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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내내 부엌에서 뭘 만드는거냐?"
그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하며 물었다.
다과상을 들고오던 그녀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시녀들과 과자와 전병을 만들죠.불경을 베끼거나 따분한 황궁예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재미있어요."
"호 현아솜씨가 걸출해서 황궁내에서 제일가는 맛이야."
"황궁의 재료가 최고급품이라 그렇죠.민가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재료들을 넉넉히 쓸수있으니까요."
왕부에서도 다과만드는 걸 좋아하더니...그는 웃었다.
"소관자가 평안궁의 음식재료주문이 부쩍 늘었다더구나.원하는대로 내주라고 일렀지만 그많은 걸 혼자 다 먹느냐?"
"지금 드시고 있잖아요.어떻게 저혼자 먹겠어요?"
"반죽에 계피를 넣었느냐?향이 좋구나."
"이걸 드셔보세요.이건 유자를 썰어 꿀에 재운걸로 채웠어요."
"이차는 무슨 차지?향이 색다른데?"
"약초원에서 구해온 약차로 달인 차입니다."
"약초원에도 다녀왔느냐?황실소유지만 거리가 가깝지않은데..."
"걱정마시지요.소관자와 시녀를 대동하고가니.."
"태후전에서 네 과자만드는 솜씨가 좋다고 칭찬하더구나.웬일로 그 늙은이들가 네게 그런 말을 하나했더니.."
"웃어른을 공경하려면 어렵게 만든 다과부터 올려야죠."
"잘했군.그렇게라도 헐뜯는 입을 틀어막아야지.."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마 곧 수업할 시간인데 어딜 가시려는 겁니다?"
"황상께서 황후마마께 병문안을 다녀오라하셨네."
점심후 그녀는 내키진않았지만 서둘러 황후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염되는 열병인가하여 어의들이 긴장했지만 수두라고하니 그녀는 병문안을 다녀와도 괜찮았다.어릴적 앓았기때문이다.
황후의 얼굴은 물집이 잡혀 엉망이었다.본디 미인도 아닌데다 마마의 얽은 자국도 약간 있었지만..
"자네는 괜찮은건가?"
황후가 침상에 누운채 물었다.
"세살적 앓았나이다."
그녀는 황후의 손을 흰 면포로 싸매며 대답했다.가려워도 긁지않도록 어의가 조치한 것인데 환자로서는 고역일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레 황후의 물집잡힌 얼굴에 약을 가는 붓으로 발랐다.
"손놀림이 좋군."
황후가 눈을 감은채 평했다.
"어의가 물집이 가라앉도록 처방한 약입니다."
탕약에 수면제가 섞인 건지 황후는 이내 잠들었다.
"황상께서 드셨사옵니다."
상궁이 알렸다.
"쉿 깨우지마라.황후가 편히 쉬도록 두고 현귀비는 짐을 따라나오너라."
후원의 정자에 닿자 그가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한번이라도 간호했으니 태후나 황후도 트집잡지못할거다.후궁이 황후의 문병도 한번 안갔다고는 말못할테니.."
그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봉보상궁이 차를 가져오자 그는 그녀에게 잔을 건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약냄새가 고약해요."
그녀가 손을 코끝에 가져가며 투덜거렸다.
"수고했어.현아가 짐의 말을 잘 따르니 어여쁘구나."
그가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당기더니 등을 어루만졌다.
" 제가 정말 수고했다고 여기시면 하루쯤 오늘 수업을 좀 쉬게끔 해주세요 .."그녀가 어리광을 부리자 그가 웃었다.
"착한 아이이니..하루쉬어도 공부에 꾀를 부리지는 않겠지."
하지만 따라온 보모상궁이 냉큼 나섰다.
"안됩니다.마마 오학사가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가 빙긋 웃었다.
"병문안와서 황후를 돌봤으니 훈육상궁의 수업은 며칠 쉬거라.이미 여러달 같이 공부했을테니...귀비는 내일 한번 더 짐과 황후에게 들러야할거다..하지만 오학사와 오늘치 수업은 해야해."
그녀는 입을 삐죽였다.요즘 늘 이런 식이다.응석을 받아줄듯 싶으면서도 오학사와의 수업은 엄하게 공부시켰다.
"그만 처소로 돌아가거라.저녁때에 들러서 확인할테니..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상궁.귀비를 데려가게."
"마마, 황상께 사의를 표하세요."
저녁나절 처소에 와 배운 걸 캐물으며 잔소리할건데 그것도 감사하라니..그녀는 마지못해 궁중의 예법대로 무릎을 굽혀 절하고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왜 사의를 표하라는거지?"
처소로 돌아오면 그녀가 투덜거리면서 상궁에게 물었다.
"황상께서 늘 찾아주시니 감사드려야지요.침실에서도 공부를 도와주시니 황송한 일 아닙니까?"
"요즘 오라버니가 변했어..내가 또 속았잖아."
어리광을 부리면 받아줄듯 어르는 듯 하다가고 결국 자신을 어린애들처럼 달래어 상궁들과 학사에게 넘기고 만다.
침실에서도 공부시키려드니 고역인데...들볶이는 것도 감사하라니..
그녀는 투덜거리면서 평안궁의 정문을 넘었다.
시녀가 문을 닫고 나가자 어두워진 처소의 복도에 적막이 감돌았다.
"도대체 어딜 나돌아다니는거냐?시장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그가 둘만 남은 내실에서 따져 물었다.
"고급과자가게에 만든 과자와 월병을 팔았어요."
"뭐?황궁의 귀비가?쓸 용채가 없어서?"그는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태후마마가 제 녹봉을 반년이나 금했잖아요."
"네가 황후에게 말대답하니까 받은 벌이잖아."
"제게 딸린 시녀와 상궁들이 몇인데 금전이 있어야 위신이 서지요."
그는 할말이 없어 한숨을 쉬었다.
"값은 후히 받았느냐?"
"네.워낙 고급재료를 쓰니..과자집주인은 맛만 보고도 알던데요."
"소관자가 평안궁에서 황궁에 들어온 벌꿀과 견과를 다 가져가다시피한다고하더니 과자를 만들어 돈을 번거냐?궁안의 다른 사람도 좀 먹어야지.."
"궁안의 사람들이 얼마나 호의호식하며 사는데요?"그녀가 발끈해서 대답했다.
