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강의자료 1
면죄부의 역사(20170903) / 마태복음 23:37-38

현재 한국교회는 이원론과 소비자 중심주의와 값싼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앙을 바겐세일하고 있다. 믿음을 팔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예수를 교회 안에 가둬두고, 심지어는 유폐시킴으로 각자의 마음에만 임하시는 예수로 변질시켜 버렸다.
한국교회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실패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태 23:37-38)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가톨릭교회(구교)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통해 태동한 개신교(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한참 떨어졌다. 오히려 개신교가 더 타락했다.

1517년 구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에 붙었다.
sola scriptura! / sola gratia! / sola fide! 오직 말씀, 은총, 믿음으로만!
presbyterian : 부단한, 끊임없는 혁을 의미하는 것임.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회는 행위와 개혁이 없는 값싼 구원이 횡행하고, 영지주의와 가현설이 난무하고 있다. 한 예로, 칼뱅의 예정론에 관한 몰이해는 ‘구원파(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해병도 아닌 것들이)’를 등장시켰고,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지금 여기에서’의 구원을 죽은 뒤에나 영혼에게 주어진 것으로 전락시킴으로 구원의 개인화와 내면화, 타계화, 탈역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이 시대 개신교에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는 없고, 오로지 ‘바울 서신’만 남았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뭐가 다른가?
과연 대안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폐쇄적이고 반개혁적인가? 혹은 우리 기장처럼 진보라고 하더라도 어떤 진보인가?
이런 전반적인 한국교회의 위기는 ‘신학적인 실패’에 있다. 그릇된 신학 때문에 복음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고, 신앙적인 체험 역시도 결핍되었다. 이런 문제는 결국 윤리, 도덕적인 실패로 귀결되었다. 전**, 조**, 오**, 김** 등등 돈과 권력과 섹스에 열광하는 기형아를 추앙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소경에 맹종하는 이들에게 구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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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비텐베르크 성당 성문에 34세의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인다. 라틴어로 쓰여있을 때에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독일어로 번역되어 배포되자 15일 만에 독일 전역에, 4개월 만에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일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루터가 비판했던 면죄부는 무엇인가?
레오 10세는 낡은 ‘성베드로 대성당’을 재건축하고 싶었다.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기로 한다. 그 당시 20대였던 알브레히트 주교는 마인츠 주교구를 매입할 욕심으로 면죄부 판매를 승인하면서, 당시 최고의 부흥사였던 테첼 신부를 통해서 면죄부 판매를 위한 부흥회를 열도록 한다. 이 부흥회는 성공적이었고 면죄부 판매의 50%는 레오 10세에게, 50%는 마인츠 주교였던 알브레히트 주교의 금고로, 그 사이의 떡고물은 테첼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루터는 이 사실을 알고,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한 것이다.

면죄부란 무엇인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증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벌을 면제해 주거나 감해주는 증서였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나 사면부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면죄부’로 통칭이 되는, 이 면죄부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서에 기초하고 있으며, 면죄부의 치밀한 신학적인 체계가 있다.
면죄부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살펴보자.

예수님에게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당연히 있었다. 그렇다면 제자들에게는 어떠했는가? 성서에 의하면 당연히 있다. 그렇다면, 죄 사함의 권세는 12사도에게만 주어졌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초대교회에서는 이것이 가능했는데, 조건이 있었다.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공동체의 권한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공동체가 듣고 분별하여 죄를 용서했다.
야고보서 5장 16절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 전에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화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즉, 초대교회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었으며, 교회는 사죄의 권한을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공적인인 죄의 고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적인 고해성사로 변질하었다. 사제에게 하는 사적인 고해성사로 변질하자, 고해성사를 받는 사제에 대한 그릇된 권위주의가 생기게 되었다. 개신교는 변질된 고해성사를 개혁하기 위해 이런 사제의 전통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목욕물을 버리다 아이를 함께 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공동체 고백과 실천이 있었던 초대교회는 불순종하는 지체들을 향해 교회가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치리하고 권징했다. 이런 공동체의 사죄선언은 ‘사제나 주교’의 권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했고, 중세시대에는 이것이 성례전 신학으로 발전했으며, 점점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성례전 신학이 정교화 지면서 사제가 ‘유무죄를 판단하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결과,
면죄부는 사실 교회가 교인에게 참된 회개를 촉구하고자 했던 순수한 의도로 시작되었다. 회개의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삭개오가 회개의 증거로 자신의 소유 절반을 나누고, 부당한 방법으로 수탈한 것을 네배로 갚는(눅 19:8) 행위를 통해서 회개의 증거를 보였으며, 예수님은 ‘구원이 네게 이르렀다’고 하신 것처럼, 누군가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으므로 면죄부가 한 방편이 된 것이다.
누가복음 3장 8절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초대교회는 공동체에게 죄를 고백하면 공동체는 철저한 회개를 촉구했고, 징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수찬금지였다. 이후, 이 권징과 치리는 교회지도자(사제)에게 위임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장로교의 ‘치리제도’가 되었다.
회개자가 감당해야하는 징벌은 추상적이면 안 되었다. 보속을 위해서는 정교한 내용이 필요했고 그것은 1. 심령의 통회 2. 입술의 고백 3. 선행의 보속의 단계를 거치도록 하였다. 이것이 보속신학의 탄생이다. 보속이 없으면 회개는 성립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보속은 회개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었다.

보속신앙은 죄 용서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어 값싼 은총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속신앙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후 ‘신인합동설’이라는 반반의 논리가 만들어졌다. 하나님이 은총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자 할 때에 인간은 기도, 금식, 구제, 성체미사, 시편낭독, 철야 등으로 그 은총을 확증해야 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등에 채찍질을 하는 것으로, 성유물을 숭배하거나, 국외추방, 성지순레, 헌금 등으로 표현되었다. 결국, 보속은 교회나 사제가 명령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면죄부 구매도 보속의 일환이었다. 헌금을 하면 영수증을 주고, 이 영수증은 일종의 면죄부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면죄부는 회개의 마지막 단계인 ‘선행의 보속’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므로 구원의 마지막 단계요, 증거가 된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속과 연결된 면죄부는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가히 ‘면죄부 혁명’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십자군을 모집하면서, 십자군에 지원하는 이들에게 죄인들의 남은 모든 형벌을 완전히 면죄해 주는 보속 증서를 발행한다. 그러나 너무 속보이는 일이라, 신학적인 논리를 만들었다.

교회는 결코 돈으로 보속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서 하늘에는 ‘공로의 보물창고’가 있다고 상정했다. 그곳에는 구원받을 만한 공덕 이상을 쌓은 성인들의 잉여공로가 보관되어 있는데, 그 보물창고의 문을 여닫는 권세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셨고, 그 권한은 교회에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교회는 하늘 문을 여닫는 권세가 있으므로 이 보물창고를 열어 지상의 죄인들이 지불해야할 공로를 대신 지불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보물창고에 쌓인 잉여공로는 성인들의 것이므로, 면죄부의 효력은 돈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성인의 공로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는 성베드로 성당을 재건축하면서 재정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발행했다. 교회로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교인들에게는 쉽게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것이 면죄부의 본질이다.
면죄부의 순수한 동기는 교회가 신자들에게 참된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었고, 교인들은 쉽게 구원을 얻는 길이 열려 환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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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은 ,<성례전의 역사>, 3강은, <밀양>과 한국교회의 면죄부 4강은, 한남교회의 나아갈 길로 이어집니다.
매주일 오후 1시 30분부터 60분간 이어집니다.