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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감자에게 가까이 와서 다른 수감자를 번역하도록 요청하다.
2016, 리넨에 유채, 74”x74″ / Hayv Kahraman
추적자(追跡者)-19
14.
“여기. 자! 제임스. 이것을 읽어보게. 제니가 써 준 글씨들이야. 그때는 겨우 배워 읽었는데, 지금은 읽지 못하겠네. 다 잊어버렸다고 내가 말했지?”
엘리자벳은 ‘그것 봐. 내가 한국 글을 배운 것은 맞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엘리자벳이 내민 종이는 옅은 회색 종이였으며 작은 시집 크기였다. 비닐 같은 부드러운 것을 종이 밑에대고 쓴 듯 글씨는 새겨져 쓰여 있었다. 나는 그 글씨를 읽으며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Good morning). 감사합니다. (Thank you or Thank you so much).’ 여기까지는 좋았다. 별 문제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문장이었다. 다만, 그 때의 분위기를 느끼게 되었다는 감회가 나를 들뜨게 하였다.
‘저는 한국에서 온 박인혜입니다. (Myname is In-Hae Park came from Korea).’ 세 문장. 6 줄이종이 한 장을 채웠다. 그녀는 분명히 Korea 라고 하였다.
그때의 한국은 대외적으로 하나의 고려.Korea 였었다. North 혹은 South 가 아니었다.
없었다. 오직 하나였다. 맞다. 그녀는 그들이 만들어지기 그 전에 한국을 떠났었다. 박인혜.
박인혜였다. 마미의 어머니를 박인혜로 단정해도 좋았다. 박인혜. 이제 이 사건이 지금부터 해결의 시작을 한 것이다. 나는 잡고 있던 종이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다음 장에는 같은 문장의 반복이었다.
“제니가 나에게 가끔 한국말을 이렇게 써서는 다시 영어로 써서 배우도록 해 주었지만, 제니가 없어진 후 쓸데가 없었으니 다 잊어버렸지. ‘안녕하세요’‘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하는 말은 제니가 생각날 때면 혼자 했던 말이라서 기억할 수가 있었던 거야.”
“엘리자벳. 방금 제니가 없어졌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제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의미인가요?”
“맞아. 내가 그렇게 말하였지. 아직까지 제니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있어. 때론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 나에게는 어디로 간다고 말해 주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없어졌어. 발리듀에 스탁톤 씨에게 물어봤지만, 집을 나갔다는 말만 들었네. 발리듀에 씨도 제니를 좋아해서 잘 보살펴 주었는데… 그가 죽고 나서는 아들 홀스 스탁톤 씨와는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으니 더 이상 행방을 알 수가 없었네. 나는 그 홀스를 좋아하지 않아. 제니가 그랬기에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왜, 제니는 홀스 스탁톤 씨를 좋아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왜, 그 집에 계속 기거를 하였습니까?”
“제니가 이 층방을 렌트했을 때는 홀스 스탁톤씨는 없었어. 발리듀에 스탁톤 씨만 혼자 살고 있었는데, 3 개월 후 쯤인가 홀스 스탁톤 씨가 아들이라며 나타났지. 그리고 제니는 나에게로 와서 함께 지내는 횟수가 많아졌고, 우리는 옥빌칼리지 부근에 방을 얻어보려 애썼지. 제니는 발리듀에 씨 집을 봐 주고 청소해 주고 식사를 해 주는 조건으로 렌트비를 내지 않았고 얼마 정도의 대가를 현금으로 받았어. 그 당시에는 그런 조건의 수입원을 가지기란 어려울 때였기에 선뜻 옮기지 못한 거야. 제니가 없어진 후 나는옥빌칼리지를 찾아가서 학생등록이 되어 있는지, 학교에 다니는지도 알아봤지만, 아무것도 찾질 못했어. 제니는 옥빌칼리지에 등록하여 공부를 마치는것이 첫 번째 꿈이라고 하였다네. 그런데…”
엘리자벳은 제니와 함께 지냈던 옛날 생각으로 눈시울이 젖었다. 겨우 하는 말도 힘없이 젖어 있었다. 엘리자벳의 두 손을 내 두손바닥으로 감싸 꼭 쥐었다. 박인혜에 대한 엘리자벳의 그리움이 전해오는 것 같았다.
“이것은 팩스로 복사한 것이야. 제임스가 필요할 것 같아서… 원본이 필요하다면 가져가고 복사본은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나중에 원본을 꼭 돌려주었으면해.”
일요일. 오전 9 시 30 분. 말리부의 핸들을 잡은 손은 긴장과 흥분에 의한 땀으로 흥건하였다.
캐나다에 도착하자 곧 말리부를 가진 후 숱한 긴장으로 핸들 잡은 손의 땀으로 인하여 폴리우레탄 커버는 이미 검게 색이 변했고 닳아 껍질이 벗겨졌다. 그러나 오늘. 지금의 긴장과 흥분은 그때의 그것들과는 달랐다. 얽히고 설킨 실타래 속에서 한쪽 끝을 찾아냈을 때의 희망에 대한 흥분이었다.
