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이론의 기초가 된 나비효과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다.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착상한 이 원리는, 1979년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비효과는, 사소한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불규칙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의 이면에는 규칙적인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카오스 이론의 모태가 되었다.
190cm의 모델 출신 애쉬튼 커처를 주인공으로 한 [나비효과]는 과학영화나 SF 영화는 아니다. 유년시절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에반은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행동을 수정함으로써 현실을 바꿔보려고 하지만, 수정된 과거는 전혀 엉뚱한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는 변화된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 모범생이었던 그는 교도소에 수감된 살인자로, 혹은 두 팔이 잘린 장애인으로 변모한다. 에반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또 다른 잘못된 행동들을 수정해야만 한다. 이번에도 역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현실이 나타난다. 자신이 원하는 현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의 모순들을 수정하려는 그의 노력은 또 다른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를 거듭 과거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나비효과]는 이렇게, 시행착오의 연속인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삶을 결정적으로 비틀어지게 한 과거의 그 순간을 수정하면 올바른 삶이 펼쳐질 것으로 누구나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수정된 과거는 물론 지금과는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지만, 그 현실이 수정되기 전의 현실에 비해 만족할만한 현실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에반의 현재는 대학생이다. 그의 잘못된 과거는 크게, 1)첫 사랑 켈리의 아버지에게 이끌려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켈리와 유아 포르노 비디오를 찍던 순간 2)고철 쓰레기장에서 켈리의 오빠인 토미와 결투하던 순간 3)켈리, 토미, 레니와 함께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여 외딴 집의 우편함에 넣는 순간으로 나눌 수 있다.
1)의 경우, 딸 켈리에게도 성추행을 일삼는 켈리의 아버지를 위협하여 포르노 비디오를 찍는 일 자체가 없어지게 하지만, 그렇게 바꿔진 과거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현실을 낳는다. 2)의 경우, 토미에게 폭행당하지 않고 오히려 레니가 토미를 살해하게 부추김으로써 과거는 수정되지만 역시 현실은 다른 형태로 바꿔진다. 3)의 경우, 때마침 집으로 돌아온 젊은 부인이 아이를 안고 우편함으로 다가가다가 처참하게 죽은 과거를 수정하기 위해, 에반 자신이 우편함 앞으로 달려가지만 수정된 현실에서 에반은 두 팔은 잘린 채 살아가고 첫사랑이었던 켈리는 에반의 친구 레니와 연인이 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잘못된 과거도 수정하고 현실도 원하는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애릭 브레스와 매키 그루버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나비효과]는 과거를 수정함으로써 잘못된 현실을 바꿔보려는 인간의 공통된 욕망에서 기인한다. 이런 주제는 이미 수없이 영화화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2월 2일 성촉절이 반복되는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이라든가,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 20분전으로 되돌아가는 [래트로액티브]는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반복해서 돌아간다. 프랑스 영화 [비지터]도 실수로 약혼녀의 아버지를 죽게 한 기사가 과거를 수정하기 위해 과거의 그 시점으로 보내달라고 마법사에게 부탁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이런 주제의 영화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시간이동이다. [터미네이터]나 [빽투더 퓨처][타임캅][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모두 이런 시간이동에 기초하고 있다. [나비효과]에서의 시간이동 매체는 에반의 일기장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일기장을 보는 순간 글자는 흔들리고 그의 몸은 일기장 속의 사건이 전개되던 과거로 이동한다. 따라서 특수효과 팀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나비효과]는 특별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이미 드러난 아이디어를 복합시키고 변형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컴퓨터 그래픽의 화려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영상의 감각적 효과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수정된 과거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긴장감을 줄 뿐이다. 결말의 반전이 숨어 있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매트릭스]처럼 깊은 울림 있는 소재로 확산시키지 못한 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비효과]는 수정된 과거가 수정된 현실을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의 모음 조각이다. 이것을 굳이 나비효과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 토네이도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우리가 보는 [나비효과]가 감독 자신이 편집한 디렉터스컷이 아니라 상업성을 강조한 극장판이라는 것이 아쉽다. 디렉터스컷이었다면 영화평은 달라져야만 한다. 태아 상태로 되돌아가는 감독판의 마지막 결말은 극장판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