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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WBA 여자페더급(57.150㎏) 3차 방어전에 성공한 최현미는“컨디션이 안 좋아 마음먹은 대로 경기를 하지 못해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눈에 피멍이 들고 얼굴이 퉁퉁 붓는 등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오진규 인턴기자 |
"너무 힘들땐 소리질러 목 부어 병원신세도… 세계여자 통합챔프 꿈"'탈북 소녀 복서'로 알려진 WBA (세계복싱협회) 여자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20·동부은성체육관)는 지난달 30일 힘겹게 3차 방어에 성공했다. 도전자인 클로디아 로페즈(31·아르헨티나)와 난타전 끝에 2대1 판정으로 이겼다.
안쓰러울 정도의 격전(激戰)을 치른 다음 날 여자 챔프의 모습과 심정은 어떤 것일까. 올해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1학년인 최현미를 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긴 생머리에 운동복 차림의 최현미는 다리를 약간 절었다. "아이고 허리야, 안 아픈 데가 없네요…." 전날 경기의 후유증이었다. 머뭇거리던 최현미가 알이 큰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자, 퉁퉁 부은 두 눈이 드러났다. 피멍도 보였다.
같은 여자인 기자가 그의 심하게 부은 눈에 놀라는 얼굴을 하자, 최현미는 "어제는 더 심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사람 같아진 거예요. 저는 역시 복싱 체질인가 봐요"라고 웃었다. 함께 나온 아버지 최영춘(45)씨가 "얼굴 저렇게 망가져서 어떻게 하느냐"고 안타까워하자, 딸은 "복싱 대신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눈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라며 말을 돌렸다.
화제가 전날 경기에서 고전했던 얘기로 흐르자, 애써 명랑한 표정을 지었던 최현미의 부은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운동선수는 핑계를 댈 수 없어요.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판단하니까요." 이기긴 했어도 어렵게 마련된 3차 방어전에서 속 시원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 속상한 듯했다.
정보 부족으로 상대 파악부터 애를 먹었다. 최현미(키 1m70)는 어렵게 구한 로페즈의 프로필에 키가 1m73이라는 얘기만 믿고 대비했지만, 막상 링에 서자 로페즈가 최현미의 눈 밑에 올 정도로 작아 당황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로페즈는 틈만 나면 얼굴에 박치기를 하는 통에 최현미는 몇 차례나 눈앞이 캄캄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는 "마침 생리일까지 겹쳤어요…여자라서 운동하기 정말 힘들어요"라고 했다.
최현미는 방어전을 앞두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고 '지옥훈련'을 소화했다. "너무 힘들어 멍하니 벽에 기대고 앉아 엉엉 운 적도 많았어요. 훈련이 너무 힘들 때마다 '현미야 힘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훈련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최현미는 혼자 "악~악"하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너무 악을 써서 목이 붓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 최영춘씨는 "지금까지 경기를 치른 것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구가 난립한 여자복싱의 한국챔피언은 모두 7명. 하지만 인기가 없는 종목이라 스폰서를 못 구해 방어전 치르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 대부분이다. 일정 기간 방어전을 못 치르면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
기자가 '남자친구 사귈 생각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번에 두 가지는 못하는 성격"이라며 "합숙과 전지훈련으로 2~3개월은 못 만날 때가 많을 텐데 너무 미안해서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세계 여자프로복싱 통합챔피언이란 목표를 이룰 때까진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최현미였다. 이번에도 1주일쯤 쉰 후 4차 방어전에 대비할 것이라고 했다. '힘들지 않으냐'고 했더니, "힘들죠. 대신 열심히 해서 통합챔피언이 빨리 될 거예요. 그땐 하고 싶은 거 하고 매일 쉴 수 있겠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