"용채가 필요하면 짐의 내탕금에서 줄테니 번거롭게 그런 수고는 말거라."
"싫어요.황상의 총애에 빌붙어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후궁이란 손가락질을 받을 거예요."
"그럼 한달에 한번만 궁밖으로 나가.다른 날은 시녀들을 시키고 .."
"안돼요.일주일에 한번은 못가도 보름에 한번은 가봐야해요."
"왜?"
"직접 가야 흥청이 용이하단 말에요.돈이 걸린 일이니..."
"그래 용채는 많이 벌었느냐?황궁에만 먹는 과자라 소문이나 얼마나 비싸게 팔았느냐?"
"글쎄요?집한채값이나 될까?"
"짐이 선물한 패물들만해도 저택 여러채는 살 값어치일텐데..네 몸에 지닌 머리장식, 목걸이 귀걸이에 박힌 보석들만해도 얼마인줄 아느냐?"
"그거하고는 다른 거라고했잖아요."
그는 할말이 없어 웃기만했다.하지만 그는 잠들기전 엄하게 일렀다.
"출궁은 한달에 한번뿐이야.소관자를 대동하고 나가야해."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멋대로 나다니면 출궁을 금할줄알아.출궁하기전에 법도에 따라 짐에게 알리거라."
"법도에따라 허락한번 받으려면 얼마나 까다로운데요?상궁들에게 출궁하고 싶다고 말하면 수업을 빨리 끝내라고 성화이고 소관자에게 알려야하고 오라버니허락이 떨어져야 호위병과 마차를 준비하게하니 반나절이 더 걸려요.왕부에서는 유복하지는 못했어도 자유로왔는데..황궁은 의식이 넉넉하다해도 모든게 법도에 매여 사사건건 간섭이 아니면 감시까지받으며 살아야하니.."
그녀가 투덜거렸다.상궁들의 엄중한 감시와 그의 극진한 보호아래 그녀는 전과 같은 자유가 없었다.
"평생 황궁문밖을 나가지못하고 일생을 갇혀사는 비빈들도 있었어."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오학사에게 수업을 배우라고했더니 요즘은 약초원에서 살다시피하는군. "
그가 촛불을 끄며 잔소리했다.
"저는 본디 의녀수업을 받았잖아요.황궁에 그런 곳이 있는줄 몰랐어요."
"그곳에서 약초를 키우는 사람은 상주하고 있다만.."
"본디 궁녀들 병치료에 필요한 약재를 키우기위한 곳이라던데 오래 무관심하게 방치되어 있다보니 엉망이던데요"
"약초원의 약초는 쓸데가 꽤 많을건데?"그가 의아한듯 물었다.
"비빈들과 달리 다른 궁녀나 환관들은 아프다는 내색도 하기 힘들어요."
그녀가 종알거리듯 말했다.
"내명부 비빈들은 어의를 부를수있지만 하급궁녀들은 어의에게 치료받기가 쉽지않으니.."
"주인이 후덕하면 당연히 아랫것들도 치료를 받게해줘야지.하지만 약초원일보다 더 중요한 건 짐이 명한 수업이야.오학사가 요즘 귀비가 조정대사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않는다고 고하더구나."
그 늙은이가 오늘 아침 일을 고자질했군.
"오늘 오전주강에 약초원에서 늦게 돌아왔다고 잡혀서 한소리들었어요."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의서는 시간나는 오후에나 읽어."
"숙제가 많아 달리 시간도 없어요."
"수업만 끝나면 약초원에 가서 지낸다며?지금 수업이 앞으로 중요할테니 공부에 소홀해선 안된다."그가 엄하게 말하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 황궁수요를 감당하고 남은 건 팔아도 되나요?"
"그러려무나.네가 관리하고 키우는 것이니..하지만 너무 돈을 쫓지는마라.황비가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 네 평판에 좋지않아."
"뭐 태후와 황후일가는 시장의 주요 상점들을 소유하고 매점매석으로 천하의 재물을 긁어모으는데요.신첩이 파는 과자와 약재정도야 새발의 피지요."
"그런 말 함부로 떠들면 안된다."
그가 정색을 하고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대자 그녀가 움찔했다.
"후궁이 방자하다고 잘못하면 태후전에 끌려가서 처벌을 당할수있어.태후에게 걷지도 못할만큼 얻어맞으면 어쩌려고..직접 회초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늙은이인데..."
그가 타이르듯 말했다.
"황상의 비빈인데 그렇게 매질을 한다고요?"그녀가 놀라 물었다.
"선황제때의 비빈들은 시어머니인 태후에게 사소한 잘못도 회초리를 맞았단다.투기가 심하다느니 법도를 따르지않고 방자하다느니..명문대가의 딸들이었는데도 ..."
"설마요?"
"후궁들이 서로 질투와 시샘이 심해 태후가 내명부를 단속한답시고 한달에도 몇번씩 비빈들을 직접 회초리를 때렸다는구나. "
"정말이에요?"
"물론 비빈여섯명이 보통 성격들은 아니었으니..황형의 총애를 다투느라 자신들아랫사람이 태형을 받거나 궁밖으로 내쳐져도 아랑곳않고 서로 헐뜯는데 열중했단다.그래서 태후가 직접 투기를 단속한다고 매로 다스렸다고한단다.아마 자기 아들한테도 그랬을테니.."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태후는 황형들이 어릴적 공부를 안 끝내고 놀려들며 태만할때마다 직접 회초리를 때렸어.개구장이기는 했지만..선황제는 어릴적 황태자였는데도 걷지도 못할만큼 매를 맞은 적도 있었어.그래서 자라서도 모후와 사이가 좋지않았다.그 늙은이가 사소한 일도 매로 다스리려드니..제자식들이나 비빈들이나 궁녀나 환관들뿐 아니라..피도 눈물도 없는 어미라고했지..."
그녀가 이마를 찌푸리며 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그가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귀비가 되어 시장에서 아녀자들과 소란을 일으키다니!황실체면이 백성들에게 뭐가 되겠소?"대노한 태후는 서안을 치며 소리쳤다.
"그것이 ..귀비가 철이 없어서.."
그는 뭐라 변명하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듣자니 전염병이 도는데 약재상의 약값이 너무 비싸 폭리를 취한다고 귀비마마께서 흥분하셨나봅니다."
