.매끄러운 진주같은 살결위에 흘러내린 그녀의 세개의 허환진의 끈을 그가 한번에 힘껏 당겨 묶으려들었다..
"오라버니 숨을 못쉬겠어요.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요."
그녀가 낮은 비명을 지르자 그가 웃으며 조인 매듭을 다시 풀었다.그는 그녀의 옷갈아입는 시중을 들며 장난치는 걸 즐겼다.
"현아는 너무 말랐어.조비연같으니.."
그가 첫번째 속치마를 허리보다 높게 걸쳐입혀주곤 끈을 당겨묶었다.이내 두번째 속치마를 걸쳐주자 그녀가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너무 높아요.그렇게 갈비뼈바로 아래 끈을 겹쳐 묶으면 숨을 못쉬겠어요."
"더 내려걸쳐주면 속치마자락이 서로 엉켜 밟고 넘어질것같은데?아랫배에라도 끈을 묶어줘야하나?"
그녀는 서둘러 치마끈을 당기며 속치마의 주름을 손으로 쓸어내렸다.흰 치맛단아래 그녀의 하얀 가는 발목과 명주 속바지의 바지단이 살짝 드러났다.
그가 드러난 맨발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했다.
"버선을 신어야지.덥다고 맨발로 다니다가는 상궁들한테 잔소리듣는다."
그녀가 치마단에 말총을 넣어 짠 속치마자락을 끌어당겨 펼치자 그가 등뒤에서 가는 허리띠를 가로채 묶었다.
"오라버니 살살 당기세요.. "그녀가 낮게 불평했다.
그는 하나하나 그녀의 의대수발을 도와주고는 그녀가 이내 열두층의 비단치맛단을 단 선군위에 봉황과 구름을 수놓은 열두폭치마를 걸치려들자 그가 냉큼 흰 비단허리띠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오라버니,상궁을 부르겠어요.여인의 의대수발은 황상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치마가 기니 ..흘러내리지않게 띠를 단단히 매줘야하잖아.넘어지기라도하면 .. 대례복도 아닌데 무슨 속치마가 이리 겹겹인거냐?" 그가 짓궇게 층층히 매듭이 감긴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슬며시 어루만졌다.등뒤에 는 세개의 매듭이 허리뒤에는 세겹의 허리띠가 양 허리옆에 붉은 치마를 당긴 매듭이 만져졌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사내가 매는 매듭이 상궁둘이 몸맵시를 내려고 조이는 것보다 더하다.
"네 속옷의 비단끈이나 허리띠들이 짐의 갑주같다.인형도 아닌데 항상 예복을 걸쳐여하니.."
석류빛비단치마위에 그가 짧은 비취빛 저고리를 입혀주며 중얼거렸다.
"오라버니는 상궁들보다 더하세요.." 진귀한 인형에 새옷입히듯하는 사람이 누군데?
"황비인데 법도를 잘 따라야지..그래도 상궁들처럼 막무가내는 않잖아."
그나마 상궁들처럼 치장까지 간섭하지않는게 다행이었다..봉황의 뒷자락처럼 치마를 부풀리기위해 열두폭봉황군 치마아래 껴입은 속치마가 답답했다.치마의 긴뒷자락을 첩첩의 속치마들 없이는 떠받칠 수가 없다.아니 그가 겹겹의 허리띠들을 너무 세게 묶었나보다.궁중의 저고리는 민간의 것보다 짦아 그녀의 가는 허리를 드러냈다.하지만 저고리아래 비빈들이 걸치는 허환진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웃으며 그녀의 재촉에 병풍밖으로 나왔다.
기다리던 지밀상궁이 봉황을 수놓은 짙은 푸른 배자를 들고 황망히 들어섰다.
"또 황상과 같이 왔구료."
시녀에게 머리를 빗기게하고 있던 태후는 젊은 황제와 현비가 들어서는 걸보더니 말했다.
"어젯밤도 현비처소에서 지내신 거요?"
다소 불편한 듯 그녀가 물었다.
"현비가 몸이 좋지 않아서요.편히 쉬셨는지요.?"
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비 꿇어앉지말라고 했지않느냐?"
상궁들이 다가가 부축하기도전에 젊은 황제가 냉큼 그의 비를 일으켰다.
"현비,예법수업은 제대로 하고 있는거냐?"
"네..마마.."
"훈육상궁들 말을 들어보니 자주 꾀를 부린다던데?
아이들처럼 놀이를 좋아한다며?"
"놀이라니요?"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궁에 무슨 놀이가 있어.후궁들끼리 왕래도 없는데...
"수업을 배울 시간에 후원에서 노느라 자주 늦는다더군.
아무리 놀이가 좋아도 수업이 끝나고 놀아야지..본궁이 내린 책으로 황궁법도를 따분해도 열심히 배워야할거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누군가 또 일러바쳤군.아마 훈육상궁들이겠지...
"상궁들이 궁안밖으로 상전을 찾으러 다니게하면 안된다."
태후는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
"받거라."
옆의 상궁이 그녀에게 웬 나무상자를 건냈다.
"열어보거라."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조각을 짜맞추는 장난감과 인형들이었다.
"황궁생활이 엄격하고 따분한 줄은 안다.처소에서 무료하면 이것들이라도 가지고놀며 시간을 보내거라.인자한 황후처럼 본궁도 놀잇감은 충분히 보내줄테니.."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분했지만 허리를 굽히며 절했다.
"황감하옵니다."
그녀를 아이취급하며 비웃는 것이다.
