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2. 11. 20. 일요일.
늦가을철인데도 하늘이 맑고 푸르며, 날씨도 온화하다.
인터넷 카페에서 글 하나를 보았다.
홀수로 된 것들이 훨씬 낫다는 내용으로 글을 썼다.
'.... 홀수는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깊은 뿌리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까마득한 시절부터 조선의 혼속에 묻혀 내려온 민족문화다.
자연스런 일상생활의 넉넉한 관습에서 얻어진 지혜의 소산으로 홀수는 딱 맞아 떨어지는 짝수에 비해서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중에서도 특히 3을 선호하고 있지만 1.3.5.7.9 모두가 우리 생활 속 깊이 맥을 내리고 있다.
우선 국경일이라든가 명절이 모두 홀수 날이다. 뿐만 아니라 때 맞춰서 돌아오는 절기가 거의 홀수 날에 들어있다.
설날과 추석이 그렇고 정월 대보름 삼짇날 단오 칠석 백중이 그렇다. 9월 9일은 중구일이라 하여
남자들은 시를 짓고 여자들은 국화전을 부쳤다. ....'
나는 어깃장을 놓는 듯이 아래처럼 댓글 달고는 퍼서 여기에 올려서, 고친 뒤에 내 글감으로 삼는다.
그런데도 나는 두 개의 눈을 지녔고, 두 개의 귀를 지녔고, 두 팔로 일하고, 두 팔로 걷는다.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짝을 이뤘고, 자식도 딸 둘, 아들 둘을 낳아서 키웠다.
내 입은 하나이지만 턱과 이빨은 위 아래 두 짝이다. 서로 아구적 아구적하면서 음식물을 씹어서 삼킨다.
코는 하나이지만 콧구멍은 두 개이다.
내 입은 하나이기에 하나의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지만 반찬을 집을 때에는 두 개의 젓가락을 쓴다.
넓고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좌우로 균형을 맞춰서 기우뚱하면서 바닷물을 건느고,
비행기는 균형있는 두 날개로 하늘을 난다.
오래 전 시골에서 살 때 나는 소마통을 짊어지고는 똥수칸에서 똥물을 퍼서 밭에 옮겼다.
소마통은 두 개이다. 좌우 양쪽 어깨에 소마통을 걸고서 몸의 균형을 이루면서 잘름거리는 똥물을 옮겨야 했다.
나는 시골태생인데도 지게질은 정말로 못했다.
왜그런지 몰라도 지게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는 일어서서 걸으려면 한쪽으로만 쏠렸다.
내가 앉는 의자에는 네 개의 다리가 달렸고, 모두가 똑같이 높낮이의 균형을 이뤘다.
자전거, 자동차 바퀴도 짝을 이룬다.
외발 자건거도 있으나 대부분은 두 짝을 이룬다.
특히나 자동차(기차)는 전후좌우에 바퀴가 있어서 균형을 서로 이루기에 도로 위를 질주한다.
오래 전이다.
자동차 초기에는 바퀴가 세 개인 삼발이 자동차가 등장했다.
홀수의 바퀴는 없어지고, 현재에는 네 개의 짝을 이룬 바퀴가 균형을 이뤄서 거리를 달린다.
늙은 노인들은 손에 지팡이를 짚고서 걷는다. 한쪽 다리가 시원찮기에 지팡으로 한쪽 다리를 대신해서 균형을 잡는다.
외발로는 걷는 게 아니라 팔짝팔짝 뛰어야 할 터. 자칫하면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가 있기에.
이처럼 세상이치는 두 개의 짝이 서로 대칭해서 균형을 이룬다고 본다.
인간의 생활도 그러하겠다. 극좌로 흐르지 않고, 또한 반대로 극우로 치우치지 않는다.
음과 양의 조화로 균형을 맞춰서 보다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고 발전하게 마련이다.
2022. 11. 20.
첫댓글 참으로 훌륭한 견해입니다 의로운 건승을 기원드립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홀수보다는 짝수가 더 낫다는 게 제 착각일 수도 있지요.
이 세상은 1, 2, 3 등의 선착순은 아닐 겁니다.
외톨이보다는 짝이 더 나은 세상일 겁니다.
외발자건거보다는 두 발 자건거가 훨씬 균형 잡기가 유리하며, 더 빨리 달릴 수가 있지요.
젓가락 하나로는 물건을 집지 못하고는 고작 쿡 쑤셔서 들어올리겠지요. 두 짝은 물건을 다치지 않고도 공손히 안전하게 집어올릴 수가 있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