마미에 쌓였던 신문지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에 연필로 쓰여진 박인서. 그래서 막연히 추측만 했던 글 쓴 사람. 박인혜의 실체가 밝혀졌다. 잉거스터도 박인혜가 1943 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입국하였다는 출입국에 대한 자료를 확인해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OPP 수사관인 아크샤가 그 기록을 확인하였고, 그 정보를 준 잉거스터는 아크샤와 함께 움직이고…
당장 만나야 할 사람은 릭 경감과 케롤라인이었다.수사본부라고 굳이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책상에는 늘 미해결된 이 사건의 기록들이 있을것이다. 한 사람은 살해 되었고 과거 한 사람 또한 살해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그들도 미궁에 빠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릭 경감이 목을 걸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엘리자벳의 집에서 옥빌 경찰서까지는 15 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들은 이미 제자리에 있을 것임이 확실하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말리부와 함께 있다는것도 알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전화가 온 것은 그들에서가 아니었다. 옥빌경찰서가 보이는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1 번이었다.
“대디! 제 전화번호를 집 전화라며 누구에게 알려준 적 있어요?”
“아니.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니. 우리 집 전화번호가 어디 있어. 각자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내 전화가 잘 일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야?”
“한국에서 온 강지후라는 사람이 대디를 찾아요.일층 짐(gym)에서 운동하는데 왔기에 모르겠다고 하니까 집에서 모른다고 하면 말이 되느냐 고추궁하였어요. 전화를 잘 못 걸었다고 하니 휴대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서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 하고 끊었어요. 누군지 짐작 가세요?”
“아니.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잖아. 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잘했다. 다른 별일은 없지? 에드 아저씨는?”
“별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아저씨는 덴에서 계속 컴퓨터 하고 있어요. 샌드위치 스파게티 빵 음료수 다 준비해 두고 내려왔어요. 걱정 마시고 아빠나 조심하세요.”
원스타. 그리고 강지후. 두 사람은 동일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두번이나 확인 전화를 하였을까? 경찰서 뒤 주차장에 도착하여 시동을 끄려는데 유리문이 열리며 거대한 몸집의 릭 경감이 어슬렁거리며 말리부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제임스! 시동 끄지 마. 제발.”
“수사팀에서 내 깨스비용도 나왔습니까?”
“안 껐지? 좋아. 농담하지 말게. 청구도 하지 않았는데, 누가 줘.”
그는 조수석에 그 큰 엉덩이를 털썩 떨어뜨리며 탔다.
“어딜 가시려고?”
“빨리 주차장을 빠져나가 좌회전 그리고 우회전하시오.”
그의 차는 후문 두 번째 주차 칸에 멀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아침은 했소?”
“아직 못 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소. 저기 맥도널드 앞에 세우시오.”
다시 뒤 유리문을 열고 릭을 앞세워 들어가니 라비는 텅 비어 있었다. 옥빌은 우범지역이 아니다. 다운타운과 40 분 거리에 있고 호수를 끼고 70 에서 250 만 달러 상당의 하우스들이 있는 부유한 지역이다. 대부분의 거주인들은 백인 유럽계 출신들이며 유색인들은 그들의 뒷처리를 하는 일 들을 하고 있다. 콘도들 또한 백인 은퇴 노년층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여 짜여진 의식주 공급시스템에서는 중 하층의 수입으로 끼어들 수가 없다. 경찰서 라비가 조용하다는 것은 잡범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좋아 보인다. 입구의 데스크에는 한명의 경관이 신문을 보며 그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옥빌의 경찰서이다. 넓은 라비의 남쪽 데스크에서 맞은 편에는 대기용 긴 플라스틱 의자가 4 개있었다. 4 인용이다. 중앙에는 신청서 용지를 넣어 두어서 민원인들이 언제나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둥근 테이블이 하나 있다. 라비에서의 그 테이블 우측으로난 복도를 따라 세 번째 마지막 문을 열었다. 케롤 경사가 컴퓨터가 켜져 있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미소로반겼다.
“굳모닝 제임스 (Good morning,James!). 함께이군요.”
“나잇 씨 야 (Nice to see you).Caroline.”
“자. 오늘 아침은 햄버거로 합시다.”
릭 경감이 종이 봉투에서 세 개의 빅버거와 커피를 꺼냈다. 나는 버거킹을 맥도널드 보다 더 좋아한다. 맥도널드는 각 매장마다 유아용 놀이시설과 장난감들을 비치해 놓고 가족이 식사를 할 때 어린아이들은 포테이토 프라이드 칩을 먹으면서 놀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자란 유아들이 자연스럽게 맥도널드와 친해져 성인이 되어서도 맥도널드를 찾도록 습관화하는 상술을 오래 전부터 하고있다. 버거킹은 커버된 빵이 맥도널드 보다 질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고, 마요네즈와 이민자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물을 채워 넣어 제공하고 있다.
