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모시어, 하나 되는 본당”
춘천교구 주문진본당
문 양 기 다니엘 주임신부
‘주문하면 무엇이든지 다 나오는 주문진’
춘천교구 주문진본당 주임 문양기(다니엘) 신부와의 첫 대면은 지난해 12월 24일 가톨릭언론인산악회 제74차 성지순례와 산행 길에서 이루어졌다. 73차 춘천본당의 모태인 곰실공소 순례 때 교구장 김운회(루카) 주교와 함께 와 미사를 봉헌해 준 춘천교구 홍보국장 최기홍(바르톨로메오) 신부로부터 추천 받은 지 한 달만이다. 몇 차례 전화를 했으나 통화하지 못해 74차 순례 길에서 만나 인터뷰 날짜를 12월 28일로 정하고 다시 찾아갔다.
“주문진(注文津)은 무엇이든지 주문(注文)만 하면 다 나옵니다. 그러나 주문진본당은 주문한다고 다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구장님께서 특별히 보내주셔야 올 수 있는 곳이지요.”
지난해 9월 1일부로 주교좌 죽림동본당에서 주문진본당 주임으로 자리를 옮긴 문 신부가 가톨릭언론인산악회원들을 맞았을 때 주문진과 주문진본당 자랑부터 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원해서 이곳으로 온 문 신부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기자가 서울동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3시간을 달려 내린 주문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분도 채 걷지 않아 다다른 주문진읍 교항 5리 산 54번지 언덕 위의 1만 평 넓은 부지에 서 있는 성당은 너무 아름다웠다. 숲속 루르드의 성모님상이 제일 먼저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올라온 기자들을 은은한 미소로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뒤로 노란색 고딕식 건물의 아담한 성당과 오른쪽 같은 분위기의 사제관이 눈길을 끈다. 성당 위의 첨탑 십자가와 그 아래 또 다른 십자가상이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마침 구역모임 영적지도를 마치고 돌아온 문 신부를 성당 마당에서 만나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잘 정돈된 성당 내부, 한복의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성탄 말구유가 구세주 오심의 넘치는 기쁨을 그대로 전해준다. 무릎을 꿇고 한참동안 기도한 문 신부와 다시 성당 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언덕 아래 주문진읍과 멀리 동해 푸른 바다가 수평선 끝까지 제대로 보인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주문한다고 다 올 수 있는 주문진본당’이 아니라는 문 신부의 자랑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넘친다.
인터뷰 장소인 사제관 2층 집무실로 들어서자 문 신부의 자랑은 또 이어진다.
“매일 동해 일출을 볼 수 있는 우리 사제관은 전국에서 가장 전망 좋고 아름답습니다. 아침마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 노래 부르지요. 지난해 9월 처음 왔을 땐 바로 정면에서 해가 솟아올랐는데 점점 오른쪽으로 옮겨지더니 지금은 3시 방향에서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와 신비도 묵상하게 됩니다.”