"닥치거라!소관자.일개 환관주제에 황실위신을 손상시킨 귀비를 두둔하는거냐?"
태후의 호통에 환관은 납작 엎드렸다.
"송구하옵니다."
"홍소자 ,당장 황실근위병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귀비를 잡아오너라."
태후는 옆의 환관에게 소리쳤다.
"모후 ,짐이 이미 귀비를 찾으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럼 찾는 즉시 내 처소로 데려오시오.그리고 왕상궁은 내가 서고에 둔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늙은 상궁은 태후의 명령에 냉큼 내실을 나갔다.
"모후, 고정하시지요."
그는 다소 놀라 성난 태후를 진정시키려들었다.상황이 급하니 큰어머니인 양모에게 모후란 말이 간절한 어조로 나왔다..끌려오면 흠씬 얻어맞을 매타작감이었다.
"그간 귀비가 나이가 어려 본궁이 너무 오냐오냐한 것같소.철없는 아이로만 여겼더니..귀비가 병약한 듯하여 항상 훈계만했지 매를 든 적은 없소만 ..."
"모후..귀비가 아직 어리지않습니까?궁중법도를 지키기도 버거운 나이입니다."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이번만큼은 그냥 너머갈수 없으니 엄히 벌을 내려야하오.본궁이 선황의 비빈들과 죽은 공주들을 훈육한대로 꾸짖을터이니 회초리를 들어도 황상께서는 너무 괘념치 마시오... "
비빈하나 단속하는건 내명부수장인 자신의 권한이니 참견말라는 경고였다.물론 현아가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얻어 맞게 될 것이다.
"돌아오면 귀비는 소자가 엄히 꾸짖겠습니다.모후."
태후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드물게 어머니ㅡ모후라 부르는 것이다.제 생모만 어미로 여기는 걸 알고있는데...
"귀비가 아직 철이 없어그러니 반성할 여지를 주십시요."
그가 사정하듯 말했다.
"황상이 이리 간곡히 부탁하시니 귀비의 처벌을 황상께 맡기겠소. 현귀비 그 아이에게는 엄한 교육이 필요할거요.."
상궁이 검은 비단천에 길게 감싼 물건을 가져와 태후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올렸다.그는 이내 그것이 태후가 쓰는 회초리란걸 알수있었다.
태후는 그것을 그에게 건내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죽은 선황들을 훈육할 때 썼던 것이요.선황뿐 아니라 그의 비빈들도 같은 방식으로 훈계했소.나이어린 비빈들이 가문의 세도를 믿고 내궁에서 방자한 것을 본궁은 용납치않았소.귀비를 잘 가르치시오 .왕상궁은 황상을 모시고가 귀비가 반성하는지 살피고 내게 알리거라."
그는 굳은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 망할것...매를 벌었어...
"그리고 귀비에게 예법을 다시 가르쳐야할것같소.당분간 귀비를 별궁에 두고 엄히 단속해야할 것이요 ..."
"모후 ,귀비는 병약하니 궁에 가르칠 사람만 보내시지요.내명부서열이 황후다음인 귀비가 별궁에 갇힌다는 것도 우습지않습니까?모후께서 직접 승급시켜주신 귀비가 아닙니까?"
태후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상궁들을 뽑아 보내리다."
자신이 현아의 사람됨을 잘못보았다는 소리하기싫다는거지..
그는 누가볼까 용포의 소매자락에 매를 집어넣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서 들어가보시지요..내실에서 황상이 기다리십니다.."
"오늘 시장에서 벌어진 일 황상도 아시나?"그녀가 문득 환관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지은 죄가 있으니 좀 겁나긴했다.
"아마 태후전에서 들으셨을 겁니다.."
"화나셨어?"
"아뇨..하지만 걱정은 좀 하시는 것같던데..그러니까 어서 들어가보세요..혹시 얹잖으시면 어서 마마께서 노여움을 풀어드리세요.."
소관자가 방문을 열며 알렸다.
"황상 , 소관자입니다."내시를 보더니 그가 물었다.
"현아는?"
"모셔왔습니다."소관자가 독촉하며 그녀를 방안으로 밀어넣었다.
"물러가라"그녀의 등뒤에서 문이 닫혔다.그녀는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사뿐사뿐 얌전하게 걸어 방을 가로질러갔다.
그는 탁자곁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본디 조용하고 온화한 사람인만큼 크게 격노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가 손짓하자 그녀는 잠자코 그의 곁에 다가갔다. 화가 난 것같진 않아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상..걱정하셨어요..?"
"다친데는 ..?"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내려보았다.허드렛일을 하는 평민부녀자들처럼 소박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이 밝은 걸보니 다친 데는 없군.마음이 놓이며 유난히 크고 그늘지면서도 날카로운 눈매의 그의 눈속에 미소가 스쳤다.하지만 벼르던 일이 떠올랐다.
이 말괄량이, 어디 오늘 혼 좀 나봐라. 감히 황명을 거슬러? 어릴적부터 오냐오냐하고 키웠더니...오늘 버릇을 고쳐놔야해.볼기맞는 일은 젖먹이때 졸업한 줄 아나본데..
"소관자를 보내실 필요는 없으셨어요..괜한 걱정을 .."
"출궁은 어떻게 한거지?혼자 나다니는 건 금했을텐데.."
"그게.."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간밤에 네 처소에서 밤을 보낼시 짐이 미복잠행시에 궁문에 출입하는 영패를 침상에 떨어뜨렸다.네가 그걸 가지고 나간거냐?"
그녀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가 엄하게 묻자 그녀는 진땀을 흘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소리쳐 나무라지않아도 그의 말투에서 격노한 것이 위압적으로 느껴졌기때문이었다.
" 저녁에 오시면 돌려드리려고했는데... "
"그럼 이제 혼날 차례군."
"오라버니..제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가 입을 일자로 꽉 다물자 순간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그가 바람같이 그녀의 가는 허리를 낚어채듯 휘어잡고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위에 엎어놓은채 성난 손으로 그녀의 작고 둥근 둔부를 철썩철썩 두들겼기 때문이었다.
"이 말썽꾸러기! 얼마나 속을 썩일 거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파요, 기옥오라버니! "그녀는 얼떨결에 비명을 질렀다.. 아팠다기보다는 놀랐고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아파?아프라고 때린거야!"
그가 소리쳤다.