백인들 대부분은 맥도널드를 선호하고 버거킹을 애용하는 대부분은 이민자들이다. 여기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우선 맥도널드에 거부감을 느낀 나 역시 이민자이다. 케롤 경사가 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였다. 잘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 것인가.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케롤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나는 릭을 보며 버거를 한입 가득 채웠다. 릭은 두 어깨를 들썩이며 반쯤 먹은 버거를 탁자에 내려놓고 커피를 들고 마셨다. 우리는 기다렸다.
“ 이 사건의 해결 열쇠는 에드먼드의 집 안에 있음이 틀림없소. 이의 있소?”
그건 바로 짚은 것이다. 모든 상황의 부분들이 그곳으로 몰리고 있다. 그는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 집인가? 무엇이 있기에. 무엇때문에? 조경순의 범죄기록은 없소. 깨끗하다는 의미이요. 캐나다에서 가입한 단체도 없소. 어떤 민∙형사적 사건과도 연관된 적이 없소. 외형적으로는 아주 평범한 케네디언이오. 그런 조경순이 왜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되었는가? 살해범은 누군가? 살해의 목적은 무엇인가? 살해해서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은 무엇이었나? 불행하게도 아직 구체적인 것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소. 제임스!”
그는 말 다 했다는 듯이 의자 등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기다렸다. 그는 경감이다. 쉽게 다 털어놓지 않은 것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해하였다. 그도 이 사건의 확장 됨에 당혹하고 점차 흐르는 시간에 초조해 할 것이다.
“엘리자벳을 만났습니다. 그녀에게서 박인혜라는 한국여성이 그곳에 살고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것이 박인혜가 쓴 자필 이름입니다. 엘리자벳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마미에게서 발견된 쪽지의 글씨 또한 박인혜의 것이며 두 개는 한 사람 즉 박인혜가 쓴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마미도 역시 박인혜의 것이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박인혜의 행적은 없었습니다. 아기를 신문과 보자기에 싸서 마미로 만들고는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확인해야 할 것은 한국 출입국 관리부서에서 입국 확인을 하는 것이며, 캐나다 국경 출입국으로 부터 미국으로의 입국여부를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두 건 모두 추정으로는 불가능하다 할 수가 있습니다. 토론토에서 밴쿠버를 거쳐 선박으로 부산항에 입항하여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거의 불가능하였으리라 추정되어 집니다. 그러나 다른 경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니 한국정부에 협조를 구해서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 미국 재입국도 마찬가지로 추정됩니다. 누구의 협조없이는 그녀 스스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두 건 모두 그 당시 마음을 나누며 지냈던 엘리자벳에게 아무런 언질이나 표시도 주거나 하지않고 없어졌다는 것이 의문점으로 남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 했을 수 있는 아기 마미의 발견에 대한 추정한 진실입니다.”
“조경순이 아기 마미의 발견과 연관관계가 있다 생각하는가요?”
케롤이었다. 부지런히 메모를 하든 케롤이 검은 피부에 유난히 반짝이는 흰 눈으로 빤히 보며 물었다.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조경순을 살해한 일당이 그 집을 뒤진 것이며 에드몬드의 납치사건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케롤이 의자를 돌려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내었다.릭을 쳐다보았다. 릭 경감이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레드플라워와 칼림교에 대한 정보가 발신인 없는 상태로 들어왔어요. 웨인 스튜어트도 발신자도 드러내길 원치 않았어요. 그러나 마지막에 웨인 스튜어트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걸로 봐서는 CISA 에서 누군가 보낸 것으로 믿을 수 있어요.”
릭 경감이 드모리에를 꺼내어 한 개비 입에 물었다.그럴 것이다. 담배의 해악에 앞서 지적 혼란함을 먼저 다스려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동등해져서는 안 되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은 릭 경감이 다시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레드플라워는 러시아 커뮤니티와는 별개로 등록되지 않은 조직이며, 외형상 친목단체로 되어있어요. 회원은 처음 조직될 때는 10 명이었으나 1991 년 KGB가 해체되고 난 후 현재까지 80 여명으로 늘었답니다. 그중 60% 정도 회원이 전 KGB 와 관련한 일을 한 사람들로구성되었답니다. 현재까지 범법적인 행위나 캐나다 법에 저촉된 일을 한 적이 없답니다. 그들은 1998 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커뮤니티가 추천한 학생들일부에게 ‘레드플라워’라는 이름으로 장학금을 매년 지급하고 있으며, 그 커뮤니티의 이민문제 해결을 위한무료변호도 맡고 있어요. 레드플라워 회원 중에는 변호사 교수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답니다. 등급은 그린으로 매겨져 있으니, 관리대상이나 주의단체로는 지정이 되지 않고 있답니다. 특이한 것은 러먼 잉거스터가 자문위원으로 있습니다. 다음.”
“러먼 잉거스터는 전 RCMP 고위층 출신 네덜란드계 아닌가요?”
릭 경감을 보며 물었다. 그는 두 눈을감고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에드를 납치했던 그 일당 중 하나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면, 공직자로서의 명예보다 노후생활의 보람된 안락보다 더 큰 무엇이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케롤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