주문진본당은 오는 11월 23일이면 설립 89주년을 맞는다. 영동지역 신앙의 모태인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의 금광리공소에서 1923년 옮겨와 성당을 완공하고 힘차게 출발했다. 설립 당시 성당이 1929년 10월 7일 화재로 없어지면서 다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51년 본당으로 재 승격된 뒤 1953년 지금의 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신앙의 뿌리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서울과 경기, 충청, 경상도 등지에서 숨어든 신자들로 신앙공동체를 이룬 뒤 1887년 금광리공소를 설립한 데서부터 자랐다. 사제 10명, 수도자 20여 명을 배출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오랜 세월 고귀한 신앙을 지켜온 아름다운 하느님 의 자녀요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맘씀 모시며 신나게 삽시다!―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21)
이렇듯 신앙의 전통이 탄탄한 주문진본당에 온 문 신부는 심혈을 기울여 본당 설립 89주년이 되는 2012년의 사목방향을 정하고 착착 실행하고 있다. ‘복음을 살고 전하는 춘천교구 공동체(새 복음화를 위한 시대적 소명을 실천하는 신앙인)’라는 교구장 사목교서를 바탕으로 ‘새(=재再)복음화를 지향하여, 하느님 말씀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순교자들의 전구로 복음소명을 실천하며, 주님 사랑 안에 하나 됨과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을 누립니다.’로 설정했다. 이를 세분화하여 정한 사목목표는 ‘말씀 모시어, 하나 되는 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크게 □만남 마당 - 하느님 말씀, 접하는 삶 □배움 마당 - 하느님 말씀, 아는 삶 □나눔 마당 - 하느님 말씀, 나누는 삶 등 세 부분으로 나눴다. 이를 다시 세분화해 만남 마당에서는 개인 매일기도와 가정 성화기도 주 1회 이상 하기와 평일미사 주 2회 이상 하기의 영적쇄신과 초대교회 공동체를 지향하며 구역 반 모임의 소공동체 참석 및 신심단체 가입하기로 제시했다. 배움 마당에서는 전 신자 2011년 12월 1일부터 2012년 11월 30일까지 1년 동안 성경 신구약 완독하기를 가장 먼저 제시했다. 누구나 하루에 구약 5~6쪽, 신약 1~2쪽을 읽으면 1년 만에 신구약을 완독할 수 있다고 문 신부는 강조한다. 이와 함께 성경 쓰기와 성경 묵상 및 그룹반 등에 참여해 성경 공부하기를 역점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성경완독과 더불어 사회교리를 비롯한 가톨릭 교리를 지속적으로 접하고 영적쇄신 함양을 위해 영적독서와 성독(聖讀), 피정, 강연, 성시간, 성체조배, 성지순례를 연중 실시하고 있다. 사제와 수도 성소 육성을 위해 기도하고 성소후원회를 신설해 성소 발굴과 육성에 전력을 쏟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눔 마당에서는 우선 새 복음화 사목으로 예수부활반과 성모승천반, 예수성탄반의 예비 신자 입교식을 갖고 각 구역 반 · 단체별로 예비자 인도를 위한 전 신자 9일기도를 바치고, 연말에 선교상 시상과 함께 영동지역 11개 본당 및 교구 사목국과 연대를 갖는 것으로 했다. 재 복음화 사목으로는 냉담교우와 전입교우 가정을 연중 방문하고, 성독과 각종 피정에 참여하며 본당 홈페이지를 제작함과 동시에 본당 설립 89주년 기념 축제를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했다. 주일학교 청소년 사목과 사회복지 지원 활동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친다는 계획이다.
복음화는 복음을 살고 나누는 것
“사목은 바로 복음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음화는 역시 복음을 살고 나누는 것이지요. 이를 제대로 한다면 그것이 곧 사목 아니겠습니까. 우리 본당의 올해 사목방향도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나누는 삶으로서 불우이웃을 돕는 일과 임종하는 이들을 인도하는 선종봉사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려고 합니다. 국내 유일의 분단교구로서 북강원도 지원 등 교구의 북녘동포 돕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달 25일 봉헌하는 ‘남북 한 삶 미사’와 성탄 밤미사 예물 및 구유 예물을 모두 북녘 동포를 돕는데 보태고 있습니다.”