"지난번에 다시 몰래 출궁하면 크게 혼날 거라고 했지?정말 이렇게 철없이 행동할거야?황명을 뭘로 아는 거야!"그가 언성을 높였다.
"아파요,놔줘요!"그녀는 몸을 비틀며 울부짖듯 말했지만 그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아프다고?혼이 덜 났군."
그가 다시금 따끔하게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힘껏 두들겼다.젊은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어 장난이 아니었다.
"어디 내궁에 한번 갖혀볼래? 얼마나 혼이 나야 버릇을 고칠거야?어린애들처럼 말썽을 부리면 어린애들처럼 벌을 받아야지?"
그가 정색을 하고 나무라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아마 밖의 시녀와 내관도 들었을 것이다.억울한 생각에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자 멈칫 놀란 그가 손을 멈추고 그녀를 일으켜 품에 안았다.그러면서도 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더듬어 눈물자국을 지웠다.아직 어리잖아...아이나 다름없는데..내가 키운 아기인데..그는 자신에게 타일렀다.흠씬 볼기를 때려주려했는데..몇대 안 맞았는데도 이리도 울어대니...몸도 약한데 병날지도 모른다..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뚝 그쳐.뭘 잘했다고.."
이 철없는 육촌누이는 자신이 아무리 엄격하게 대하고 버릇을 고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질 않는다.자신도 그녀에게만은 모질게 대할 수가 없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문득 손을 뻗쳐 탁자에서 무언가 집어 들었다.단단한 참나무 회초리였다.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그녀는 태어나서 한번도 매를 맞은 적이 없고 그는 누굴 때린 적이 없다.항상 무릎위에 올려놓고는 타이르며 달래기만했는데 ...어린 아이처럼 얻어맞을 줄은 몰랐다.
그가 정말 때릴까?방금 맞았는데 또?그렇게까지 화가 난걸까?가슴이 잠시 서늘해졌는데 그가 툭 매를 꺾었다.
"태후가 내린 매야..너를 잘 가르쳐야한다는구나..다른 사람에게 건내주느니 내가 나을 것같아서 내게 달라고 했다."
그가 얹잖은 음성으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처음에는 예복에 속치마를 십여벌씩내리더니 그다음에는 장난감과 공부할 책들을 보내고 오늘은 회초리까지...태후가 널 어떻게여기는지 알것 같지않느냐?.어린애취급에 말썽꾸러기로 여기는 거지..."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소관자 들어와라."
그는 탁자의 비단천위에 두동강이 난 회초리를 던지면서 환관을 불렀다.
"소관자, 이걸 밖의 태후전상궁에게 가져다 줘 , 현귀비는 짐이 엄히 가르쳤다고 해.."
환관을 보기 민망해서 그녀는 벽을 보고 돌아앉았다.
"어의에게 약을 달여오라고해 ..멍이 잘 풀리는 약..싫든 좋든 마셔라.."
그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일렀다.환관이 나가자 그가 말했다
"밖에 태후전에서 상궁이 와 있어.".그가 낮은 음성으로 알려주었다.
그녀가 우는 소리, 그가 나무라며 소리치는 소리 ..밖에 모두 들렸을 것이다.
"어쨌든 이걸로 그대가 벌을 받았다고 생각할테니.."
그는 반연극한 것이다. 태후가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시켜 그녀를 매질하는 꼴은 차마 볼수가 없으니...울음 소리라도 나야 된다는 얘기였다.
"이제 태후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니? 낼 문안갈때 절뚝거리는 시늉좀 해봐..그래야 믿을 테니..황궁은 이런 곳이야. 민간에서는 아무일도 아닌데 시비거리가 되지..때론 큰 잘못이 되기도 하고.."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황상, 정말로 저 때리셨잖아요.."그녀는 항의하듯 말했으나 그가 태연히 대꾸했다.
"황제의 기물에 손대면 어떤 벌을 받는지 아느냐?무려 형장 백대다.황후나 태후가 이일을 알면 너를 가만 둘것같아?황명을 어기고 짐의 명패를 사적으로 도용한데다 황궁법도를 무시했으니 죄목이 몇가지인 줄알아?."
그녀는 순간 멈칫 놀라 할말을 잃었다.
"현아니까 누이동생이라 오라버니에게 이정도로 벌이 끝난줄 알아."
"신첩이 애에요?,황상..?"그녀는 투덜거렸으나 그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린애같이 고집스럽게 말을 안들으니 어린애처럼 혼날밖에..그대가 나이가 몇 인지는 알아? 곧 열 여섯인데...짐은 네 오라버니니 상관없어..그대는 내 육촌누이동생이니까..오라버니가 누이좀 야단치는 건..흔한 일이야..태후가 아니더라도 짐이 한번 혼좀 내려고 했다..황궁법도를 기만해도 정도껏 해야지.감히 짐의 영패를 몰래 사적으로 이용하다니 겁이 없는 거냐 철이 없는거냐?"
"법도때문에 숨이 막혀요.황궁에서 사는게 질식할 것같아요.."그녀가 투덜거렸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짐은 그대가 배내옷에 기저귀를차고 있을때부터 보아왔어.강보에 싸여 있을때는 얌전한 줄 알았지...어디 명을 내려 늙은 황실보모들을 시켜 처음부터 황실에 태어난 아기처럼 가르치게해? 태자나 공주를 키우는 것처럼 유모와 훈육을 가르칠 상궁들 수명을 평안궁에 보내 그들을 네곁에 붙여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한 발자국을 움직이더라도 따르게하면 그대발로 어디 몰래 엉뚱한 데가서 말썽부리지는 않겠지 . 호랑이상궁들이 회초리한대 안 때리고도 새로생긴 공주아기를 치마폭에 감싸안고 알아서 잘 키울테니..널 강보로 싸안고 다니지는 않는다해도..짐이 맡긴 귀한 아기이니 금지옥엽키우듯 얼마나 정성들여 가르치고 키우겠느냐.너는 손하나까닥할 필요없을테니..짐은 이따끔씩 평안궁에 들러 항아같은 미인아기가 잘있나 보러 오면 되고..그래도 말썽을 부리면 오늘같이 볼기 좀 두들겨주면 되려나... 내 어머니와 사촌이모님이 아기때부터 오냐오냐하기만하고 누이동생을 잘못 가르쳐놨으니.."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황상,누구흉내내세요?신첩이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오라버니?절 놀리세요?"
