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기이한 경험을 몇번 겪어보았는데, 섬뜩한 순간이 두번 있었다.
1.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일요일 오후,
분리수거해야 할 쓰레기를 한가득 버리고 하늘을 올려보니
볕이 좋고 하늘이 푸른 것이 맘에 들어서,
집에 들어가 저녁 차리는 걸 도와드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아파트 근처 벤치에 앉아서 가을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낡은 나무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 줄기 바람이 뺨을 타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새 바람이 뺨을 타고 코로 들어가면서
바람이 일곱가닥으로 갈라져 얼굴의 일곱 구멍으로 들어가
기도로 들어가 폐를 훑어내고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가는것 까지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내가 바람이 되었고 나무벤치와 하나가 되어버렸다.
나와 천하가 하나가 된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고,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하나가 되었고
주변의 모든 색들이 하나가 되었고
주변의 모든 향들이 하나가 되었고
주변의 모든 감촉들이 하나가 되어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나조차도 잊어버렸다.
찰나의 순간이 지난 뒤, 주머니에 넣은 카톡 알림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람은 이미 저 멀리 흘러가 버리고, 찰나의 순간 자신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2.
몇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봄이 아니랄까봐 식곤증이 몰려왔다.
수업 시작하기까지에는 시간이 50분 가량 남아있어서,
시계 알람을 맞춰놓고 잠깐 눈을 붙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계는 수업시간을 40여분이나 훨씬 넘긴 시간이었고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에 서둘러 침대에서 박차고 나오려는데
발을 헛디뎌서 침대에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눈에서 별이 반짝 하면서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다시 정신이 들었다.
놀란 마음에 시계를 보니, 수업까지는 20여분이 남아있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물 한컵 마시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방을 떠나려는 찰나
바닥의 물을 밟고 미끄러졌다.
눈앞이 번쩍 하면서 잠깐 세상이 깜깜해졌다가
얽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나는 침대에 엎어졌던 그대로 개구리마냥 엎어져있었고
머리맡의 시계를 살펴보니, 곯아떨어진지 15분도 안 되었다.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촉촉했고, 정신은 아득했다.
앞으로 엎어졌을 때의 코를 어루만져보고
뒤로 자빠질 때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의 착각이었던 걸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누구인가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현실은 완벽한 나-란 존재가 인지하는 세계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또다른 꿈 속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꿈 속의 또 다른 꿈 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