문 신부 부임 후 생명과 인권 및 환경연대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인권주일에는 주교회의 인권위원회 위원인 이덕우 변호사를 초청해 삼척과 영덕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특강을 실시했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무심하던 신자들이 이 특강을 듣고 난 뒤 확실하게 문제점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이 변호사는 원자력발전소는 결국 원자폭탄과 같은 원리를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원자력발전소는 100회 정도 가동할 때마다 한 번씩, 기간으로는 4~5년 마다 한 번씩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사고가 난다고 쉽게 설명했다. 원자폭탄이 한 번에 터진다면 원자력발전소는 서서히 원자폭탄과 같은 재앙을 인류에게 안기는 흉기라는 것이다. 가격 또한 결코 싸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대체 연료가 나오기까지 절약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자세한 강의에 주문진 신자들의 공감이 컸다고 문 신부는 전했다.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이 되는 사고가 원전을 지으면 반드시 발생하는데 정부는 원전 건설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원전 사고가 난 세계 곳곳에서 보듯이 사고가 나면 돈과 권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만 피해를 입습니다. 교회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닙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기도하며 복음을 사는 사제
문 신부는 1954년 12월 13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에서 지난 1998년 78세를 일기로 선종한 아버지 문태운(바오로) 님과 84세의 어머니 강옥순(율리에따) 님 사이의 2남 1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여동생 명례(52 · 말가리타) 님은 현재 성모영보수녀원 수녀다. 문 신부는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유한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보다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전국에서 장학생으로 학생을 선발하던 유한공고 전기과에 입학한 것이다. 졸업 후 철원군 서면사무소에서 6개월 동안 행정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육군에 입대해 3년 동안 복무하고 귀향했다. “일생을 보람되게 사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청년 문양기에게 던져진 최대 화두였다. 고향 본당신부이던 아일랜드인 손제랄드 신부와 깊이 상담하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1979년 광주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학)에 입학했다. 동기들 보다 여섯 살 많은 나이였다. 순탄한 대신학교 생활을 이어가다가 3학년 되던 해 스스로 한계를 절감하고 과연 사제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들었다. “망망대해에 혼자 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거듭된 번민 끝에 내려진 결론은 “그분께 모든 걸 맡기자.”였다. “그분이 뜻하시는 대로 살면 되지 않겠나.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니 그토록 짓누르던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교구 방침에 따라 학부 4년을 광주에서 수학하고 대학원 2년은 서울 가톨릭대학교에서 마친 뒤 1985년 1월 22일 춘천 주교좌 죽림동성당에서 당시 교구장 박토마스 주교로부터 신품을 받았다. 소양로본당 보좌로 시작해 홍천 보좌, 가평본당 주임, 교구청 사무처장, 청평, 속초 교동, 교구청 관리국장, 안식년 겸 해외연수로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로삐아노(Lopiano)에 있는 포꼴라레 사제학교 수학, 죽림동 주임을 거쳐 교구장에게 청한 주문이 받아들여져 주문진으로 왔다.
문 신부가 서품되던 해는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이 여전히 요구되던 때였다. 첫 임지이던 소양로본당 주임 송성식(토마스) 신부의 권유로 교구 대표 자격으로 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활동에 참여해 11년 동안 고 김승훈, 김병상, 함세웅, 장용주 신부에 이어 전국 대표가 될 정도로 열심히 활동했다. 허리 디스크를 얻어 바닷가 본당인 속초 교동으로 갔을 때 마침 안식년을 얻어 강릉에 와 있던 서울대교구의 이냐시오 영성 전문가 김창운 신부를 만나 깊이 기도하고 피정하며 영적 갈증을 채울 수 있었다. 이후 2000년부터 지금까지 신학생 때부터 깊이 관심을 가졌던 포꼴라레 영성에 빠져 안식년이던 2006년 2월부터 2007년 9월까지 포꼴라레 사제학교에서 전 세계 30여 나라 사제 30여 명과 함께 기도하고 공부했다. 그의 사제생활 27년은 이렇게 시대의 징표를 읽고(정의구현사제단) 기도하며(이냐시오 영성), 복음을 사는(포꼴라레 영성)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00년 8월부터 2006년 2월까지 관리국장직을 수행하면서 업무 특성상 너무나 많은 영적 갈증을 느껴 안식년이 시작되자마자 포꼴라레 사제학교로 달려갔다. “영적으로 너무 활폐해짐을 느꼈지요. 모든 삶은 영적 삶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온 문 신부를 <사목정보>에 추천한 교구 홍보국장 최기홍 신부는 “문 신부님은 동료 사제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분이십니다. 한 번 만나 보세요.”라고 했다.
아름다운 주문진 성당에서 만난 문 신부는 과연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이 시대의 참사제였다.
글 / 최홍운 alsemffp34@naver.com
사진 / 인영오 05ems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