"그대를 걱정하고있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야..철좀 나라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어렸을 적 글을 배우기도 전에 죽었으므로 기억조차 희미하다.그녀는 친모대신 길러준 그의 어머니를 모친처럼따라 친모의 기억자체가 별로 없었다.그들은 6촌이었는데도 그는 어린시절 그녀부친에게 글을 배운 까닭에 그녀를 친누이라고 우기고 있다.꼭 그녀가 곤란할 때만..
그가 그녀곁에 바싹 다가오더니 얻어맞은 둔부를 어루만졌다.
"어의를 부르랴?탕약만 가지고는 안되겠어?."
그제서야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한창나이인 청년인만큼 손이 매웠다.아마 대여섯대맞은 것같다.그녀가 유달리 고집이 세서 그가 화를 내고 야단친 적은 단 한 번 있었는데..때린 적은 어릴 때도 단한번도 없다.그처럼 자신에게 부드러운 남자가 나이어린 여인을 손찌검을 하더니..황궁에서 붙여준 상궁들은 그녀에게 엄격했지만 이 육촌오라버니는 항상 오냐오나하며 자신의 편을 들고 감싸며 어리광을 받아주었는데..처음 매를 맞은 것이다.그것도 어린애도 아니고 다커서..
창피해서 그의 손을 밀어내고는 치마아래 얼얼한 둔부를 어루만지면서 그녀는 울듯이 말했다..
"제가 뮐 잘못했지요?약초원에 다녀왔을 뿐인데.."
"거길 다녀온게 문제가 아니라.."그가 화장대위의 젖은 수건을 집어들면서 입을 열었다.
"태후전에서 네 주위에 사람을 붙여 네 행적을 조사했나보다.황궁은 벽에도 귀가 있는 곳이야..태후는 널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니..그대가 법도를 어긴 건 알겠지?약초원에 다녀오면서 외간남자와 약재를 흥정하고 시장에서 사담하다 소동을 일으키고..약재값때문에 시장에서 약방상인들과 그렇게 크게 다투었으니 ..아무리 네가 옳은 일이라도 소문이 날거다..처음이 아니니..지난번에 일렀을텐데? 귀비가 되어 과자를 팔고 약재장사를 하며 황실평판을 떨어뜨린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으니 자제하라고 했었지? 또한 황비는 함부로 나다니지 않은 법이야.더구나 전염병이 도는데 출궁하지 말라고 했잖아.시위들이 궁문을 지키는데 영패를 위증해 몰래 출궁한 것자체가 트집거리란 거 몰라?"
그가 그녀의 곁에 앉으며 수건으로 몇방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철부지때문에 궁안이 조용할 날이 없어.현아 너때문에 짐이 이립의 나이도 되기 전에 흰머리가 나겠다."
" 오라버니..심려를 끼쳤어요.."그가 투덜거리자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정 출궁하고 싶으면 내게 먼저 알라리고 했잖아..최소한 소관자라도 따라갔으면 이런 책잡힐 일은 없잖아.."
"허락안 하실것같아서.."물론 그는 당연히 출궁을 금했을 것이다.요즘같은 때 그녀를 궁밖에 내보냈다 무슨 일이 불거질지..
그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고 화가 난 듯 말했다.
"어디 네 평안궁주위에 금의병시위를 십여명쯤 지키게해놔?개미한마리 새나갈 틈없도록 ...?아니면 네곁에 돌부처같이 깐깐한 궁의 늙은 상궁들을 몇 붙여놔?네가 황궁의 예법을 따르나 안따르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가르치게 ..? 그래야 내가 신경안쓰고 정무를 처리하지?강보대신 가마에 실려다니며 상궁들치마폭에서 한평생 지내볼테냐?"
그녀는 질겁해서 고개를 저었다.상궁들에게 다시 감옥살이당하는 건 질색이었다.
"차라리 머리깎고 출가하는 게 낫겠군요.."
그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아무리 법도를 어겨도 빌지는 않는군..그래, 그랬다간 그대가 며칠 못 살겠지..숨막혀서 질식할테니..태후가 그대가 사찰건립을 반대한 일로 황후는 황후대로 도교사원을 짓는 걸 무용지물이라고 말한일로 그대를 벼르고 있는데 책잡힐 일은 하지말아야지...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다시 몰래 출궁하고 나가서 말썽을 일으키면 그땐 정말 궁의 노상궁들에게 처음부터 황실법도를 엄하게 가르치도록 하겠다.그나이에 다커서 공주로 태어난 아기처럼 똑같이 대우받겠느냐. .그럼 아기처럼 다룰테니 큰벌을 받을 일은 없겠지.단 아랫것들에게 얼마나 비웃음당하고 시달려볼테냐?."
그의 위협하는 듯한 어조에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아픈가?"그가 문득 물었다. 그녀는 부끄럽고 분한 생각에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이리와,현아,,"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답삭 무릎위에 올려놓고 품에 안았다.내 손이 매운데 볼기가 좀 얼얼했을걸...나도 현아몸에 손 댄적이 처음인데..
"짐은 그대가 성격을 고치길 바래..궁에 들어온 이상 좀더 조신해져야지..황제에게 이렇게까진 혼난 비빈은 여지껏 없을 거다.나는 그대의 외육촌오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나라의 황제가 되어야해..짐이 이나라의 황제가 되지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대와 나에겐 더 행복했을지 모르겠구나.."
야단쳐놓고 달래고 쉴새없이 며칠마다 반복되는 일과였다.이 귀여운 말괄량이..내 소중한 금지옥엽..
"사람들은 그대가 내약점인 걸 알고 있어..특히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은 짐보다 그대를 더 트집잡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지..너도 알잖아..태후는 지금 나에게 할 분풀이를 그대에게 하고 있는거야..그대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짐이 받아준다해도 황궁에서는 용납이 안돼..그대가 법도를 어기면 궁에서 내쳐져도 할 말이 없어..황궁은 구속이 많은 곳이야.."
"집에 가고 싶어요."그녀가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입궁했으니 황궁이 이제 현아의 집이야.궁밖의 사가에 다녀온다고해도 허락을 받아야하는게 황궁법도야.."
야단친 아이를 달래듯 그는 그녀의 등을 안고 어루만졌다.
