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과 생활하며 2003년부터 육식 안 해
달라이라마에 감화…심우도 소재 영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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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소와 함께 떠나는 여행’ 시사회를 위해 서울 조계사를 찾은 임순례 감독과‘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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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조계사에 오자마자 소 ‘먹보’부터 찾았다. 밤공기가 찬 탓일까. ‘먹보’는 본 척 만 척 그대로 얼어있다. 잘 있었냐는 임순례 영화감독의 말이 머쓱해 달아났다. 임 감독은 촬영이 끝났다고 모른 채 한다며 눈치를 쏘지만 ‘먹보’는 무덤덤했다. 지난 10월 30일 영화 ‘소와 함께 하는 여행’ 시사회를 위해 조계사를 찾은 임 감독을 만났다.
그는 티베트 불교에 깊이 빠져있었다. 달라이라마를 존경하고 그의 법문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고. 달라이라마와 관련된 책을 읽고 세 차례 다람살라를 방문, 달라이라마를 친견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직을 수락한 것도, 중국의 티베트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프리티벳’운동에 적극 나선 것도 이쯤이다. 카라는 반려동물 입양, 동물학대 방지, 반려동물식용금지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생명존중을 실천하고 있는 단체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모든 깨달음이란 지혜는 실천으로 완성된다고 하셨어요. 아무리 깨달아도 실천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깨달음이 아니라는 거죠.”
인상 깊었던 일이 또 있다. 바로 티베트의 불살생 생활화다. 한국 불자들은 불자라서 고기를 덜 먹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과 달리 생명에 대한 존중이 특별하진 않다. 여기서 임 감독은 티베트 불교의 실상을 떠올렸다. 봄에 쟁기질을 할 때 날에 미물들이 잘려 죽을까 3일간 불경을 읽는 티베트 불자 얘기를 들었을 땐 놀랐다고. 티베트 불자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 일이 파리 끈끈이, 모기 잡는 전깃불이란 얘기도 들었다.
“다람살라에서 본 티베트 불교에서 생명을 대하는 모습은 사뭇 달랐어요. 불교가 전생과 윤회를 강조합니다. 티베트 불교는 하찮은 미물, 파리든 모기든 전생엔 부모, 형제, 친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생명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겁니다. 반면 한국은 일단 개식용을 하다 보니 개나 반려동물을 책임 없이 기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게 시작된 임 감독의 동물보호운동은 초복엔 개식용 반대 시위, 말복엔 처참하게 죽은 개를 위한 위령제로 이어졌다. 사실 그의 남다른 동물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양평에서 유기견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당연히 육식은 하지 않는다. 2003년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달걀과 유제품은 먹는 이른바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다. 반려동물을 잃고 수소문하던 친구가 서울 경동시장 개소주 골목에서 철망에 꾸역꾸역 갇힌 개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채식을 시작했다. 그곳엔 온갖 종류의 애완견도 있었다고. 문득 임 감독도 깨달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개도 누군가의 음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채식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채식이 생명평화를 몸소 실천하는 적극적인 행위임에 두말없이 동의했다.
“동물과 인간의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차별 없는 마음과 동물에 대한 자비심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식용목적으로 사육되는 농장 동물의 경우 환경이 너무 열악해요. 모든 사람이 다 채식을 할 순 없지만 육식을 줄여나갈 수는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 가축이지만 돼지나 소 등 동물을 키우다 보면 모두 똑같이 소중한 생명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11월 4일 개봉한 영화 ‘소와 함께~’를 찍으면서도 소 ‘먹보’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앉기 싫을 때 억지로 앉히지 않고 2~3시간은 기다렸다. 인간이나 동물 등 모든 생명은 다르지 않다는 장면도 목격했다. 우시장에 팔려가는 장면을 찍을 때 소 ‘먹보’가 실제 팔려간 줄 알고 구슬프게 울었단다.
이 생생한 모습은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그의 동물 사랑은 현재 제작 중인 동물 보호 옴니버스 영화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총지휘로 이어졌다.
임 감독은 ‘소와 함께~’를 “일체유심조”란 한 마디 말로 함축했다. ‘소와 함께~’는 홧김에 소를 팔러 나온 노총각 시인 선호, 7년 만에 느닷없이 찾아온 옛 애인 현수, 의뭉스러운 소 한수의 사연 많은 7박 8일 여행을 다룬 영화다.
“고통, 망상, 집착, 원망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죠. 극중 ‘맙소사’를 태우며 선호는 집착을 없앱니다. 엄격히 말하면 불교영화에요. 대중영화에서 불교를 담아내기 위해 남녀 간 로맨스가 덧칠해진 거예요.”
절이나 명상 등 불교 수행을 많이 못해 아쉽지만 달라이라마를 기회 닿는 대로 친견하겠다는 임순례 감독. 불교에선 진면목을 상징하는 소와 함께 돌아온 그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