"훈육상궁들을 돌려보내고 현비의 교사들을 바꿔볼까합니다.학생이 진전이 없으면 가르치는 교사들의 책임도 있으니..짐이 새로 가르칠 사람을 뽑았습니다."
곁에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좋을대로 하시구료."
"황후는 다녀갔는지요?다른 비빈들은.."그가 입을 열었다.
"황후가 몸이 안좋아 오지 못했소.두통이 심하다하니..모두 문안후 황후전에 돌보러갔소."
"현비 .황후에게 병문안가보아라.아니 짐과 같이 들리자꾸나."그가 태후에게서 빠져나갈 핑계를 찾았다.
"황상은 국사에 바쁘니 현비혼자 가보거라."
그녀는 절을 하고 물러났다.
물론 황후는 그가 그녀와 같이 있는걸보면 두통이 더 심해질것이다.
"황상이 현비를 귀애하는게 도가 좀 지나친게 아니요?"
태후가 문득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그가 얹잖은 듯 물었다.
"현비가 궁중법도에 서툰것이 황상이 항상 감싸고 편애하니..현비가 법도를 가볍게 여기는게 아니요?"
"장중보옥 애지중지 금지옥엽 궁안에서 떠드는 소리가 이러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오?"
"틀리지않습니다.글자그대로 왕부에서 짐이 그렇게 키웠습니다.어머님과 사촌자매셨던 이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셔 제게 임종시 부탁하셨습니다.현비는 짐에게 일개 비빈이 아닙니다.또한 짐의 사부님의 딸이니 은혜에 보답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장부의 도리아니겠습니까?"
그는 꺼리낌없이 대답했다.
"현비는 내명부에서 황후다음의 위치이니 어리지만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서는 안될거요.사가에서처럼 오냐오냐하듯 길러 철없는 응석받이로 만들지마시오."
태후는 한숨을 쉬며 충고하듯 말했다.
"현비가 어리광이 심하긴하지만 정사에 관여하거나 축재와는 거리가 멉니다.여인의 도리를 잊지는 않습니다."
태후는 잠시 할말이 없었다.황후집안의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를 비꼬는 말이다.
" 후궁에 미인들이 가득한데도 황상은 오직 현비 한사람만 찾으니...다른 비빈들은 황상의 얼굴본지도 오래되어 용안을 잊겠다더군.황후부터 한달에 겨우 한두번 찾으시니..."
"황후를 위로하러가봐야겠군요.이만..."
태후는 황상이 나가자 한숨을 쉬었다.
"태후마마 너무 심려마시지요.합궁은 않으시는 듯합니다.
아직 현비마마가 합궁하기에는 어리지 않습니까?겨우 초경을 치른 나이니..."
곁의 궁인하나가 낮게 입을 열었다.
"초경을 치렀으면 언제든 회임이 가능하다는 얘기지...하지만 남녀의 정사는 아직 모를 나이니..."
"황상께서 현비마마를 밤마다 아이재우듯 한답니다."
"아직 어린애지.현비는 철이 없어 사내의 양물만 보아도 기겁을 할것이다.그전에 황후가 빨리 회임을 해야할건데......"
그녀는 긴 한숨을 쉬었다.황후와는 합궁도 않는 황상인데
그의 외사촌누이라지만 그녀를 애지중지하는 것도 정도껏해야지 ...황태자를 낳은 것도 아닌데 황제가 그녀를 대하는 것을 보면 비빈이 아니라 꼭 아비가 강보의 금지옥엽을 키우는 듯하다. 금림이나 어원의 마장에서 말을 태워줄뿐만 아니라 탕약먹이는 것이나 의대수발을 도와주는 것이나..상궁들의 속삭이는 말이 당연히 태후에게도 들려왔다.간혹 황궁법도를 어겼다고 야단이라도치고나면 사촌누이가 울어대느라 그가 달래기가 더 바쁘다지...쩔쩔매며 어르고 빌고 안고..
한참 나이의 황제가 수명의 후궁들중에서 오직 한 명의 비만을 총애하니 후궁의 장중보옥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다.그것도 아직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인 아이를...
젊은 황제는 육촌누이의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니 혈기를 감당할수가 없었다.
"아직 안 갔느냐?같이 가자꾸나."
그녀는 태후전의 문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윗전들에게 문안드리러 다니는 건 항상 첩실이라는 신분을 상기시키니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그녀는 최대한 짧게 대면하러들었기에 다른 비빈들을 만나는 시간도 별로 없었다.이따금 핑계를 대고 빼먹기도 했다.
문제는 황제가 항상 두둔을 해서 눈총받는 것이다.
황후는 두통을 핑계로 누워있었다.황제가 침실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았지만 그의 뒤에 따라온
현비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후궁들은 침대발치에 서서 그를 보고 허리를 굽혔지만 황후는 앉은채 남편을 맞았다.
"국사가 바쁘실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몸은 어떻소?"
"좀 괜찮아졌습니다."
그녀는 현비와 후궁들을 돌아보고는 이내 쌀쌀맞게 명했다.
"문안은 그만 되었으니 모두 물러들가게."
"현비가 차를 달이겠다는데.."
"그만 되었으니 돌아들가게.황상과 내외간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황상의 적처가 첩들에게 물러가라고들 않는가?."
황후는 후궁들에게 위세를 부리듯 다소 언성을 높였다.방안에 모인 세네명의 명문대가출신의 여식들인 후궁들이 순간 얼굴이 굳더니 방을 나갔다.
그역시 마음이 편치않았다.보나마나 자신을 멀리 한다는 불평이겠지..
첫댓글 황궁밖에서 자라서 황궁으로들어가 엄청고생을하네요 그래도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