"차라리 출궁시켜주시면 좋겠군요..옛집에서처럼 자유롭게 지낼 수 있잖아요.."그녀의 항의하는 듯한 음성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대는 황궁밖에 있으나 궁안에 두나 짐의 근심덩어리야..황제의 비빈이니 네가 잘못을 저질러 출궁당하면 네 사가의 사람들도 피해를 입는 걸 왜 몰라? 출가하신 아버님이나 사촌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길 원해?"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출궁하는 날이 네 제삿날인 걸 모르니?황후의 사람들이 너를 그냥 둘것같애?"
순간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그의 품을 파고 들었다.그가 태후와 황후의 부친과도 권력투쟁중의 와중에 그녀같은 후궁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무엇보다 그녀가 황족이고 황가의 방계 후손이라고해도 황후와 같은 권문세가라는 외척의 배경이 없었다.더구나 황상의 귀비가 되서 의약을 다루고 민생을 돌보는 정사에 참견한다고 황후와 태후는 법도운운하며 쉴새없이 그녀를 헐뜯고 있는 것이다.
"입궁은 제가 원한 게 아니었어요.."그는 항의하는 듯한 그녀의 음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빈이랍시고 허울좋은 후궁에 법도에 매여 평생 갇혀살아야하는 운명이니..그래,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모르겠구나, 그대가 황궁에 맞는 성격이 아니란 걸 뻔히 알면서 불렀으니..하지만 이젠 어쩔수가 없다. 비빈은 죽기전에 황궁을 떠날 수 없고 죽어서 장례때가 되야 황궁문을 나갈 수 있으니..현아,너를 보호하기가 쉽지가 않구나..무엇보다 그대가 짐의 말을 듣지않으니....네가 황궁에서 하루도 못사는 성격이란 건 진작 알고 있었지..네 아버지가 얼마나 너때문에 속썩었을 지 알만해..하지만 나를 위해서 참아줘..그대가 없으면 나는 하루도 황궁에서 살 수 없어..현아 ,너도 이젠 좀 어른스러워져야지.바깥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
그가 그녀의 손을 매만지며 타이르둣말했다
"짐은 그대가 태후전이나 황후에게 수모당하는 일을 원치않아..그대가 출생이 황궁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예법에 적응하도록 시간을 좀 준 것같은데..지금까진 그대를 이대로 두었지만 이젠 더 안되겠다... 태후전에서 이정도로 나오니 단속안할 수가 없군..두번다시 그대를 볼기치거나 때리거나 하진 않겠다.어쨌든 그대는 지금 귀비이고 내 아내이니까.대신...."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한번 더 태후전에 트집잡힐 일을 일으키면 네 시녀들을 엄하게 처벌할 거야..주인을 잘 모시지못했으니..그들이 벌을 받아야지.네 시녀들이 중한 매를 맞고 몇달씩 걷지도 못하게 되길 바라지 않겠지?.모두 쫓겨나고 혼자 궁에 갇히기원해?"
"제가 잘못한 일을 제 시녀들에게 벌준다고요?"
그녀가 깜짝 놀라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현아 ,평안궁의 주인은 그대지만 황궁의 주인은 짐이야..그동안 네 시녀들을 벌할 일들이 많았지만 짐이 우겨서 유야무야넘어갔지.이제 상궁들에게 단속을 맡길테니...그 늙은이들이 짐이 간섭하지않으면 네시녀들에게 회초리를 휘두르며 아주 기뻐할걸.현아때문에 평안궁에서 날마다 회초리가 몇개나 부러져나가야겠어.?."
그가 짐짓 엄하게 말했으므로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다.
"기옥오라버니, 변하셨군요,,왕부에서는 이렇지않으셨여요."그녀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렇지않고는 어떻게 너같은 망아지를 잡겠니?"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장중보옥같이 여기는 지는 소문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황후와 태후,그들의 질투도 깊어질것이다.
"태후께서 예법에 밝은 상궁둘을 네게 새로 평안궁상궁으로 보내신다는구나..네 시녀들이 주인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근신중에 그대를 가르칠거다.먼저번 왕상궁과 아상궁을 짐이 쫓아낸이래 평안궁의 기강이 헤이해졌다고 하면서..."
그는 한숨을 쉬며 알려주었다.
"근신이요..?"그에게 혼난 걸로 끝난 게 아니었나?
그녀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들이 주인위에 주인행세를 하겠구나..
"짐이 그대를 근신시키겠다고 했다.황후나 태후에게 벌을 받는 것보단 짐에게 벌을 받는게 낫지 않느냐?교육이랍시고 별궁에 갇히는 것보다는 ..태후는 엄정한 성격이라 회초리안 들 것같애?툭하면 궁인들 형장을 치라는 사람인데 ..그댈 때리지않은 것만도 다행인거야..한번 얻어맞기 시작하면 그대는 몸이 열개라도 남아나지못해..낼 아침에 문안가서 사과드려..아니 오경에 나와 같이 가자.내면전에서는 그리 크게 나무라진 못하겠지.태후께서 귀비가 되어서 황실의 위신을 떨어뜨렸다고 크게 얹잖아계셔..트집이라는 건 나도 알지..내가 황후를 찾지않으니..황후는 그대가 간병한 일이 있어서 전처럼 드러내놓고 비난하진 않지만 태후는 여전히 그대가 못마땅해..네 시녀들을 세답방으로 모두 쫓아내려는 걸 말렸다.나는 바빠서 평안궁의 일을 모두 참견하지 못한다.당분간 좀 귀찮겠지만 참아라..너를 별궁에 두고 태후전의 상궁들에게 훈육을 맡겨 교육이 끌날때까지 별궁밖출입을 못하게 하려던 걸 짐이 그대가 병약하니 평안궁에 가르칠 사람만 보내라고 했어...떨어진 별궁에 갖히면 짐을 만나기도 힘들어,짐도 그대를 매일 보러갈 수도 없고..말이 별궁이지 외진 궁에 귀양처럼 갇히는 거나 다름없어..귀비라지만 나이도 어리고 태후의 눈밖에 났는데 그들이 널 윗사람으로 대우하겠느냐? 별궁에서 태후의 상궁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태후가 네게 엄한 훈육이 필요하다고하고 황실에 처음 태어난 공주처럼 가르쳐야한다고하는데 매일 벌을 받을지 아니면 아이취급해서 젖먹이하고 똑같이 다루기라도 하면 아랫것들 민망해서 어쩌겠느냐 ..그렇잖아도 태후는 그대와 짐을 때놓을 구실만 찾고 있는데...왜 짐이 매일같이 평안궁에 와서 현아를 돌보는 줄 아느냐? 태후와 황후에게 시위하기위해서야..이 황궁에서는 오직 짐만이 그대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지않느냐?."
