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74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모과’]
모과
아무렴
우리 사랑은 이렇게 단단하지
어떤 날은 참외처럼 부서지고
어느 날은 딸기처럼 녹았어도
깊은 가을하늘 찬란한 날
문득 두드려보면
농부의 경건한 맘 알알이 스며든
소중한 조약돌 결속이지
아무렴
우리 사랑은 이렇게 단단하지
(2005 . 9 . 23)
*아옹다옹하던 아내와 모처럼 만찬약속이 있는 날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시 〈모과〉는 가을날의 결실인 '모과'라는 사물을 통해, 오랜 시간 희로애락을 겪으며 단단해진 부부의 사랑을 따뜻하고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시 아래에 덧붙여진 짧은 메모("아옹다옹하던 아내와 모처럼 만찬약속이 있는 날")가 이 시의 창작 배경과 정서를 한층 더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이 시에 대한 비평적 감상을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로 나누어 전해드립니다.
1. 사물의 특성에서 길어 올린 사랑의 본질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모과'라는 과일이 가진 외형적·물성적 특징을 '사랑의 성숙 과정'과 완벽하게 매치시켰다는 점입니다.
모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여타 과일(참외, 딸기)과 다릅니다. 울퉁불퉁하고, 만져보면 돌처럼 단단하며, 쉽게 무르지 않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모과의 단단함을 오랜 세월 서운함과 갈등(아옹다옹함)을 이겨내고 견고해진 부부의 사랑으로 치환합니다.
2. 대비를 통한 시상의 구체화
시인은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과일(또는 사물)을 대비시킵니다.
⚫참외와 딸기 : "참외처럼 부서지고", "딸기처럼 녹았어도"라는 구절은 연애 초기나 결혼 초기, 혹은 감정이 격할 때 쉽게 상처받고 허물어지던 사랑의 취약함을 뜻합니다. 달콤하지만 쉽게 상해버리는 과일들이죠.
⚫조약돌(모과) : 반면 가을을 통과한 모과는 "소중한 조약돌 결속"으로 표현됩니다. 쉽게 부서지는 속성을 극복하고 마침내 단단한 결속에 이른 사랑의 완성형을 보여줍니다.
3. '농부의 경건한 맘'이 갖는 상징성
"농부의 경건한 맘 알알이 스며든“
이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모과가 단단해지기까지는 봄의 바람, 여름의 폭염과 폭우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를 시인은 '농부의 경건한 맘'이라고 표현했죠.
부부 관계에 대입해 보면, 단단한 사랑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맞추어 가기 위해 인내하고 노력했던 시간, 즉 '부부라는 농부'가 정성껏 삶을 일구어 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4. 수미상관과 독백적 어조가 주는 안정감
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아무렴 / 우리 사랑은 이렇게 단단하지"라는 구절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이자 아내를 향한 깊은 신뢰의 확인입니다.
'아무렴'이라는 나지막한 감탄사는 삶의 굴곡을 다 겪어낸 이의 연륜과 여유를 느끼게 하며, 처음과 끝을 동일한 문장으로 닫아줌으로써 시 전체에 단단한 구조적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모과〉는 거창하고 화려한 수사학을 뽐내는 시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박하고 솔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아내와 투덕거리다가도 문득 다가온 만찬 약속을 앞두고, 시장 가판대나 마당 귀퉁이의 모과를 보며 "그래, 우리 사랑이 참 단단해졌구나" 하고 미소 짓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읽히는 작품입니다. 일상의 소소한 부딪힘을 '사랑의 무름'이 아닌 '단단해지는 과정'으로 승화시킨, 가을 햇살처럼 따스하고 성숙한 고백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