한숨쉬는 그녀를 그는 품에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와 뺨에 입맞추었다.
"나의 현아 ..착하지..당분간 얌전한 척이라도 좀 해봐라..그대가 인형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태후는 연로하셔셔 장수하지못할거다..괜히 생전에 눈밖에 나지말고.."
"연로하셨으면 황상께 전권을 넘겨야하는 게 도리아닌가요?그냥 순순히 물러나실 것같진 않은데.."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그게 싫으니 사사건건 나와 다투는 거지..그때문에 그대를 더 들볶는 거고.애초에 .그대같은 말괄량이를 입궁시킨게 내 잘못이지..그대가 평안궁에 들고나선 내궁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황후까지 가세해서 불평이 끝없으니..그대를 처음 봤을 때는 그대의 성정이 망아지같아질 거란 생각은 못했었지...갈수록 말괄량이가 되더니...육촌오빠를 핑계대고 그대가 힘들다는 거 알아..금족령에 늙은 잔소리꾼들에 ..설마 말라죽진 않겠지..?그래도 그대가 소중히 여기는 약초원과 내의원 약방을 닫으라고는 않으니까..며칠만 참으면 적당한 구실을 붙여 훈육상궁과 보모상궁을 바꿔주마.마침 오상궁이 늙어 몸이 쇠해져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니 출궁시켜줘야겠다.양상궁도 너때문에 속썩었을 테니 쉬라고 사가로 내보내야지.."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마마, 탕약이옵니다.."
방문밖에서 소관자의 음성이 들렸다.
"들이게.."
그가 놓고 나가라는 손짓에 환관은 그가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위에 올려놓는 걸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냉큼 마셔, 멍이라도 들면 안되니까.."그가 잔을 가져와 입에 대주었다.
"병주고 약주세요?황상?"그녀가 토라져 고개를 돌렸다.방금 때려놓고..?
"짐은 지금 네 오라버니로 걱정하는 거야..아니면 약이라도 발라줘...? 어디 얼마나 부었나 봐야겠다.멍이라도 들지않았나..."
그가 걱정스러운 듯 말하며 짓궇게 무릎위에 올려놓은
그녀를 홱 돌려당겨 하급궁녀의 푸른치마를 속치마채 걷어올렸다.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하얀 비단 속바지에 그의 손이 닿자 그녀가 질급하더니 황급히 치마자락을 내리고는 그가 내미는 잔을 순순히 받아 삼켰다.안마시면 정말로 멍이라도 들었나 확인하겠다고 속옷을 벗기려들지도 모른다.
"그러실 필요없어요..오라버니가 제 모친은 아니잖아요.."
"부끄러운 줄은 아나? 쯧쯧.. 황비가 되서 황상에게 이리 혼나다니..."그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현옥산이 어디있더라? 그거면 좀 덜 따가울건데..어릴적에도 쏘다니길 좋아해서 생채기날때마다 그 약을 노상 바르고 다녔지.그대가 어릴 적에도 업은 적은 많아도 한번도 때린 적이 없는데...궁에 들어서 왜이리 말썽을 부리는 거야?"
그녀가 그의 무릎에서 일어서며 가만히 몸을 뒤척였다.
"왜?어디가려고? "
"좀 씻어야겠어요.."눈물로 얼국진 얼굴을 이제사 깨달았나보다.하지만 그녀는 일어서자마자 비틀거렸다.
그가 놀라서 후회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너무 심했던 거냐?..혹 못 걸을 정도인가?못걷겠으면.. 안아다주마.."그녀가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짓궇게 물었다.
"아님 내가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혀줘?"
"놀리지마세요.저는 인형이 아니어요..."
"유모 현아를 데려가.몰골이 엉망이니 아이를 목욕부터시키게.야단은 나중에 치더라도.."
이미 실컷 혼났는데 또 뭘?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그의 무릎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옆방의 휘장뒤로 사라졌다.문밖에서 기다리던 유모가 내실의 문을 닫자 욕조의 튀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애궃은 차만 연거푸 서너잔을 비웠다.
스치는 비단자락소리..병풍뒤에서 그녀가 침의를 갈아입고 나오자 그는 그녀를 답삭 안아들고 와 촛불을 껐다.
"이리와, 현아..재워주마.."
"제가 아기에요..?"그녀는 곁에 누으면서도 여전히 볼이 부어 있었다.
"방금 짐에게 혼났으니 오라버니가 달래줘야할것같은데.?오직 짐만이 이황궁에서 너를 보호하고 지켜줄수있지않느냐? 아가,착하지..."
그가 용포를 벗어던지며 돌아누운 그녀를 끌어당겨 자신의 옆자리에 뉘였다.그러나 그녀는 뾰료통해서 고개를 돌리고 그를 외면했다.
"그래 .짐이 잘못했다..널 볼기치지말아야했어. 그래.오랫만에 시장을 나가니 좋았어?"
그녀는 여전히 볼이 부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타고난 말괄량이가 신났을텐데..?시장상인들과 다투기까지해서 아낙네들에게 박수까지받았다며?"
그가 놀리듯 말하자 그녀가 발끈해서 대답했다.
"신나기는요?나가보니 대상들과 환관들의 횡포가 너무심해요.작년흉작으로 국고가 비어간다고 농민들에게 호부에서 징세를 너무가혹하게 하는것 아닌가요?시장상인들은 상인대로 궁의환관들이 물건을 너무 헐값에 가져간다고 울상이던데요?"
"응?무슨 소리?"
"태후전의 환관들말이어요.오라버니가 단속좀하셔야겠어요.."
"자초지종을 말해봐.짐도 얼핏 들은 말이 있다.호부의 늙은 관리들과도 힘겨루기가 쉽지않다만.."
"내시들이 궁중물품을 사들이면서 폭리를 취한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에요.태후전이나황후전의 환관들이 비난이 심한걸 모르셨나요?"
"내관들은 황궁에 딸린 가솔들이니 황명으로 단속할수있잖아요.황상께서도 한나라나당나라환관들의 폐해를 아시잖아요.숯한수레가 비단한필값밖에 안된다는게 말이되나요?"
자초지종을 듣고 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대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짐에게는 가장 좋은 벗이자 최고의 군신관계이었을 거야.."
"오라버니,왕부에 계실때는 오라버니께서도 백성들의 삶의 고단함에 밝으셨어요.."
잊은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조정에 내힘이 부족할 뿐이지.."
"글방 친구들 중에 과거에 통과한 이들은 없나요?"
두녀석이 있지만 아직 미관말직이라서..힘이 미미해."
"등과한지 얼마안되었으니..당장 높은 관직에 제수할 수는 없다해도 ..은밀히 요직으로 자리를 옮겨 밀지를 내리심이 어떻겠어요..?특히 호부의 세금징수관리직과 규휼청에 .."
"대상인들을 억제하자는 법이 호부에서도 올라왔지만 당장 황실 종친들이 달가와 않으니.."
"일단 황궁의 내시들부터 단속해야 황실의 위신이 설거에요..오라버니께서 오늘 시장에서 그들의 횡포를 보셨다면..."
"소관자가 때마침 널 구해오지 않았다면 무슨 일 을 당했을 지도 몰라..그런 대상인들은 주먹쓰는 패거리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현아,아무리 너가 새처럼 빨라도 너무 자만하지마라..뿔사슴도 사냥꾼에게 잡힐때가 있고 영리한 토끼도 교활한 여우에게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짐에게는 비빈이라고는 너하나뿐이니 내탕금은 절약할 수 있겠구나.딸린 외척이나 가솔들이 달리 없으니...황후라면 국모라는 위신때문에 따르는 시늉은 하겠지만 태후전에서 얹잖게 여길텐데...일단 태후전의 위세를 꺾어야겠지...그대가 짐에게 혼난 만큼 가치있는 일이 있어야지..현아, 네가 무척 어른스러워졌구나.. "
문득 대답이 없길래 그가 내려다보니 그녀는 품안에서 잠들어 있었다.어둠속에서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이 말괄량이..낮에 꽤나 활약하고 다녔군..금방 혼나놓고도 야단친 사람 품안에서 그냥 곯아떨어지다니..
이거 정말 어린애아니야..어른스러운 것같은데도 때론 철이 없고..이따끔씩 당돌한데 순진하기도 하고...
그가 볼기친 게 꽤나 아플텐데 울기는 했어도 잘못을 빌지는 않는다.
그녀가 가끔씩 법도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버릇을 고치려들었는데 괜히 아이처럼 혼을 냈다는 후회가 들며 조용히 돌아누은 그녀를 품안에서 돌려 안고는 가냘픈 몸을 어루만졌다.조심스럽게 침의 아래 얇은 속옷위를 더듬으려다 그가 두들겨준 둔부에 손이 닿자 멈칫하고 말았다. . 이 귀여운 엉덩이에 처음 내 손자국이 나다니...
그녀가 자존심강한만큼 깨면 화를 낼 것이 뻔했으므로 조심스럽게 안아주는 수 밖에 없었다.그에게도 애지중지하는 누이동생이였지만 부모에게도 금지옥엽이었던 것만큼 매한대 안맞고 컸는데 처음 볼기좀 맞았을텐데... 붓거나 멍들진 않았으려나.....그가 그렇게 야단쳐도 그녀는 빌지는 않는다..
자신의 나신은 절대로 보이려않으니만큼...황실이 후사를 간절히 바라는만큼 좀 시간이 지나면 회임을 해야할건데..아기를 낳고 용종을 품을 몸인데 행여 잘못기라도하면...다시 어린애벌주듯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황후에게는 가망이 없다는 말들이 나오는 마당이었다.태후가 아무리 애를 태워도 황제가 질녀를 찾지않으니..하룻밤 밤을 보낸다해도 그는 생산이 되지않게 극히 조심했다. 정적의 외손으로 후사를 이으면 그의 권력을 틀어쥘 장래의 계휙에 차질이 생길게 뻔했다.황후는 그녀를 어린 아이로 여겨 받아들인만큼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되리라는 생각은 않았지만 피어나는 그녀의 나이와 용모에 십여년이나 연상인 시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거기에 학식도 재주도 없으니 ...
결국 현아만이 자신의 후사를 이어야할것이다.아직 좀 어리지만..조만간..다른이들은 비슷한 나이에 어미도 되는데..
아기를 가지면 철이 들까? 아이가 아이를 갖는 거아닌가? 회임이라도해야 태후나 황후가 무시를 못하지..천방지축같은 후궁의 말썽꾸러기로 아이취급만 받고..
문득 그가 안고 있는 그녀의 몸이 아이가 아니라 피어나는 어린 여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궁에든지 한해째였다.그녀는 더이상 소시적 그가 귀여워했던 어린 소녀가, 어린시절 자주 안고 다녔던 아기가 아니다.
그새 키가 좀 컸나? 몸이 야윈건가?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은 눈부신 여체로 그의 남성을 유혹하고 있었다.
잠자리를 같이해도 차마 몸을 섞지는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지아비로 받아들여 원하기 전에는..
하지만 엷은 침의 아래 봉긋한 터질듯한 복숭아같은 젖무덤의 분홍빛 유두가 그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수양버들같이 가냘픈 몸..유난히 가는 허리, 탐스러운 둔부, 길고 곧은 다리,상아조각같이 햐얀 발 ..
그가 그녀의 백옥같은 하얀 긴목을 손끝으로 살짝 더듬자 그녀가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자면서도 그의 손길을 느끼는 건가?
오라버니의 정처가 되기 전에는 몸을 허락하지 않겠어요.
황후가 되기를 원하느냐?
전 첩실이란 것이 싫을 뿐이어요..황제의 비빈이 되느니 평범한 사가의 정부인이 되는 게 나아요..
짐이 강남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네말대로 정실이 되었을 텐데...
입궁첫날 ,그녀의 당돌한 요구를 그는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는 자신이 그녀의 몸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끓는 피가 더운 스물 둘이었다. 그녀는 피어나는 열여섯이었고..육궁의 미녀들중에도 그녀만한 미인이 없었다.
첫댓글 인척간의 혼인이 성햇던 시기이니 고려때의 이야기인지 신라때의 이야기인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